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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72화 (72/475)

〈 72화 〉 70화 : 담론, 그리고 결심 (2)

* * *

침대에 걸터 앉은 로나에게 물잔을 건네고, 그 옆에 앉아 내 몫의 잔을 홀짝였다.

따뜻한 우유가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면서, 혀끝에 꿀 특유의 달달하면서 씁쓸한 향을 남겼다.

“……”

로나는 우유가 맘에 드는지 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며 마시고 있었다.

힐끗 본 그녀의 옆모습은 무척이나 낯설다.

항상 입던 펑퍼짐한 사제복이 아닌, 목선과 쇄골이 훤히 드러나는 얇은 실내복 위에, 연갈색의 긴 머리가 물결치고 있다.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그냥 옷차림만 바뀌었을 뿐이잖아.

내용물은 매일 보던 로나 그대로잖아, 근데 이렇게까지 낯설어지는구나, 옷차림이라는 거 얕보면 안 되겠네!

등등, 쓸데없이 잡생각이 막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한 마디도 못하고 그냥 끝날 수도 있어!

나는 굳은 목을 채찍질해서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놀랐어. 사제님도 그런 옷을 입는구나.”

“네? 푸핫, 당연하죠! 사제복은 일할 때만 입는 거에요. 잘 때는 잠옷 입고, 사적으로 외출 나갈 때는 평범한 옷도 입고 그런답니다.”

“어, 음, 그래? 우리 마을 사제님은 맨날 사제복만 입었거든. 하긴, 신전 말고는 밖에서 거의 본 적이 없었구나.”

애초에 사제가 아니라 악마가 변한 거였고.

그래도 처음부터 악마였을 것 같진 않은데, 갑자기 바뀌었나?

아.

악마 하니까 생각나네.

“그러고보니 그 까마귀 악마, 지 동포한테 나랑 메린 얼굴 까발렸다고 낄낄댔었는데, 아무 일도 없네.”

“흐음…… 그러게요. 어떤 식으로 쳐들어올지 궁금해서 보호 기도도 안 했었는데.”

“……얌마. 할 건 해야지.”

통칭 ‘마녀의 숲’에서 죽인 그 까마귀 악마, 나베리우스가 죽어가면서 똑똑히 말했었다.

­­네놈의 얼굴, 네 년의 얼굴……! 이 눈으로 보고 동포에게 확실히 전하였노라……!

그래서 섬에서 쉬는 동안 로나에게도 이야기했었는데……

그 이후로 일주일 가까이 지나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다.

뭐지? 그냥 허세부린 거였나?

아니면 잡놈의 연락이라 그냥 씹히고 잊어졌나?

“그럴 가능성도 있는데…… 아, 이거 아닐까요?”

우유가 든 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로나는 싱글벙글 웃었다.

“놈들에게 얼굴이 전해지긴 했는데, 못 알아보는 거에요!”

“엥?”

“악마들이 피조물을 볼 때 주시하는 건 영혼이지 외견이 아니거든요. 근데 요즘은 영혼을 못 보니까 외견으로 두 분을 알아봐야 하는데…… 이게 익숙하지 않은 거죠!”

“아~ 알 거 같다.”

즉, 내가 여자애들 옷 구분을 못하는 거랑 똑같다는 거군.

여자애들은 똑같이 생긴 옷 여러 벌을 두고 장황하면서 열띤 토론을 펼치기 마련이다.

이 옷이 소매가 더 예쁘게 주름잡혀 있다느니, 양쪽 균형이 잘 잡혀 있다느니, 허리가 좀더 잘록해보인다느니……

진짜 다 거기서 거기 같은데 말이지.

그리고 튜르, 그 재수없는 망할 새끼는 그 틈에 껴서 같이 옷을 골라주곤 했었다.

지금쯤 그 여자들 중 한 명이랑 급하게 결혼 준비하고 있겠군.

어쩌면 두세 명 중에 고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건 또 그거대로 빡치네.

거지 같은 새끼, 머리털이나 벗겨져라!

“카엘 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속이 안 좋으세요?”

“응? 어, 아니야. 고향에 있는 개새……나쁜 놈이 생각나서.”

아무리 그래도 사제님인데 대놓고 나쁜 말을 하면 안 되지.

음음.

“고향…… 그러고보니 아버님이 혼자 계시다고 하셨던가요? 걱정되시겠어요.”

“어? 아니, 전혀.”

아버지에겐 죄송하지만, ‘아버지, 혼자서 잘 지내고 계실까?’ 라고 눈물 젖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적도 없다.

아버지 성격상, 엄청나게 잘 지내고 계실 테니까.

내 대답을 들은 로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라? 의외네요. 그럼 고향도 그립지 않으신가요?”

“어. 전혀.”

뭐더라, 향수병?

온갖 잔병을 다 치른 나인데, 희한하게 그 병의 낌새는 전혀 없다.

물론 이따금 드문드문 생각나긴 한다.

고향의 누구는 이랬었지~ 정도로만.

집에 가고 싶어 죽겠다는 생각도 아직 한 번도 안 했고.

이야기 속 주인공은 고향이 그리워서 울거나 울적해지거나 하는 장면이 꼭 나오길래 걱정했었는데, 괜히 했어.

“우와…… 별로 좋은 기억이 없으신가요?”

“아니, 그건 아니야. 영 아닌 놈들도 있긴 했지만, 좋은 사람들도 있었거든.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렇잖아?

……근데 떠나기 전날은 최악이었거든. 그래서 그런가 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성검을 갖게 되어서 메린에게 훈련을 받게 되었고,

그러다 튜르 그 놈과 시비가 붙었고,

내가 결투로 때려눕혔더니 그 놈이 홧김에 날 죽이려 들었고,

그걸 메린이 막아서는 그 놈을 반병신을 만들어버렸고……

……하나하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왠지 모르게 목이 타, 자꾸만 물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덕분에 이야기를 마칠 때 즈음엔, 내 손의 잔이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그랬군요.”

로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후, 들고 있던 잔을 책상 위에 두었다.

그리고 그대로 뒤를 돌아, 나를 살짝 내려다보았다.

“카엘 님은 모르시나요? 아니면모른 척하시는 건가요?”

“응?”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평탄한 어조가 조용히, 방 안에 울려퍼졌다.

“메린 님이 왜 그러시는지 정말 모르시나요?”

“로나……?”

“저는 알아요. ……그건 메린 님이,”

감정 하나 담기지 않은 눈으로 나를 보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를 마주보며 서 있는 이 아이가 입 밖에 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뭐라고……”

“들으셨잖아요.”

그래, 들었다.

그녀의 말들이 내 귓속으로 들어오고, 머릿속에서 의미를 띄워주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잘못 들은 것…… 잘못 들은 것 같아서. 뭐라고 했어……?”

떨리고 있었다.

잔을 들고 있는 손도, 내 목소리도.

……잔이 비어서 다행이다.

계속 이걸 쥐고 있을지 어떨지 잘 모르겠다.

“메린 님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요.”

“……”

왜?

“한 번 더 말씀드려요?”

대체 왜?

“……메린 그 녀석이 과격한 건 알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아니에요.”

숨이 흐트러졌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덜덜 떨렸다.

들고 있던 물잔이 결국 바닥으로 떨어져, 구석으로 또르르 굴러갔다.

버려진 것처럼.

어느새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외치고 있었다.

“그래, 걔가 좀 거침없긴 해! 알아! 나도 안다고! 하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요.”

왜 그런 소리를……?

그런 소릴 듣게 하기 싫어서, 그래서 데리고 나온 건데……!

“말을 함부로 해서 그래? 다른 사람에게 신경 안 쓰는 게 그렇게 걸려? 그게 맘에 안 드는 거야? 하지만 그것도 성격,”

“그건 상관없어요. 애초에 그 문제가 아닌 걸요. 그런 걸 떠나서, 메린 님은 사람이 아니,”

왜?!

왜 여기서까지 그런 소리를 들어야 되냐고!!

“그만! 그만해!!”

“……”

“왜 그런 심한 소리를 하는 거야?! 왜?! 왜 너까지!!”

잔뜩 열이 오른 나와 달리, 로나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였다.

그녀의 두 잿빛 눈동자는 나를 똑바로 향하고 있다.

……도망칠 수 없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남아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뭐?”

“양심. 죄책감.죄를 죄라고 인식하고, 그에 고통을 느끼는 것.

사람의 영혼은 죄를 지을 때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려요. 그 상태에서 계속 죄를 지으면, 그 상처는 곪고 곪아서 결국 썩어버리고,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도 예외 없이, 죄의 냄새를 풍겨요.”

태어나기 전부터 창조주의 선택을 받은 율리아 공주 또한, 이 사실에선 벗어날 수 없다.

로나와 같은 전투사제는 그 죄의 냄새, 영혼의 피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뭐 어쨌다고.

“뭐, 메린에겐 그런 냄새가 안 난다는 거야? 그래서……!”

“아니요. 메린 님에게도 죄악의 악취가 나요. ……굉장히 희미하지만.”

“……”

“처음 뵀을 때 놀랐어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희미할 수 있을까, 혹시우리보다 더 깨끗하신 걸까? 그럴 수가 있는 걸까? 어제서야 그 궁금증이 풀렸어요.

메린 님은 깨끗한 게 아니에요. 애초에 별로 없었던 거에요.”

뭐가 별로 없었다는 거야?

뭐가 부족하길래 그 녀석이 사람 취급도 못 받냐고.

개념? 상식? 인내심?

제기랄, 대체 뭐가 더 있어야 된다고……!

“카엘 님, 잘 들으세요. 메린 님……메린 소더는 당신이나 저보다 영혼이 가벼워요.”

“뭐? 아니, 그게 뭔 개소,”

“섬에서 들었던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사람의 영혼은 그 크기가 너무 커서, 그릇 안에 담긴다고 했죠.메린 소더의 영혼은, 그 그릇을 가득 채우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 죄를 지어도 영혼이 상처를 입는 피냄새가 나지 않아요. 상처가 썩어서 나는 악취도 풍기지 않고요. 잘못을 잘못이라고 느끼지 못한다고요!”

“아니야, 아니야, 그건 절대 아니야!”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단죄하는 잿빛 눈동자를 피하며, 나는 녀석을 위해 고개를 저었다.

“메린도 알아! 무엇이 옳고 그른 짓인지 안다고! 잘못된 일을 저지르면 그게 잘못이었다고 안단 말야!”

“가르쳤겠죠.”

“그래, 나랑 우리 부모님이 가르쳤어! 뭐가 좋은 일이고 나쁜 건지는 다들 그렇게 배워서 아는 거잖아.

메린은 다른 사람보다 늦게 시작한 탓에 느린 것뿐이야!”

내 간절한 호소를 듣고도, 그녀는 무심하게 고개를 저었다.

“카엘 님, 사람은 말이죠.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아요. 죽은 사람의 물건을 가져가지도 않고요.배우지 않아도 그게 잘못인 걸 알죠.”

“도적들도……!”

“그 사람들은 익숙해진 거에요. 처음엔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렸겠죠. 살아남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 한다는 둥으로 자신을 속이고 설득했을 거에요. 그 과정에서 영혼은 피를 흘리고, 그걸 반복하면서 상처가 곪아서 썩어요.

하지만 메린 소더에겐 전혀 그런 냄새가 나지 않았어요. 그땐 여쭤보지 못했지만, 지금 여쭐까요?

메린 소더는 고향에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뒤져야 할 정도로 궁핍한 삶을 살았나요?”

입을 열지 못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잡아떼는 것으로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제님에겐 그게 불가능하다.

그녀는 거짓을 꿰뚫어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자……

……그녀에게 보내는 답변이 되었다.

“잘못인 것을 안다고 하셨죠. 섬에서 그 엘프를 기절시켰을 때, 당신은 메린 님이 그 사람에게 사과하게 하셨어요.그때 메린 님, 그 엘프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죠? 감정이 아니라 논리로 이해시킨 거 아닌가요?

당신의 논리가 말이 되는 것 같으니까, 수긍했을 뿐인 것 아닌가요?”

“……큭.”

알 리가 없을 텐데, 들었을 리가 없는데, 사제는 전부 알고 있었다.

전부 꿰뚫어보고 있었다.

“……카엘 님, 믿기 힘드신 거 알아요.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받아들이시고, 제대로 대책을 세우셔야 돼요! 메린 님은 사람이 아니에요.지금은 카엘 님에게 혼나기 싫어서 참고 있지만, 언젠가 꼭 한계가 올 거라고요!”

메린 소더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사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게 이 사제의 판정이었다.

고향 마을이 내렸던 결론이었다.

놈들이 찍어버린 낙인이었다.

웃기지 마.

누구 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주제에 누구 맘대로 그딴 결론을 내려?!

“네가 뭘 안다고 그딴 소릴 지껄여?! 제대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그럼 뭐, 나나 우리 부모님이 한 건 틀렸다는 거야?! 네가 그렇게 잘 알아?! 네가 그 녀석을 그렇게 잘 아냐고!!”

한 번 터지기 시작한 노성은 멈출 줄을 몰랐다.

“지랄하지 마, 그냥 이해가 안 되니까 내치려는 거잖아! 시간을 들이기 싫으니까, 돌보기 귀찮으니까 잘라버리려는 것뿐이잖아!!”

“단순히 시간을 들인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아무리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인다고 해도, 사람들 틈에 녹아들 수 없는 존재에요!”

“입 닥쳐!!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그 녀석은 처음 봤을 때와 확연히 달라졌어. 조금씩이지만 나아지고 있단 말야!

난 믿어. 메린은 할 수 있어! 언젠가 반드시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게 될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내가 꼭 그 녀석을 사람으로 만들 거야!메린은 사람이 될 수 있…………”

…………

…………………아.

내가 지금……

뭐라고……?

“카엘 님.”

“아……아, 아니야, 나는……”

사람으로 만든다니……?

사람이 될 수 있다니……?

뭐야, 그거.

그 말은 즉……

“……알고 계셨군요?”

“아냐, 아니, 아니야, 나, 나는…… 아니야, 아니야!”

시야가 마구 요동쳤다.

무심코 내뱉은 말의 의미를 깨달은 몸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그것 보라며,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버티더니 꼴 좋다며 마구 비웃는 듯했다.

“……당신은 알고 있었어요. 그저 인정하기 싫었을 뿐.”

“아니야…… 아니야……!”

조용히 쐐기를 박아오는 사제님에게, 나는 실성한 것처럼 고개를 흔들며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아아, 속이 울렁거린다.

그러나 토해낼 순 없었다.

입 밖으로 내보냈다가는, 줄곧 붙잡아온 무언가마저 버려버릴 것 같았으니까.

“……여태껏 스스로를 속이시면서, 그 사실에 눈을 돌리셨어요. 지금도 그렇고.”

“아니, 야……. 아니야……”

“카엘 님.”

옆에서 뻗어온 손이 내 얼굴을 들어올렸다.

차가운 작은 손이 내 두 뺨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흐릿하고 울퉁불퉁하게 보였다.

……나는 울고 있었다.

“마음 아프시게 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당신은 인정해야 돼요. 메린 님이 사람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셔야 돼요. 그렇지 않고 계속 고집피우다간…… 당신이 망가질 뿐이에요.”

“나는……”

“메린 님을 돕고 싶으신 거죠? 알아요. 당신은 누구보다도 다정하니까.

하지만 카엘 님, 당신은 메린 님에게 지나치게 얽혀 있어요. 섬에서 메린 님이 그 엘프를 기절시킨 걸 봤을 때, 당신의 얼굴을 봤어요. 절망하고, 답답해하고, 분개하고……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감정들을 억지로 억지로, 꾹꾹 눌러버렸죠. 너무나도 익숙하게요.

……그렇게 억지로 참는 게 좋을 리가 없어요. 당신 스스로를 죽이는 일 밖에 안 된다고요.

그런 짓까지 하면서, 당신은메린 님을 사람으로 만드는 거에 집착하고 있어요. 당신의 삶은 메린 님과 아무 상관없을 텐데.”

아니다.

그녀는 틀렸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아서, 나는고개를 저었다.

자꾸 터져 나오려는 흐느낌을 억누르며, 겨우겨우 목소리를 짜내었다.

“상관 있어…… 내, 내가 여기 있는 건, 살아 있는 건…… 그 녀석이, 메린이 그때 살려줬기 때문이야.”

“그때? 튜르라는 사람이 당신을 죽이려 했을 때 말인가요?”

“그보다…… 그보다 훨씬 전에……어렸을 때, 밤에 숲속으로 들어간 적이 있어. 그때 메린이 날 구해서, 집으로 돌려보내줬어.”

십 년이 넘은 지금도, 그때 그 일은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나는 고해라도 하는 것처럼, 로나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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