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72화 : 영문을 모르겠어
* * *
식당 테이블에 모여 앉아, 네 명이서 함께 아침식사를 가졌다.
달걀프라이에 빵과 치즈, 그리고 우유.
진짜 딱 적당히 배만 채울 수 있는 구성이었다.
“와, 빵 따끈하네요! 아침부터 직접 구웠나봐요!”
“우유도 엄청 신선한 거 같은데.”
다들 만족스럽다는 듯이 맛있게 잘 먹고 있다.
물론 나도 맛에 대해선 아무 불만 없다.
맛에 대해선.
나는 마침 지나가던 종업원을 불러 세웠다.
“저기, 뭐 과일 같은 거라도……”
“없어요~ 아침에는 저 메뉴가 전부에요~”
“……”
양심이 없네, 진짜.
아니, 아무리손님이 많아도 그렇지, 뭔 여관 식당 아침 메뉴가 저게 다냐?
과일절임이나 잼도 없고, 하다못해 묽은 수프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하, 나 참.
가격이 싸서 봐줬다.
“……”
잔을 기울이면서 맞은편의 로나를 힐끗 보았다.
어젯밤에 직접 말한대로, 그녀는 오늘 아침에 메린을 보자마자 이전처럼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인사 받는 메린이 살짝 당황했을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환~한 미소와 함께.
뭐, 이런저런 일이 있긴 했지만……
일단은 다 좋아졌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이제 내부 알력 같은 건 신경 안 써도 되겠지?
“근데 말이야. 카엘.”
어깨 위의 파랑새에게 빵 부스러기를 먹이던 위슨이, 나를 보며 검은 눈동자를 깜빡였다.
“너랑 메린이랑 사귀냐?”
“푸흡?!”
목 뒤로 넘어가던 우유가 도로 올라왔다!
내 정신력을 힘껏 쏟아부은 덕분에, 나는 세차게 기침하면서도 가까스로 잔을 쏟지 않고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내 옷은 좀 희생을 치러야 했지만.흑.
“아, 콜록콜록! 아, 아침 댓바람부터 뭔, 콜록콜록!”
“뭔 소리긴. 새벽에 너네 둘이 복도에서 껴안고 있었잖아. 위슨이 봤어.”
“……”
…………
……………………
……봤다……?
…………봤다……고?
“와, 진짜요? 어머머, 카엘 님도 참! 대담하시기도 해라!”
“대담하게 그러지 말고 방에서 해, 방에서. 너네 둘 때문에 위슨만 고생했다고.”
…………그러니까, 내가 메린을 그러고 있는 걸, 봤다고……?
“고생이라뇨?”
“아침 이슬 모으러 나가려고 했거든. 근데 쟤네 둘 때문에 길은 막혔지, 도저히 그 옆은 못 지나가겠지…… 창문으로 나갔다 왔다니까.”
“이야~ 그거 고생하셨네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히죽히죽거리는 얼굴로, 로나가 딱딱하게 굳어 있는 내 손등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다음부턴 그냥 2인실 잡으세요!”
“으아아아아아!!”
곧바로 테이블에 엎어져서 소리쳤다.
물론 접시들을 뒤엎지 않도록 적당히 모서리를 골랐다.
추태를 부리더라도 주변 피해는 최소화해야 하는 법이다.
……그딴 건 이제 됐고!!
아아아아, 이걸 뭐라고 해야 되지?!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안 돌아가!
빌어먹을, 내가 대체 뭔 생각으로 그랬던 거지?!
“……고장났네. 야, 메린, 너 카엘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 맞냐?”
“엥? 그렇고 그런 사이? 뭔 사이야, 그게.”
그리고 이상한 데에서 순진하게 구는 메린이었다.
“둘이 생식, 악. ……연인 사이냐고.”
“연인? 아닌데?”
……일말의 주저도 부끄러움도 없이 딱 잘라 대답하는 저 단호한 모습을 보라.
아니, 뭐, 맞는 말이긴 한데……
아, 모르겠다.
뭐야, 이 싱숭생숭한 기분은?
조용히 일어나서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자, 로나가 히죽거리며 나를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젠장, 어느 왕족님과 완전 똑.같.은. 표정이었다.
“뭐. 왜. 뭐.”
“아무것도 아닌데요~ ……그럼 메린 님, 새벽엔 왜 그러셨던 거에요?”
“엉? 새벽? ……아~ 그거? 이 녀석이 이상한 꿈을 꿔서 진정시킨 거야. 기 빠졌을 때 가끔 그러거든.”
“……피곤할 때, 임마, 피곤할 때.”
아무리 상태를 정확히 묘사하는 말이라 해도, 가능한 교양 있는 사람이 두루 쓰도록 정해진 말을 사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한 법이다.
표준어 쓰라고, 표준어.
“그래? 그럼 이거 마셔.”
위슨이 테이블에 올려놓은 작은 병을 내려다보았다.
투명한 푸른빛이 도는 액체가 들어 있는데……
어차피 피로회복제 뭐 그런 거겠지.
문제는 재료다.
위슨 이 녀석, 물약재료로 약초나 버섯만 쓰는 게 아니니까 말이지…….
“……뭘로 만들었어?”
“어. 자양강장제야. 저번 것보단 좀 약해. 아무래도 그건 매일매일 마시기엔 너무 센 거 같아서.”
음, 하긴 효과가 강한 걸 매일 마셨다가는 내성이 생기거나 몸에 독이 쌓일 수도 있으니…….
그건 그렇고,
“그래서 재료가 뭔데?”
“최대한 쓴 맛도, 역한 냄새도 안 나게 했어. 이게 괜찮으면 며칠 동안은 아침마다 이걸로 줄게.”
우리 마을 치료사와는 달리, 먹는 사람을 신경 써주는 이 친절한 마음씨……!
음음. 참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그렇고 이 자식, 아까부터 대답을 안 하네.
“그래서 재료가 뭐냐니까?”
“……”
“……”
“……바르그 심장이랑,”
“안 먹어.”
퉁, 테이블을 주먹으로 가볍게 내리치며 선언해주었다.
……그러나 위슨의 시무룩한 얼굴과 더불어, 두 아가씨의 기묘한 압박 때문에 약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자꾸 거부하면, 또 몰래 먹이려 들지도 몰라……!
마개를 열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색깔도 괜찮고, 냄새는……
……으, 좀 비린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한데.
“아, 맞다. 그러고보니 어젯밤에 좀 시끄럽던데. 카엘, 너, 그 소음 때문에 잠 제대로 못 자서 이상한 꿈꾼 거 아냐?”
“소음……? 그랬나……?”
“못 들었냐? 흠…… 내 방까지 웅웅대고 장난 아니었는데. 막 소리지르는 것 같더라.”
“그래? 거 누구인지 참 민폐 크게도 끼치…………”
……잠깐.
어젯밤에, 서로 싸우는 것처럼 막 소리질렀다고……?
“아~ 그거. 갑자기 시끄러워서 내가 그쪽 주변으로 소리 안 터져 나오게 막아버렸어.”
“그래서 갑자기 조용해졌구나. 그만하라는 둥, 왜 그러냐는 둥…… 막 서로 싸우는 것 같던데.”
……나잖아, 그거!
완전히 나랑 로나 얘기잖아!!
젠장, 여기 벽 의외로 얇았구나!!
그나마 파랑새가 본의 아니게 소리를 막아줘서 안 퍼졌지, 안 그랬으면……
……어우, 끔찍해!
애써 태연한 얼굴을 유지하는 나와 달리, 공범인 로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래요? 전 못 들었는데. 제 방이랑은 먼 데서 그랬나봐요.”
“……”
너 들었어, 임마.
그것도 바로 코앞에서!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입에 구겨 넣은 빵과 함께 꾹 삼켜버렸다.
……앞으론 조심하자.
벽에도 귀가 있다더니, 진짜 옛날 말 틀린 게 하나 없네.
조상님들의 지혜로움에 새삼 탄복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마을을 떠날 채비를 할 겸, 로나에게 지원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눈썹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그냥 들고 다니시면 되지, 뭘 그러세요?”
“네가 금전감각이 없는 건 알겠다. 그러기엔 너무 큰 돈이라서 불안하다니까.”
“그럼 이 기회에 장비를 맞추세요. 갑옷 같은 거.”
그 말에, 이번엔 메린이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안 돼. 이 녀석, 제대로 걷지도 못할걸? 코트 대신 갬비슨 껴입기도 그렇고. 곧 여름이니까 얘 쪄 죽을걸.”
“……”
큭, 분하다.
반박할 수가 없어!
“그럼…… 으음, 할 수 없네요. 지원금은 신전에 맡길게요.”
“어…… 그래도 돼?”
“네. 제 이름으로 맡겨두면, 다른 신전에서 조금씩 찾아 쓸 수 있을 거에요. ……아!”
응?
순간, 로나 녀석의 얼굴에서 불길한 웃음이 스쳐 지나간 것 같은데.
“그러고보니~ 위슨 씨, 신전에 오셔야 했었죠~”
“엉? 그건 그렇긴 한데 급하진 않,”
“그럼 저랑 위슨 씨가 신전에 다녀올 테니, 두 분은 대장간이랑 시장이랑 천천~히 다니면서 볼일 봐주세요! 점심 전에 여관 앞에서 다시 뵐게요! 자, 그럼 가요, 위슨 씨!!”
…………엄청난 속도로 위슨을 끌고 가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이 진행된 탓에, 황당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로나, 기운 넘치네.”
“……그러게.”
……로나 녀석, 어째 다른 방향으로 이상해진 것 같은데?
저도 메린 님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쪽으로 도와드릴게요.
카엘 님의 말씀을 들으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고요.
으음……
이게 그 방법인가??
잘 모르겠다.
“뭐, 하여튼 가자.”
“그래.”
알쏭달쏭한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린과 함께 광장 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여관 앞.
다시 만난 위슨에게 신전에서의 일이 잘 됐는지 물어보았더니,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안 된대.”
“안 된다니?”
“잘은 모르겠는데, 한 방에 고칠 힘은 없대. 역시 큰 마을에 가야 하나 봐.”
처음부터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건지, 위슨의 얼굴엔 딱히 실망하는 기색은 없었다.
으음, 큰 마을이면 역시 수도이긴 한데……
……수도로 다시 돌아가는 건 로나가 기겁을 하며 안 된다고 했었단 말이지.
어차피 지금은 다시 돌아갈 수도 없지만.
“그럼 역시 말리스인가?”
“거기 크냐?”
“도시 크기 자체는 수도보다도 커.”
물론 도시가 크다고 해서 담당 사제의 권능이 강할 거라고는 볼 수 없다.
그래도 규모가 큰 곳은 교단에서도 신경을 더 쓸 테니, 보다 강하고 신실한 사제에게 맡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가볼 가치는 있겠네. 뭐, 안 되면 말고.”
“야, 그런 소리 마. 너 자신이 굳게 믿어야지, 안 그럼 나타날 효과도 안 나타난다고.”
“……그러냐?”
“그래.”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위슨을 다독이면서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로나가 내 소매를 당기며 주의를 끌었다.
“왜?”
“히히~”
갑자기 로나의 걷는 속도가 느려지면서,그녀에게 소매를 잡힌 나까지 걸음이 늦춰졌다.
그녀는 메린과 위슨이 저만치 멀어진 걸 확인한 후, 눈을 반짝이면서 나에게 어땠냐고 물었다.
“어땠냐니, 뭐가?”
“두 분이서 따로 시간 보내신 거잖아요! 히히, 뭐 하셨어요?”
“……?”
뭔가 기대하는 눈빛인데.
왜?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물어보니까 그대로 이야기해주었다.
“……그래서, 진짜 대장간 들르고,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 사고 그게 끝이에요?”
“응? 당연하지.”
로나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옷이나 신발 구경하거나……”
“안 떨어졌는데 뭐 하러? 아, 옷감이랑 가죽은 혹시 모르니까 샀어.”
“둘이 같이 광장 곡예단 구경하거나, 차 마시면서 이야기하거나……”
“뭐? 야, 사람을 뭘로 보고. 우린 너네만 두고 땡땡이치고 안 그래.”
……어라?
몰래 농땡이 안 피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한 건데.
이 사제님, 왜 얼굴을 더 구기는 거지?
“……하아아……”
게다가 땅이 꺼져라 한숨까지 쉬고.
……뭐지? 뭐 잘못했나?
“이쪽이 더 심각하잖아요……. 이걸 어째야 되죠……?”
“응? 심각하다니?”
“……하아아아아…….”
무슨 뜻인지 물어도 한숨만 쉴 뿐이었다.
……진짜 모르겠어.
로나의 그 의미 모를 한숨과 중얼거림은, 마을 바깥으로 나갈 때까지 쭉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