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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80화 (80/475)

〈 80화 〉 78화 : 자유도시 말리스에 어서오세요! (3)

* * *

나와 로나 이렇게 둘이서만 무기를 챙기고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로나가 ‘칼싸움’이라 했으니까 메린도 따라나서나 싶었는데, 녀석은 의외로 덤덤하게 잘 다녀오라며 손만 흔들었다.

……솥 앞에 서서.

제길, 불안해. 얼른 끝내고 돌아가야겠어!

“저기에요!”

로나가 가리키지 않아도 소란이 일어나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여관 바로 코앞에 있는 골목길 입구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데서 칼싸움을 한다고?

위병이 바로 잡아갈 거 같은데.

“실례합니다~”

입구를 틀어막다시피 하고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얼굴에 주름밖에 없는 듯한 할아버지가 대거 한 자루로 건장한 남자 네 명을 막 몰아붙이는 모습이었다.

아, 뭐야……

할아버지가 아니라 저 남자들이 위험해보이는구만…….

“……로나, 할아버지 위험하다며?”

“위험해요! 저 분, 허벅지에 칼 베였다고요!”

“그래도 멀쩡해보이는데.”

“시간 문제에요! 저 상처, 색깔이 시커매요. 분명 독이에요, 독!”

할아버지가 입고 있는 바지도 시커매서 몰랐는데, 얘 눈에는 바지와 상처가 구분이 되는 모양이다.

아무튼 독이라……

그래서 저 놈들, 할아버지한테 달려들지 않고 깔짝거리기만 하고 있는 건가.

으음, 근데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는 할아버지도 아니고, 저렇게 대거 잘 다루는 할아버지면……

……이거 그거 아닌가?

어떤 위험한 조직 내부 사정.

“카엘 님, 안 끼어드실 거에요?!”

“아야야야, 알았어, 알았다고!”

끼어들면 귀찮아진다.

그러나 지금 끼어들지 않으면 이 사제님에게 죽을 거 같다.

정신적으로.

“……에휴…….”

한숨을 쉬며 골목 안으로 더 들어서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턱 잡았다.

모르는 남자였다.

“이봐, 젊은이! 자네 죽고 싶어 환장했어?! 어딜 끼어들려 그래!”

“안 끼면 제가 얘한테 죽는데요.”

“이건 농담할 일이 아니야!”

농담 아닌데.

지금 이 순간에도 옆에서 엄청나게 압박을 가하며 쳐다보고 있다고.

눈 색깔도 바뀌려 하고 있다고!

무섭다고!

남자는 몸을 낮추더니 내 귀에 속삭였다.

“……저 놈들은 잉그리트의 부하야. 잘못 건드리면 뼈도 못 추린다니까!”

“잉그리트?”

“이런, 자네 못 들어봤나?! 어휴, 잉그리트는 말이지……”

“아아아! 카엘 님 안 오시면 저 먼저 갈 거에요!!”

앗.

남자가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는 순간, 로나가 못 참고 뛰쳐나가버렸다!

“아앗, 저 꼬맹이가 또! 아까 겨우 말렸는데!”

“……”

그래서 날 데려왔구나, 저 녀석…….

아, 몰라.

될 대로 되라지!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로나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멈춰요! 이 무뢰배들!”

대놓고 시비를 걸며 곧바로 철퇴를 휘두르는 사제님.

그 박력 넘치는 설교법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놈이 시원하게 벽에 처박혀버렸다.

아마 안 죽었을 거다.

사제님이 친 거니까.

“무, 뭐야, 네놈들!”

“우, 우리가 누구인 줄 알고 감히!”

크고 우렁차게 소리지르면서도 놈들은 로나가 조금만 움직여도 흠칫흠칫 놀랐다.

……사제님의 물리적 설교법,효과 좋은걸?

“괜찮으세요?! 제가 지금 치유해드릴게요!”

“뭐? 지금?!”

그럼 저 놈들 내가 상대해야 되는데!

이 녀석, 설마 그게 진짜 목적이었나?!

아잇, 진짜!

검을 뽑아, 로나와 할아버지 앞에 섰다.

로나의 기도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버티는 수밖에……!

“헤헷.”

놈들이 스멀스멀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실실 웃는 놈도 있다.

“……”

속에서 뭔가가 울컥 솟아올라왔다.

웃어?

아~ 난 만만해보이신다?

이래 봬도 내 앞에 엎어진 도적놈이 지금 열 명도 더 되는데, 그래도 저 놈들 눈엔 한 주먹거리도 안 돼 보인다, 이거지?!

“내 뒤에 있는 사제님보다도 허접하게 보인다, 이거냐?!”

“……엉? 아니, 우리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갑자기 왜 혼자 지랄이야. 미쳤냐?”

“날 우습게 본 대가는 톡톡히 치를 거다! 빌어먹을 새끼들아!”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미친놈아! 야, 쳐!!”

세 놈이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침착하게.

냉정하게……!

놈들이 들고 있는 건 전부 대거이다.

단검보다도 사정거리가 더 짧은 무기이니, 공격의 대부분이 품을 파고드는 수법일 터.

선제공격으로 주도권을 잡는 게 좋겠지만, 함부로 움직이면 뒤가 그대로 노출돼!

“뒤져라, 애송이 새꺄!!”

“……!”

앞쪽 두 놈이 돌진해왔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횃불 덕분에, 내 평범한 눈으로도 놈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움직임이 보인다.

둘 다 오른손에 쥔 대거를 뒤로 뺀 채 겨누고 있는 자세.

몸을 부딪치는 즉시 찌르려는 의도가 보인다!

“에라이!”

허리춤의 단도를 뽑아서 한 놈에게 냅다 던졌다.

놈이 기겁하며 주춤거렸다.

지금이다!

여전히 돌진해오는 놈을 향해 내 쪽에서 한 발짝 다가간 후, 바로 몸을 틀면서 놈의 손목을 홱 낚아챘다.

“억?!”

그대로 내 체중을 실으며 팔꿈치로 목을 내려찍었다.

“컥?!”

놈의 손에서 대거가 떨어졌다.

손잡이를 공중에서 낚아채어 잡은 후, 아까 돌진하던 놈을 향해 또 던졌다.

“끄악!”

비명 지르는 걸 보니 어디 맞은 모양인데, 몰라, 지금 그딴 거 신경 쓸 때가 아냐!

본능이 온 몸의 털을 쭈뼛 세우며 고했다.

피해!!

“으잇?!”

“쳇!”

가까스로 놈이 휘두르는 걸 피했다.

놈이 그대로 손목을 비틀어, 대거를 내려찍으려 했다.

채앵!

“이 새끼!”

놈이 남은 손으로 주먹을 쥐는 게 보였다.

주먹이 날아오기 직전, 검으로 막고 있던 대거를 옆으로홱 흘려버렸다.

놈이 짧은 신음을 흘리며 몸의 중심이 흐트러졌다.

“너나 뒤져라, 불량배 새꺄!!”

무릎으로 복부에 한 방.

칼자루로 뺨에 한 방.

그리고 얼굴 걷어차기로 마무리.

건장한 몸뚱이의 남자가 픽 쓰러졌다.

놈이 들고 있던 대거를 빼앗아, 아까 대거를 던졌던 놈을 향해 또 던졌다.

“끄아아악!”

“아. 이미 하나 맞았었지. 미안.”

이제 보니 다리에 하나, 어깨에 하나, 이렇게 대거가 푹푹 박혀 있었다.

방금 던진 게 어디 꽂혔는지 모르겠네.

대거 두 개가 꽂힌 놈의 몸이 갑자기 부들부들 떨리며 게거품을 흘리더니, 몸이 축 늘어졌다.

“……독?”

아, 맞다! 쟤네 독 쓴다고 했지!

황급히 대거가 스쳐 지나간 배 부분을 살펴보았다.

옷이 찢어지……지도 않았군.

진짜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와, 다행이다.

“……네, 됐어요! 으앗, 할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근데 어라? 카엘 님, 다 해치우셨어요?”

“오냐, 임마, 내가 다 했다!”

“오오.”

“뭐가 오오, 야. 이 자식, 사람을 고기방패로 내세우고 말야!”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요? 카엘 님이 저를 꼭 지켜주실 거라고 믿은 거죠.”

말은 잘해요.

어휴…….

검을 거두면서 우리가 들어왔던 골목길 입구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웅성웅성 모여 있던 사람들이, 어느새 싹 사라져 있었다.

“쯧…… 로나, 그 할아버지 괜찮으신 거지? 근데 저 놈도 독 먹은 거 같은데.”

“저거요? 이미 죽은 거 같은데요, 뭐. 그냥 두고 가요. 자자, 카엘 님, 기왕 힘쓰신 거 한 번 더 쓰시죠!”

“아잇, 진짜.”

로나의 도움을 받아, 정신을 잃은 할아버지를 업었다.

무, 무거워……!!

아니 체구도 작은 영감이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무거워?!

“파이팅, 파이팅!”

“으으아아으윽!!”

차라리 뛰자!

집 앞에서 쓰러지더라도 그게 낫겠다!

할아버지의 무게를 저울추 삼아 열심히 뛰어갔다.

……아, 왠지 오늘도 잠 푹 잘 수 있을 거 같아.

테이블에 엎어진 내 머리가 마구마구 헝클어지는 느낌과 함께, 메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 좁은 골목에서 너 혼자 셋을 처리했다며? 괜찮을 거 같아서 그냥 보냈는데, 생각보다 더 제법인데?

근데 다친 데도 없으면서 왜 문 앞에서 뻗고 그러냐? 괜히 놀랬잖아.”

“할아버지…… 무거워…….”

“별로 안 무겁더만, 엄살은.”

“닥쳐…….”

그야 쇠창살도 쫙 벌려버리는 분한테는 마시멜로나 다름없겠지.

근데 난 다 자란 노루 사체 한 마리 짊어지는 것도 버겁다고.

엄청나게 연약한 사람이라고!

……라는 이야기는 내 입으로 하기엔 너무 서글픈 주장 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로나는 그 할아버지 보고 있겠다더라. ……야, 적당히 하고 이거나 먹어.”

“……”

녀석이 내 몸을 강제로 일으키더니 내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튜 그릇을 턱 놓았다.

짜증내기도 귀찮아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이것도 있고.”

접시 두 개가 또 놓였다.

하나는 아까 녀석이 사온 파이.

그리고 또 하나는……

“……뭐야, 이거?”

“꼬치구이.”

“그건 보면 알아.”

꼬챙이는 또 어디서 구했는지 여러 채소와 고기를 꽂아 구운 꼬치가 두 개 턱 놓여 있다.

알맞게 구워진 고기에서 육즙이 흘러나오고 있는, 굉장히 먹음직스러운 꼬치구이다.

식당에서 산 거라면 묻지도 않고 덥썩덥썩 입에 넣었겠지만……

……이거 딱 봐도 메린, 이 녀석이 만든 거란 말이지.

“이거 뭔 고기냐고.”

“그레이비 소스를 푹 담그고…… 자, 먹어봐.”

“아니, 뭔 고기, 읍?!”

녀석이 대답은 안 하고 내 입에 고기를 냅다 처넣었다!

할 수 없이 씹었다.

……으음, 좀 질긴데.

맛은 있지만.

“맛있지?”

“……맛이야 당연히 있고…… 야, 뭔 고기냐고. 화 안 낼 테니까 솔직히 불어.”

녀석은 내 눈치를 살피는 건지, 아니면 고민하는 건지 잠깐 뜸을 들였다.

그 사이에 나는 입 안에 씹던 고기를 꿀꺽 삼켰다.

그와 동시에, 실컷 뜸들이던 메린이 불쑥 말했다.

“바르그 심장.”

“크어억?!”

바르그라면 그 엄청나게 큰 늑대랑 곰을 섞은 그 늑대형 몬스터?!

이런 망할, 어째 계속 불안하다 했어!

결국 저질렀구나, 이 미친 새끼!!

늑대고기는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지만 이건 얘기가 다르잖아!

젠장, 이미 삼켜서 뱉을 수도 없고!

웬일로 뜸들이나 했더니내가 뱉을까봐 삼킬 때까지 기다렸던 거였어!

이 사악한 새끼!

“야, 이……!”

그러나 화를 안 내겠다고 말을 해버린 이상, 녀석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내가 꺼낸 말을 지켜야지 이 녀석도 내 이야기를 들을 테니까.

“이, 이이, 끄, 으으어어어어으아아!! ……하아아…… 어디서 났냐, 이거?”

솟구쳐오른 분노를 함성으로 내지른 후, 꼬치구이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어차피 더럽혀졌는걸.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

“위슨이 줬어. 쓰다 남은 거라던데.”

“어우씨…….”

자양강장제 만들고 남은 분량인 모양이었다.

그럼 뭐야,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거잖아.

……정녕 나는 이 여행 내내, 몬스터 아니면 야생고기만 신나게 먹고 다닐 운명이란 말인가?

다른 나그네들처럼, 보존식품 더럽게 맛없다는 불평 한 번도 못해보고 끝난단 말인가?

저 자식들, 분명히 그리폰은 물론이고 만티코어에 하피 날개도 뜯어먹을 거야, 뻔해!

“……”

갑자기 바르그 고기 따위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만티코어나 하피처럼 지 몸에서 직접 독 뿜뿜 뿜어내는 진성 몬스터보단 바르그가 훨씬 낫지.

뭔 몬스터이든 고기엔 전부 독이 있지만, 그래도 왠지 그냥 거대한 짐승일 뿐인 바르그가 훨씬 안전하지 않겠어?

……아, 이게 바로 자기합리화라는 건가.

참 싫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스튜도 한 스푼 떠먹었다.

사슴고기와 더불어, 딱 봐도 괴상한 고기가 둥둥 떠 있다.

꼬치구이에 쓴 것과 똑같이 생긴 걸 보니, 이것도 바르그 심장이겠구만.

“하아…… 쓸데없이 맛있네…….”

“팍팍 먹으렴, 비실아. 체력보강에 좋다더라.”

“썩을…….”

으으, 내가 진짜 체력 기르고 만다!

식사를 다 마쳐갈 때쯤, 갑자기 쿵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소매치기가 벽에 기대어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제 깨어났구만.

알아서 눈도 확 떠주니 고맙기도 하지.

소매치기가 고개를 쳐들었다.

아, 눈 마주쳤다.

“무, 뭐, 뭐야, 너희들! 여기 어디야!”

얇은 목소리가 앙칼지게 외쳤다.

제길, 남자애인 줄 알았는데 목소리가 엷어!

하지만 머리도 짧은데다 먼지투성이라서 잘 모르겠으니 그냥 남자라고 치자.

“네 녀석이 감히 손댄 돈주머니 주인이시다, 이 새끼야.”

“큭, 이, 이거 빨리 풀어! 나, 날 어쩔 셈이지?! 내 몸에 손대기만 해봐! 내 뒤에 있는 분이 너넬 가만두지 않을 거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걸 보니 얼굴이 앳된 만큼 어리긴 한 모양이다.

흠, 그나저나 뒷배라?

소매치기의 뒷배니까 별 거물은 아니겠지만, 알아서 나쁠 건 없지.

“네 뒤에 누가 있는데?”

“……하! 놀라지나 마! 이 도시 지하의 주인, 잉그리트 님이라고! 나는 그분이 제일 아끼는 부하다, 이거야!”

잉그리트?

아까 그 할아버지를 죽이려 들던 놈들의 대장?

허세구만.

“새꺄, 구라를 치려면 그럴 듯하게 쳐. 그런 놈이 소매치기를 하고 있겠냐?”

“그, 그건…… 그래, 내가 아직 실전 경험이 없으니까 시험하신 거야. 난 원래 그런 수준 낮은 일을 할 재목이 아니거든.”

“그래? 그럼 너도 현상금 걸려 있겠네. 위병소에 넘기면 얼마 나오려나?”

“……윽!”

티 나게 뜨끔한 표정이다.

저게 연기라면 나름 크게 될 재목이긴 하다.

나는 메린에게 스튜 한 그릇을 더 받아, 녀석 앞에서 한 스푼 크게 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푼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녀석의 목이 꿀떡 움직였다.

“배고프지?”

“…………아니.”

스푼을 좌우로 왔다갔다 움직였다.

녀석의 눈이 스푼을 따라가고 있었다.

와, 침까지 흘리네, 이 녀석.

“솔~직하게 말하면, 이거 한 그릇 주고, 그냥 보내줄게.”

“……뭘 더 솔직하게 말해? 이미 다 말했는데.”

“싫으면 내일 나랑 같이 위병소 가든가.”

“그, 그건 안 돼!!”

“그럼 다 불든가.”

“…………안 돼.”

음, 다른 방향으로 설득해야겠군.

나는 그릇을 내려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네 입을 열게 만들 방법은 많아. 그러니 좋은 말할 때 그냥 포기하는 게 좋을걸.”

“하! 그딴 협박 하나도 안 무섭거든?! 잉그리트 님이 아시면……!”

“그래그래, 그 잉그리트 님이 알면 큰일나는 거지?그럼 절대 모르게 하면 되겠네.”

녀석의 얼굴이 굳는 게 보였다.

“몸에 상처 안 남기고 고통만 주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여긴 길에서 좀 떨어져 있거든? 네가 생난리를 쳐도 밖에 안 들린다, 이거야.”

“힉…….”

뭐, 사실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으니 엄청나게 잘 들릴 거다.

하지만 이 녀석이 지금 앉아 있는 데에선 창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속아넘어가겠지.

“시, 싫어.”

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얼굴도 새파랗게 질린 걸 보니 완전히 겁을 먹은 모양이다.

좋아, 이제 다시 회유하면…….

“싫어어어! 건드리지 마!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나, 내 처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칠 거란 말야! 싫어, 싫어어어!!”

“그럴 생각 전혀 없거든?! 그보다 뭐야, 너 여자야?!”

“싫어어…… 제발…… 흐윽, 제발 그것만은……! 시, 시키는 거 다 할 테니까 제발…….!”

아예 울기 시작했다!

“카엘, 너……”

“하, 새끼, 역시……”

큭, 나를 쳐다보는 다른 녀석들의 시선이 너무 아파!

억울해!

이건 진짜 억울해!!

“아냐아냐아냐아냐, 그런 거 아니라고! 내가 말한 건 그냥 좀 괴롭힌다는,”

“괴롭혀지는 거 싫어! 흐윽,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이, 히윽, 전부 막히는 거, 흐으, 싫어, 싫어!! 나한테 남은 건 이제 순결밖에 없단 말야! 더럽혀질 거면 차라리 죽을래애애!!”

“끄아아아악! 그런 거 아니라고!!”

……결국 소란을 듣고 온 로나가 소매치기를 달래주었고, 그동안 나는 맞은편 구석에 죄인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다른 녀석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아, 진짜 억울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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