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77화 : 자유도시 말리스에 어서오세요! (2)
* * *
사람이 있는 곳에 소문이 있고, 소문 사이에 비밀이 감춰져 있는 법.
아무리 꽁꽁 숨겨놓더라도 비밀이 가진 특유의 냄새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그런 냄새, 특히 돈이 얽힌 비밀들의 냄새를 제일 잘 맡는 건 바로 상인이겠지.
이번 일에 밀수꾼이 얽혀 있기도 했으니, 분명 상인들 사이에선 이야기가 쫙 깔려 있을 터.
그래서 소문이 가장 차고도 넘칠 ‘사람이 가장 많은 여관’을 찾아가려던 건데……
“아니, 뭔 여관이 이렇게 많아?”
당연히 하나 이상의 여관이 있을 거란 예상은 했다.
도시가 이만큼 크고, 오가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으니 당연히 숙박업도 발전하겠지.
그래, 예상은 했다고.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블록마다 두 개씩 있는 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게다가 죄다 큰데? 사람도 엄청 우글거리고.”
마차를 맡기는 사람, 짐을 내리는 사람,
마구간으로 말을 끌고 가는 사람,
여관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
여관 앞에서 껄껄 웃는 사람 등등등, 엄청나게 많다.
지금 오후 세 시밖에 안 됐는데, 벌써 거나하게 취해선 여관 앞에서 굴러다니는 사람도 있다!
둘 중 아무 데나 들어가보는 게 나으려나?
길이야 계속되긴 한데……
“야, 조심해.”
메린이 날 길가로 당기자마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우르르 지나갔다!
우와, 하마터면 휩쓸려 갈 뻔했어!
마침 맞은편의 어떤 사람이 갈림길의 다른 길을 가야 하는지, 다급한 표정으로 “비켜주세요~”를 연신 외치고 있다.
그는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인파를 헤치려 애썼지만……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점점 더 반대쪽으로 멀어졌다.
무서워!
“……고마워, 메린.”
“어, 그래.”
장난 아닌데?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뿔뿔이 흩어져서 영영 못 만날지도 모르겠어.
다행히 내 키는 표준이고, 메린은 나보다 조금 작고, 위슨은 그런 메린보다 조금 작다.
머리 하나씩 차이밖에 안 나니, 우리 셋은 흩어지더라도 그렇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거 진짜 조심해야겠네요.”
“……그러게.”
하지만 로나는 엄청나게 문제가 크다.
강한 힘 대신에 키를 바친 건지, 로나는 그 나이대의 다른 여자애들보다도 키가 작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장담하는데, 얜 놓치면 절대 못 찾는다.
“카엘 님은 방향 잘 못 외우시죠? 히히, 안 놓치게 진짜 조심하셔야겠어요!”
“……”
그냥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여자애들의 신체적인 부분을 직접 언급하는 건, 세상 그만 살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메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좀 돌아서 갈래?”
“음……아니, 괜히 큰길에 몰리는 게 아닐 거야. 뒷골목은 죄다 이상한 가게가 있는지도 몰라.”
뒷골목은 절대 빛 아래에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 지내는 세계라고 했었지.
그게 뭔 소리이겠는가?
범죄자들이 많다는 얘기 아닌가!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골목길들은 그림자로 가득 차서 어두컴컴했다.
이따금 한두 명, 그것도 대놓고 수상하게 주변을 둘러본 다음 쏙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골목이 집어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번 일을 제대로 조사하고 싶다면, 그 백작 일행처럼 뒷골목으로 들어가는 게 맞는 일이겠지만……
……나 같은 풋내기가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두 번 다시 해를 못 볼 거 같아.
평균 연령이 낮은 일행답게, 햇빛 받으면서 움직이는 게 제일 낫겠지.
“그럼 계속 돌아다닐 거냐? 야, 등신아, 입 뒀다 뭐해? 그냥 요 근처에서 물어봐. 어디가 제일 유명한 여관인지.”
“축생아, 한 도시에 같이 산다고 해서……”
“위슨인데.”
“……위슨, 한 도시에 같이 산다고 해서 그 도시를 다 꿰고 있을 가능성은 적어.차라리 위병한테 묻든가 안내소를 가는 게 낫지……. 헛!”
그래, 안내소!
이렇게 큰 도시에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니까, 분명 관광안내소 같은 것도 있을 거야!
안내소 정도면 이 도시 가게들도 어디 있는지 다 알고 있을 테니 물어보기도 쉽다.
그런 데가 없다면, 뭐, 그때 가서 위병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나는 일행을 데리고, 마침 바로 앞에 있는 가게에 쏙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음, 들어오고 보니까 사탕가게네.
아이들을 포함한 손님 몇 명이 가지각색의 사탕이 들어 있는 진열장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나는 친절한 미소를 띄고 있는 점원에게 다가갔다.
“저기, 이 도시에 관광안내소가 있나요?”
점원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전혀 모르겠네요~”
“……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고?
말도 안 돼!
전혀 예상 못한 답변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점원은 고개를 이리저리 까닥거렸다.
“으음~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요~ 아아, 그러고보니 그거 아세요? 저희 사탕들은 모두 평~생 기억에 남을 만큼 맛있답니다! 괜찮으시면 한 봉지 어떠세요?”
“……”
싱글벙글 웃는 표정에서 어떤 압박감이 느껴졌다.
알고 싶으면 한 봉지 사라는 뜻인가?
하, 아무리 내가 촌뜨기여도 그딴 뻔한 수법에 순순히 당할 거 같냐!
“아아, 모르시면 할 수 없죠. 다른 곳에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러고보니 요 앞은 옷가게, 신발가게, 서점, 아니면 고급식당 같은 게 있는데……. 글쎄요, 그분들도 기억력이 그리 좋진 않을 것 같은데요~ 호호, 그에 비하면 사탕쯤이야…… 그쵸~?”
“……”
오오, 과연 상인들의 수도.
손님이 아니면 작은 친절조차도 베풀지 않는다니, 장사에 너무 진심인 거 아니냐?
젠장, 그렇다고 무턱대고 돌아다닐 수도 없고.
어디 약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더럽게 큰 도시이면서 이정표조차 안 꼽혀 있다.
아.
혹시 일부러 안 만들어둔 건가!
나처럼 길 물어보는 사람에게 돈 뜯으려고!
아니, 이런 사악한 새끼들이 있나!
아무리 그래도 이정표는 꼽아 놔야지!
“푸핫, 야, 그냥 사야 할 거 같은데? 째짹, 난 토피.”
“제길.”
하…… 그래.
저 점원 말대로 그나마 사탕이라는 걸 위안으로 삼자…….
“호호호~ 천천~히 골라보세요~”
와, 진짜 얄밉다!
하지만 할 수 없지.
나는 한숨을 쉬며 가게를 한 바퀴 돌았다.
과일 사탕, 과일 젤리, 땅콩과 호두 토피, 퍼지 등, 가게는 그리 크지 않은데도 사탕이 종류별로 다 모여 있었다.
“우와아~”
덕분에 메린이 엄청나게 눈을 빛내며 이것저것 보고 있었다.
뭐, 한 봉지 사는 거야 괜찮긴 한데……
“……근데 뭐가 이렇게 비싸?!”
어떤 사탕이든, 한 봉지에 거의 은화 40개 값이었다!
이 돈이면 우리 네 명이 여관에서 음식 실컷 시켜 먹고, 수제 사과파이도 큰 거 하나 포장하고도 남는데!
“호호호, 저희는 모두 최고로 좋은 재료만 쓰고 있거든요~”
우리 동네 사탕가게도 좋은 재료를 써서 만든다.
심지어 1/8 가격으로 두 봉지 가득 살 수 있다.
바가지 장난 아니네!
우와, 도적들에게 꼬박꼬박 피해보상금 받아서 진짜 다행이다…….
뭐, 대강 젤리랑 퍼지 같은 걸 사면 되겠지.
“야야, 카엘, 카엘! 나 저거랑 저거랑~”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당기지 마.”
그러나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내 팔을 당기며 가게 여기저기를 가리키는 메린의 눈은 완전히 맛이 가 있었다.
아잇, 젠장.
적당히 사긴 글렀어!
“카엘 님! 저도 저거 막대 사탕요! 막대 사탕!!”
“토피이이이!!”
“새는 좀 빠져! 알았어, 알았다고! 팔 당기지 마! 등 밀지도 말고!!”
……한바탕 소란스럽게 과일 젤리와 토피, 퍼지를 섞어서 한 봉지를 만들고, 막대 사탕에 마시멜로, 과일 사탕으로 또 한 봉지를 만든 후 계산을 마쳤다.
돈을 받는 점원의 미소가 한층 더 밝아지는 게 엄청나게 얄미웠다.
“감사합니다, 손님~! 아, 맞다!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겨우 떠올랐어요! 관광안내소는 시계탑 안에 있어요~”
“예에, 감사합니다…….”
나 참…….
근데 사탕도 이 모양이면, 숙박비도 엄청나게 비쌀 것 같은데.
재수없으면 밤마다 도시 바깥으로 나가서 야영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한숨을 쉬며 가게를 나와, 두 아가씨와 한 축생 주인에게 사탕을 나눠주었다.
다들 웃으며 좋아하는데, 그 중에 가장 뛸 듯이 기뻐하는 건 역시 메린이었다.
“후후후~”
소녀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사탕 봉지를 두 손으로 꼭 안을 정도로!
“그렇게 좋냐?”
“응!”
……덕분에 바가지를 썼네 뭐네 하고 불평할 수가 없었다.
하여간 단 거 엄청 좋아해.
왠지 나까지도 웃음이 나왔다.
“야, 가면서 먹지 마. 그러다 흩어진다.”
“응~”
그건 그렇고, 눈앞에 물결치고 있는 저 인파 속에 또 섞여야 하는구나.
아, 싫다, 싫어.
햇빛도 쨍쨍하니 엄청나게 덥고 답답할 텐데.
으으…… 좀더 안쪽으로 가면 덜 복잡해지겠지?
여긴 입구니까 이렇게 와글와글대는 거겠지?
제발 안쪽엔 사람 좀 덜 몰려라.
간절히 바라며, 시계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후 정각을 알리는 종이 한 번 더 울렸을 무렵에야 겨우 시계탑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우리 중 누구 한 명도 흩어지는 일은 없었다.
도중에 파랑새가 바닥에 떨어져서 다른 사람 발에 밟히는 일이 한 번 있었지만, 애초에 녀석은 정령이니 아무 문제없었다.
“아무 문제없었긴! 쓸데없이 힘을 썼다고!”
콕콕콕콕콕.
아니, 내가 떨어뜨렸냐고.
이 자식이 괜히 나한테 화풀이야.
……아무튼, 그렇게 고생해서 도시 중앙에 왔더니 인구 밀도가 확 낮아졌다.
시계탑 근방은 광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 광장이 중앙에 분수대가 있을 정도로 제법 커서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탓이다.
그 덕에 나는 크게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약간 울렁거리기까지 한 속을 가라앉히려고 몇 번 크게 심호흡을 해야 했지만.
“……자, 들어가자.”
내가 먼저 발을 내딛어 시계탑의 입구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갈색 망토를 뒤집어쓴 사람이 나를 어깨로 퍽 치며 달아나버렸다!
“뭐야, 저 자식……아, 내 돈!”
망할! 소매치기다!
이 네 명 중에 내 거가 제일 두둑한 건 또 어떻게 알고!
"거기 서, 도둑놈아!"
몸을 돌려 놈이 뛰어간 방향으로 달려갔다.
아직 멀리 가지 못했는지 돈주머니를 손에 쥔 갈색 망토가 저 앞에 보였다.
피 같은 돈을 가져가다니, 용서 못해!
콱 엎어져버려라!!
“앗.”
속으로 외치자마자 놈이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지더니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밤샘수색도 불사할 생각이었는데, 무척 싱겁게 끝나버렸군.
놈은 우리가 가까이 가서도 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죽은…… 건 아니군.
그냥 기절한 거였다.
뭐, 엄청 화려하게 굴렀으니…….
“……”
일단 돈주머니를 먼저 회수한 후, 내용물을 확인했다.
음, 내 이름이 적힌 린넨 천 조각, 위슨이 줬던 부적이 있는 걸 보니 내 것이 맞군.
“……응?”
슬쩍 보이는 부적의 문양이 살짝 빛을 내고 있었다.
우와, 그럼 이 놈이 엎어진 게 부적 때문이야?
이거 진짜 효과 있구나.
위슨에게 감사의 의미로 엄지를 척 내밀어주었다.
“자아~ 어디 이 놈 얼굴 좀 볼까!”
나는 엎어져 있는 녀석을 붙잡고 후드를 홱 걷어 젖혔다.
“……”
어라, 생각보다 앳된 얼굴인데?
키가 나랑 비슷하길래 수염 더부룩한 아저씨일 줄 알았더니 위슨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남자애였다.
“어쩔 거야?”
메린이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긴.”
현행범을 잡았다면, 해야 할 건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어서오세요~”
일단방 잡아야지.
“1인실은 은화 쉰 닢, 2인실은 은화 예순 다섯 닢 되겠습니다.”
“아하하하하하하,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세상에, 다른 마을보다 네 배는 더 비싼 것 같은데!
물론 주머니는 넉넉하지만, 하루 방값이 이렇게 비싸서는 며칠 못 버틴다.
지원금도 가능한 아끼고 싶고…….
내 열띤 불평을 듣고도, 종업원의 미소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침을 뱉어도 방긋방긋 웃을 거 같아.
“식사 비용이 포함되어 있거든요. 맥주 두 잔도 무료로 드린답니다!”
“맥주 두 잔? 필요 없는데요, 그런 거…….”
“그러시면, 이건 어떠세요?”
종업원이 내민 건 얇은 나무판인데,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내 집에서="" 쉬는="" 듯한="" 편안함!="" 빈="" 집="" 대여="" 서비스=""/>
“……빈 집?”
“네. 안에 화덕도 있고, 저희가 하루치 땔감도 제공해드린답니다! 침실 두 개 있고, 욕실도 하나 있어요~
식사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니까, 오히려 이쪽을 더 좋아하시는 손님도 계세요~”
흠, 나쁘진 않은데…….
“얼마인데요?”
“은화 여든 닢입니다~”
“……”
비싸!
제길, 소매치기를 데리고 다녀야 하니 다른 데를 찾기도 조금 많이 껄끄럽다.
왠지 어디를 가든 다 이 가격대일 것 같고……
아마 더 저렴한 곳은 완전 폐가 수준일 거야.분명해!
……결국 한숨을 쉬며 하루치 숙박비를 낼 수밖에 없었다.
여관의 다른 종업원이 열쇠를 들고 우리를 집까지 안내해주었다.
“여기입니다. 편히 쉬세요~”
종업원은 정겹게 인사를 건넨 후, 내게 열쇠를 넘겨주고 돌아갔다.
들은 대로 작은 욕실, 침대 하나씩 있는 방 두 개에 거실 겸 부엌이 있는 아담한 집이었다.
일단 아직도 기절해 있는 소매치기를 밧줄로 묶은 후, 거실 구석에 굴려 두었다.
메린이 나를 보며 물었다.
“이제 어쩔 거냐?”
“어쩌긴. 밥이나 먹어야지.”
……딱히 할 것도 없고.
식당에서 먹고 싶긴 하지만, 저 소매치기범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다.
“하아…….”
아, 몰라, 본격적인 조사는 내일부터 해!
나는 배낭에서 요리용 솥을 꺼냈다.
화덕에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고 있을 무렵, 문이 열리며 메린과 위슨이 바구니를 하나 든 채 들어왔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시장이나 식당에서 적당히 후식거리를 사오라고 보냈었는데……
“뭐야, 이것들은?”
……과일과 파이에 더해, 라드 조각에 말린 생선, 말린 과일 조각, 심지어 햄 한 덩이까지 있다.
요리 재료로 산 거 치고는 죄다 미묘하게 적어!
“위슨을 보더니 다들 이것저것 조금씩 주더라.”
“엥? 왜? 뭐 했어?”
절레절레.
……아무것도 안 했는데 받았다고?
별 희한한 일이 다 있네.
내게 바구니를 넘긴 후, 메린은 솥 안을 힐끗 보며 중얼거렸다.
“흠, 이제 물 끓기 시작하는구나. 흠흠…….”
“……”
위슨이 챙겨왔던 싱싱한 몬스터 고기들도 다 떨어져서어제 쓰고 남은 사슴고기를 쓸 생각이었는데……
뭐지, 이 녀석? 뭔가 꾸미고 있는 얼굴이야.
여기 오는 길에 이 녀석이 도축할 만한 짐승은 하나도 안 만났으니,평범~한 재료로 평범~한 메뉴밖에 못 만들 터!
……근데 왜 불안한 걸까?
“로나는?”
“여관에 음료 사러.”
그러고보니 좀 늦네. 하긴, 사람이 많으니까…….
무언가 이야기를 듣고 온다면 좋겠는데.
벌컥!
“카엘 님!!”
“아, 놀래라. 왜 그래?”
큼직한 주전자를 손에 든 로나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는, 곧장 나에게 다가왔다.
“저기저기 앞에서 싸움 났어요!”
“엉? 밤이잖아. 여관도 많으니까 싸움이야 나겠지.”
주먹다짐이야 흔히 있는 일이지.
그리고 그걸 뜯어 말리라고 위병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로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다급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칼싸움이에요! 저기, 뒷골목에서!”
“음…….”
칼싸움에 뒷골목……
진짜 흔히 있는 일 같은데……
불량배들끼리 구역 다툼하는, 뭐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인상을 찌푸린 채 가만히 있자, 로나가 테이블에 주전자를 놓고는 내 팔을 당기며 재촉해대기 시작했다.
“빨리요, 빨리! 얼른 안 가면 위험해요!“
“으으음…….”
기시감이 있는 상황이군.
그러고보니 여기 온 것도 이 녀석의 이런 다급한 보고가 시작이었지?
이 이상 뭐가 엮이는 건 좀…….
“얼른요!할아버지가 위험하다고요!”
“……으으으윽……!”
……결국 버티지 못하고 일어서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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