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113화 : 우당탕탕, 신나는 보검 사냥! (3)
* * *
복도를 나오자마자, 스라소니를 부르러 들어갔던 그 손님방에 다시 들어갔다.
처음 계획은 1층 뒷문으로 냅다 뛰어가는 거였는데, 앨런을 서재에 들이면서 본 광경 때문에 바꾸어야 했다.
……창유리에 부딪쳐선 씩씩대며 사라졌던 그 도둑.
움직임이 빠른 게 보통이 아니었다.
앨런은 땅바닥에서부터 올라와서 창문을 넘지 않았다.
옆으로 돌면서 날아들어왔지.
아마 근처 나무나 창틀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감 성질상, 근처에 다른 놈이 따라붙어 있었다면 발로 차버렸을 게 분명해.
즉, 그 도둑은 풀숲에 숨어 있다가 창문이 열리는 걸 보고 달려들었다.
그런데도 앨런의 뒤를 거의 바짝 쫓아온 거다.
저 밖에 있는 놈들, 호락호락한 놈들 아니다.
……밖에 있는 놈들 죄다 저렇다고 봐야겠지.
아니, 저거보다 더한 놈들이 있을지도 몰라.
즉, 웬만한 속도로, 그것도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여야 한다.
안 그러면 눈 깜짝할 새에 빼앗길 거야.
그러니 문으로 나가선 안 된다.
내 다리로 뛰는 건 어불성설이다.
말을 타려고 잠깐 멈추는 것도 위험할지도 몰라.
……그렇다면, 길은 하나뿐이다.
“후우…….”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번.
창문을 바라보며 또 한 번.
긴장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한 가슴을, 주먹을 꽉 쥐어 다잡았다.
……좋아,저질러버리자!
이판사판이야!!
손님방의 창문을 열고, 아까 참새라는 여자가 준비한 가짜 검을 창 밖으로 던졌다.
조잡한 흰색 검집이 공중에 뜨는 걸 노려보며, 나는 주저없이 외쳤다.
“테라!물고 뛰어!”
“웡!”
거대한 잿빛 질풍이 창 밖으로 미끄러지듯 뛰쳐나가는 걸확인한 후, 나 역시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말만 2층이지, 별장의 1층은 계단으로 높여져 있으니 실상은 3층이나 다름없는 높이이다.
누구처럼 완벽한 낙법으로 착지할 수 없으니, 이대로는 내 다리가 부러질 터.
……그래서 몸이 허공에 뛰어드는 그 기묘한 부유감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소리 높여 그 이름을 불렀다.
“벤투스!!”
덤불 속에서 엘크가 불쑥 튀어나더니 나를 향해 크게 도약했다.
추락하기 시작한 내 몸을 완벽하게 받아낸 후, 엘크가 크게 외쳤다.
“꽉 붙잡으쇼!”
“……!”
으윽, 떨어진다!
양 팔로 엘크의 목을 감싸며 바짝 엎드리며 충격을 각오했다.
“엥?”
어라? 바닥에 닿았는데 아무 충격이 없네.
분명 꽤 높이 뛰었던 것 같은데!
“우와, 정령 최고다!”
말이었으면 다리 작살났을 텐데, 이걸 사뿐히 착지하다니!
제길, 진짜 부럽다!
“형씨, 조심하쇼! 바로 오는구만!”
“으악?!”
몸을 일으키려던 나는 엘크가 머리를 뒤흔드는 바람에 도로 숙여야 했다.
길고 길게 뻗은 뿔이 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날붙이가 달린 무언가를 후려쳐 날려버렸다.
단도? 나이프?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
엘크가 고개를 흔드느라 그 잠깐 멈춘 틈에, 풀숲에서 검은 그림자가 그의 옆구리에 들러붙었다!
“꺼져!”
“억.”
곧바로 발로 차서 떨어뜨렸다.
놈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덤으로 엘크의 뒷발에도 밟히고 말았다.
어우, 저건 아프겠다.
이제 됐다 싶으니, 이번엔 어디선가 밧줄이 날아와서 엘크의 뿔을 묶어버렸다!
“아따, 거 되게 성가시구먼!”
엘크는 다리에 힘을 바짝 주며 머리를 크게 휘둘러보았지만, 밧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젠장!”
이대로는 붙잡힌다!
보검을 뽑으려는 순간, 내 팔에까지 밧줄이 감겨져 오더니 홱 잡아 끌리기 시작했다!
“크윽!”
남은 팔로 엘크의 목을 감싸며 납작 엎드렸다.
몇 명이, 아니 무엇으로 당기는 건지 모르겠는데 팔 쪼개질 거 같아!
그래도 버텨야 돼, 떨어지면 끝장이야!
근데 이대로 있어도 끝장이잖아!
밧줄을, 끊어야 돼……!
“플레마아아아!”
목청껏 소리치자마자,근처 나무 위에서 스라소니가 떨어지며 발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발톱에 내 팔을 묶은 밧줄이 툭 끊어졌고, 나는 그 반동 때문에 순간 떨어질 뻔했다.
스라소니는 엘크의 뿔을 묶은 밧줄도 잘라버리며 외쳤다.
“가라!”
“고맙구만~!”
느긋한 목소리로 화답하며, 엘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스라소니가 매섭게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게 끝낼 수준이 아니잖아, 이거!
제길, 늑대로 시선을 좀 돌렸는데도 이 정도라니, 대체 얼마나 모인 거야?!
“형씨, 어디로 갈껴!”
“생각 중이야!”
“빨리 혀! 안 그럼 또 잡힌당께!”
엘크는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주위에서 마구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아직 목적지를 결정하지 않은 탓에, 여전히 별장 부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길, 도시 안에서 따돌리려 했는데, 이 정도 기세라면 그건 절대 안 되겠어.
그럼 어디로 가야 되지?!
간혹 엘크에 들러붙는 놈을 걷어차고, 나에게 날아드는 놈을 걷어버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얼른 결정해야 돼!
일단은 별장이 눈치채기 전에 여길 먼저 벗어나는 게 급선무이다.
그 다음은 이 놈들의 추적을 따돌려야 된다.
도시 안은 불가능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다 길도 좁고, 무엇보다 어디서 놈들이 튀어나올지 몰라.
“……바깥.”
……그래, 나가자.
아예 도시 바깥으로!
“북쪽 성문! 그쪽으로 나간다!”
“그려!”
크게 뛰며 뿔로 짧은 화살을 걷어낸 후, 엘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아, 근데 위슨의 배낭, 내 말에 실려 있는데!
더 멀어지기 전에,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히힝!”
말이 뒤따라오기 시작했다!
저 기특한 녀석, 끝나면 당근 퍼줘야지!
“쟤는 왜?”
“위슨 배낭에 이거 넣어야 돼!”
“아하. 그럼 쟤를 타야 쓰것구만. 딱 좋은 때네.”
“엉?”
엘크의 앞에는 사람 키만한 울타리가 있었다.
저길 넘으면 도시의 뒷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긴 한데……
여기서 어떻게 말에 옮겨가라고?
아니, 그 이전에 말은 저 높이를 못 넘는데?!
“됐고 말이나 불러~!”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내가 재차 휘파람을 불어 말을 부르자 엘크는 또 한 번 크게 도약한 후,
공중에서 연기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얌마?!”
아니, 여기서 뒤통수를 치네!
우와, 떨어진다!!
“윽?!”
그러나 다음 순간, 엉덩이에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낯익은 흑갈색 털자락이 시야를 덮으며, 귀에 익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히히히잉!”
“……!”
내 말이잖아!
녀석이 도저히 뛸 수 없는 높이로 펄쩍 뛰어 울타리를 넘으며, 나를 받아냈다!
그뿐 아니라 굉장히 사뿐하게 착지하기까지 했다.
엘크가 도운 거구나!
의심해서 미안!
거의 본능적으로 고삐를 잡고, 박차를 가하며 뒷골목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다 비켜어어어!!”
“우와아악!!”
가능한 길 가운데로 달렸지만,
음, 다친 사람이 있다면 내 사과를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은 정중하게 사과할 여유가 없었다.
곳곳에서 무언가가 날아들기 시작했으니까!
“윽?!”
본능적으로 고개를 꺾으며 말을 살짝 뛰게 했다.
무언가 스쳐지나간 거 같은데!
뒤를 살짝 돌아보니, 나랑 똑같이 말을 탄 놈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들고 있는 건, 쇠뇌……!
“미친놈들아, 길에서 쇠뇌를 쏴대냐!”
“히힝!”
젠장, 계속 직선적으로 달리면 안 되겠어.
그렇다고 골목을 헤맬 순 없고!
놈이 다시 쇠뇌를 겨누는 게 슬쩍 보였다.
말을 포기해야 되나?!
“웡!”
쇠뇌가 발사되는 순간, 늑대가땅 속에서 뛰어나오며볼트를 낚아채버렸다.
아까 내가 가짜 검을 물고 가라고 했던 늑대, 테라였다.
이렇게 나왔다는 건……
“너 뺏겼구나.”
“끼잉……”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시선 잘 끌어준 거지.
아니면 훨씬 더 힘들었을 테니까.
아무튼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이대로는 내 등이나 말 엉덩이에 볼트 박힐 거야.
어디로?
큰길로?
아니, 큰길을 달리는 건 어불성설이야.
사람이 너무 많아.
차라리 마차가 다니는 길을 달리는 게 낫지.
근데 어차피 그리로 가려면 큰길로 가야 되잖아.
그럼 속도를 줄여야 할 텐데.
하, 뭘 하든 일단 저 놈들을 떼내어야 되는구만.
……할 수 없나.
“테라, 이거 물고 먼저 북문으로 나가! 절대 뺏기면 안 돼!”
나는 들고 있던 보검을 늑대에게 던졌다.
늑대는 펄쩍 뛰면서 훌륭히 받아 물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내달리며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플레마!”
이번엔 지붕에서 나타난 건지, 그가 공중에서 펄쩍 뛰어내려왔다.
“테라를 도와줘! 너네 보검 뺏기면 안 된다!”
“명심했다.”
스라소니는 짤막하게 대답하며, 그대로 뒤를 돌아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참고로 지금 그는 평소의 모습, 그러니까 성체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있다.
그리고 거듭 이야기하는 거지만, 말은 겁이 많다.
“히히히이잉!!”
“우와아아악!”
아마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포식자의 모습에 겁을 먹은 거겠지.
등 뒤가 한창 요란해진 것에 약간 유쾌해졌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에서 마차용 포장길로 들어갔다.
한 손으로 고삐를 쥔 채, 이따금 앞을 달리는 마차를 제끼고, 때로는 피하면서 길을 질주했다.
나머지 한 손을 더듬어 위슨의 배낭을 찾아 어깨에 멘 후, 그 손에 내 검을 쥐었다.
북문이 가까워 온다.
바로 그때, 내 위로 무언가 묵직한 게 덮쳐왔다!
“커헉?!”
“핫하! 잡았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별장 뒤뜰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
“거미?!”
말도 안 돼, 말의 속도를 따라잡았다고?!
멈춘 적은 한 번도 없는데!
“큭큭, 지붕으로 뛰면 거기서 여기까진 금방이거든!!”
“역시 거미 아니잖아! 아잇, 저리 떨어져!”
“검 내놔!”
이거 그 검 아닌데!
어쨌든 완전히 찰싹 붙어서는 내 검을 잡고 떨어질 생각을 안 하고 있다.
큰길 근처에서 생난리를 피우고 있으니 점점 시선이 모이는 거 같기도 하다.
큭, 할 수 없지!
“에라이!”
말의 배를 차는 동시에 고삐를 홱 잡아당겼다.
녀석이 두 앞발을 들며 울더니, 짜증이 난 듯이 마구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우와악?!”
놈의 손이 내 검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 얼굴을 팔꿈치로 세게 가격해주었다.
그 충격에 놈의 몸이 뒤로 쳐졌고, 말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엉덩이를 홱 쳐들며 뛰었다.
그 결과, 놈이 저만치 앞으로 날아가버렸다.
“으아아아!”
……길바닥을 구르는 처참한 소리가 들렸다.
으, 죽진 않았겠지?
근데 지금 내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지!
말은 여전히 성을 내며 나까지 떨어뜨리려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야야야야, 그만그만그만그만!!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으니까 멈춰!!”
“히히히힝!!”
……결국 길 한복판에서 로데오를 한 판 벌였다.
겨우 말을 진정시키고, 어느새 모여든 사람들의 환호성을 뒤로 하며, 다시 북문으로 향했다.
두툼한 석벽 너머에 펼쳐진 푸른 들판이, 아무 방해물 없이 훤히 보이고 있다.
다행히 아직 문이 열려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근처 골목길에서 잿빛 늑대가 나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입에 물려 있는 보검의 검집이,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였다.
다행이다, 아직 안 뺏겼어!
그러나 늑대가 막 골목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공중에서 그물이 떨어지며 그녀를 덮치려 했다.
“햐아아아!”
포효와 함께 스라소니가 뛰어들며, 늑대 대신 그물을 대신 뒤집어쓰고 바닥을 굴렀다.
그 틈에 늑대는 북문으로 빠져나갔고, 그 뒤를 말을 탄 놈들이 뒤쫓아가기 시작했다.
스라소니를 꺼내줄 여유는 나에게 없다.
저들은 진짜 생물이 아닌 소환수이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 모습을 감출 수 있으니, 내가 도와줄 필요는 전혀 없다.
칼을 쥐고 스라소니를 둘러싼 저 도둑들이 맞이할 건, 그의 싸늘한 주검이 아니라 연기가 되어 흩어지는 모습뿐이다.
그 괴이한 현상은 뒷골목에 돌아다니는 또 다른 괴담이 되겠지.
어차피 그렇게 될 거, 저 도둑들을 좀더 깜짝 놀라게 해주자!
“플레마! 그물 태워!”
“햐아아아!”
스라소니가 포효하자, 그 몸에 불꽃이 일면서 그물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놀라서 질겁한 도둑들이 허둥지둥 뒤로 물러나는 틈을 타, 그는 재빨리 북문을 빠져나갔고,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북문 바깥에는 나무 몇 그루가 자라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풀만 나 있는 초원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그 도둑들의 기술과 도구가 뛰어나다고 해도, 탁 트인 지형에서는 속수무책일 터.
즉, 늑대를 쫓아간 놈들만 처리하면 끝이다!
얼마 안 가, 나는 저만치 앞에서 쇠뇌를 요리조리 피하고 있는 늑대의 모습을 발견했다.
여전히 꿋꿋하게 보검을 문 채, 말을 탄 놈들을 따돌리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더 갈 지 모른다.
더 빨리 가야 돼.
말보다도 더 빠른 다리가 필요하다!
나는 고삐를 잡은 채 말 위에 올라서서,
“벤투스!”
이름을 부르며 옆으로 뛰어내렸다.
“어이쿠, 형씨, 배짱 있네!”
엘크가 바닥에서 솟아올라오며 뿔로 나를 받았다.
그대로 뿔을 휙 제껴, 제 등에 나를 태우는 걸로 깔끔하게 마무리.
역시 정령 부럽다!
“달려어어어!!”
“입 꽉 다무쇼!!”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나 자신까지도 바람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엘크는 한 줄기 바람이 되어 들판을 가로질렀다.
뭐,바람의 정령이라니까, 바람이 되는 건 오히려 당연한 거겠지.
하지만 그냥 가까이 가서 될 일은 아니다.
저 놈들과 싸우는 건 피해야 한다.
그 틈에 또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 수도 있고, 보복이니 뭐니 하며 성가시게 될 수도 있으니까.
누구에게 당했는지도 모르게,한 방에 확실하게 보내버려야 돼.
다행히 내겐 그 수단이 있다.
품속을 뒤져 작은 물약병을 꺼냈다.
복수초의 본거지에서 튈 때 쓰라며 위슨이 주었던, 그러나 메린의 공갈…덕분에 쓰지 않고 아낀 섬광물약.
정령엔 영향이 없어야 할 텐데.
“……”
이걸 놈들 앞에 던지는 건 불가능하다.
거리는 굉장히 빠르고 좁혀지고 있는 데다, 칼같이 불어오는 맞바람에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속도를 줄일 수는 없다.
언제 늑대가 보검을 뺏길 지 모르니까.
지상에서 던질 수 없다면,
공중에서 떨어뜨릴 수밖에……!
엘크의 등에 얼굴을 묻듯이 대고, 입을 열어 속삭였다.
“벤투스, 놈들의 머리 위로 뛰어……!”
말을 마치자마자, 몸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다리에 힘을 바짝 주며 아래를 보자, 잿빛 점을 둘러싼 검은 원이 보였다.
……아니, 얼마나 높이 뛴 거야?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는 웃으며 그 잿빛 점을 향해 병을 떨어뜨린 꼴이 되었다.
오후의 햇살을 받아 별처럼 반짝이며, 병은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갔다.
엘크가 땅에 착지하고, 멈추느라 아주 약간 더 뛰었을 무렵,
비명 섞인 떨림이 뒤통수를 간지럽혔다.
서둘러 늑대가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으, 늑대까지 그 물약에 영향받았으면 어쩌지?
앞으론 나 볼 때마다 물려고 할지도 몰라.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도착하니, 내 예상과는 한참 떨어진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엉?”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죄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그들이 타고 있던 말 역시 바닥에 쓰러져선 발을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처참한 풍경을 빤히 쳐다보던 늑대는, 나를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그 입에는 여전히, 화려한 검집을 자랑하는 보검이 물려 있었다.
아무래도 그 물약의 무시무시한 효과는 늑대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않은 듯했다.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아무리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같은 편에게 해를 끼치는 건 좋지 않으니까.
늑대도 늑대겠지만, 정령을 빌려준 위슨도 크게 화를 냈을 거다.
“고마워.”
“웡!”
늑대에게서 보검을 받자마자, 나는 위슨의 배낭에 검을 집어넣었다.
길이상 배낭을 불룩하게 만들며 삐져나와야 할 텐데, 보검은 아무 것에도 걸리지 않고 자루 끝까지 쑤욱 들어가버렸다.
“휴…….”
끝났다.
진짜로.
긴장이 풀려 털썩 주저앉은 나에게, 늑대가 꼬리를 흔들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하, 진짜고마워.”
폭신폭신한 잿빛 털을 쓰다듬으며 말해주자, 늑대는 기쁜듯이 한 번 짖었다.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다른 두 정령도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다 끝난 거 같은디, 형씨, 갈 때는 워쩔껴?”
“내 말 타고 가야지. 옷도 거기 있으니까.”
북문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웃기니, 좀 빙 돌아가는 게 되더라도 서쪽 문으로 들어가는 게 낫겠지.
아무튼 이제 끝났으니 돌아가자.
얘네도 주인에게 돌려보내고.
나는 세 정령을 하나하나 보며 말했다.
“테라, 플레마, 벤투스, 너희들 모두 수고 많았어. 다들 도와줘서 고마워. 이제 쉬어도 될 거야.”
“웡!”
늑대의 그 대답을 신호로, 세 정령이 몽땅 연기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숨을 크게 내쉬은 후, 나는 휘파람을 불어 말을 불렀다.
아니, 부르려 했다.
“……!”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며 오싹해졌다.
‘피해!!’
본능을 따라 재빨리 옆으로 구른 후 일어섰다.
목을 훑는 듯한 알 수 없는 한기에 몸이 떨렸다.
반사적으로 검을 뽑은 채 앞을 보았다.
내 눈이 비추는 그 광경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닥에 널부러진 검은 뭉텅이들 틈에, 한 그림자가 꼿꼿이 서 있었다.
놈의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네 개의 나이프가, 노을빛을 한껏 받아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서 있는 거지?
섬광물약이 무서운 건 일시적으로 눈을 멀게 해서가 아니다.
주변 공기를 뒤흔들 정도로, 엄청나게 큰 소리를 귀에 때려버리기 때문이다.
그 굉음의 위력이 어떤지는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다.
이 몸으로 직접 겪었으니까!
그러니 저건 말도 안 된다.
그 소리를 듣고 이렇게 빨리 회복될 리가 없어!
설마 인간이 아닌 건가?!
“히히힛! 눈을, 눈을 줘!!”
“……?!”
목소리, 아니 말투가 이상해!
높낮이가 완전 엉망진창이야, 소름 끼쳐!!
게다가 뭐? 눈을 달라고?
이건 또 뭔 미친 소리야?!
“눈, 눈눈눈! 예쁜 눈! 히힛, 네 눈을 달라고!”
“윽?!”
검은 광인이 나이프를 쥔 채 달려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