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114화 : 우당탕탕, 신나는 보검 사냥! (4)
* * *
그냥 단검 들고 덤비는 불한당이라면 손쉽게 때려눕혔을 것이다.
“크히히힛!!”
“힉?!”
그러나 지금 상대는 정신이 완전히 돌아버린 놈이다.
자꾸 저렇게 웃는 것도 그렇고, 높낮이가 맛이 간 말투도 그렇고, 진짜 소름이 끼쳐서 몸이 자꾸 굳는 통에 제대로 대치할 수가 없었다.
놈이 던지는 나이프를 굴러서 피하고, 휘두르는 단검을 쳐내는 게 고작이었다.
기세에서 밀리면 이길 것도 못 이긴다.
그녀가 해주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 말을 되새기며 이를 악문 게 이번이 몇 번째인가.
입술에 피가 나도록 세게 깨물며 정신을 다잡으려 해도,
“크흐흐흐, 아주, 아~주 예쁜 눈이야!! 히히, 키히힉! 파란 눈! 존나 맛있겠어!!”
코앞에서 눈을 번뜩이며 저딴 말을 지껄이니 냉정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미친 새끼가 진짜!!”
퍼억!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오싹함을 견디지 못하고 놈을 걷어차버렸다.
제길, 저 놈이랑 거리 벌려서 좋을 거 하나도 없는데!
“너 뭐야! 씨발, 진짜 뭐하는 놈이야, 미친 새끼야!!”
“히히, 으히히익~!”
놈은 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바닥에 박힌 나이프를 집어서 대뜸 던졌다.
또 얼굴 쪽인가!
몸을 살짝 틀어서 피한 후, 놈에게 달려들었다.
그냥 도둑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움직임으로, 검은 광인은 내가 휘두르는 검을 굉장히 손쉽게 피하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다가 또 불쑥, 그 소름끼치는 웃음과 함께 달려드는 거다.
진짜 환장하겠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미친놈이 자꾸 내 얼굴만 노린다는 것이다.
만약 놈이 무차별적으로 마구 휘둘렀다면 내 팔다리에 칼자국 하나는 났겠지.
아무튼 저렇게 눈눈눈 지랄하는 걸 보니, 저 미친놈이 분명 그 ‘눈깔사냥꾼’일 것이다.
근데 왜 보검은 안 찾고 내 눈 먹겠다며 개지랄 떨고 있냐고!
진짜 눈에 미친 거냐고!
“여기 보검 없어! 없으니까 저리 꺼져!!”
목청껏 소리쳤는데도 놈은 그저 웃으며 달려들 뿐이었다.
빌어먹을, 들은 척도 안 하네!
……혹시?
“큭!”
또 다시 검을 사이에 두고 놈과 들러붙었다.
나는 그 상태에서 있는 힘껏 고함을 쳤다.
“와아아악!!”
“히히, 히히힉!”
아무 반응도 없어.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허, 설마 귀머거리인가?!
그래서 섬광물약을 맞고도 금방 회복된 건가!
눈부심 자체는 그렇게 길게 가지 않으니까!
“젠장!”
이렇게 계속 시간을 쓸 수는 없어.
노을이 진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조만간 엎어져 있던 다른 도둑들도 깨어날 거야!
정령을 다시 부를까?
……아니야, 안 돼.
일이 다 끝났다고 보낸 건데, 또 부를 수는 없어.
……뭣보다도,
이 정도도 혼자 못 이기면 난 진짜 짐짝이라는 것밖에 안 돼!
이깟 놈도 혼자 못 잡는 놈이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겠냐!
앞으로 더 미친 꼴, 이 놈보다 그 마녀들보다 더한 꼴을 볼지도 모르는데!
그 길을 버틸 수 있겠냐고!
“크으!”
채앵!
광소하며 달려드는 놈의 단검을 받았다.
어스름 속에 붉은 불꽃이 흩어진다.
이게 벌써 몇 번째 대치일까?
몇 번째이건 뭔 상관이야, 이번이 마지막인데!!
“히힉! 눈을 줘어어!!”
“으으으으!”
듣지 마, 신경 꺼, 집중해!
이 새끼는 별 볼 일 없는 놈이야!
정신만 흐트러지지 않으면 한 합만으로도 쓰러뜨릴 수 있다고!
목표만 생각해. 거기서 눈을 떼지 마.
……언젠가 그녀가 속삭인 말.
성검의 자루를 쥔 내 손을 감싸며 해준 그 말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목표.
지금의 내 목표.
그것은 이 새끼를 치워버리고 한시라도 빨리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잖아, 안 그래?’
……그렇고 말고.
눈이 뜨였다.
“흐읍!”
단검을 홱 흘려버렸다.
놈의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 뒷덜미를 붙잡아, 배를 뚫어버릴 각오로 무릎을 깊이 꽂아넣었다.
“쿠헤엑!”
그대로 놈의 뒷목을 칼자루로 갈겨 엎어뜨린 후, 등을 세게 밟아버렸다.
놈은 끄르윽하는 괴상한 신음을 흘리며 바들바들 떨 뿐, 일어나지 못했다.
“하아…… 하아……!”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려 애썼다.
지나친 긴장의 반동으로 다리가 풀어지려는 걸 애써 부여잡으며, 나는 땅에 엎어진 놈을 내려다보았다.
“아오, 별 것도 아닌 놈이 진짜!!”
뒤늦게 열이 뻗쳐서 두 번 더 걷어차주었다!
이제 진짜 끝났겠지?
빨리 말 타고 여길 떠야겠어.
나는 말리스의 북쪽 성문을 향해 뛰며 휘파람을 불었다.
와라와라와라, 제발 와라, 제발제발제발!!
“히히잉~!”
“그래, 임마! 믿고 있었다고!!”
정말 착하게도, 저 멀리서 말이 갈기와 고삐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흑, 저 기특한 녀석!
진짜 내가 당근 한 포대라도 손수 먹여준다!
“이름도 지어줘야 하나……. 으앗.”
긴장이 풀린 탓에 헛발을 짚고 말았다.
넘어지진 않았으니 괜찮아, 괜찮아.
“……”
근데 저 앞에, 왜 볼트가 박혀 있는 거 같지?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아까 널부러져 있던 놈들이 저녁 어스름과 한 몸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망할, 깨어났어!
“아잇! 돌겠네, 진짜아아!!”
말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저 놈들도 맨 다리로 뛰어오고 있다는 거다.
근데 그럼 뭐하냐, 저 놈들은 쇠뇌가 있는데!
그렇다고 다 상대하고 갈 수도 없고!
뒤를 힐끗힐끗 살피며 달리는 중에, 놈들이 쇠뇌에 그물이 달린 화살을 채우는 게 보였다.
“야, 이 비겁한 새끼들아아!!”
쇠뇌가 내 머리 약간 위쪽을 겨누었다.
검은 그림자에 묻혀 보이지 않는 입이, 비릿한 내음을 풍기며 웃은 것 같았다.
“쳇, 결국 나서야 되잖아.”
“??”
투덜대는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 나를 지나쳐갔다.
문득, 이미 서쪽 너머로 저문 노을이 눈앞에 살며시 나부낀 것 같았다.
어스름이 자욱이 깔리기 시작한 들판에 나타난, 한 줌의 선명한 불빛.
그에 이끌리듯이, 나는 다리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우와.”
지상에 내려온 노을이 들판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풀밭 위를 미끄러지듯이 내달리며, 검은 그림자를 하나씩 바닥에 꽂거나, 그들이 한참을 달려온 방향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있다.
이따금 붉은 물방울이 튀기는 것 같았지만……
이 거리에선 내가 그걸 말릴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별로 들지 않았다.
“푸흐응.”
어느새 다가온 말이 주둥이로 내 머리를 툭 쳤다.
멍하니 저 앞의 광경을 보며 이 기특한 녀석의 뺨을 쓰다듬어준 후, 안장에 올라 고삐를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난 지금 한시가 급하니까!
“야!!”
“으잇?!”
……몇 발짝 못 가서 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젠장!
노란빛과 주황빛이 섞인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그 여자는 양 손을 허리에 짚고 나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와,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매정하다! 야, 보통 이런 건 기다려주지 않냐? 어떻게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가려고 해?!”
“내가 좀 많이 바빠서.”
거짓말은 아니다.
정말로 다음 일정, 볼케 백작의 파티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주변도 어두워졌겠다, 그냥 옷 갈아입고 북문으로 내달려야 겨우 시간에 맞출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이 눈치없는 자식은 날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난 뭐 한가한 줄 알아?! 하…… 뭐, 좋아. 내가 이번만 특별히! 다른 보수 안 받을게. 자, 나한테 할말 있지? 얼른 해.”
“……”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여, 상대가 재수없, 아니 부적절한 태도로 무언가를 요구하면 그에 절대로 응하기 싫어지기 마련이다.
특히나 저렇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뭐가 자랑스러운 건지, 가슴을 쭉 펴고 있는 놈에겐 더더욱.
예를 들면, 필사를 하려고 책상에 막 앉았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벌컥 들어와서 ‘너 또 일 안 하고 놀고 자빠졌냐, 빨리 안 해?!’ 라고 소리치면,
그 순간에 깃펜 던져버리고 탈출을 꾀하게 되는 것이다.
맹세코 난 그때 진짜 일하려고 했었어!
아무튼 이번에도 그런 뒤틀린 심사가 작동해버렸고, 나는 일부러 더 밝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안녕, 블루벨? 좋은 저녁이네!”
“……”
“그럼 이만.”
아연히 서있는 엘프를 지나치며 북문으로 향하기를 몇 걸음,
“야, 이 새끼야!”
이번엔 아예 고삐를 붙잡혀 버렸다!
“아잇, 진짜! 바쁘다고 했잖아!! 이거 안 놔?!”
“화낼 사람은 나거든?! 기껏 구해준 사람한테 뭐? ‘안녕, 좋은 저녁이네’? 그게 할말이냐?! 뭐 이런 경우없는 새끼가 다 있어?!”
“댁은 그딴 말 지껄일 자격 없어! 애초에 감옥 바닥에 썩어 있을 사람이 왜 쏘다니고 있는 거야? 탈출했냐?!”
이 거지 같은, 아니 돈 없으니 진짜 거지이군.
이 거지 엘프, 블루벨은 옐리카네 저택 감옥에 박혀 있어야 할 터.
근데 왜 여기 나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애초에 별로 궁금하지 않다.
왜냐? 나는 지금 엄청나게 바쁘니까!
그러나 이 망할 귀쟁이가 고삐를 꽉 붙잡은 탓에 무시하고 갈 수 없었다.
가더라도 또 이렇게 길이 막히겠지!
블루벨은 내 물음에 고개를 휙 돌리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흥, 내가 나와있건 말건 네가 뭔 상관이야? 그냥 잠깐 바람 쐬러 나온 거니까 신경 끄셔.”
“그래, 소원대로 신경 끌 테니까 고삐나 놔. 나 가야 돼!”
“나도 너 상대하기 싫거든?! ……그러니까 빨리, 너 할말 하라고. 나한테 할말 있잖아!”
내가 아닌 저 옆을 올려다보면서, 블루벨은 왠지 모르게 목을 만지작거렸다.
처음에 붙잡았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얇은 가죽끈 같은 것이 목에 둘러져 있다.
목뿐만 아니라, 그녀의 양 손목에도 똑같은 끈이 둘러져 있었다.
무언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면……
“너 누구 부탁받고 왔냐?”
“……하? 내가? 웃기지 마, 그냥 바람 쐬러 나온 거라고 했잖아.”
“바람 쐬러 나온 거면 조금 있다가 도로 감옥 가겠네. 뭐, 잠깐 나오는 대신 나 돕기로 했어?”
“우, 우, 웃기지 마!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뭐 하러?!”
맞네.
얼굴을 곧바로 새빨갛게 물들이며 버럭 화내는 걸 보니 딱 그거구만.
이 상황에서 이런 걸 준비할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시계탑에서 옐리카의 저택으로 돌아가는 중에, 위슨이 나에게 말했지 않은가.
혹시 모르니까 비밀병기 하나 준비해줄게요.
……그 비밀병기가 설마 이 엘프였을 줄이야.
“……”
위슨이 엘프의 목과 양 손목에 맨 게 무얼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만약을 위해 이 엘프와 손수 거래를 해준 것이다.
……언제나 그렇긴 하지만, 정말 나 혼자선 안 되는구나.
새삼 느낀 그 사실에 침울해지면서도, 나는 그의 그 철두철미한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설령 그게 그 자신의 안위……
나를 혼자 위험에 빠뜨렸다는 책임을 추궁받기 싫었을 뿐이라 해도.
누군가가 내가 무사하길 바라고 있다.
그 사실을 아는 건 썩 괜찮은 기분이었다.
“고맙다.”
“……흥! 착각하지 마, 난,”
“댁 말고 위슨한테 한 건데. 걔한테 전해줘.”
“무, 뭐?!”
블루벨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렇게 열을 내느라 고삐를 놓은 틈을 타, 나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농담이야! 댁도 도와줘서 고마워!!”
대충 뒤로 손을 휘저어주며 외쳤다.
엘프니까 뭐, 알아서 잘 듣겠지.
그리고 정말로 내 감사 인사를 들었는지, 블루벨은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쯧, 처음부터 그냥 곱게 나왔으면 알아서 고맙다고 할 것을.
“이랴! 서두르지 않으면 늦는다! 달려!!”
“히히힝!”
전속력으로 말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시계는 이미 파티 시작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리 그들이 십 분 지나고서 도착할 예정이라 해도, 이대로 막힘없이 질주해야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출 수 있겠지.
일 분 일 초도 지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어허~이, 멈추십셔어~! 입장권 확인해야 됨다~!”
“아잇, 제기랄!!”
……애석하게도 북문 위병들 앞에 잠시 서야만 했다.
성문을 통과한 후, 근처 덤불 숲에서 재빨리 옷을 갈아입은 다음, 나는 재차 말을 내달렸다.
호화로운 마차들이 저마다 주황빛 등불을 매단 채, 천천~히, 정말 천천~히 포장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젠장할, 여기서 길이 막히네!
“이랴!”
그래도 그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면서, 가급적 서두르며 계속 나아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볼케 백작의 별장이 어디인지 지도를 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나비공작의 파란나비가 암흑 속에서 떠올랐던 것처럼, 이번에는 호화마차들의 주황색 불빛들이 길을 인도하고 있었으니까.
“하아…….”
진짜 한숨밖에 안 나온다.
아니 어떻게 생각대로 된 게 딱 하나밖에 없냐?
원래는 내가 더 일찍 도착해서, 그들이 오길 기다리며 있는 긴장 없는 긴장 다 풀려고 했는데.
……차분하게, 그녀를 맞이하려고 했는데.
아마 누구보다도, 어쩌면 나보다도 더 긴장하고 있을 테니까.
익숙하지 않은 차림 때문에 그녀의 눈동자가 얼마나 떨리고 있었던가.
드물게 손을 꼼지락거리고, 자꾸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던 건 또 어떻고.
“……”
고삐를 쥔 손에 힘이 더해졌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기다려줘.
금방 갈 테니까.
반드시, 너에게……!
“……!”
마차가 늘어선 끝에, 아까 전에 누구 말마따나 대환장 파티를 벌인 그 4층 집이 보였다.
그러나 내가 본 건 그 앞이다.
다른 마차들에게 자리를 비켜주듯이, 한두 걸음 떨어진 곳에 2인용 쌍두마차가 한 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한 손으로 팔꿈치를 받치듯이 붙잡고 있는 붉은 여인이 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건 그 하나뿐이었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
큰길의 사람들을 뛰어넘고, 덤불을 헤치고 갈 이유로는 충분했다.
“메린!!”
화들짝 놀란 눈이 나를 향했다.
그게 내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갑자기 풀숲에서 말이 튀어나와서 그런 건지 알 수 없다.
아니,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녀의 주홍빛 눈동자가 나를 향하며, 그 입술이 희미하게 달싹였다.
“카엘……!”
숨결이나 다름없는 속삭임.
정말로 들렸는지도 잘 알 수 없는 작디작은 목소리.
그러나 나는 그녀가 내 이름을 입에 담은 거라 확신했다.
커다랗게 뜬 주홍빛 눈동자가 오로지 나를 한껏 담으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으니까.
그 미소가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 내가 알 필요가 있을까?
그녀가 나를 보며 안도하고 있다.
나에겐 이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메린……!”
……그녀를 품에 깊이 끌어안을 이유론, 그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