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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51화 (151/475)

〈 151화 〉 147화 : 용사 지원 시범사업 (2)

* * *

드워프의 나라인 ‘바위궁전’, 그 최하층.

안 그래도 지하에 있는 곳인데 최하층이라 불리는 만큼,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암흑, 심연이나 다름없는 상태일 줄 알았다.

그러나 암흑은커녕, 오히려 1층보다도 훨씬 밝았다!

다른 층엔 야광석이 달린 등이라도 있었지, 여긴 그런 것도 없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밝은 거지?

그 덕에 주변을 살피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딱히 오래 있고 싶진 않았다.

왜냐?

“하,”

까앙! 깡! 치지직!

우우웅! 콰과앙!

일부러 크게 쉰 한숨소리도 묻힐 만큼 엄청나게 시끄러우니까!!

망치가 쇠를 휘두르는 소리, 뜨겁게 달궈진 쇠가 물에 처박혀서 식는 소리,

쇠가 깎여 나가는 소리, 못 박는 소리, 대패질하는 소리,

톱질하는 소리, 무언가 터지는 소리…….

이따금 이 소리들을 전부 묻어버리는 외침도 들린다.

“이게 아니야아아!!”

그래, 바로 저런 거.

그 밖에도 이따금, 이 층의 가장자리를 빙 둘러싸고 있는 걸쭉한 붉은 액체에 알몸으로 수영하는 드워프 남녀도 있다.

분명 옷을 입은 채로 다이빙했는데, 그 액체 안에 풍덩 빠진 다음 올라오니까 옷이 사라져 있더라.

진짜 뭐가 뭔지 모르겠어. 몰라, 여기 무서워!

지금은 어떤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데, 그 덕분에 그런 해괴한 꼴은 더 안 봐도 된다.

벽이 얇은지 바깥 소음들은 죄다 들리고 있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아.

진짜 문제는 더위였다.

뭐 때문인지 몰라도 엄청나게 덥다.

그냥 덥기만 하면 몰라도 무진장 습하기까지 하다.

아, 산 채로 쪄지는 기분이야.

아니 어떻게 위에는 셔츠 하나 빼고 죄다 벗었는데도 덥냐?

원래 지하로 내려갈수록 서늘한 거 아냐?

당장이라도 다시 올라가고 싶은데, 문제는 이 건물 책임자를 만나야 나갈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책임자는 지금 자리를 비우고 없다.

한 마디로 망했다.

살려줘.

그 숨까지 막힐 듯한 더위에, 나는 완전히 축 늘어지고 말았다.

근데 다른 녀석들은 굉장히 태연하게 의자에 앉아 있다.

뭔가 억울해.

“야…… 너넨 왜 멀쩡한 거야……?”

왠지 모르게 솟아오른 억울함을 담아 묻자, 다른 세 녀석이 어깨를 으쓱이며 차례대로 말했다.

“위슨은 플레마가 열기를 좀 막아줘서.”

치사한 녀석.

“훈련했는데요.”

대단한 녀석.

“덥긴 한데, 그럭저럭 참을 만하지 않냐?”

그리고 무시무시한 녀석이었다.

아니 메린 쟤는 뭔 훈련받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걸 견디는 거야?

그래도 그녀의 옷차림은 다른 두 녀석보다 굉장히 시원한 상태이다.

위슨은 코트만, 로나는 망토만 벗고 소매 하나 걷지 않은 거에 비하면, 메린은 더위를 느끼는 사람다운 차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는 도저히 그녀를 쳐다볼 수가 없어서 지금 고개 쳐들고 눈 감고 있다.

하, 참을 만하다고?

그럼 옷 똑바로 입고 참든가!

“……”

살짝 눈을 뜨고 그녀를 보았다가, 역시 안 될 것 같아 도로 감아버렸다.

메린 녀석의 현재 옷차림은 이렇다.

셔츠 소매는 끝까지 접어 올리고, 목 아래 단추는 세 개까지 풀었으며, 셔츠 아래단은 단추를 풀고 묶었다.

그 탓에 늘씬한 허리는 물론, 배꼽까지 훤히 다 드러나 있다.

아래는 또 어떻고?

건물 안에 들어왔으니 뭐 어떠냐면서 부츠 벗어버리고, 바지도 홱 걷어 올려버렸다.

그러고 의자에 무릎을 세워서 앉아 있으니, 옆에 있는 나에겐 그녀의 허벅지도 다 보이는 상태이다.

딴 사람이라면 일부러 유혹하려고 저러는 게 뻔하니 꾸짖었겠지.

근데 메린은 아니야.

쟨 진짜 아무 생각없이, 순수하게 더워서 저러고 있는 거다.

그러니 ‘옷 똑바로 입으라’고 말할 수도 없다.

어차피 안 들을 테니까!

참고로 난 그녀의 맨다리를 본 게 이번이 처음이다.

이 녀석이 어렸을 때 내 앞에서 옷을 훌러덩 벗고 호수에 뛰어든 적이 있긴 한데, 그때 내가 본 거라고는 물 밖으로 나온 머리밖에 없다.

왜냐? 이 녀석이 그때 옷을 벗으면서, 내 머리 위로 옷을 던졌으니까.

즉, 녀석은 본의 아니게 내 눈을 가렸던 것이다.

내가 시야를 다시 되찾았을 땐, 그녀는 이미 호수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 다음은 사태를 파악한 내가 곧장 고개를 돌렸고.

그러니까 지금, 나는 난생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녀의 늘씬하면서 매끈한 맨다리를, 잘록하게 패인 허리살과 배꼽을.

게다가 그뿐인가?

주변에 충만한 열기와 습기 때문에 땀까지 맺혀 있다.

얼굴, 목, 배, 다리, 전부 다!

아주 그냥 송골송골 맺혀서 뚝뚝 떨어지더라!!

이런 망할, 이걸 어떻게 눈 똑바로 뜨고 볼 수 있겠냐고!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바로 눈앞에 엄청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모습이 있으니까 더 덥다.

아주 그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뻘겋게 달궈진 기분이야.

오오, 주여, 왜 자꾸 툭하면 이런 시련을 내리시는 겁니까?

그나마 그녀가 가슴속옷을 안 풀어서 망정이지.

만약 덥다고 그것까지 풀거나 벗었다면……!

“……”

끄아악! 멍청아, 상상해버렸잖아!

하필이면 그녀가 가슴골을 보인 적이 있는 탓에, 곧바로 머릿속에 완전체를 떠올려버렸어!

슬프도다, 빌어먹게 솔직한 남자의 본능이여.

진짜 쓸데없는 데에서 힘을 쓰는구나.

미리 겉옷을 벗어서 허리에 두르길 잘했지.

그녀가 조끼를 벗은 시점에서 앞일을 예상한 나의 통찰력에 건배……!

“옜다, 미친놈아. 얘나 올리고 있어라.”

갑자기 위슨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마에 뭔가 촉촉한 느낌이 들면서 열기가 확 가셨다.

“와아……. 시원해…….”

“헛허허……! 거참………다행………이구만………!”

거북이였군.

그럼 이 촉촉한 건 거북이 녀석의 발인가?

뭔가 좀 미끌미끌거리는 거 같기도 하지만 뭐, 어때.

하아…… 진짜 살 거 같다아…….

정령의 힘을 빌려도 여전히 좀 덥지만, 이 정도면 천상이야, 천상.

더위가 가신 덕분에, 몸의 열, 특히 다리 쪽에 모였던 열기도 확 식은 것 같았다.

“살 것 같은 건 나야. 미친놈이 더위 먹었나, 속으로 쫑알쫑알 존나 시끄러워서 진짜 뒤지는 줄 알았네.”

저렇게 팔팔하게 지껄이고 있는 걸 보니, 정령들은 추위와 더위를 못 느끼는 게 분명해.

하, 진짜 부럽다.

그리고 그 부러움과 더위에 대한 짜증이 솟구쳐, 나는 평소보다 훨씬 날카로운 말투로 툭 쏘아붙였다.

“닥쳐, 새꺄, 네가 더위를 알아? 그리고 넌 뭘 지랄을 해도 안 뒤지잖아. 어디 감히 뒤지는 줄 알았다는 표현을 쓰고 지랄이야?”

그러자 파랑새가 곧바로 콧방귀를 뀌면서 맞받아쳤다.

“얼씨구, 살 만하다고 바로 주둥아리 나불대는 거 봐라.

야, 카엘아, 갑자기 내가 고민이 생겼다. 네가 그 옷자락 두르고 있는 이유를 떠벌리고 싶어서 입이 막 간질거리네. 어쩔까?”

“꾹 참아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에코 님.”

“오냐.”

……그렇게 아웅다웅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와아, 와아아!! 여러분이 그 분들이군요!! 후히, 후히히히! 진짜로 오셨어어~!!”

“……”

아니 여기도 정신 나간 사람이 있네.

인간이나 엘프나 드워프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나는 의자에 축 쳐진 채 한숨을 쉬었다.

떠들썩하게 들어온 그 드워프는, 곧바로 저 까마득한 천장까지 닿을 듯이 높은 어조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기운이 없는 탓에 거의 대부분은 흘려들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얘기는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 정신 나간 드워프의 이름은 폴리아, 직책은 개발연구소장이다.

그리고 우리가 죽치고 기다리고 있던 이 곳이 바로 그녀의 일터인 개발연구소의 로비였다.

허허, 그 의장 할머니도 참 익살스러우시다니까.

왜 진작에 말을 안 하셨나 몰라?

‘좋은 생각이 났다’던 암피오 의장은, 씨익 웃으면서 굉장히 두리뭉실한 이야기만 해주었다.

­­이 ‘바위궁전’ 가장 아래층의 가장 큰 건물로 가보시게. 거기 책임자가 알아서 해줄 게야.

­­뭐하는 건물인데요?

­­가보면 알아.

전혀 알려줄 맘이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왔는데, 이 폴리아라는 드워프에겐 무슨 이야기가 이미 전해진 모양이었다.

굉장히 두꺼워 보이는 안경을 쓴 그녀는, 부스스한 머리를 마구 휘날리면서 혼자 신나게 말을 쏟아내었다.

“들었어요!! 제 무구…가 아니라 저희 개발품을 써보기로 하셨다면서요?! 와아, 와아아!! 드디어 실전데이터가 쌓인다아아!!”

“……”

두 주먹을 하늘로 쳐들며 환호성을 지르는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하아…… 좋은 생각이 났다더니, 개발품 시험할 겸 빌려주는 거였구만.

뭐, 그래봤자 날붙이 무기나 갑옷을 빌려주는 거겠지.

엘프에게 조짐당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거니 고맙게 잘 쓰도록 하자.

“자자자자, 얼른 들어오세요! 의장님이 여러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빼줘야 한다고 단단히 당부하셨거든요!! 후히히히!!

근데 인간분들은 여기 잘 못 버티시던데 여기 셋은 왜 멀쩡하시지? 혹시 키 큰 드워프세요? 아니면 혼혈?! 와아, 와아아아!! 인간과 드워프 혼혈이라니 이건 정말,”

“아니니까 그냥 들어갑시다.”

“앗, 네네네! 들어오세요!!”

……이상하게 불안하네.

이 드워프의 몸놀림이 방정맞아서 그런가?

아니면 두꺼운 안경 너머에 보이는 그녀의 눈이 맛이 가 있어서?

한숨을 쉬며, 굉장히 의욕이 넘치는 연구소장을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소 안도 밖이나 다를 바 없이 더웠다. 단지 습기만 없을 뿐.

드워프의 기준에선 하나도 덥지 않은 건지, 폴리아 연구소장은 안 그래도 넘칠 듯한 의욕을 폭발시키면서 연구소를 안내해주겠다고 나섰다.

“꼭꼭꼭! 꼭 맘에 드실 거에요!! 굉장히 많은 걸 연구하고 있거든요!! 한동안 손님이 없어서 개발 중지된 게 엄청나게 많은데, 와아아!!

우리 개발품이 용사를 위해 쓰이다니 꺄아아아아!!!”

혼자 숨도 안 쉬고 말을 쏟아붓더니,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달려가버렸다.

아니, 안내해주는 거 아니었어?

“어라?! 다들 어디가셨…… 아, 아아아! 죄송해요, 금방 다시 갈 테니 기다려주세요!”

한참 뒤, 굉장히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메아리쳤다.

……뭐, 다시 돌아오겠지.

그녀가 오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 뒤에 우르르 서 있는 세 녀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보다시피 기운이 별로 없거든? 누구 내 대신 저 사람 좀 상대해줄 사람?”

“…………”

굉장히 놀랍게도, 손을 들고 나서주는 녀석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내심 믿고 있던 로나까지도 방긋 웃으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런 야박한 새끼들.”

“원래 이런 건 어른이 하는 거잖아. 위슨은 아직 애라고.”

“저도 고작 열 넷밖에 안 먹었어요~ 카엘 님은 어엿한 어른이시니까 저흴 잘 이끌어주시리라 믿어요!”

“……”

평소엔 네다섯 살 차이밖에 안 나면서 뭔 어른이냐고 뻗대면서 이럴 때만 어른 취급이네.

이 자식들, 어디서 그런 간사한 것만 배워가지고……!

그리고 메린은 아예 내 쪽을 보지도 않고 주위만 쳐다보고 있었다.

“……야, 메린, 너 내 말 들었냐?”

“엉? 뭐? 뭔 말 했어?”

“……”

역시 아예 듣지도 않았구만?!

어쩐지 욱하는 마음에, 나는 그녀를 뚱하게 보면서 대꾸했다.

“그래, 임마. 했다. 사람이 말할 땐 좀 들으면 안 되냐?”

“여기 신기하게 생겨서. 뭐라고 했는데?”

“내 대신 저 드워프 상대 좀 해달라고.”

“싫어.”

“……”

원래 그렇긴 한데, 진짜 고민하는 척도 안 하는구만.

평소라면 여기서 그냥 체념하고 물러났겠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기 싫었다.

“야, 이 자식아, 너도 나이 먹을 대로 다 먹은 어른이잖아. 왜 맨날 나한테 다 미루냐?”

“네가 잘하잖아. 잘하는 사람한테 잘하는 일을 맡기는 게 뭐?”

……안 넘어가.

매번 저런 입 바른 말에 넘어가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이 녀석은 아부가 아니라 진심으로 말하는 거겠지만 아무튼 안 넘어갈 거야!

나는 일부러 더 목소리를 낮추어 대꾸했다.

“……내가 기운 없어서 못하겠다면?”

“기운이 없다고? 안 그런 거 같은데?”

“없어. 더럽게 더워서 힘 다 빠졌다. 지금 이렇게 서 있는 것도 버겁단 말야.”

반은 사실이었다.

로비의 그 쪄 죽이는 더위 때문에 기운이 빠지긴 했으니까.

하지만 거북이 덕분에 좀 살 만해져서 멀쩡히 서 있을 수 있고, 또 저 정신 나갈 듯한 연구소장과의 대담도 하려면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뻗대고 싶었다.

왠지 모르게.

메린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나도 애처럼 누군가에게 다 맡겨버리고 싶기도 했다.

……아까 꼴사납게 펑펑 운 탓에, 진짜로 애처럼 굴고 싶어졌나봐.

“어…… 그래? 으음…….”

그러자 메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뭘 그렇게 깊이 고민하는 건지, 혼자 흥분해서 뛰쳐나갔던 폴리아가 다시 돌아온 뒤에도 그녀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가 너무 흥분해서 그만!! 자자자, 천천히 같이 가요!!”

“아, 그, 잠시만…….”

호들갑스럽게 사과하는 폴리아를 제지하고, 나는 메린을 보았다.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깊이 고민하고 있다.

“메린 님~ 뭔 생각을 그리 하세요?”

“……”

로나가 쿡쿡 찔러도 반응이 없다.

……내가 미친놈이지.

뭘 바라고 그녀에게 그런 소리를 한 거야?

그녀가 어떤 성미인지 알잖아.

어리광 피울 상대가 따로 있지.

한숨을 쉬며, 도무지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올 기미가 없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야, 메린. 됐어. 괜찮아. 그냥 내가,”

“아, 그래그래! 겨우 생각났다. 남자가 기운 없을 때 격려하는 방법!”

“엉?”

갑자기 키득키득 웃더니, 그녀가 내 어깨를 붙잡고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뭐야뭐야뭐야, 왜 이래?!

그녀의 느닷없는 초근거리 접근에 놀라서 바짝 얼어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의 얼굴은 주저없이 나에게 점점 더 다가왔고,

쪽.

이내 뺨에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이 나면서 작은 물소리가 들렸다.

“어떠냐? 기운 나지?”

“…………”

어…… 그러니까……

나 지금, 어…… 이 녀석한테……

뺨에 키스…받은……거야?

…………

“엥? 굳었네. 이상하네, 분명 이게 맞는데……. 그럼…… 아, 그래. 가슴 만질,”

“아아아! 됐어됐어됐어! 기운 났어! 났으니까 그만해!! 너 이 자식, 이딴 건 또 어디서 배웠어?!”

“고향 여자들한테 주워들었는데.”

이 여편네들이 대낮부터 뭔 소리를 떠드는 거야?

얘는 또 낮에 어디를 돌아다녔길래 이런 것만 주워듣고 다닌 거고?!

메린은 내가 씩씩대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니야?”

“아니…진 않아! 근데 그런 건 억지로 하는 게 아냐!”

완전히 부정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슬펐다.

실제로 지금 굉장히 기운이 솟아 있기도 하고.

그녀에게 키스를 받은 게 기뻐서 그런 게 아니라, 그녀가 뭣도 모르면서 이런 짓을 한다는 게 기가 막히고 황당해서 그렇지.

그러나 그런 내 심중도 모르고, 그녀는 또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엥? 억지로 한 거 아닌데.”

아잇, 진짜!

“그럼 내가 가슴 만지고 싶다고 하면 어쩔 거야?! 만지게 해줄 거냐?! 아니잖아! 너 사실 그러고 싶은 맘 없잖아!”

“뭔 소리야? 당연히 그렇게 해줄 거니까 묻는 거지. 아니면 내가 왜 물어보냐?”

“……”

…………오, 주여, 얘 진짜 어째야 합니까?

부끄러움도 모르는 이 녀석을 진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런 쪽’으로 날 좋아하는지 아닌지 모른다면서, 아무 거리낌없이 가슴 내준다고 하는 이 녀석의 사고방식은 대체 어떻게 돼먹은 겁니까? 예?!

으아아, 살려주세요!!

“오오…….”

그리고 그런 나와 메린을 보며, 연구소장 폴리아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차, 이 사람이 있었지!

“이런 식이군요!! 와아, 와아아! 그렇군요! 후히, 후히히힛! 역시 인간 분들은 수명이 짧으시니, 이렇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생식행위를……!”

“끄아아아악! 아니야아아!!”

……기껏 회복한 기운을 도로 쏟아버리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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