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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52화 (152/475)

〈 152화 〉 148화 : 용사 지원 시범사업 (3)

* * *

목청 터져라 소리친 것과 쪽팔림 때문에 진짜로 기운이 빠져버려, 나는 폴리아에게 연구소 구경은 다음에 하겠다며 사양했다.

“……또, 저희는 서둘러야 합니다. ‘바위궁전’에는 다시 올 예정이니, 연구소 안내는 그때 받겠습니다.”

“아아, 맞아. 맞아맞아, 그랬었죠. 죄송해요! 제가 또 깜빡했네요!! 그럼 시연실로 모실게요!!”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혼자 또 달려가다,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돌아와선 우리와 발을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연실을 향하기 시작했는데, 왠지 다시 여기에 오더라도 연구소 안내를 받을 필요는 없을 듯했다.

내부벽을 죄다 뭔 유리로 만든 건지, 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던 것이다.

뭐하는 방인지는 몰라도, 보이는 방마다 흰 옷을 입은 드워프들이 가득했다.

커다란 석판 앞에 서서 수염을 마구 쓰다듬고 있는 드워프,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책상 위에서 춤을 추며 종이를 뿌리고 있는 드워프,

무언가 조립하고 있는 드워프,

무언가 부수고 있는 드워프…….

개중에는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 끄적거리거나, 머리를 마구 쥐어뜯으며 종이를 보고 있는 드워프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정신을 놓은 것처럼 이상행동을 벌이고 있었다.

“……”

다들 광대버섯 한 잔씩 했나?

그리고 그 드워프들 중에서 제일 이상한 사람은 바로 이 연구소장 폴리아였다.

복도를 걷다가 갑자기 한 방으로 들어가더니 뭐라뭐라 고함을 지르면서 논쟁을 벌이거나, 종이에 마구 끄적이며 흡족한 듯이 킬킬거리고 있다.

오오, 역시 책임자구나!

하긴 저 제정신 놓은 드워프들을 이끌려면 누구보다도 맛이 가야겠지!

……‘바위궁전’, 이대로 괜찮은 건가?

“에헤헤! 죄송해요!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어서…….”

“아, 예…….”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여기 있는 드워프들은 하나같이 이상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전시되어 있는 물품들은 굉장히 훌륭해보였다.

볼트를 자동으로 장전하는 쇠뇌, 침묵 머스캣…… 머스캣이 뭐지?

그 밖에도 포격 랜스, 강화 건틀릿 등, 뭐가 뭔지 잘 알 수 없는 무기들부터,

원거리통신기, 타자기, 인쇄기, 자전거 등,

명찰이 붙어 있어서 이름을 읽을 수는 있는데, 뭐에 쓰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도구들까지 온갖 물건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사이에 검과 판금갑옷, 수레마차가 끼어 있으니 굉장히 어색한걸.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가장 익숙해져 있는 물건들이 가장 어색해보이다니, 이거 참 신선한 경험이군.

“아, 그것들은 전부 구식이에요!! 그냥 그, 자료 때문에 남겨둔 거랍니다!”

앞서 가던 폴리아가 갑자기 내 시야 앞으로 홱 뛰어들면서 말했다.

“곧보실것들은이런것들보다월등히발전돼있거든요. 분명깜짝놀라실거에요! 귀쟁이들이난리쳐준덕분에의회에서마력응용허가가나왔거든요! 후히히히! 지금은무기개발쪽에만지원금이…………”

“……”

와, 정말 신기하다.

말을 알아듣기도 전에 다음 말이 귓속을 파고 들어와서, 방금 전에 무슨 말을 들었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

그보다 이 연구소장님, 뭔 말이 이렇게 빨라?

중간중간에 숨은 쉬고 이야기하는 건가?

……음, 아무튼 시연실에 있는 건 이것들보다 훨씬 더 좋다고 하는 것 같다.

살짝 밀려온 현기증을 쫓으려 눈을 끔벅거린 다음,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그렇군요.”

“그렇죠?! 후히히힛! 자자자, 거의 다 왔어요!!”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럴 거야.

……진짜 뭐가 그런 거지?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녀를 따라 계속 복도를 걸었고, 곧 ‘시연실’이라 적힌 방 앞에 도착했다.

이 방의 벽과 문도 유리처럼 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조명이 환히 켜진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 바로 근처 벽엔, 중간에 길게 홈이 패여 있는 작은 상자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폴리아가 품속에서 무언가 작은 패 같은 걸 꺼내더니, 그걸로 상자의 홈을 죽 그었다.

띠링.

스스으……

와, 문이 열렸다!

아까 그 패, 안 그렇게 생겼는데 일종의 열쇠였구나.

이야, 오늘 수첩에 적을 거 엄청 많겠는데.

폴리아는 특별히 으스대는 기색도 없이, 우리를 향해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그녀를 따라 시연실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조금 전에 열렸던 문이 저절로 스슥 닫히는 게 보였다.

우와, 드워프 기술 굉장해…….

문을 보며 떡 벌어진 입은, 시연실을 둘러보는 중에도 닫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다가 본 방들도 그랬지만, 시연실에도 특이한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갈고리가 달린 커다란 쇠구슬들, 커다란 절구와 절구통,물 밖에 없는 커다란 수조……

그나마 표적지가 그려져 있는 판자들이, 여기가 시연실이 맞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표적지들의 맞은편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또 그 위에 정말 괴상, 아니 독특하게 생긴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앞에 선 폴리아는, 잔뜩 흥분한 채 크게 외쳤다.

“이것들이 최신 개발품들이에요!! 사흘 전에 초기시험을 마쳤으니까 안전은 보장한답니다! 자자, 맘껏 시험해보세요!!”

“안전…… 갑자기 터지거나 하지 않는다는 거죠?”

“네네, 맞아요!!”

너무 솔직한 거 아니냐.

일부러 아닌 척하고 말로 구슬리는 것보단 훨씬 낫긴 하지만.

나는 한숨을 쉬며 테이블에 올려진 물건들을 보았다.

“……”

대부분이 은빛으로 번쩍거리는, 앞에 구멍이 뚫려 있는 길다란 막대기였다.

그냥 보기만 해선 진짜 뭐에 쓰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그, 저기,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요.”

“그러신가요? 그럼 제가 일단 보여드릴게요!”

폴리아는 길쭉한 은빛막대를 들고, 경쾌한 손놀림으로 무언가 만지작거렸다.

곧이어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린 후, 그녀가 막대를 가로로 들고 어깨에 그 끝을 대었다.

뻥 뚫려 있는 구멍은 앞쪽, 그러니까 표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이건 소총인데, 화약이 아니라 마력을 써서 총알을 날리게 되어 있어요! 이렇게 어깨에 끝을 대고, 목표를 노린 다음, 여기 방아쇠를 당기면……!”

피잉! 콰직!

“?!”

가느다란 소리가 난다 싶더니 표적지가 박살이 났다!

우와, 거의 반쪽이 났는데?!

폴리아가 그 막대기, 소총을 내려놓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후히히, 구식 총들은 화약을 터뜨리는 방식이라서 잘못하면 총이 망가졌죠! 그래서 총알에 화약을 달아봤더니, 비에 젖기라도 하면 녹슬거나 총을 터뜨리는 등, 못 쓰겠더라고요!

하지만 이건 마력으로 날리는 거라 총이 터질 걱정도 없고, 총이랑 총알 모두 비에 젖어도 상관없답니다!!”

마력…….

무심코 위슨을 보자, 그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소총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력으로…… 날린다고? 하지만 마력은……!”

“아, 아아아, 맞아맞아, 부엉이탑에서 오셨다고 했죠?! 들었어요, 네네네, 들었어요!”

드워프 연구소장은, 바닥에 내려놨던 소총을 위슨의 두 팔에 안겨주었다.

“어때요? 가볍죠? 후히, 히히히! 경량합금으로 만들었거든요! 순수 오리할콘으로 만들기엔 너무 비싸서요!!”

“……이거, 전체에 마력이 흐르고 있는데.”

“네네, 맞아요! 여기 마력전지가 들어있거든요!”

위슨은 폴리아가 가리키는 곳을 힐끗 본 후, 멍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근데 마력은 그냥 흐르기만 하는 거지, 의지가 없어. 못 다루는 사람이 방아쇠 당긴다고 뭘 날릴 수는 없을 텐데?”

“후히히, 맞아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이걸 쓰는 사람은 방아쇠를 당기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이 안에 담긴 총알이 날아가길 바라겠죠?!”

그녀의 그 말에, 위슨의 눈이 한층 더 커지면서 검은 눈동자 속에 경악이 차올랐다.

“설마, 마법……?!”

“히히, 후히히히!! 그래요, 마법이랍니다! 아주아주 작은 마법!!”

이윽고 이어진 그녀의 설명은, 어린 마법사를 충격과 혼란과 감탄에 빠져들게 했다.

소총에 흐르는 마력이 사용자와 닿으면서 접속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용자가 방아쇠를 당기면, 그 순간 그가 품은 작은 소망, ‘총알을 쏘고 싶다’는 것에 마력이 반응하면서 총알이 힘껏 날아가게 된다.

기존 원리에 마력을 더한 새로운 원리라며 폴리아는 신나게 떠들어대었다.

위슨은 그 말을 들으면서 점점 눈빛이 멍해졌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닌 관계로 그냥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물론, 마력이 없어도 총알은 어느 정도 날아가게 되어 있어요!! 고작 쇠뇌 수준이지만요!! 자자, 이거 도로 주시고…… 히히, 계속계속 갈게요!”

폴리아는 망연히 서 있는 위슨에게서 소총을 받아가 테이블에 다시 올려놓은 후, 차례차례 다른 물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

방금 전의 그 소총보다 약간 더 큰 총.

굉장히 큰 소음이 울리며 표적지를 걸레로 만들어버렸다.

“이건 자동소총. 한 번에 여러 발을 쏠 수 있답니다! 아, 화약을 쓰는 거에요!”

콰아앙!

좀 커다란 살구만 한 공.

시연실의 맨 안쪽에 떨어지자마자 굉음을 울리며 터져버렸다.

“이건 휴대용 폭탄. 핀을 뽑고 5초 정도 뒤에 터져요! 범위 꽤 좋죠? 숲을 무너뜨릴 때 효과적일 거에요!”

그 다음, 폴리아는 어떤 시커먼 천옷을 나무조각에 입히더니, 거기다 대고 연발쇠뇌를 쏴대었다.

곰 가죽도 뚫을 듯한 기세로 볼트들이 날아갔고,

틱, 티디딕!

그 중 하나도 옷에 제대로 박히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심지어는 조금 전에 그녀가 보여준 자동소총을 쏘았는데도 약간 자국이 생길 뿐, 구멍이 전혀 뚫리지 않았다.

물론 그 옷을 입은 나무조각은 무사했다.

“심층 은을 머금은 실로 짠 천갑옷이에요!! 통풍이 좀 아쉽지만, 뭐, 그만큼 추위와 비에도 끄떡없어요!”

“……심층 은? 그냥 은이랑은 다른가요?”

“네네, 전혀 달라요!! 심층 은은 말 그대로 깊은 지하에서만 캘 수 있는 은인데, 산에 스며든 마력을 머금고 있답니다!

고순도의 심층 은을 잘 정련해서 검으로 만들면 세상 무엇도 자를 수 있고, 방패로 만들면 세상 어떤 것도 막을 수 있죠! 하지만 순도가 높을수록 비싸요!

후히히, 하지만 이렇게 실에 머금어서 천옷으로 만들면 여러모로 움직이기 편하고, 또 멋도 부릴 수 있어요! 재료비도 훨씬 저렴해지고요!!”

판금갑옷 등의 금속갑옷보다 천갑옷이 훨씬 저렴한 건 드워프도 똑같구나.

지금은 시험품이라 심층 은의 원색인 시커먼 빛깔이지만, 실용화되면 자유자재로 염색해서 꾸밀 수 있을 것이다.

폴리아는 희희낙락하게 말한 후, 계속해서 개발품을 보여주었다.

벼락을 품은 마력전지를 넣어서 충격을 줄 수도 있는 채찍,

거미가 품은 끈적임을 흉내내서 만든 끈끈이 폭탄,

필요에 따라 쌍검으로 쪼갤 수 있는 길다란 양날 창,

필요에 따라 큰 대검으로 쓸 수 있는 쌍검,

눈 쪽의 검은 창으로 햇빛을 흡수한 후, 그 열기를 적에게 쏠 수 있는 투구…….

……진짜로 별의별 개발품들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이 소총이나 폭탄처럼 광범위한 살상력을 자랑하는 무기들이었다.

정말로 엘프들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자, 어떠신가요?!

나는 뺨을 긁적이며 다른 일행들을 쳐다보았다.

메린은 검 외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는 듯했고, 위슨은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지 멍한 얼굴이었으며,

로나는 신기하긴 해도 전혀 쓸 생각은 없는, 완전한 구경꾼의 눈으로 물건들을 보고 있었다.

또 내가 결정해야 돼?

한숨을 쉰 후, 기대 만발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폴리아에게 대답했다.

“일단은,”

“네네네!”

“……총이랑 폭탄은 죄다 뺍시다.”

“네에에?! 왜요?! 어째서죠?! 용사님도 쓰기 편하다고 하셨잖아요!!”

뭐, 쓰기 편한 건 사실이다.

저 무게를 들고 조준만 할 수 있다면, 어린애도 충분히 쓸 수 있겠지.

게다가 활과 달리, 조준하고 발사하는 데에 따로 힘이 필요하지도 않다.

다만……

“……소장님, 저희는 엘프의 숲 근교를 깔짝대는 게 아닙니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 거에요. 이런 거 들고 갔다가 빼앗기면 못 찾는다고요.”

“그그그건 그렇지만! 여러분은 다시 돌아오실 거라고……!”

“물론 가서 죽을 생각은 없지만, 만약 이 무기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해보세요. 끔찍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엘프들은 움직임이 빠르니, 원거리 무기는 그다지 소용이 없을 겁니다.”

메린과 블루벨이 처음 대치해서 싸웠을 때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때 활의 달인인 엘프를 상대로 메린이 어떻게 했는가?

그녀는 화살을 죄다 자르거나 피해버린 다음, 단숨에 엘프에게 접근해서 무력화시켰었다.

우리가 이 총을 들고 간들, 그때 그 장면을 되풀이할 뿐이겠지.

단, 우리가 블루벨의 입장이 되고, 엘프들이 메린의 입장이 될 것이다.

아무리 살상력이 뛰어난 무기이면 뭐하나?

안 맞으면 그만인데.

나는 진땀을 흘리기 시작한 폴리아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으음…… 그런 의미에서 쓸 만한 건, 이 천갑옷이랑 끈끈이 폭탄 정도겠는데요.”

“그럴 수가아아아아!!”

비명처럼 외치며 연구소장이 철푸덕 엎어졌다.

……좀 미안한데.

그래도 전혀 못 써먹을 걸 뻔히 알면서 억지로 들고 갈 순 없지. 마음을 독하게 먹자!

“검은 저게 다에요?”

메린이 그렇게 묻자, 충격과 좌절감에 바닥에 엎어져 부들부들 떨고 있던 폴리아가, 가까스로 고개를 들고 끄덕였다.

“……개발품은, 그게 다에요……. 물론 아무 기능도 들어있지 않은, 재미 하나도 없는 검은 있는데요…….”

“그럼 보여주세요. 이거보다 좋으면 그거 쓸래요.”

“으응……. …………아, 아아아아!! 그래그래그래, 그렇구나!”

엎어져 있던 연구소장에게 갑자기 생기가 돌아왔다!

“너무 최신식은 위험하니까, 그래요!! 약간 구식인 편이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르는군요!! 그래요, 그래, 여러분의 장비를 좀 강화하는 편으로 가는 게 낫겠어요!!”

그녀는 기쁜 듯이 폴짝폴짝 뛰며, 우리 일행 한 사람 한 사람의 옷이나 장비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마법사님은 모자랑 코트만 바꾸시면 되겠네요!! ……네? 목소리요? 과도한 마그마주 섭취로 목이 탄 드워프용 의료장비가 있긴 한데, 그게 맞을지는 모르겠네요.

사제님은…… 네? 필요 없으시다고요? 아아아, 안 돼요! 망토!! 망토라도 바꿔주세요!! 사제복은 어쨌든 그 망토는 그냥 일반품이잖아요, 교단이랑 상관없잖아요, 제 눈은 못 속여요오오!!”

……로나가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하자마자, 그녀의 다리에 매달려선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되게 간절하네.

“우와앗?! 이, 이거 놓으세요, 소장님! 이러실 것까진 없잖아요?!”

“싫어싫어싫어, 절대 안 놔요!! 망토 바꾸신다고 할 때까진 절대 안 놓을 거에요!! 망토, 망토라도 제발!!”

“히이익?! 으아, 알았어요, 망토 바꿀게요!! 바꾸면 되잖아요!!”

로나가 보기 드물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치자, 폴리아는 만족스럽게 헤헤 웃으며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녀에게 해방되자마자, 로나가 곧바로 위슨의 뒤에 숨는 진기한 광경이……!

“……”

이야, 이 사람 진짜 대단하네.

저 로나를 저렇게까지 질리게 만들다니.

정말 엄청난 광기야.

연구 많이 하면 저렇게 되는 걸까?

누가 보면 심연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줄 알겠어.

폴리아의 다음 표적은 메린이었는데……

……로나한테 하듯이 했다가는 폭행사건이 벌어질지도 몰라.

조금이라도 그럴 기미가 보이면 소장을 뒤로 던져…아니, 메린을 붙잡도록 하자.

그렇게 다짐하며 두 사람을 보자, 마침 폴리아가 눈을 깜빡이며 메린이 입은 옷들의 옷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괜히 내가 더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어라? 어라라라? 이거…….”

그러나 그녀는 무슨 난리법석을 떨긴커녕, 오히려 고개를 더 갸웃거리고 있었다.

메린이 입은 셔츠, 바지, 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는 조끼와 부츠를 찬찬히 살펴보는 폴리아의 눈이, 점점 더 진중한 빛으로 바뀌었다.

……뭐지, 더 불안한데.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할 때가 제일 무섭다고 했어!

마치 폭풍이 몰려오기 직전의 그 고요함 같다.

어우, 긴장돼 죽겠네!

이윽고, 폴리아가 부츠에 꽂혀있던 시선을 들고 메린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광기에 젖어 있던 사람이 가만히, 그것도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등줄기가 더욱 서늘해졌다.

“이것들 다, 어디서 나셨어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폴리아는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딘지 모르게 진중한 위엄마저 서려 있다.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아냐아냐, 그럴 리가 없잖아.

왜냐면 그것들은 전부,

“고향에서 입던 건데요.”

그냥 마을에서 입고 다니던 옷이니까.

나도 그렇고.

메린의 대답을 들은 폴리아는 움찔하며 아주 잠깐 굳어 있더니,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난 다음, 바닥에 엎드리며 외쳤다.

“말도 안 돼애애애애애!!”

“……”

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괴성을 지르는 연구소장을 보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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