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 178화 : 작전에 대응하는 작전 (2)
* * *
손바닥을 보인 채, 검지와 중지만 쭉 뻗은 표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머리 위에 대고 까닥이며 토끼 흉내를 내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내가 그딴 짓 했다가는 벼락 맞을걸?
이건 그저 전통적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손짓일 뿐이다.
바로 숫자를 나타내는 거지.
“둘로 쪼개죠.”
“둘?”
“블루벨과 다른 한 명이 블루스타의 집으로, 다른 세 명은 왕궁으로 가는 겁니다.”
당장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하는 건 블루스타를 만나서 포섭하는 것이다.
그 이유? 얼마든지 댈 수 있지.
골든로드가 하다 만 뒷이야기를 마저 들어야 하고, 블루벨은 오해를 풀어야 하며, 전력은 한 명이라도 더 있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건 정보이다.
이 숲으로 끌려온 애들의 행방에 대한 정보.
나머지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소득일 뿐이다.
뭐, 그 집을 덫으로 만든 당사자는 다른 이유를 생각했겠지.
그가 보기에, 우리는 지금 엘프를 하나 인질로 잡은 채 근거지 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그 인질의 이름은 블루벨.
왕의 친위대장이 애지중지 키웠을 뿐 아니라, 홀딱 반하기까지 한 여자이다.
누가 봐도 우리가 유리한 협상일 텐데 당연히 뛰어들겠지.
그렇기 때문에 블루벨이 그 집에 가야 하는 것이다.
“왜 댁이 블루스타의 집에 가야 되는지는 말 안 해도 되겠지?”
“……”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블루벨은 대답 대신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그녀는 두 계략의 주체가 누구이든, 무사히 그 집을 다녀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왕의 계략이라면 엘프 특유의 움직임으로 빠져나오면 되고, 블루스타의 계략이라면 그녀 자신이 해제장치가 될 테니까.
두 남자가 블루벨이 가진 ‘인질 가치’를 걸고 판을 벌렸듯이, 나는 그녀의 능력과 영향력을 거는 것이다.
“그 집에 블루스타가 없거든 왕궁으로 가. 혹시 있거든 그를 데리고 이 집으로 돌아오고.”
“폐하의 함정이라면 안에 병사들이 매복하고 있다는 거잖아. 그걸 어떻게 따돌려?”
“그러니 우리 중 하나가 댁과 같이 가는 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뭐, 로나 아니면 위슨이겠지.
메린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블루벨을 질투하니까, 내가 그녀와 같이 가도록 둘 리가 없다.
아마 그 ‘매복’을 이유로 들면서 안 된다고 할 거야.
뭐…… 나도 메린과 같이 움직이는 게 가장 편하긴 하다.
별말 안 해도 알아서 내 의도에 맞춰주니까.
“그럼 자네는 그동안 왕궁 감옥을 뒤지는 거야? 위치 모르잖아.”
“가는 길에 하나씩 길잡이를 만들어야죠.”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골든로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싹 다 쓸어버리는 거 아냐? 미리 땅을 파둬야겠네.”
“안 죽일 건데요!”
그냥 손가락이 부러질 뿐이지!
안정만 잘 취하면 알아서 나으니까 마음도 덜 불편한걸!
“그래? 잘 생각했어. 가능하면 죽이지 마. 괜히 자네만 더 곤란해질 거야. 그 상황에선 시체 숨기기 힘들 거 아냐.”
“……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골든로드를 보며, 나는 눈을 깜빡였다.
어차피 만들 일이 없겠지만, 시체 숨기는 게 왜 힘들지?
죽으면 흙먼지가 되니까, 그냥 입고 있던 장비들만 숨기면 되는 거 아냐?
“말했잖아. 요즘 애들, 귀 뾰족하고 오래 사는 거 말곤 인간이랑 똑같다니까? 내가 괜히 그런 소리한 게 아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을 이었다.
“어제 엘프 여럿이 수레에 실려왔거든. 가슴에 큰 구멍 하나씩 난 상태로. 뭐냐고 물어봤더니, 용사한테 당했다더라.”
“저 아닌데요. 얘네 둘이에요.”
주저없이 고발하며 한손에 한 명씩 범인을 지목해주었다.
범인 중 하나인 위슨이 건조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걸 무시해주며, 나는 골든로드에게 단호히 말했다.
“그러니 용사한테 당했다는 그 말은 정정해주시죠.”
“나도 들은 얘기라니까. 아무튼 그 시체들을 땅에 묻으라면서 나무 앞에 쏟고 가더라. 혹시 좀 기다리면 흙이 될까 싶어서 두세 시간 정도 둬봤는데도 여전히 고깃덩어리였어.”
그는 그때 비로소 엘프가 완전히 영락했단 걸 알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왕궁에 있는 병사들이 어느 세대에 태어난 녀석들인지 알아보는 건 불가능하니까, 왕궁째로 완전히 태울 거 아니면 죽이지 마. 일만 번거로워지니까.”
“허…… 같은 엘프가 죽는 거 자체는 괜찮고요?”
“같은 엘프? 아, 하긴 뭐, 생긴 게 비슷하긴 하지.”
고개를 까닥이며 긍정한 후, 그는 피식 웃으며 재차 입을 떼었다.
“카엘, 나나 블루벨 같은 나무 출신이랑 태반 출신은 차원이 달라. 같지 않다고.
그래, 아직 생긴 건 비슷하니까 아슬아슬하게 동족 취급은 해줄 수 있어.하지만 내 형제자매는 아니야. 절대로.
내 눈엔 있지, 어느 날 내 형제자매가 갑자기 미쳐선 괴생물을 낳은 것처럼 보여.”
“……”
미소를 지은 채, 옛 엘프는 스푼으로 그릇을 득득 긁으면서 말을 이었다.
“뒤떨어지는 동생들은 얼마든지 아껴줄 수 있어. 하지만 겉만 닮은 생물은 끔찍할 뿐이야. 나 참,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버티나 몰라?”
“……아저씨.”
“맞다, 블루벨, 네가 예전에 내가 왜 항상 여기 처박혀 있는지 물었었지? 이게 바로 그 이유란다. 난 저 아래가 굉장히 끔찍해요. 죄다 고기 뜯어먹고 말야.
아, 자네들이 잘못됐다는 건 아냐. 우린 짐승들이랑 말이 통하거든. 조금 전까지 말이 통했던 짐승을 어떻게 먹겠어?”
짐승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것도 엘프가 본디 가진 능력 중 하나인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블루벨이 내 말(馬), 조지 어거스터스 4세의 말을 전해준 적이 있었지.
……잠깐.
혹시 블루벨이 그 괴상한 신념을 가진 게 이 아저씨 탓인가?
그래, 그럴 거야.골든로드가 돌보지 않을 땐 집에서 고기 먹었겠지.
근데 이 아저씨는 새알 빼고는 고기 안 먹으니까, 어느 날 블루벨이 물었던 거야. 왜 고기 안 먹냐고.
그리고 그 대답이 ‘올바른 엘프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뭐 이런 거였던 거지!
“당신이 원흉이었구나!”
“응? 뭐가?”
“당신 때문에 블루벨의 식성이 괴상해진 거죠? 숲의 짐승은 물고기도 안 먹으면서, 버섯이랑 가축은 잘만 처먹는 그 괴상한 식성 말이에요!”
“……뭐?”
골든로드가 얼굴을 찌푸리며 블루벨을 스윽 돌아보자, 그녀 역시 같은 속도로 고개를 돌리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너 그러고 다녔니?”
“……”
“그렇게 종 차별할 거면 그냥 다 먹어, 이 녀석아. 물고기까지 안 먹는 건 또 뭐야? 너 물고기랑도 얘기 나눠? 세상에, 그건 나도 못하는 건데.”
옛 엘프가 보기에도 괴상한 신념이었다는 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아무리 엘프라도 물고기와는 이야기 나눌 수 없구나.
지식이 늘었다.
얼굴이 완전히 새빨개진 블루벨을 뚱한 눈으로 쳐다보며, 구세대 엘프는 재차 입을 열었다.
“뭐, 이해 안 가는 건 아냐. 블루스타 때부터 고기를 먹기 시작했거든.그래야 힘이 붙는다고 하더라. 그러니 입맛이 당기는 거겠지.
내가 기가 막힌 건, 나보다 나이 많은 엘프들도 뜯어 먹고 있다는 거야. 그 양반들은 고기 먹어봤자 별 변화도 없을 텐데.
하하, 진짜 다 미쳐 돌아가는 거 같아.”
“……”
“그리고 블루벨, 그냥 솔직하게 숲의 짐승들은 말이 통해서 못 잡아먹겠다고 해. 뭔 엘프 어쩌고를 대고 있니?
네가 먹은 가축들도 네가 생전에 말을 안 걸어서 그렇지, 말 다 통할걸? 그냥 네 식탁에 올라오는 과정을 안 봐서 죄책감이 덜한 거지.
그냥 당당하게 먹어. 늑대들도 쥐나 사슴이 목숨 구걸하는 거 뻔히 알면서 그냥 잡아먹는 거라고.”
여전히 말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블루벨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으며, 골든로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방금 전에 그가 한 말을 곱씹었다.
뒤떨어지는 동생들, 즉 블루스타부터 시작해 블루벨로 끝난 나무 출신 엘프들은 저렇게 아끼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엘프들은 그저 끔찍한 존재일 뿐이라며 그는 혐오감을 내비쳤다.
겉만 닮은 생물은 끔찍하다는 그 말이, 어쩐지 계속 마음속에 울린다.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게 당연한 사람의 눈에, 몸뚱이 말곤 아무 능력도 없는 사람이 끔찍해 보인다면……
“그래서 카엘,”
멍하니 생각의 늪에 빠지려던 나를 일깨우듯, 골든로드가 말을 걸었다.
“만약 블루스타가 감옥에 없다면? 돌아올 거야?”
“예에, 그럴 거긴 한데…….”
음, 모처럼 왕궁에 쳐들어가는 건데, 아무 성과 없이 그냥 돌아오긴 좀 그렇지?
그 악마를 해치우지 못하더라도 무언가 소득이 있어야 해.
그래도 지금으로선 딱히 조사할 만한 곳이……
……있어.
딱 한곳, 조사할 만한 곳이 있다.
“……한곳만 들르고요. 왕궁 주변에 굉장히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요.”
쳐다보기만 해도 꺼림칙한 느낌이 들던 그것.
가까이 갈수록 뒷골이 저릿저릿하며 껄끄럽던 그것이 있을 곳.
“왕궁 뒤편, 이 숲의 어머니 나무를 볼 겁니다.”
깊이 다짐하며, 고기를 힘있게 씹었다.
170년 전을 마지막으로 엘프를 낳을 수 없게 된 어머니 나무를 볼 것이다.
그렇게 말한 나를 향해, 블루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돌에렛을……? 왜?”
“뭔가 걸려. 그냥 보기만 해도 불길한 느낌이 뒤통수에 붙어서 끈적거리는 거 같아.”
그리고 내 경험상, 그런 진득하게 올라오는 불길한 예감은 거의 대부분 들어맞는단 말이지?
솔직히 가까이 가고 싶진 않지만, 마음 한편에선 ‘그 예감의 근원을 알아야 한다’고 속삭이고 있다.
그러니 가야 해.
무엇 때문에 그 나무가 불길한 건지 확인해야 한다.
“그걸 알아서 뭐하려고?”
“몰라. 그냥 계속 맘에 걸리니까 확인하고 싶을 뿐이야.물론 블루스타가 감옥에 있다면 그를 꺼내서 바로 돌아올 거야. 나무는 어디 도망가지 않으니까.”
솔직히 나무를 보러 간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 메린이 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든 해서 끌고 오겠지.
“아무튼 블루벨, 갈 수 있지?”
다 비워진 그릇을 쌓으면서 묻자, 블루벨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데려오는 거니, 아무리 그가 꼴 보기 싫어도 할 수 있겠지.
“야, 카엘,”
설거지통에 식기들을 넣던 메린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둘이 한패면 어떻게 되는 거냐?”
“주어를 말해주십쇼……. 뜬금없이 둘이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아냐?”
“왕이랑 친위대장.”
“그 둘이 편을 먹는다고? 뭐 때문에?”
“그때 친위대장에게 했던 조건을 또 걸어서.”
왕이 언제, 또 친위대장에게 무슨 조건을 걸었다는 건가?
그렇게 캐물으려던 내 머릿속이 순간 번뜩였다.
메린은 엘프 왕이 블루스타에게 조건을 거는 걸 본 적이 있으니 저 말을 한 거겠지.
그녀가 봤다면, 나도 같이 봤을 거다.
그럼어제 알현실에서 있었던 일밖에 없는데…….
그거 말하는 건가?
“……날 죽이면 블루스타와 블루벨을 사면해주겠다고 한 거?”
“어. 그거.”
“흠…….”
……생각해보니그러네.
왜 그 가능성은 전혀 생각 못한 거지?
꼭 둘 중 하나만 함정을 팠을 거란 법은 없잖아.
왕의 명령을 받은 블루스타가 공작했을 수도 있잖아!
“아, 어쩐지 뭔가 빠진 거 같다 했는데 그거였구나.”
넉살 좋게 하하 웃으며 말하는 골든로드와 달리,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벙벙한 기분이었다.
그 상태 그대로 눈을 끔벅이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메린……, 넌 진짜 천재야.”
“어떻게 되냐니까 갑자기 뭔 개소리야. 배 채우니까 졸리냐? 잠 깨워줘?”
이처럼, 아무 생각없이 그녀에게 칭찬을 던지면 도리어 욕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쁜 자식, 이걸 안 받아주네.
나는 투덜거리듯이 그녀에게 대답했다.
“어떻게 되긴…… 두 작전이 합쳐지겠지, 뭐.”
간단히 말해, 블루스타의 집에 들어서면 그가 병사들과 함께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는 메린과 맞붙어봤으니, 어쩌면 그녀를 염두에 두고 단단히 준비했을지도 몰라.
음…… 로나와 위슨, 둘 다 블루벨과 같이 가야 할까?
“그럼 네 쪽이 너무 열세잖아. 저 여자는 어쨌든, 넌그냥 인간인데.”
“……”
……거참 희한하네.
저 두 단어에 잘못된 말은 하나도 없는데, 왠지 모르게 속이 좀, 아주아주 약간 불편하단 말야?
알 수 없는 불편함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자, 로나가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그래요, 카엘 님. 아무리 메린 님이 듬직하셔도 너무 위험이 커요. 저도 그 나무 신경 쓰이니까, 제가 왕궁에 같이 갈게요.”
“그럼 위슨은 이 변태 귀쟁이랑 가는 거군. 알았어.”
그새 호칭이 바뀌었군.훨씬 더 안 좋아졌는걸?
예상대로, 블루벨이 바로 발끈하며 빽 소리질렀다.
“내가 왜 변태야, 이 새끼야! 그리고 그 귀쟁이란 말도 좀 치워!”
“위슨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약 효능이 네가 제일 좋더라.”
“약이라니 그게 무슨,”
“영업비밀이야.”
어느 아저씨처럼 검지손가락을 세워, 입을 가리고 있는 길다란 목깃에 대는 위슨이었다.
근데 변태라는 말이 나올 만한 약이라면, 설마……!
“쉬이이잇.”
“……”
녀석은 검지손가락을 세운 채, 나를 거의 노려보다시피 했다.
역시 그 자백제를 말하는 거구나!
그때 대체 무슨 반응을 보였길래?!
“뭐야, 신경 쓰이잖아! 말해! 나한테 뭔 약을 먹였던 거야?!”
“아, 비밀이라고. 알고 싶으면 유령버섯 세 개 내.”
“이이익……! 반푼이 마법사 주제에 건방져!”
“반푼도 안 되는 엘프 할망구께서 입마개가 필요하신가보네.”
곧바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두 사람이었다!
그보다 위슨 녀석의 저 말들, 죄다 말끝만 미묘하게 부드러운 거 같은데?
저거 순전히 위슨 의사인 거 같은데?!
……이거 진짜 둘이 같이 보내도 되나?
사고를 가장해서 서로 없애려 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위슨, 블루벨은 훈련이 늦어서 그렇지, 이백 년이나 삼백 년 전 엘프 정도는 잠재력이 있을 거야. 그러니 반푼이라고 해줘.”
그리고 무언가 감상하는 것처럼 눈을 감은 채, 옹호 아닌 옹호를 던지는 엘프 아저씨였다.
정말 개판이군.
“하…… 바질 땡긴다…….”
내 중얼거림을 들은 골든로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 마시고 싶어? 그건 좀 안 될 것 같은데.”
“왜요? 시간 많은데.”
“응, 아냐. 없어.”
……이 아저씨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람?
이제 겨우 오후 두 시인데다, 지금 7월이라서 해가 길어진 상태이다.
저녁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구만, 무슨…….
“지금 이쪽으로 왕이 오고 있거든.”
“……네?”
감고 있던 눈을 뜬 후,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매가 봤어. 왕이 탄 마차가 삼십 분 이내로 여기 도착할 거야.”
“아니 왜 뜬금없이 방문을 하고 그런대요?! 엘프들에겐 방문 전에 기별을 한다는 문화 없어요?!”
“글쎄? 내가 누구 집을 방문해본 적이 없어서 말야.”
“아잇, 돌겠네, 진짜!!”
쉴 거 다 쉬고 단단히 채비한 후에 출발하고 싶었는데!
옷은 다 입고 있으니 장비만 챙기면 되긴 하지만!
나는 각자 노닥거리고 있는 일행들에게 외쳤다.
“다들 후딱 챙기고 나가자!”
“엉? 바로 출발하려고?”
“경로 따지고 하는 건 밖에서 하면 돼! 일단 여길 나가는 게 먼저야!”
삼십 분 이내라고 했지? 그럼 이십 분 뒤에 오겠군.
어쩌면 그보다 더 일찍 도착할지도 모른다.
아직 승부 볼 시점도 아닌데, 힘들게 얻은 근거지에 협력자를 잃을 순 없지!
게다가 정말로 왕이 온다면, 지금이 왕궁을 뒤지기 딱 좋은 때잖아!
서둘러 채비를 마친 후, 나는 다른 일행들과 함께 부엌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잘 다녀와~”
“예에~”
느긋하게 인사하는 골든로드에게, 나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묘지 구석의 나무에 도착했을 즈음, 나는 조용히 블루벨에게 물었다.
“……골든이 여기에 누가 있는 걸 알까?”
“어? 어어…… 다른 ‘숲의 자녀’들에게 묻지 않는 이상 모를 거야.”
그렇구나. 숲의 다른 짐승 등등에게 묻지 않으면 모르는구나. 그거 잘됐네.
나는 위슨을 돌아보았다.
“위슨.”
“엉?”
“여기서 저 두 사람 얘기 좀 들어줘.”
조용히 말을 꺼내자, 위슨과 블루벨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