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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83화 (183/475)

〈 183화 〉 179화 : 또 잠입이네 (1)

* * *

엘프 왕과 골든로드의 이야기를 엿들어달라.

내가 그런 부탁을 한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위슨과 블루벨은 경악에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위슨 이 변태랑 같이 안 가도 되냐? 아싸!”

“……”

저 녀석은 기쁨에 찬 눈이었군.

입이 안 보이니까 헷갈리네.

빨리 목소리 찾았으면 좋겠다.

“위슨아, 좋아하는 건 좋은데, 네가 빠지는 걸로 인원이 더 쪼개진다는 생각은 안 하냐?”

“위슨 대신 사제님이 갈 거고, 왕궁엔 너랑 메린 둘이서 가겠지. 그리고 그에 대한 반발은 위슨 대신 딴 사람이 할 텐데, 굳이 나까지 할 필요 있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녀석이 덤덤한 말투로 조목조목 대꾸하는 모습에 할말을 잃은 게 아니다.

“엌.”

옆에서 누군가가 내 고개를 홱 꺾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범인은 역시나 메린…이 아니라 로나였다!

아니 왜 네가?!

“왜죠?!”

“그걸 묻고 싶은 건 전데요, 사제님……. 불만 있으면 말로 해……. 죽이려 하지 말고…….”

“이 각도에선 꺾어도 안 부러져요!”

그렇구나. 안 죽을 거 다 계산하고 했구나.

근데 지금 목에 담이 온 거 같은데, 이것도 치유대상에 들어가나 모르겠네.

“왜 저를 빼시는 건데요?! 저도 그 나무 보고 싶은데요!”

“블루벨 혼자 보내기엔 너무 위험하잖아.”

“메린 님이 가면 되잖아요!”

“싫어.”

내 대신 메린이 단칼에 거절해주었다.

“그럼 카엘 님이,”

“안 돼.”

“메린 님, 너무해요!!”

제안할 게 다 떨어져버린 로나가 빽 소리질렀지만, 메린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덤덤히 그녀를 마주볼 뿐이었다.

그래도 아직 포기가 안 됐는지, 그녀는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시선을 이리저리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뭔가 내걸 말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돌겠네, 진짜.

설마 여기서 로나가 떼를 쓸 줄이야……!

지난번엔 설득에 실패했지만, 이번엔 반드시 성공해야 돼.

일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는데, 블루벨을 거기 혼자 보낼 순 없다.

“로나, 나무는 어디 도망 안 가. 그리고 말했잖아, 감옥에 그 양반이 있으면 데리고 돌아올 거야. 나무 안 볼 거라고.”

“감옥…… 맞아요, 두 명보단 셋이 찾는 게 더 빠를 거에요! 그러니까,”

“아, 맞다. 테라 붙여줄게. 길 찾기 편할 거야.”

그렇게 말하는 위슨은, 로나에게서 아예 완전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 말을 전하는 파랑새까지 몸을 홱 틀고 있는 걸 보면, 로나가 싸늘한 눈으로 자신을 볼 거라는 걸 다 예측한 모양이었다.

오오, 역시 마법사야.

머리회전이 빨라!

“하…… 로나, 왜 그렇게 나무가 보고 싶은 거야? 너도 무슨 불길한 예감 같은 거 느꼈어?”

“아뇨. 엘프를 낳은 생명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서요.”

“……”

아니 진짜 어이가 없네.

지금 이 상황에 나무 구경이 하고 싶다고 떼를 쓰는 거야?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우리가 여기 놀러 온 것도 아닌데……!

……라고 막 잔소리를 퍼부으려는 순간, 로나가 먼저 한숨을 푸우욱 쉬었다.

“알았어요. 제가 양보할게요. 카엘 님 잔소리 듣느니 나무 안 보는 게 낫죠.”

“……어, 그래.”

이상해. 힘들이지 않고 로나를 설득한 건데 뭔가 찜찜한 기분이야.

왠지 잔소리꾼 노인네 취급을 당한 거 같은데, 내 착각인가?

그건 그렇고, 저 옹고집이 바로 꺾이다니 내 잔소리가 이렇게 위력이 좋은 줄 몰랐네.

근데 이중에 제일 많이 잔소리를 들은 파랑새는 왜 아직도 저 모양일까?

“왜냐고? 그냥 듣기만 했으니까.”

“그렇구나. 슬슬 행동에 옮겨주지 않을래?”

“않을래.”

“참 뚝심 있구나.”

“별말씀을.”

“썩을.”

그렇다고 내가 체념할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이 자식을 다시 보지 않게 되는 그날까지, 나는 잔소리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위슨 빼고 저 파랑새한테 제재를 먹이는 건 나밖에 없는데, 나까지 체념하면 저 주둥이가 폭주해버릴 거야.

그야말로 재앙덩어리가 되어선 피바람을 불러 일으키겠지!

용사이기 전에 사람이자 위슨의 아는 사람…친구? 보호자? 아무튼 그런 놈으로서 절대 그 꼴은 못 봐.

결코 다시 잔소리다, 임마!

“너도 참 뚝심 있네. 그래, 수고해.”

“오냐, 임마. 기대에 부응해주마.”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아무튼 인원은 다 나눴다.

남은 건 각자 움직이는 것뿐……!

나는 따로 떨어질 세 명을 둘러보며 말을 꺼냈다.

“위슨, 그럼 부탁할게. 테라는 이전처럼 부르면 되는 거지?”

“어. 여기 끝나면 둘 중 한곳 도와주러 갈게.”

“엉? 어떻게 알고 찾아가려고?”

“이걸로.”

위슨이 파랑새를 보며 중얼거리자, 파랑새가 작달막한 날개를 퍼덕였다.

그러자 아무리 봐도 도저히 녀석에게서 나올 수 없는 크기의 깃털 네 개가 뿜어져 나오더니, 위슨을 제외한 우리 네 사람에게 하나씩 날아들었다.

“그거 가지고 있으면 찾아갈 수 있어.”

“……?”

뭐가 있나? 아무 느낌도 없는데…….

의아함에 눈을 깜빡이며 나머지 셋을 돌아보자, 세 아가씨의 머리에 커다란 파란색 깃털이 장식처럼 꽂혀 있는 게 보였다.

나도 그쪽에 있나 싶어 같은 곳을 더듬어보니, 손끝에 굉장히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졌다.

살짝 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꼭 아교로 붙인 거 같네.

이거 나중에 떨어지겠지……?

“그리고 뭐 전할 말이 있으면 그걸로 알려줄게.”

“와, 둘 다 고마워.”

“오냐.”

내 손가락을 쪼려는 파랑새의 부리를 요령껏 피해서 녀석의 머리를 슥 쓰다듬어준 후, 나는 이번엔 블루벨과 로나를 돌아보았다.

“블루벨, 명심해. 블루스타를 데려오는 게 목표야. 쏴 죽여버리고 싶어도 일단 참아야 돼, 알았지?”

“그런 생각한 적 없거든?!”

“아무튼 참으라고. 로나, 블루벨이 말 못하거든 네가 대신 설득해줘.”

“네, 카엘 님! 기절시켜서라도 데려올게요!”

“아뇨. 의식 있는 상태로 데려와주세요, 사제님…….”

키득키득 웃는 사제님이 잘 들을 수 있도록 크게 한숨을 쉬어주었다.

“……저기, 묻고 싶은 게 있어.”

그런 나를 향해, 별안간 블루벨이 말을 꺼냈다.

“아저씨와 폐하의 이야기를 엿듣는 거…… 혹시 아저씨를 의심해서 그러는 거야? 아저씨는,”

“블루벨,”

절대 배신할 사람이 아니야.

뭐, 그런 말이라도 하려던 거겠지.

잠시 말을 고른 후,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 지금 나를 돕고 있지. 그 반대도 얼마든지 있지 않겠어?”

“그래도……!”

“괜찮아, 그 지분은 얼마 안 돼. 왕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고 싶은 게 훨씬 크거든. 아주 약간도 가감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상태로.”

골든로드가 왕에 대한 반감으로 의리를 지킨다 해도, 둘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숨길지도 모른다.

어쩌면 놈이 그 아저씨에게 무슨 수작을 부릴지도 모르고.

위슨은 그런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대비인 것이다.

“대비…… 그래, 그게 필요하긴 하네. 알았어.”

“정말로? 진짜 이해했어?”

“……너 내가 그 말도 못 알아들을 거 같아?”

“그건 아닌데, 납득하기 싫은데 억지로 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어서.”

“………아니거든!”

맞구만.

친밀한 사람을 믿지 못하고 엿듣는다는 상황을 납득하긴 싫지만, 그래도 그럴 필요성이 충분하단 건 이해한 듯했다.

샐쭉해하는 듯한 블루벨을 보니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또 질문 있는 사람? ………없지? 좋아.”

그렇게 진짜로 출발할 때가 찾아왔고,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말했다.

“다들 조심해. 절대로 무리하지 마.”

“너나 하지 마.”

“……흥, 남이사.”

“아하하, 카엘 님, 왕궁은 저쪽이니까 길 잃지 마세요!”

긴장감 하나 없는 대답에 한숨을 쉰 후, 나는 메린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이따 보자.”

후드를 푹 눌러쓰고, 로나가 가리킨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숲을 가로지른 덕분에, 왕궁에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나와 메린은 근처 나무숲에 숨어, 비교적 높은 나무 위쪽에 올라가 왕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낮이라 나무에 부딪칠 걱정 없이 온 건 좋은데……

으으으음…….

“여기서 어떻게 할까?”

“저기 혼자 떨어져 있는 놈 끌어와서 물어보든가.”

메린이 턱으로 아래쪽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대체 어디야?

이 녀석이 이걸 손으로 가리켜야지, 고갯짓을 하고 있네.

그보다 이 높이에서 저 아래가 그렇게 잘 보이나보네.

난 뚫어져라 봐야, 겨우 약간 길쭉한 게 움직이는 걸 알아볼 수 있는데.

와, 좋겠다.

“맨날 쭈그려서 종이 끄적이니까 눈이 맛이 갔겠지.”

“자랑은 아닌데, 나 그렇게 일 많이 안 했거든? 네가 눈이 좋은 거야, 임마.”

“그래? 네가 눈이 원래 나쁜 게 아니고? 다들 이 정도는 보지 않냐?”

“아니라고.”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평야면 몰라, 저 왕궁 주변은 뒤쪽에 있는 어머니 나무 때문에 그늘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런 어두침침한 곳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건데, 사람이 돌아다니는 걸 알아볼 수 있는 거다.

이 녀석이 눈이 좋은 거지, 내가 눈이 나쁜 게 아니야.

……아마도.

“어쨌든, 되도록이면 감옥으로 가는 길을 지키는 병사를 잡자. 그래야 일이 빠르지.”

“감옥이 어딘데?”

“그걸 이제 봐야지? 일단 내려가자.”

약간 뒤쪽으로 물러나 땅으로 내려온 다음, 나는 조용히 위슨의 정령, 늑대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테라.”

퐁, 하는 귀여운 소리와 함께 나타난 늑대는,

“……우와.”

절로 탄성이 흘러나올 정도로 우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단 우리 둘은 거뜬히 태울 정도로 덩치가 크고, 양쪽 송곳니가 입 바깥으로 삐져나와선 턱 아래까지 쭉 자라나 있다.

눈동자 역시 달라졌는데, 평범한 노란색이었던 게 지금은 잘 깎인 수정처럼 여러 색깔의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어어…… 아무튼 힘을 빡 주고 나와준 거 같다.

근데 왜?

나는 벙벙해진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멋있긴 한데…… 왜……?”

“그래야 길을 더 잘 찾지요오……. 히히, 멋있어요오……?”

“어, 목소리 커졌네.”

덩치가 커져서 그런가?

개미만 했던 목소리가 메뚜기만 해졌다.

여전히 덩치에 비해서는 굉장히 작다는 뜻이다.

내 말에, 늑대는 살짝 뛰어오르며 화들짝 놀랬다.

“히으?! 커, 커졌어요? 이상해요?!”

“아니아니아니아니, 안 이상해! 안 이상하니까 뛰지 마, 들킬라!”

최대한 목소리를 억눌러서 외치자, 늑대가 바닥에 엎드리더니 끼잉, 앓는 소리를 내었다.

“죄송해요오…….”

“괜찮아, 괜찮아.”

쓴웃음을 지으면서 쓰다듬어주려고 손을 댔는데,

“……너 뭐하냐?”

“헛.”

정신을 차리니 늑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아으, 지금 이러면 안 되는데…….

후딱 감옥을 찾아가야 되는데……!

그치만 털 너무 푹신하고 따뜻한걸!

왠지 풀냄새도 나는 거 같아서 기분도 풀어지고!

아아……

몸이 안 움직여져…….

“아, 그만하라고.”

“아아앗…….”

……결국 끌어내어지고 말았다.

“저 왕궁에서 감옥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

‘푹신한 무언가’와 강제로 떨어진 탓에 축 쳐진 나를 대신해, 메린이 늑대에게 물었다.

늑대는 몸을 일으켜 앉더니, 고개를 살짝 좌우로 까닥였다.

“네에…… 이 형태에선 어디에 뭐가 있고, 무엇이 돌아다니는지도 알 수 있어요오……. 근데 생김새까지는 구분이 안 돼서어…….”

“뭐, 어때. 일단 감옥을 찾으면 거기 가보면 되지. 안 그러냐, 카엘?”

“그렇지…….”

시무룩하게 대답하자, 내 뒷덜미를 잡은 손길에 힘이 빡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힘있게 끄덕이면서 다시 말했다.

“응, 누가 있는지는 가서 직접 보면 돼. 감옥이니까 아마 지하일 거야. 철창살 안팎에 누구는 서 있고, 누구는 앉아 있으면 감옥이고, 아무도 없이 석관만 있으면 무덤이겠지.

테라, 네가 보는 지도를 우리도 볼 수 있을까?”

“지도……? 어어…… 저 안쪽 생긴 건 제 머리에 손을 대면 볼 수 있긴 한데에……”

갑자기 늑대가 말을 끊더니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더니 제 앞발로 두 눈을 덮어 가리는 게 아닌가!

……뭐하는 거지?

“카엘은 안 돼요!”

“……어? 왜?”

“부끄러우니까!”

“………………왜?”

뭐가 부끄러운 거지? 머리에 손을 대는 거?

아니아니아니, 그건 아니지.

그럼 그동안 신나게 쓰다듬은 건 뭔데?

늑대는 한쪽 발을 살짝 떼어, 그 수정 같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제 머릿속…… 완전히 보여지는 거잖아요오……! 하으으!! 부끄러워요오……!!”

그리곤 도로 눈을 가렸다.

“…………”

전혀 이해 안 되는데 어떡하지?

머릿속을 다 보이는 게 아니고 그냥 시야만 빌리는 거 아닌가? 으으음……

아, 그래. 늑대는 본디 비물질적 존재인 정령이잖아?

그런 정신적인 존재는, 설령 일부분이라 해도 속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끄러운 게 아닐까?

……그래도 역시 모르겠어.

내가 비물질계 인지감수성이 한참 부족한가봐.

“그럼 나는 괜찮고?”

메린의 말에, 늑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네. 어차피 넌 봐도 기억 못하잖아. 내가 보고 앞장서면 되겠네.”

“아, 그러셔. 야, 저 왕궁이 뭔 단칸방인 줄 아냐? 벽이랑 문 더럽게 많을 텐데 그걸 한 번에 다 외운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럼 어쩌냐? 얘가 넌 안 된다는데.”

내가 팔짱을 끼면서 늑대를 쳐다보자, 그녀가 또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앞발로 두 눈을 가렸다.

하아……

진짜로 메린의 기억력을 믿고 쳐들어가야 하나……?

머릿속에 떠오른 걸 슉슉 그려낸다면 아무 문제도 없을 텐데.

…………응?

그린다……?

“저기, 테라, 여기 땅에 그려주면 안 돼?”

“그리다니요오……?”

“네가 본 왕궁 구조를 땅 위에 그대로 표시하는 거지.”

마침 늑대는 대지의 정령이다.

그러니 다른 정령들과 달리, 그림을 그려도 그대로 남아있겠지.

지하로 이어지는 문과, 거기까지 가는 길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다.

“어때? 할 수 있어? 여기 이 공간 크기로.”

우리가 등지고 서 있는 나무와, 우리 앞쪽에 자라나 있는 나무 사이의 공간을 가리키며 묻자, 늑대가 고개를 힘있게 끄덕였다.

“네네, 물론 할 수 있어요! 잠시만요오…….”

늑대가 눈을 감고 바짝 엎드리자, 곧 내가 가리킨 빈 땅의 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는 늑대가 만들어낸 예술품에 입을 쩍 벌리게 되었다.

“와……”

“어때요오……? 괜찮나요오……?”

“괜찮은 게 아니라 굉장한 수준이긴 한데…….”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늑대가 만들어낸 건 지도가 아니라, 저 앞의 왕궁과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건물 모형이었다!

흙으로 빚은 거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굉장히 정밀한, 그야말로 예술품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근데 사방이 다 막혀 있네.

어제 로나가 박살낸 알현실 벽은 다 고친 모양이군.

이거 안쪽을 구경할 방법이 전혀 없는걸?

흙이니까 손대면 무너질 거고, 어느 높이로 층이 나뉘어져 있는지 모르니 섣불리 위쪽을 건드릴 수도 없고…….

“우와, 카엘, 너도 봐. 가구까지 죄다 만들어져 있는데? 이거 길쭉한 건 사람인가? 이야, 장난 아니네.”

메린은 창문 앞에 쪼그려 앉아서 안을 들여다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래, 뭐, 창문으로 보려면 볼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세기의 명작을 보며 깊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미안, 다시 해줘.”

“끼이잉……”

마음이 아려지는 앓는 소리와 함께, 늑대의 양쪽 귀가 축 쳐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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