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84화 (184/475)

〈 184화 〉 180화 : 또 잠입이네 (2)

* * *

맨 처음에 보게 된 그 독보적인 예술작품 이후, 나는 늑대에게 총 두 번의 수정 요청을 해야 했다.

‘1층과 지하만 해달라’, 그 다음은 ‘천장 빼달라’.

그 두 요청 끝에 완성된 지도를 보고, 나는 탄성을 내지르면서 늑대를 끌어안았다.

“우와우와우와! 진짜 대단해, 굉장해!! 고마워, 테라!!”

“히히, 별말씀을요오~”

“응. 진짜 장난 아니다, 이거……!”

우리 앞에 만들어져 있는 건 그냥 지도가 아니다.

벽과 창문, 기둥의 장식은 물론이고, 대략적인 가구와 기구들까지 세세하게 빚어져 있는 입체지도다!

그것도 사람 모양의 흙인형이 그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이걸 눈앞에 두고 어떻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고로 우리는 지금 땅 속에 있다.

대지의 정령인 늑대가 힘을 쓴 덕분에, 땅 속에 만들어진 공간에서 대놓고 크게 떠들 수 있는 것이었다.

“근데 또 너무 힘쓰는 거 아냐?”

“아뇨아뇨,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에요오……. 그때는 밖에 나오는 거에 힘을 거의 다 쓴 거라…….

히히, 지금은 카엘이 불러서 나온 거라 괜찮아요! 힘이 펄펄 넘친답니다!”

위슨의 부름 없이 혼자 나오려면 무척 힘든 모양이다.

……나랑 메린을 구해주려고 그렇게 큰 애를 써준 거구나.

메린은, 늑대가 나 한 명을 구하려고 한 거라 했지만,그래도 늑대가 우리 둘을 구해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새삼 차오른 고마운 마음에 다시 한번 더 목덜미를 끌어안자, 늑대가 기쁜 듯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그렇고역시 푹신푹신해…….

아니 어떻게 늑대 털이 양만큼 푹신하냐고.

이거 반칙 아니야?!

“야, 이 새끼야, 작작 하라고! 이거 봐야 할 거 아냐!”

“아아앗…….”

……또 다시 강제로 끌어내어졌다.

하, 그래. 이제 진짜 정신차리자. 노닥거릴 시간 없잖아.

그리고 한 번만 더 길게 노닥거렸다간 메린에게 처맞을 거야.

로나도 없는데,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부상부터 당하면 안 되지!

마음을 다잡고 지도를 살펴보았다.

일단 예상대로 감옥은 지하에 있었다.

대략 열 개 정도의 방이 절반씩 마주보도록 배치되어 있는데, 지금은 세 명이 거기 갇혀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감옥을 지키는 경비는 딱 두 명이었다.

그리고 그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1층 외곽의 방에 있으며, 그 방으로 통하는 문은 왕궁 바깥에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즉, 지하 입구용 방이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경비 하나가 죽치고 있고……. 두 명씩 짝 지은 경비조 셋이, 왕궁을 빙빙 돌면서 그 앞을 지나가고 있는 거군.”

‘1층 입체지도’ 주변을 빙빙 도는 흙인형들을 보면서 그렇게 말하자, 나와 마찬가지로 지도를 내려다보던 메린이 곧바로 응수했다.

“각 조별로 거리가 좀 되니까 돌입엔 문제없어.”

“그렇기는 한데, 문이 바깥에서 잠겨 있을지도 몰라.”

물론 우리에겐 메린의 발차기라는 훌륭한 만능열쇠가 있다.

만약 이게 다른 도시나 마을이었다면, 그녀가 문을 부수고 들어가 경비를 제압한다는 강수를 쓸 수 있었겠지.

하지만이 상황에선 그다지 쓰고 싶지 않다.

감옥에 블루스타가 갇혀 있는지 물어봐야 하고, 그경비병이 지금 얼마 없는,‘종소리를 듣고도 버틴 나무 출신 엘프’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가능한 대치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싶었다.

그때, 입체지도를 보던 메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카엘, 여기 바닥은 좀 높은 거 같지 않냐?”

“엉? 어어…… 그러고보니 경비가 있는 복도 바닥보다 좀 높네. 뭐 카펫이라도 깔았나?”

보통 감방은 차가운 돌이나 흙바닥이지 않나?

카펫이라니 뭔 호화를……

……아니지.

이건 엘프를 가두기 위한 곳이잖아.

엘프의 주요 능력이 뭐냐?

‘자연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지.

감방의 벽과 바닥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라면, 엘프들은 얼마든지 거기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애들을 끌고 간 놈들이, 바위벽에 길을 내서 산을 뚫고 지나간 것처럼.

그러니 바닥에 카펫을 깐 건 오히려 적절한 조치라 할 수 있겠지.

벽이랑 창살에도 종이…… 아니, 도료가 훨씬 낫겠네.

아무튼 뭔가 해두었겠지.

“흠…… 메린, 왕궁 안쪽은 돌바닥이었지?”

“어. 판석. 중앙에 카펫 깔려 있었고.”

그 카펫은 아마 왕 밟으라고 깔아둔 거겠지.

지하계단용 방은……

흠, 나 같으면 판석을 깔진 않을 거 같은데.

그냥 굳게 다져진 흙바닥이 아닐까?

“왜?”

“마침 테라가 있으니까, 땅 속에서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지하계단이 있는 방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메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거면 감옥으로 가는 게 낫지 않냐?”

“거긴 경비 둘이잖아. 단숨에 해치우지 않으면 위에 있는 놈이 합세하거나 경보 울릴걸?”

이 둘이 지금 얼마 없는 ‘나무 출신 엘프’라면 골치가 많이 아파진다.

정말로 해치워야 한다면 계단 위와 땅, 두 군데에서 동시에 기습해야 안전할 터.

흠, 어떻게 가든 계단 앞의 경비병을 먼저 처리해야 되는구만.

가엾기도 하지.

“그리고 이 경비도 엄연히 감옥을 지키고 있으니까, 블루스타가 갇혀 있는지 알고 있을지도 몰라. 물어보고 들어가는 게 낫지.”

“갇힌 놈들 풀어줄 거냐?”

“음…… 그냥 두자. 단순한 범죄자일수도 있잖아. 괜히 더 번거로워질지도 몰라.”

메린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야, 그럼 그냥 이 경비병을 땅 속에 떨구자.”

“……의자에 앉아 있는데? 뭐, 의자째로 떨어뜨리자고?”

“아니, 사람만.”

“그야 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지……. 근데 뭐 어떻게 하려고?”

“어쩌긴, 미끼를 던지는 거지.”

아니 그걸 누가 모르나…….

이 녀석 나름대로 무슨 생각이 있으니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거겠지만…….

아마 지금 내 얼굴엔 물음표가 한가득 떠올라 있겠지.

그런 나를 마주보며, 메린은 희미한 미소를 돌려주었다.

‘땅 속에서 계단이 있는 방으로 올라갈 수 있냐’고 묻자, 늑대는 나를 빤히 보면서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당연히 되지요오…….”

“……아, 응. 그렇구나. 어, 잘됐네.”

당연히 되는 거구나.

왠지 모르게 겸연쩍은 기분에, 나는 턱을 긁적이며 늑대에게 길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늑대는 대번에 승낙한 후 앞서 가며 길을 열었고, 나와 메린은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살짝 경사진 오르막길을 올라가며,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걸어온 길이었을 텐데, 바람구멍 하나 나지 않은 단단한 바위벽으로 꽉 막혀 있다.

이거 너무 늑장부리다가 늑대와 멀어지면, 땅이 원상복구될 때 깔려 죽겠구만.

그 모습을 상상했더니 나도 모르게 몸이 오싹 떨렸다.

……그나저나, 산을 뚫고 지나간 엘프들도 이런 식이었겠지?

길을 여는 거야 그렇다 치고, 불빛은 어디서 구했을까?

등불 가지고는 택도 없을 거 같은데.

역시 정령인가?

근데 위슨의 정령들을 보면, 엘프 되게 싫어하는 거 같던데.

조용히 걷기만 하니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어, 나는 사뿐사뿐 걷고 있는 늑대에게 물었다.

“테라, 너도 엘프들이 싫어?”

“네, 싫어요.”

평소에 듣던 그 수줍음 타는 말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단호한 대답이었다.

어지간히도 싫은가봐…….

“왜? 아,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난 엘프들이 정령과 친할 줄 알았거든.”

“친했던 건 아주아주 옛날이에요오……. 놈들이우리에게 끔찍한 걸 먹이기 전이었지요오…….”

우리라는 건 아마 그녀와 같은 대지의 정령을 말하는 거겠지.

그녀는 천천히 걸으면서 말을 이었다.

“놈들은 있죠오……. 우리에게 피를 먹였어요오…….”

“피? 어어…… 땅에 피를 흘렸단 이야기야?”

늑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반면, 나는 옆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새삼스럽네? 피는 사냥 때문에 항상 흐르지 않아?”

“으음…… 엘프의 피는 달라요오…….맹세를 조건으로 축복을 받은 존재거든요오…….”

엘프가 이 세상을 멸망으로 이끄는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존재라는 건, 지금쯤 왕이랑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을 골든로드에게 들었었지.

늑대가 말하는 ‘맹세’란, 아마 엘프들이 나면서부터 알게 되는 그 사명을 말하는 것이리라.

흠, 근데 맹세를 조건으로 축복을 받은 존재라고?

어떤 계약을 맺어서 초월적인 능력들을 얻은 거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어쨌든, 그런 엘프의 피가 땅에 흐른 것이 무슨 의미이길래 정령의 분노를 산 거지?

“그건 말이죠오……”

“응.”

늑대는 꼬리를 아주 살짝 흔들면서 말을 꺼냈다.

“비밀이에요~”

“……”

“히히, 이 말 왠지 재미있네요~”

아잇, 진짜!

말 못하는 거면 그냥 말할 수 없는 거라고 하면 되는 걸 쓸데없이 약올리고 있어!

그 엘프 아저씨 때문에 다들 못된 버릇이 들어버렸잖아!

“아무튼 엘프의 손으로 엘프의 피가 흐른 날부터, 우리 모두 엘프를 싫어하게 됐어요오…….”

“엘프의 손으로 엘프의 피가 흐른 날…….”

그럼 일단 선대 엘프 왕이 처형된 날부터 싫어했다고 봐도 되겠네.

이야, 장장 육백 년, 어쩌면 그 전부터 쭉 이어진 미움이라니!

이 정도면 그냥 전통 아니냐?

그러나 파랑새가 블루벨을 갈구던 모습을 떠올리면, 육백 년짜리 미움 치고는 되게 약한 거 같다.

그동안에도 그 처형장에선, 한 맺힌 엘프의 시신이 계속 피어났을 텐데.

“아, 그건요, 이제 점점 미워지지 않고 있거든요오…….”

“그래? 용서라도 한 거야?”

“그냥 미워할 가치가 없어져서……. 이젠 축복이 없으니까…….”

“……그렇구나.”

모든 능력을 잃어버린 엘프는, 더 이상 정령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미워한다는 건, 설사 그 감정이 부정적일지라도 그 존재에게 마음을 쓴다는 뜻이니까.

지금 이 숲에 남아있는 ‘나무 출신’ 엘프들이 모두 없어지면, 아마 정령은 엘프에게 완전히 관심을 끊어버리겠지.

마녀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정말로 선대 왕의 처형으로 모든 게 어그러진 걸까?

옛 엘프 중엔 비교적 젊은 편인 골든로드가 그를 철천지원수라 지목했잖아.

선조들의 이야기를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이 고발한 건데, 무슨 근거가 있지 않겠어?

그걸 확실히 알기 위해서도, 나는 반드시 블루스타를 데려와야 한다.

굳게 다짐하며 쭉 걷는데, 갑자기 늑대가 걸음을 멈추더니 제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앉은키 높이에 맞추어, 머리 위쪽의 공간이 생겨나는 게 보였다.

“다 왔네요오…… 이 바로 위에요오…….”

“음, 내가 쪼그려 앉아 있을 건데, 구멍에서 손가락 하나 정도 밑에 내 머리가 있는 게 딱 좋아.그렇게 맞춰줄 수 있어?”

“네네, 그럼요! 그럼 메린은 제 등 위에 쪼그려 앉고…… 카엘, 제 발 위에 앉으세요오…….”

그렇게 말하면서 늑대가 다시 엎드리자, 메린이 폴짝 뛰어서 늑대의 등에 올라가더니 쪼그려 앉았다.

그런 뒤, 그녀가 중심을 잡으려고 늑대의 등을 붙잡더니,

“와……, 푹신푹신해…….”

그대로 녀석이 얼굴을 묻는 게 아닌가!

아니 진짜 어이가 없네.

“얌마, 나한텐 작작 하라고 실컷 뭐라 하더니 네가 그러고 있냐?!”

“이렇게 좋은 줄 몰랐지……. 아, 잠 온다…….”

“아니 나보다 더하네! 자지 마, 임마, 일어나! 일어나라고!”

……밑에서 악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면서, 나는 늑대의 등에 올라가 메린을 깨우기 시작했다.

“야, 메린, 일어나! 눈 떠!”

“……”

그러나그녀의 어깨를 아무리 세차게 흔들어도 소용이 없었다.

세상에, 아무리 땅 속이어도 적진에 있는데 이 녀석이 진짜로 잠에 들다니!

물론 늑대 털이 푹신하고 따뜻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후……할 수 없군.

얘한테 쳐맞더라도 이 방법을 쓸 수 밖에……!

나는 메린의 앞머리를 까고, 이마에 딱밤을 놔주었다.

따아악!

……굉장히 맑고 고운 소리가 땅 속 공간에 울려퍼졌다.

아, 왠지 마음속이 평온해진다.

메린에게 뭔 짓을 당하든 일말의 후회도 없을 거 같아.

“아으으…… 아프잖아, 이 새끼야!”

메린이 눈물 어린 눈으로 쏘아보면서, 내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었다.

그 탓에 내 목이 앞뒤로 마구 흔들렸지만, 그런 게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무척 평온했다.

“잠 깨워준 건데, 왜~”

“너 이 새끼, 일부러 힘 빡 줬지?! 이마 깨진 거 아냐?! 크으으, 더럽게 아프네!!”

“아, 쏙쏙 아리냐? 잘 됐네~ 이제 잠 안 오겠다~”

“으이이익!!”

메린은 분한 듯이 이를 갈면서 나를 세게 흔들더니, 갑자기 홱 밀어버렸다.

자연히 나는 늑대의 등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살짝 고개를 드니, 메린이 빨갛게 부어오른 이마를 문지르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으으……!”

“아하하, 일 때문에 그런 거니까 화내지 마~”

“쳐웃지 마, 새꺄!!”

빽 소리지르면서도, 그녀는 그 이상 나에게 어떤 앙갚음을 하려 하진 않았다.

아프니까 짜증은 나지만, 자신이 잠에 든 게 잘못이니 더 뭐라 할 수 없는 듯했다.

그래도 눈앞에서 계속 웃다가는 한 대 맞겠지.

나는 늑대의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후, 뾰로통한 얼굴로 쪼그려 앉아 있는 메린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기분 풀어. 나중에 ‘바위궁전’에 가거든 맛있는 거 사줄게.”

“내가 뭐 애냐?! 먹을 걸로 기분 풀어지게?!”

풀 수 밖에 없을걸?

넌 단 거에 환장하니까.

“싫어? 거기 크림 크로케랑 푸딩이랑 쿠키랑 케이크에……, 그 밖에도 너 좋아할 만한 거 많길래 사주려 했는데.”

“…………진짜?”

“내가 언제 없는 말 한 적 있냐? 거기 가면…… 다같이 먹으러 가자.”

‘둘이서’라는 말을 삼킨 후에 그렇게 말하자, 메린은 살짝 동그래진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위로 들면서 대답했다.

“……좋아, 같이 가줄게.”

그녀가 작게 중얼거린 말이 땅 속 공간에 울리면서, 내 귀 안으로 쏙 들어왔다.

아무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듯한 그녀의 목소리는, 바로 전까지 분에 가득 차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화가 풀려서 도로 덤덤해졌다고 생각하겠지.

뭐, 맞는 말이긴 하다. 그녀는 이제 분을 내지 않고 있으니까.

하지만 완전히 덤덤하진 않다.

난 알 수 있어.

네 목소리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네 눈이 무엇에 빛나고 있는지.

……아무 감정도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

나는 약간 더 밝아진 그녀의 옆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실컷 기대해라. 너무 들떠서 위에 있는 경비병 죽이진 말고.”

“얼씨구, 기어오르긴……. 테라, 이제 올려줘.”

“네에~”

느긋하게 대답하는 늑대의 목소리엔, 어쩐지 즐거워하는 듯한 느낌이 묻어나왔다.

내가 늑대의 발 위에 앉자, 천천히 몸 전체가 위로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꼭 드워프의 도시인 ‘바위궁전’에 있던, 그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는 기분이다.

“이 정도……”

늑대가 그렇게 중얼거리니, 위로 올라가던 느낌이 뚝 그쳤다.

“메린, 열까요오……?”

“응.”

그러자 갑자기 머리 위가 환해지면서, 딱 사람 한 명 나갈 만한 구멍 너머로 나무천장이 보였다.

나는 깜짝 놀라는 동시에, 혹시 나도 모르게 소리가 새어나올까 싶어, 황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땅이 열렸으니, 이제 메린이 무언가 해야 한다.

튀어나가서 다짜고짜 끌고 오려나 했는데, 그녀는 늑대의 등에 쪼그려 앉은 채로 머리 뒤에 꽂은 핀을 뺐다.

올림머리가 풀어지면서, 정갈하게 땋아진 머리가 그녀의 등을 타고 길게 내려오는 게 보였다.

……뭘 하려는 거지?

전혀 짐작도 안 된다.

머릿속 가득히 물음표를 띄운 채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숙이더니, 땋은 머리 끝을 구멍 바깥으로 휙 던졌다.

그러더니, 구멍 안에서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조금씩 안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

아니 뭔 낚시해? 돌겠네, 진짜.

이러려고 ‘손가락 한 마디 높이 밑에 있어야 한다’는 소리한 거구만?

나 참, 누가 저런 거에 걸린다고……!

그렇게 속으로 한숨을 쉬는 순간,

“으음……?”

귀가 뾰족한 사람이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메린이 잽싸게 그 목을 팔로 죄면서 놈과 함께 늑대 등에서 뛰어내렸다!

“됐어, 닫고 내려가!”

“네에~”

순식간에 구멍이 닫히면서 땅 속으로 도로 내려갔다.

“……”

아니 이게 진짜 되네…….

다른 의미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Ho Wrea Ouy…… 끄아아아악!!”

“어때? 성공했지?”

붙잡은 엘프 병사의 팔다리를 뒤쪽으로 꺾어버리면서 메린이 나를 향해 빙긋 웃었다.

생각대로 잘 된 게 무척이나 만족스러우신 듯했다.

“진짜 어이가 없네. 이게 왜 되는 거야?”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든가 하는 말이 있지 않냐? 그런 거지.”

“……그래, 딱 그 말대로네.”

이 놈은 안 죽겠지만.

나는 헛웃음을 켠 후, 관절이 꺾이는 고통으로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한 엘프의 머리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인간 말, 할 수 있지?”

“으그으으윽…….”

“대답.”

뾰족한 귀 끝을 손톱으로 꾹 눌러주었다.

“아아악! 네놈들은, 설마……!!”

“쉿. 바쁘니까 딱 한 번만 말할 거야. 잘 들어. 내가 질문 하나를 할 건데, 세 번 기회를 줄게. 처음에 대답 안 하면 왼손, 그 다음은 오른손을 분지를 거야. 그 다음은 댁 목이 부러질 거고.”

“윽……!”

엘프는 낮게 신음하며 몸을 덜덜 떨었다.

그게 분노인지 두려움인지, 아니면 단순한 고통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이것저것 죄다 섞여 있으니까.

“블루스타, 감옥에 갇혀 있나?”

“……!”

엘프의 눈에 놀라움이 차오르며, 동공이 커지는 게 보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