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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85화 (185/475)

〈 185화 〉 181화 : 또 잠입이네 (3)

* * *

동공이 커진 건 잠깐뿐. 엘프는 어떤 결심이라도 한 건지, 충격으로 커질 대로 커졌던 동공이 도로 작아지는 게 보였다.

그러나 눈 자체는 여전히 동그랗게 커져 있는 채,놈은 눈을 끔뻑이며 입을 열었다.

“누, 누구라고?”

“블루스타. 요양 중이라 알려진 친위대장. 저 아래 감옥에 갇혀 있냐고.”

“나, 난 몰라.”

시선을 피하면서 그러면 누가 믿을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또 하나 빼먹었네. 거짓말하면 어떻게 할 건지 말을 안 해줬지? 음…… 이거 어때?

거짓말할 때마다 머리 한 줌씩 뽑아줄게.”

“……”

“지금 ‘엉? 겨우?’ 하고 생각했지? 이게 우습게 보면 안 돼요. 왜냐면,”

놈의 머리카락을 한 줌 잡고 확 잡아당겼다.

“으악?!”

“안 뽑히더라도 은근히 아프거든. 근데 뽑히면 얼마나 아플까? 머리가죽에 단단~히 붙어 있던 게 강제로 뽑혀나오는 거잖아. 으, 상상도 하기 싫다. 안 그래?”

그렇게 말하자, 놈이 핏발 선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빽 소리쳤다.

“그, 그런 협박에 내가 굴할 거 같으냐!”

“참고로 내가 아니라 댁 깔아 뭉개고 있는 애가 할 거야. 얘가 힘 조절을 못해서 살점 뭉텅이가 떨어져버릴지도 모르는데, 그건 미리 사과해둘게.”

“……”

놈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음, 상상이라도 한 모양이지?

그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기를 빌어주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 다시 묻는다. 블루스타 친위대장,”

“여기 없습니다.”

“……”

가만히 메린에게 시선을 던지자, 그녀가 늑대에게 놈의 다리를 꽉 눌러달라고 부탁했다.

다리가 짓눌리는 고통에 신음하던 엘프는, 메린이 머리 한 줌을 쥐자 완전히 공황에 빠진 것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거짓말 아니에요, 진짜에요, 진짜라니까요!! 진짜 여기 없어요, 아까 밖으로 이송됐어요! 허튼 짓 못하게 완전히 묶인 상태로 끌려나갔어요!!”

“그래? 왜 밖으로 이송됐지?”

“처형! 처형한다고 했어요! 항명한 것도 모자라 왕에게 검을 들이댄 죄로요! 세 시에 그 처형장에서 공개적으로 처형한다고 했어요!!

우와아아, 당기지 마세요!! 진짜에요, 맹세한다고요!!”

눈과 목소리에 공포가 절절이 묻어나오는 걸 보니 진짜인 듯했다.

나는 메린에게 고개를 저은 후, 품속에서 시계를 꺼내 열어보았다.

“세 시……? 이런 망할, 십 분 밖에 안 남았잖아!”

바로 여기를 나가서 그곳으로 간다고 해도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그 근처에 위슨이 있지 않았나?

처형 시작까지 십 분 전이면 죄수 등등이 다 도착해 있을 텐데, 왜 아직 아무 말도 없지?

설마 녀석에게 무슨 일이……?!

그때, 머리 쪽에서 진동이 울리더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아, 들리냐? 지금 여기서 그 귀쟁이의 처형식을 한다는데. 뭐 할말 있는 놈은 깃털 잡고 말해라.}

마침 위슨도 그 소식을 들었던 모양이다.

파랑새의 말대로 깃털을 잡고 말하려던 찰나, 또 다른 목소리가 깃털에서 흘러나왔다.

{로나입니다~ 블루스타 씨 데리고 가고 있어요~}

“로나?! 어, 어떻게……?!”

{광장에서 탈환했다고만 말씀드릴게요~ 지금 바빠서요~}

바쁘다고 하는 것 치고는 굉장히 여유로운 말투였다.

하지만 ‘탈환했다’고 한 만큼, 분명 둘은 지금 쫓기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추격에서 벗어나는 게 더 중요하다.

자세한 경위는 나중에 들으면 된다.

원래 계획은, 블루스타를 데리고 골든로드의 집으로 돌아가는 거였다.

그러나 지금 그의 집엔 엘프 왕이 있을뿐더러, 다른 엘프들의 눈도 있으니 다른 데서 합류해야 돼.

나는 깃털을 잡은 채 재차 입을 열었다.

“로나, 일단은 어제 그 동굴에서 만나는 걸로 하자. 조심해.”

{네~ 이따 뵐게요~}

“위슨, 아직 이야기 안 끝났지? 끝까지 들어야 돼. 왕이 자리를 떠서 나가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야. 알았지?”

{오냐. 끊는다.}

정말로 연결을 끊었는지, 그 이상 아무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음, 어쨌든 블루스타는 일단 확보했으니 감옥에 들어갈 필요는 없어졌군.

“……저기,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눈을 끔벅거리며 조심스럽게 묻는 엘프를 향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죽을 거다.”

“히이익……!”

“뻥이야. 잠 좀 자라.”

그렇게 말하며 메린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엘프의 뒷목을 세게 쳐버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이 축 늘어진 후, 그녀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어쩔 거냐?”

“이 놈은 밖에 던져두고, 우리는 나무 보러 가야지.”

“나무? 아, 왕궁 뒤에 있는 거?”

“그래. 그게 원래 계획이잖아.”

굉장히 가기 싫지만, 지금도 끈덕지게 신경 쓰이는 그 나무를 보러 가야 한다.

따로 들어가는 길이 있지는 않을 테니, 이 왕궁 주변의 숲을 빙 돌아서 가면 되겠지.

“흠, 꼭 가야겠냐?”

“왜. 로나가 걱정되기라도 하냐?”

“내가 걔를 왜 걱정하냐? 알아서 할 텐데.”

“……”

‘실력이 출중하니, 로나가 스스로 추격을 뿌리치고 잘 피하리라 믿는다’의 메린식 화법이다.

정말로 관심이 없다면 ‘나랑 뭔 상관이냐’고 대답했겠지.

그래도 그 수준은 아니라서 참 다행이야.

……그래도 같이 다니는 동료에, 아직 어린 여자애니까 조금은 걱정해줬으면 좋겠는데.

거기까지 바라는 건 내 욕심이겠지.

“그럼 왜 묻는데?”

조금 씁쓸한 마음으로 묻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너 거기 가기 싫잖아.”

“어……? 뭐, 그렇긴 한데…….”

“가기 싫은데 뭐 하러 억지로 가냐? 게다가 너 지금 로나도 걱정하고 있잖아.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내 동의를 구하듯이,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쩐지 그녀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시선을 슬쩍 피했다.

“……어떻게 알았어?”

“나무 얘기하면서 완전히 죽상이 됐는데 그럼 모르겠냐?”

“……아, 그래.”

……난 또, 무슨 추측이라도 하고 얘기하는 줄 알았네!

이유 모를 실망감에 괜히 바닥을 툭툭 차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내가 로나 걱정하는 건, 너한테 먼저 로나 걱정되냐고 묻는 거 보고 알았겠네?”

“아니? 그냥 네가 그럴 거 같아서 말한 건데? 너 원래 그런 애잖아.”

“……아, 그래.”

……그렇구나. 아니 뭐, 얘가 나를 본 게 한두 해인 것도 아니고, 그리 대단한 걸 알아차린 것도 아니다.

내가 잔걱정 많은 놈이라는 건 일주일만 같이 있어도 알 수 있을걸?

아마 다른 두 녀석도 뻔히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그만 히죽거리라고, 카엘, 이 새끼야!

아니 진짜 어이가 없네.

아무리 메린을 좋아해도 그렇지, 별일 아닌 걸로 이렇게 풀어져서……!

“히히, 카엘, 달콤한 냄새가 풀풀 풍겨요~ 그렇게 좋아요~?”

“……으.”

곧바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후드를 푹 눌러쓰니, 그 천 너머로 재미있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 이젠 늑대까지 놀리고 있네.

제길, 다들 내가 이러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

보면 막 그렇게 놀리고 싶어지는 거야?!

“아무튼 나무 보러 갈 거야!! 무조건 갈 거라고!!”

“그래라 그럼. ……근데 왜 소리질러?”

“기합 넣는다, 왜!!!”

“왜 더 지랄이야, 귀 따갑잖아!!”

퍼억!

메린의 손바닥치기가 내 등에 작렬하며, 둔탁한 소리가 땅 속을 울렸다.

와아…… 망토까지 입고 있는데 숨이 턱 막혀…….

의외로 등을 때린 것보다 기침으로 목이 아픈 게 더 컸다.

“쿨럭, 가, 가자, 쿨럭쿨럭쿨럭!”

“어.”

“네에~”

태연하게 대답하며 걷기 시작하는 메린과 늑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차분하고 평온한 발걸음이다.

그 기가 막힌 모습에 더 세차게 기침하면서, 나는 그 뒤를 따랐다.

땅 속에서 올라온 후, 우리는 늑대가 입체지도를 만들었던 숲 언저리에 엘프를 묻었다.

몽땅 묻은 건 아니고, 머리만 밖에 나오도록 빼놓은 모습이다.

보직 때문에 뜻하지도 않은 곤욕을 치른 엘프를 딱하게 내려다본 후, 나는 늑대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테라. 이제 돌아가도 돼.”

“히히, 필요하면 또 부르세요오…….”

“응, 고마워.”

늑대는 꼬리를 한 번 흔들더니 연기가 되었고, 나는 그 연기가 허공에 다 흩어져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정말 좋은 녀석이야.

위슨이 그런 환경에서도 비뚤어지지 않은 건 다 정령들 덕분이겠지.

“메린, 가자.”

고개를 끄덕이는 메린과 함께 나무 위로 올라간 다음, 다시 왕궁 근처로 가서 돌에렛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 나무의 주변은 여전히 푸른빛으로 반짝거리고 있다.

그리고,

“……윽.”

……역시나, 쳐다보기만 해도 등에 벌레가 기는 듯한 불쾌함이 느껴졌다.

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건지, 원.

“저 나무, 주변이 좀 뿌옇네.”

“그래? 멀어서 그런 게 아니고?”

“아니야. 무슨 안개가 껴 있는 거 같아.”

새벽도 아니고 이제 오후 세 시가 되어가는 시간인데 안개라니.

이 주변에 호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가보자. 어어, 빙 돌아서.”

“그럼 내가 앞서 갈 테니까 넌 따라와.”

“……그냥 물어보는 건데, 왜?”

뭐, 순찰병을 만날지도 모르니까 그러는 거겠지.

그래도 왠지 이유를 묻고 싶었다.

반쯤 대답이 예상된 질문을 던지는 건, 아마 나머지 절반의 참신함을 기대하기 때문이리라.

메린은 후드를 푹 눌러쓴 얼굴을 좌우로 한 번 까닥이며 말했다.

“너 방향치잖아.”

“……”

참신함은 얻었다. 그러나 그에 딸려온 시무룩함이 훨씬 더 컸다.

아니 하필이면 방향치가 이유라니……. 흑.

특히나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다는 게 정말 서글프다.

내가 앞서 갔다가는, 제대로 방향을 못 잡고 예상보다 훨씬 더 크게 돌아서 갈 게 뻔하니까.

“그럼 간다~”

“응……”

내 여린 마음에 비수를 푹푹 꽂은 것도 모른 채 먼저 출발하는 메린.

나는 아주 살짝 무거워진 어깨를 움직이며, 그녀를 따라 숲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

나무에서 나무로 뛰고 있는 메린의 뒷모습은 말 그대로 날아가는 것 같다.

‘손목 갈고리’를 쓰는 것 자체는 아직 서툴지만, 그녀는 그 부족함을 자신의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보충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도 내가 양손으로, 그것도 전속력을 내야 겨우 따라잡을 수 있는 상태이다.

메린이 저 갈고리를 완벽하게 다루면서 전력으로 뛰면 얼마나 빠를지 상상도 안 된다.

말 그대로 돌풍이 되는 거 아닌지 몰라.

“……큭.”

……옅게 느껴졌던 불쾌감이 도로 진해지기 시작했다.

가면 갈수록 더 강해지는 걸 보니, 나무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를 악물고, 나는 오로지 메린을 놓치지 않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마침내 메린이 어떤 나무의 가지 위에 멈추었고, 나 역시 그녀를 따라 그 건너편 가지에 착지했다.

“너 괜찮냐?”

“……아니.”

나무에 고개를 처박은 채로 겨우 대답했다.

아마 바로 앞에 그 돌에렛이라는 나무가 있는 거겠지.

등에 질척한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던 느낌은, 이제 뱃속을 꾸물꾸물 돌아다니고 있다.

멀미와는 다른 메슥거림…….

굳이 따지자면, 피웅덩이와 썩은 시체를 마주했을 때의 그 울렁거림이다.

그래, 예를 들면…… 안 되지!

예를 들긴 뭘 들어, 나무 위에서 토할 일 있나!

심호흡을 하며 나무에 머리를 한 번 박았다.

“그냥 돌아갈래?”

“……아니. 봐야 돼.”

설령 그 나무에게 시큼한 거름을 주게 된다고 해도, 나는 봐야 한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단단히 박힌 채,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럼 업혀.”

“뭐?”

“나한테 업히라고.”

“……왜?”

메린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너 그 꼴로는 제대로 착지 못할 거 아냐.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목 나간다. 로나도 없는데 그러면 뒤지기밖에 더해?”

“그렇긴…한데…….”

그 말이 맞긴 한데……굉장히 고맙긴 한데…….

메린의 등에 업힌다고? 그 뒷머리에 얼굴을 댄다고?!

물론 그녀는 후드를 쓰고 있다.

그러니 내 코가 맡게 될 건 그녀의 체취가 아니라 천 냄새이겠지.

그래도…… 그래도 바짝 들러붙어야 되잖아!!

목 끌어안아야 되잖아!!

“아, 아냐! 그,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거야! 자, 잠깐만 쉬었다 가면……!”

“그래? 너 이 나무 너머 한 번 쳐다봐 봐.”

“………네, 업힐게요…….”

바로 포기하고 그녀의 등에 업히기로 했다.

그 나무를 직접 봤다가는 바로 속이 뒤집어질 게 뻔한데 잠깐 창피한 게 낫지.

그녀가 밟고 있는 가지를 디디면서, 일단 한 팔을 먼저 그녀의 목에 둘렀다.

그러자 그녀가 비어 있는 손으로 내 팔을 잡는 것이 아닌가!

이거 어째 내가 끌어안는 그림이 된 거 같은데!

곧 그보다 더 창피한 자세가 되겠지만!

“하으……”

“이상한 소리 내지 말고 빨리 업히기나 해.”

“……”

이상한 소리…….

여러 의미로 얼굴이 활활 타오르는 걸 느끼며, 나는 나머지 팔도 그녀의 목에 둘렀다.

조금 주춤거리며 두른 탓에 빈 공간이 생겼는지, 그녀가 한숨을 쉬면서 투덜거렸다.

“얌마, 더 붙어야 할 거 아냐.”

그러더니 내 팔을 하나씩 잡고 확 끌어당겼다!

덕분에 말 그대로, 정말 바짝 붙어서 끌어안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내 손에 잡히는 것도, 내 얼굴이 닿은 것도 드워프가 준 망토와 그 후드의 천뿐이다.

그녀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목덜미나 머리카락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두근대는 걸까?

부디 내 심장소리가 그녀에게 들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꽉 잡아라. 무릎 접고.”

“으, 응.”

내 입에서 대답이 나오자마자 몸이 공중에 둥실 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라도 그녀의 등에 실례를 하게 될까 봐, 나는 나무를 보지 않으려 눈을 질끈 감았다.

……그와 동시에, 내가 지금 어떤 꼴로 그녀에게 업혀 있는 건지 절대로 떠올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후드가 펄럭이는 소리에 섞여서 갈고리를 쏘고 회수하는 소리가 몇 번 들린 후, 메린이 땅에 발을 딛는 게 느껴졌다.

“됐어. 내려.”

“흐유우우우………”

곧바로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성공했어.

그녀에게 업힌 내 모습을 떠올리지도 않고, 나무에 바짝 가까워졌는데도 그녀의 등에 토하지도 않고 도착했다고!

덧붙여서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저녁 메뉴는 결정하지 못했다.

뭐, 어차피 야채스튜 먹겠지.

제자리에서 비실비실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

‘부엉이탑’보다는 확연히 작은 나무.

그래도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무성한 이파리를 자랑하는 거대한 나무가 서 있다.

가지에는 파란색 과실 같은 게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그것들이 흔들거리며 기묘한 반짝임을 내고 있었다.

푸른색으로 반짝이던 게 저거였구만?

한때 많은 엘프들을 낳았던 ‘어머니 나무’는 기괴하게 뒤틀리지도 않고, 병들거나 죽어서 까맣지도 않았다.

그냥 파란색 과일이 달려 있고 나무 주변에 약간 아지랑이 같은 게 떠돌고 있는, 기묘한 나무였다.

“……어라?”

근데 나무를 봐도 멀쩡하네?

여전히 속은 좋지 않지만, 이 이상 나빠질 것 같진 않았다.

이 나무 때문에 불길했던 게 아닌가……?

“야, 카엘, 이리 와봐.”

다른 쪽을 기웃거리던 메린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나무 바로 옆에 서서 무언가를 올려다본 채,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왜? 뭐 있냐?”

“시체.”

“……!”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손가락으로 나무 위쪽을 가리켰다.

그 방향을 따라서 고개를 돌린 순간,

“!!!!”

지독한 현기증과 함께, 뱃속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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