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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24화 (224/475)

〈 224화 〉 217화 : 땅 위로 올라갑세 (2)

* * *

주변이 어떻게 바뀌든 그저 제자리에 우직하게 서 있는 바위처럼, 드워프는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떠나는 길을 누구 하나 배웅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래, 떠나는 게로군?”

……지상으로 이어지는 승강기 앞에, 판금갑옷을 입은 드워프가 서 있었다.

덥수룩한 갈색수염 사이로 푸근히 웃으며, 그는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솔리도?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자네를 배웅하러 왔지. 내가 이 ‘바위궁전’에 자네를 처음 들였으니, 마땅히 자네를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뭘. 그 핑계로 나도 한숨 돌리는 거지. 자, 가세나!”

호쾌하게 앞서가는 그를 따라 승강기에 올라탔다.

울타리문처럼 생긴 문을 닫고, 아래를 향하고 있는 막대기를 위로 올려서 장치를 가동시킨다.

승강기를 조작하는 것도, 이 안에서 느끼던 그 오묘한 느낌에도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

솔리도가 있어서 그런지, 새삼 맨 처음에 여기 왔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그때는 나 자신도 몰랐을 정도로 지친 마음으로, 잔뜩 경계하면서 내려왔었는데.

그러나 지상으로 올라가는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물론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이상, 완전히 마음이 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쳐 있지는 않다.

몸은 뭐, 당연히 멀쩡하고.

그리고 아무리 의무라고 해도, 성심성의껏 도와준 드워프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여러모로 잊지 못할 추억도 생겼고.

그렇게 감상에 젖은 나를 향해, 드워프 장군은 씨익 웃었다.

“그래서, 이 다음은 어디로 갈 셈인가?”

“남쪽 산이요. 뭐랬더라? ‘끝없는 장서관’? 거기 가려고요.”

대략적인 위치는 위슨이 개발연구소에서 들었다는 듯했다.

­­위슨 혼자서 여러모로 시도 중인데, 확실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면 좋지.

무던히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말하면서도, 녀석은 곧바로 그 위치를 지도에 당당히 표시해두었다.

……만약 내가 안 간다고 하면, 저 혼자라도 찾아가겠다고 할 기색이 만연했다.

“거기? 흠, 연락을 하지 않은 지 꽤 됐을 텐데.”

“뭐, 있을 거에요. 어떤 높으신 분이 거기 가보라고 했거든요.”

그곳에서 위슨이 목을 고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천사는 말했다.

덤으로 나를 위한 진실이 어느 산꼭대기의 사원에 있다고도 했지.

­­용사를 위한 진실과 고통이, 그대의 과업에 대한 시련이 되리라.

……그때 내가 천사에게 댄 ‘과업’은 메린이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처럼 감정을 가지고, 이해하게 하는 것.

사람이 아닌 그녀가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

그에 대한 시련이 그 사원에 있는 것이다.

용사를 위한 진실이 그녀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보면 알겠지.

“의외로군.”

솔리도는 정말 뜻밖이라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자네라면 곧바로 북쪽으로 갈 줄 알았거든. 나 참, 불임으로 모자라 곡물까지 그 꼴이라니. 근데 귀리랑 호밀은 또 멀쩡하다며? 허허, 상징으로는 최고야, 최고.”

“……마음 같아서는 곧장 북쪽으로 가서 다 끝내고 싶은데 말이죠.”

다른 사람이 보면 미쳤냐고 하겠지.

지금 당장 북쪽으로 가도 모자랄 판에, ‘끝없는 장서관’이니 ‘산꼭대기 사원’이니 하는 곳을 왜 가냐고.

이 다음에 또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모르는데.

……하지만 가야 한다.

“허나 그리로 가는 게 중요하겠지? 자네들에겐 말일세.”

“……네.”

다른 사람에게는 하등 쓸데없는 일로 보이겠지만, 우리에겐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사명과 완전히 상관없는 것도 아니고 말야.

위슨이 목을 고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면 마법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을 거고, 용사를 위한 진실은……

글쎄, 굳이 ‘용사를 위한 것’이라 꼽은 걸 보면, 완전히 쓸데없지는 않겠지.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그 반대로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내 말에, 솔리도는 허허 웃으며 내 팔을 두드렸다.

“그렇다면 당당하시게! 그 누가 자네의 결정에 토를 달겠는가? 어차피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살게 되어 있어. 그저 책임을 떠넘기고 원망할 대상이 필요할 뿐이야. 이 위에 사는 섀도워커네 부족들처럼 말일세. 허허, 악마가 없다니, 참 재미있는 친구 아닌가?”

“하하…….”

재미있다니,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산맥에 자리한 부족은 사제를 싫어하다 못해 증오하고 있다.

있지도 않은 악마를 숭배했다는 누명을 씌워서 다른 부족원들을 처참히 도륙했다고.

그런 ‘누명’을 로나에게 들이대며 비난하던 그 부족민의 모습이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 맞다.”

그러다 문득, 여기 오다가 거쳤던 부락에서 검 하나를 가져왔던 게 생각났다.

돌아가는 길에 값을 내려고 했는데, 남쪽 산으로 가게 됐으니 어쩌면 이 길로 다시 못 올지도 모르겠군.

나는 품속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솔리도, 섀도워커에게 이 돈 좀 전해주세요.”

그는 자신의 손에 떨어진 금화 다섯 닢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여기 오다가 들른 부락에서 검 한 자루를 가져왔었거든요. 그 값이라고 전해주세요.”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섯 닢이면 충분하겠지.

남으면 좋고, 모자라면…… 음, 모자랄까?

우리 마을에서 이 돈이면 쌩쌩한 양 두 마리에 닭 다섯 마리도 살 수 있는데.

하지만 정 모자라다면…… 어쩔 수 없지.

검은 계속 쓰기로 해서 돌려줄 수도 없으니, 이 방법밖에 없다.

“혹시 모자라면 신전에 청구하라고 하세요. 용사가 빚진 거니 해결해주겠죠.”

“와, 여기 빚 떠넘기는 나쁜 어른이 있네요.”

“시끄러, 임마.”

어차피 지원금 쓰고 남은 돈은 교단에 돌려줄 거니, 괜한 돈을 뜯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놋지빌의 우리집으로 청구서를 보내는 게 제일 확실하겠지만……

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말야.

“허……”

그리고 솔리도는 금화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핫! 자네도 참 별나구만! 그걸 굳이 갚으려 하다니. 걱정 말게! 내가 그 친구에게 꼭 그리 전해줌세.”

“감사합니다.”

미소를 돌려주며 감사를 전하자, 그의 웃음이 한층 더 커졌다.

이윽고 지상에 도착한 후, 솔리도는 문 앞에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잘 가시게. 자네가 무사히 여정을 마칠 수 있기를 바라지.”

“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솔리도. ……어디에 계시든 무사하시길 바랄게요.”

……연노랑머리 엘프가 말했다.

드래곤 아트라토스가 깨어났으니, 조만간 몬스터들이 숲에 쳐들어올 거라고.

아마 여기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겠지.

어쩌면 숲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

드워프들의 터전은 지하에 있는 만큼, 심연……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맞붙어 있으니까.

또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갈색수염 아저씨가 없어진다면 조금 울적할 것 같다.

그 마음이 전해진 걸까, 솔리도는 또 다시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내 팔을 툭 쳤다.

“건투를 비네, 카엘 에스트렐. 어린 인간 친구여.”

“당신도요. 건투를 빕니다, 솔리도 마소 중장님.”

서로 각자의 길을 굳건히 걸을 수 있기를 빌어주면서, 굳센 악수를 나누었다.

솔리도와 헤어진 후, 말을 끌면서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간 숙소에서 먹고 자기만 했는지, 내 말…… 조지는 일주일만에 살이 포동포동 올라있었다.

“야, 늑대 튀어나오면 너한테 먼저 달려들겠다.”

“히힝!”

“아야.”

우와, 이 자식, 발을 굴러서 돌을 튀겼어! 음습해!

아니 뭐, 대가리로 들이박거나 걷어차는 것보단 백 배 낫긴 하지만, 세상에……!

……근데 내 말 뜻을 이해한 건가?

사람 말뜻을 알아듣다니,진짜 똑똑하긴 하구만.

쓴웃음을 지으며 녀석의 얼굴을 툭툭 두드려준 후, 앞서 가고 있는 녀석들에게 물었다.

“근데 대충 얼마 걸릴 거 같냐?”

“글쎄? 산길을 가는 거니 일주일은 넘지 않을까?”

“우와…….”

지도상으로는 산맥을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게 가장 빠르다.

하지만 남쪽에 다시 산을 오를 수 있는 길이 있을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냥 산맥을 타고 가기로 한 것이다.

이거 잘하면 한 달 넘게 걸릴 수도 있겠네?

와, 산사람 다 되겠어.

적어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게 다행이다.

시력이 뛰어난 블루벨이 맨 앞에서 길을 살피고 있고, 뭣하면 위슨이 대지의 정령인 늑대에게 길을 물어보면 되니까.

“하아~ 진짜 살 거 같다. 이게 얼마만에 맡는 바깥 공기 냄새야?”

자유롭게 다시 돌아다니는 게 어지간히 기쁜지, 블루벨은 아까부터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있었다.

……근데 의외이네.

곡물이 끝장났다는 소식을 엘프에게도 알려야 한다고, 엘프의 숲에 잠깐 다녀오게 해달라고 부탁할 줄 알았는데.

부탁은커녕 걱정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블루벨, 고향 걱정 안 돼?”

“응? 웬 걱정?”

“댁도 들었잖아. 밀이랑 보리 안 열린다고. 골든에게 안 알려도 돼?”

내 말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린 귀리밖에 안 키워. 밀이랑 보리는 몇몇만 기르는데?”

“……어라? 거기서 빵 먹은 거 같은데.”

“귀리로 만든 거지.”

“뭐…라고……?!”

희한하게 좀 퍽퍽하고 잘 부서진다 했는데 귀리로 만들어서 그런 거였구나!

이런 세상에, 밀가루 반죽 망한 게 아니었다니!

미안해요, 골든.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당신 손이 꽝이라고 욕했네요.

속으로 그에게 사죄하며, 나는 블루벨에게 말했다.

“그래도 그건 해야 되지 않아? 출산 얘기.”

“아, 그거? 아까 네가 그 드워프랑 인사 나눌 때 알렸어.”

“엥? 어떻게?”

드워프 장군과 인사를 나눌 때도 블루벨은 옆에 있었다.

아무리 엘프라 해도, 여기서 숲까지 눈 깜짝할 새에 다녀오는 건 불가능할 터.

그녀는 바닥에서 풀잎 하나를 주운 후, 의아해하는 나를 향해 싱긋 웃었다.

“바람에 실었지.”

그런 뒤, 풀잎을 집은 손을 놓더니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늘하늘 춤추며 땅으로 향하던 풀잎은, 그녀의 손가락이 위를 향하자 도로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블루벨은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허공에 손가락을 놀리며, 그 움직임을 따라 하늘거리는 풀잎의 춤을 감상했다.

“골든 아저씨처럼 돌풍을 부르진 못해도, 말소리는 전할 수 있어.”

후우, 그녀의 입김을 받고 풀잎이 훨훨 날아가기 시작했다.

앞머리조차 흔들지 못하는 가느다란 바람을 타고서.

그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블루벨은 어깨를 으쓱였다.

“거의 속삭임이나 다름없지만, 아저씨라면 잘 들으시겠지.”

“그래, 아주 잘 들을 거다. 내가 힘을 더 담았으니까.”

별안간 파랑새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끼어들었다.

녀석은 위슨의 모자 위에 앉아 자신의 짤막한 날개를 정리하면서 재차 말했다.

“안 전하면 그 노란 대가리가 또 피리 불겠다고 설칠 게 뻔하지. 올해는 귀쟁이들이 필요하니까 특별히 해준 거야. 고맙게 여겨.”

“원래 당연히 해야 되는 거잖아. 뭔 선심 쓰듯이 말하는 거니?”

“덤으로 네 귀를 터뜨리고 싶은 것도 참고 있으니 더 감사해라.”

“어머, 신기해라.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널 짜부러뜨리고 싶어 죽겠거든.”

……망할, 또 시작이네.

아니나다를까, 파랑새가 곧바로 대꾸했다.

“그럼 뒈져버리렴.”

“너나 죽어, 뚱땡아.”

“난 안 죽는데 어쩌냐, 귀쟁아.”

“그럼 네 옆에서 계속 쫑알거리지, 뭐. 입 안팎으로 계~속!”

“그만 살고 싶다고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아니면 괴롭혀달라는 거냐? 네 성벽에 어울려줄 생각 없어, 변태야.”

“누가 변태야! 목에 구멍 내버린다!”

“너네 둘 다 닥쳐!”

참다 못해 빽 소리지르자, 두 녀석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내 목소리가 메아리를 울리며 서서히 사라져갈 무렵,

“염병할 귀쟁이 년 같으니.”

“망할 깃털덩어리 자식.”

“자라다 만 망아지.”

“파란 병아리.”

또 다시 쫑알쫑알거리기 시작했다.

“하, 돌겠네, 진짜…….”

벌써 몇 번이나 본 광경인데, 익숙해지긴커녕 골치만 더 아파오고 있다.

앞으로도 이 난장판을 셀 수 없이 보게 되겠지?

캄캄한 내 팔자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그 후 하늘에 노을이 지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위슨 덕분에 동굴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곱게 길을 가다가 찾은 게 아니라, 갑자기 옆길로 샌 거지만.

이끼랑 곰팡이 냄새를 감지하는 건가, 참 동굴은 기가 막히게 잘 찾는 녀석이다.

하늘은 아직 밝으니 한두 시간은 더 갈 수 있겠지만, 이 뒤에 야영하기 적당한 곳이 있을 거란 보장은 없다.

때문에, 조금 이르긴 해도 그냥 이 동굴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제비꽃 소녀는 달빛을 받으며 빙글빙글 춤을 추었습니다.”

“……”

“케이크 속에서 나온 반지는 누구의 것일까요?”

“……”

그리고 저녁 준비까지 아직 시간이 남은 틈을 타, 나는 메린에게 받아쓰기를 시켰다.

문제로 삼은 것들은 그녀가 아직 읽지 못한 동화책의 문구들이다.

메린은 기억력이 좋으니까, 어쩌면 나중에 그 책들을 읽고 받아쓰기 문제로 나왔었다는 걸 떠올릴지도 몰라.

내가 불러주는 말들을 열심히 적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몰래 미소를 지었다.

“………됐다.”

깃펜을 내려놓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자, 그녀가 머뭇거리면서 종이를 건넸다.

일 년 만에 다시 글공부를 하는 그녀의 첫 받아쓰기 성과는……

“음음, 아주 처참하군.”

“……”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이야, 다 맞게 쓴 문장이 하나도 없네.

일 년의 공백이 진짜 크긴 크구나.

나는 그녀가 쓴 문장의 틀린 부분을 고쳐주고 다시 종이를 돌려주었다.

“그 문장들 죄다 다섯 번씩 써. 다음에 그대로 다시 시험 볼 거야.”

“으으…… 열 개나 되는데…….”

“뭐? 열 번씩 쓰고 싶다고?”

“내가 언제 그랬어?! 으으, 웃지 마, 이 자식아!”

어쩔 수 없잖아. 네가 질색해하는 게 귀여운걸!

내가 웃는 것에 샐쭉해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배낭에서 종이꾸러미 하나를 꺼냈다.

“자, 선물.”

“선물……? 왜?”

“아무튼 풀어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그녀는 내가 준 꾸러미의 끈을 풀었고, 곱게 싸여 있는 종이포장지를 벗겼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물건을 보고, 그녀가 눈을 살짝 동그랗게 떴다.

“이게 다 뭐냐?”

“필기구랑 수첩.”

꾸러미에 든 것은 잉크병과 깃펜 두 개, 그리고 종이에 구멍을 뚫어서 노끈으로 묶는 형식의 수첩이다.

종이는 나누어 쓰면 되지만, 역시 잉크와 깃펜은 자신의 것을 가져야지.

“이…… 수첩? 이거 네가 쓰는 거랑 같은 거 아니냐?”

“맞아. 같은 거야.”

“이거 비싼 거 아냐?”

“그냥 공책보단 좀 값이 있긴 한데, 이게 더 나아. 우린 지금 여행 중이잖아.”

수첩은 겉감이 가죽이기 때문에, 일반 공책보다는 좀 비싸다.

하지만 쓸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는 공책과 달리, 수첩은 종이만 따로 사면 얼마든지 양을 보충할 수 있으니 장기적으로는 더 저렴한 편이다.

가장 좋은 건, 역시 함부로 펼쳐지지 않도록 끈으로 동여맬 수 있다는 점이리라.

“근데 이걸 왜 줘? 여기다 공부하라고?”

“아니, 일기 쓰라고.”

“일기? 뭘 써야 하는데?”

“아무거나. 네가 철자를 틀리든 말든 검사 안 할 테니까, 그날그날 있었던 일이나 느낀 거 등등, 네가 쓰고 싶은 내용을 쓰면 돼.”

자신의 머릿속에서 직접 글자를 짜내어 문장으로 만드는 것도 글공부에 큰 도움이 될 터.

특히나 그녀는 기억력이 좋으니까, 하루에 있었던 일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돌아볼 수도 있겠지.

“중요한 건 사실만 적지 말고, 네 생각도 같이 적는 거야. 알았지?”

“음…… 너 안 본다고 했지? 정말로 안 볼 거냐?”

“네가 보여줄 때 말고는 안 볼 거야. 보여 달라고도 안 할 거고.”

남의 일기를 엿보는 게 재미있는 건,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원래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더 재미있고 즐거운 법이지.

그리고 이 경우엔, 목숨도 간당간당해질 거고.

“종이 다 써갈 때 말해. 일기 쓴다고 잠 설치거나 숙제 빼먹지 마라.”

“응…… 알았어. 그럴게.”

그녀는 내가 준 수첩을 품에 꼭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에 떠오른 엷은 미소에 나 역시 웃음을 띄우며,

“그럼 시간 좀 남았으니까 책 가져와.”

용서없이 다음 순서를 고했다.

이대로 끝낸다면 훈훈하겠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

할 건 확실히 해야지!

“으으…… 진짜 빡세네…….”

“나도 다 배운 대로 하는 거야.”

너한테 배운 대로 말야.

앓는 소리를 내면서 동화책을 가지러 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또 다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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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그림판 프로그램 바꿈 엌ㅋㅋㅋㅋ

아아... 이게 바로 에어브러쉬 라는 것이다...

글쓴이 손이 메롱이라서 프로그램 바꿔봤자이지만 상관업써!

˚ ▽˚)!!

그런 의미에서 블루벨입니다.

히로인 아닙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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