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화 〉 218화 : 산 속이라면 꼭 하나쯤 있지 (1)
* * *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다.
이전에 대충 2주간 산을 다녔던 때에도 느낀 건데, 이런 곳에서 대체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 참 신기하다.
맑았다 싶으면 갑자기 비가 오지, 길은 제대로 나 있지 않은데다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훅 가지, 땅 속이나 나무, 또는 바위 뒤에서 몬스터나 짐승이 툭 튀어나오지…….
그런데도 이따금 사람이 만든 듯한 덫이 간간히 튀어나온다.
하하, 인간의 적응력은 정말 대단해.
“근데 덫을 설치했다면 말야. 어느 정도 날짜가 지나면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고 봐.”
“그러냐.”
“그렇다고. 특히나 저렇게 날이 박혀 있는 건 더더욱!”
힘주어 말하며, 나는 메린이 부숴버린 덫을 다시 쳐다보았다.
지금은 완전히 두 동강이 나 있는 발목 덫은, 정말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구덩이 위를 덮은 곳에 발을 디디면, 발이 안으로 쑥 빠지면서 올가미가 걸린다.
그러면 자연히 밧줄이 당겨지면서, 바닥에 숨겨져 있던 칼날 덫이 발목을 콱 물어버리는 거다.
나 참, 드워프가 준 바지와 신발이 튼튼했기에 망정이지, 일반 옷이었다면 발목이 완전 걸레짝이 됐거나 잘려버렸을 거야.
아니 뭔 칼날을 이빨처럼 촘촘히 박아 놓냐고.
대체 이걸로 뭘 잡으려고 했던 거야?
드워프의 새 장비 덕분에 내 발목은 붙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찔린 건 매한가지였다.
게다가 덫이 완전히 녹이 슬어 있어서, 쇳독 걱정 때문에 결국 오늘도 로나에게 기도를 받는 신세가 된 것이었다.
“덫 주인 만나기만 해봐. 반드시 배상 청구할 테다……!”
“살아있겠냐? 그 그리폰한테 진작에 먹혔겠지.”
“초 치지 마라.”
제길, 근데 너무 그럴싸해.
그 거대 그리폰을 조종하던 엘프 자식, 산에 있는 다른 짐승과 몬스터는 냅두고 거의 인간만 골라서 잡은 꼴이었으니 말야.
게다가 여긴 드워프들의 도시와 좀 떨어져 있으니, 그리폰의 공격을 피해 피난가기도 어려웠을 터.
……으으, 결국 나 혼자 분을 삭혀야 하는 건가.
한숨을 막 쉴 때쯤, 눈을 감고 기도하던 로나가 내 발목에서 손을 떼고 방실 웃었다.
“……자, 끝났어요. 어때요?”
나는 발목을 이리저리 돌려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은 거 같아. 고마워.”
“히히, 천만에요. 근데 참 신기하네요. 어떻게 두 분이 같이 가시는데 카엘 님만 덫에 걸리신 거죠?”
“그러게 말이다…….”
메린 녀석과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면 또 몰라, 그녀가 내 앞을 몇 발자국 앞서 가고 있는 상태였다.
근데 이 녀석은 멀쩡하고 나만 덫에 걸린 거다.
어떤 악의가 뒤에서 수작을 부렸다는 것 말곤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괴현상이야……!
설마 누가 또 나를 저주하고 있는 건가!
‘그냥 운이 없는 거지.’
“정말 운이 없으시네요~”
“참 재수없는 놈이라니까.”
“시끄러, 이 자식들아. 그리고 메린, ‘재수없는 놈’이라고 하지 마. 다른 뜻으로 들리잖아!”
빽 소리를 지르자, 로나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요, 메린 님. ‘재수없는 놈’이라는 건 팔자 사납다는 것보다는 ‘보기만 해도 내 복이 떨어질 것처럼 못마땅한 놈’이라는 뜻이 강해요. 그러니 이럴 땐 ‘박복하다’고 하시는 게 나아요.”
“……”
로나 말이 맞아. 난 정말 박복한 놈이야.
대놓고 이런 소리를 듣고 앉아 있잖아.
게다가 아무 반박도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슬프다. 흑흑.
하…… 이게 다 저 놈의 동굴 때문이야.
아니, 뭔 산에 동굴이 이렇게 많아?
거의 하루에 한 번 꼴로 발견하고 있고, 그때마다 약재료에 미친 마법사님이 안으로 돌격하고 있다!
더 열받는 건, 꼭 ‘슬슬 묵을 데를 찾아볼까’ 하고 생각할 즈음에 동굴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탓에 탐색하러 간다는 위슨 녀석을 만류할 명분이 없었고, 그렇게 동굴에서 동굴로 옮겨다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왜요? 비바람 피하기 좋아서 괜찮지 않나요? 오늘 새벽에도 비 왔잖아요.”
“맞아. 덤으로 가끔 식량도 구하잖아. 뭐가 불만이냐?”
“바로 그거. 그게 제일 불만이다, 임마. 난 박쥐고기 맛 같은 거 평생 모르고 싶었다고.”
흡혈박쥐인지 과일박쥐인지 그냥 박쥐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동굴에 있던 박쥐 떼를 쫓아내는 중에 메린이 몇 마리 잡아서 구워버렸고, 우리의 피와 살로 변하고 말았다.
근데 진짜 어이가 없네.
‘바위궁전’에서 얻은 식량도 아직 많은데, 메린 이 자식은 왜 꼭 뭘 사냥해서 먹는 거야?
그 버섯 달린 녀석은 곰 비슷하게 생기기라도 했지, 박쥐는 대체 왜 먹는 거야, 왜!
이러다 진짜로 보존식품은 뜯어도 못 보고 도로 다 가져가겠다!
“잘만 처먹어놓고 이제 와서 지랄이냐?”
“네가 처음에 말을 안 해서 먹은 거잖아!”
“말했는데도 먹었잖아.”
“딴 게 없으니까!”
정확하게는 조리해놓은 게 없다는 거지만.
위슨의 배낭에 넣어둔 다른 고기를 꺼내서 또 조리를 하는 건 너무나도 성가셨던 것이다.
하…… 로나가 항상 뭘 먹기 전에 축복기도를 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작에 병 나고도 남았을 거야.
다시 말하는 거지만 몬스터의 고기에는 독이 있다.
날개사슴이나 데이노처럼 독이 좀 약한 놈들은 피만 전부 빼내면 되지만, 대부분은 추가로 세이지나 타임 같은 허브에 절이다시피 재워야만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 중인 몸.
고기를 어떻게 허브범벅으로 만든 다음 재울 수 있겠는가?
그냥 피만 뺀 다음, 허브만 열나게 붙여 놓는 거지.
메린은 고향에서도 다들 그렇게 해먹는다며 박박 우겼지만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정석대로 푹 재운 몬스터 고기를 먹어도 탈이 나는 놈이니까!
그런 내가 지금까지 배탈 한 번 나지 않고 멀쩡할 수 있었던 건, 전부 로나의 축복기도 덕분이다.
본인은 딱히 힘을 싣고 한 건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튼 기도 덕분인 것이다.
어쨌든 나는 불을 지필 땔감을 주울 겸, 근처에 물이 있는지 찾으러 가다가 덫에 걸렸고, 애당초 그 수고를 하게 된 건 모두 위슨이 찾은 동굴에서 묵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놈의 동굴 탓인 거다.
동굴만 없었다면 샘 근처에서 머물게 됐을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카엘 님은 샘에 살던 드라우너에게 잡혀서 물을 잔뜩 드셨겠죠! 와아, 저 로나, 방금 눈앞에 굉장히 선명하게 떠올랐답니다! 이게 바로 계시……!”
“이런 망할.”
세상은 나를 괴롭히는 게 즐거운 모양이었다.
한숨을 쉬며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자, 메린이 내 손에서 물통을 가져가며 어깨를 으쓱였다.
"넌 그냥 저기 앉아 있어라. 괜히 또 가다가 덫에 걸릴라.”
“……”
“아, 그럼 저도 같이 갈게요!”
그렇게 두 아가씨가 각자 물통을 안고 풀숲 속으로 사라졌고, 나는 혼자 터덜터덜 동굴 앞으로 돌아왔다.
“푸흥.”
“뭐, 임마. 웃지 마, 조지, 이 자식아.”
녀석의 뺨을 툭툭 두드리며 투덜거리니, 그 옆에서 푸흡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엘크가 대가리를 부들부들 떨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웃는 건 갸가 아니고 난디? 푸흐흐.”
“그래, 말 잘했다! 벤투스, 너 임마, 웃지 말라고, 짜샤! 그만 웃어!”
“아니 형씨, 그건 무리라니께? 그걸 듣고 우째 안 웃을 수 있것냐고. 시상에, 뭔 지집애도 아니고 ‘꺄아아~’ 라니! 아하하학!”
“끄윽! 오늘이야말로 한 방 먹여주마!”
곧바로 나뭇가지를 주워, 폭소를 터뜨리는 엘크를 향해 휘둘렀다.
당연히 녀석은 뿔로 나뭇가지를 쳐냈고, 그렇게 한동안 틱툭틱툭 서로 맞부딪쳤다.
목표는 엘크 녀석의 머리를 한 대 때리는 건데……
으으, 뭔 수를 써도 죄다 받아쳐버리니 도통 닿지를 않는다!
엘크 이 자식, 쓸데없이 방어는 진짜 잘해가지고……!
“푸하하, 꼭 나비 날아댕기는 것 같구만. 형씨~ 고러코롬 해서 은제나 날 이기것소?”
“아잇, 진짜!”
대련과 다르게 엘크는 공격이나 반격을 해오진 않는다.
그저 내가 휘두르는 나뭇가지를 뿔로 툭툭 쳐낼 뿐.
그런데도 아직까지 한 번도 녀석의 머리에 닿은 적이 없으니 미칠 노릇인 것이다.
그 도시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한 발도 맞지 않을 때부터 알아봤어……!
뚜둑.
“돌겠네, 진짜.”
“와하하! 이번에도 내 승리구만!”
이번에도 나뭇가지만 조각조각 나고 끝나버렸다.
한숨을 쉬며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자, 근처 나무 위에 앉아 있던 블루벨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너 참 잘 놀아주는구나. 왜 녀석들이 잘 따르나 했어.”
“노는 거라니, 굉장히 진지한 승부였…… 와악!”
대꾸하는 중에, 갑자기 푹신한 게 내 뒤를 덮쳤다!
반 바퀴 구르고 드러눕자, 이내 살짝 까끌거리면서 축축한 것이 얼굴을 마구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야, 야야, 간지러, 아하하핫, 간지럽다고!”
“웡!”
“테라 너 이 녀석, 또 기습을 했겠다……!”
일어나 앉아서 녀석의 얼굴을 마구 문질러주었다.
부비부비부비.
“……진짜 되게 잘 놀아주네.”
굉장히 어처구니없어 하는 듯한 목소리는 무시해주고, 나는 꼬리를 흔드는 늑대의 머리를 마구마구 쓰다듬어주었다.
아, 역시 털 푹신해…….
근데 늑대가 나왔다는 건 동굴 끝까지 다 살폈다는 건데, 위슨 녀석은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지?
“응? 테라, 위슨 녀석 왜 안 나와? 혹시 이끼 뿌리까지 막 파내고 있어?”
“그러겠냐, 미친놈아.”
……양반은 못 되는군.
말하기가 무섭게, 위슨이 무언가를 한아름 안은 채 동굴 바깥으로 나왔다.
그의 옆에는 스라소니가 소쿠리를 등에 얹고 있다.
……어라? 분명 소쿠리 하나만 들고 들어갔던 것 같은데.
위슨 녀석, 뭘 들고 있는 거지?
천으로 둘둘 싸여서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손수 안고 있는 걸 보니 잡동사니는 아닐 텐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냐, 그거?”
“그다지 좋지 않은 것. 사제님은?”
“메린이랑 물 뜨러 갔는데.”
“웬일로 네가 안 가고?”
“얼마 안 가서 덫에 걸렸거든. 로나가 나랑 교대했어.”
“뭐? 덫? 이야, 너 진짜 팔자 한 번 더럽구나.”
“……”
음, 그 말 들을 줄 뻔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속에 푹 박히는군.
제기랄, 왜 맨날 나만 그런 꼴을 당하는 거야?
속으로 투덜투덜대고 있는데, 위슨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물 뜨러 갔다면 조금 있다 오겠네. 할 수 없지, 너부터 봐라.”
“……?”
그는 품에 안고 있던 걸 바닥에 내려놓고, 위에 덮고 있던 천을 홱 걷어버렸다.
그러자 검게 말라 비틀어진 커다란 머리뼈가 나타났다!
그 괴상망측한 몰골에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늑대를 꽉 끌어안았다.
“어이씨, 뭐야, 그거?! 얌마, 왜 그런 걸 주워 오고 그래? 그것도 약재료야?”
“이딴 걸 누가 약재료로 쓰냐? 백골이면 또 몰라. 사제님한테 물어보려고 가져온 거야.”
“로나? 왜?”
그냥 저 동굴에 살고 있던 짐승이나 몬스터가 빨아먹고 남은 사체 아닌가?
가죽까지 문드러져 있는 걸 보면 꽤 오랫동안 방치된 것 같은데.
그보다 냄새가……!
“우욱.”
고개를 돌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어휴, 냄새……. 꼬맹아, 그런 걸 어디 쓰려고 그러니? 누구 저주라도 하려고?”
나무 위에까지 냄새가 닿는지, 블루벨이 볼멘 소리로 불평하는 게 들렸다.
“저주? 아, 좋지. 이걸로 저주하면 그 놈 반드시 뒤질 테니 쓸모 있긴 하겠네.”
“하지 마, 임마.”
곧바로 응수하자, 위슨이 고개를 흔들면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안 해. 위슨이 쓰기엔사념(??)이 잔뜩 들어있어. 대체 이걸로 뭘한 건지 모르겠어서, 사제님한테 물어보려는 거다.
아, 그렇지. 카엘, 너 책 좀 읽었잖아. 이런 거 뭐 아는 거 없냐?”
“체액을 모조리 빨아먹어서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몬스터가 한둘이 아닐 텐데?”
“그거 말고.”
그는 재차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제사나 의식 말야. 이거 제단 같이 생긴 거에 있었거든.”
“……!”
소리를 내는 것도 잊은 채, 눈을 휘둥그레 뜬 눈으로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나는 로나와 함께 위슨을 따라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입구도 그렇고, 동굴 자체는 여타 다른 곳과 동일하게 축축하고 서늘하다.
벌레나 박쥐 등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건 좀 희한했지만.
뭐, 그 점만으로도 요 일주일간 겪은 동굴 중에서는 되게 좋은 곳이다.
그러나 사제인 로나는 무언가 다른 것이 느껴지는지, 어느새 철퇴를 손에 들고 있었다.
마침내 다다른 동굴의 끝.
얼핏 보기에는 여전히 다른 동굴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
축축하다. 물론 동굴 입구도 축축하긴 했다.
산이라서 뜬금없이 비가 내리기도 하니, 오히려 습기가 없으면 이상했겠지.
……하지만 이건 달라.
방금 전까지 느꼈던 그 서늘한 습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질척거리는 듯하면서도 무겁고…… 뜨뜻하면서 비릿하다.
단 몇 걸음만에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에 혼란스러워하는 나와 달리, 로나는 서슴없이 어느 넓적한 바위에 다가가서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지키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이게 제단인가요?”
“아마도?”
“흠흠…… 지독하네요……, 아주아주 지독해……. 어떻게 동굴 바깥까지 퍼져 나오지 않은 건지 신기하네요…….”
조용히 중얼거린 후, 그녀는 손가락으로 바위 윗면을 스윽 쓸더니 그 손끝을 핥고는 곧바로 퉷, 침을 뱉어버렸다.
“자……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무감정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그녀가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항상 잿빛으로 반짝이던 그녀의 두 눈동자는 금빛으로 물들어 있다.
표정 또한, 평소와 달리 아무런 미소도 머금고 있지 않다.
“썩고 썩은 싱싱한 죄의 냄새인데……. 어찌할까요, 용사님?”
그곳에 있는 것은 전투사제.
대적자의 흔적을 발견한 창조주의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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