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화 〉 221화 : 산 속이라면 꼭 하나쯤 있지 (4)
* * *
사람은 죽이고 집은 불태울 것이다.
태연하게 선언하는 로나의 모습에, 일순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져 버렸다.
“……죽인다고?”
“악마숭배자만요. 나머지는 제압만 할 거에요.”
“꼭 그래야 돼……?”
수프를 떠먹던 로나가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나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굉장히 의외라는 듯한 시선에,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 아니, 사람 죽이면 안 된다는 소리하려는 게 아냐. 오늘만 해도 내 손으로 보낸 놈이 서넛 되니까. 내 말은, 안 그래도 부락민들은 사제를 싫어하잖아?
근데 아직 산길을 가야 하는데, 이 상황에 네가 직접 원수관계를 맺어서 좋을 게 없지 않냐는 거지.”
“……”
“그 주술사인가 하는 놈만 없으면, 더는 어떤 의식도 못하는 거 아냐? 그러니……”
“카엘 님,”
입 속에 있던 음식을 꿀꺽 삼키기가 무섭게, 로나가 내 말허리를 뚝 잘라버렸다.
그녀는 여전히 의아해하는 눈으로 나를 보며,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카엘 님은 오늘 사람 죽이신 적이 없는데요?”
“………뭐?”
“이단은 아슬아슬한데, 악마숭배자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겉만 인간으로 보일 뿐이죠. 카엘 님은 오늘 사람을 죽이시지 않았어요.”
그렇게 단호히 말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져,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성검 안 나왔거든? 악마와 관련되면 알아서 튀어나오는 성검이 안 나왔다고. 그게 뭔 뜻이겠어? 그 놈들이 아직 사람이라는 거 아냐.”
“성검이 필요할 정도로 썩진 않은 거죠. 어제 바친 제물이 세 번째래요.”
호로록, 수프 국물을 한차례 마신 후, 로나는 길게 숨을 내쉬더니 돌연 눈을 반짝였다.
“와, 국물 엄청 맛있어요! 이거 메린 님이 하신 거죠? 육수 쓰셨어요?”
“어. 어제 얻은 땅굴돼지 뼈.”
“뭐야? 이런 제기랄!”
양고기만 쓴 게 아니었구나! 어쩐지 수프 맛이 진하더라!
젠장, 방심했어. 뼈로 육수를 낼 줄이야……!
메린 녀석, 설마 이제까지 계속 몬스터 뼈 우려서 쓴 건 아니겠지?!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내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잡생각을 떨어버리는 동안, 메린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로나, 동굴 쓸 수 있어?”
“아, 맞다. 아니요, 바깥에서 주무셔야 돼요. 그리고 저는 동굴에서 밤새야 할 거 같아요.”
아직도 뭐가 끝나지 않은 건가?
미간이 움찔거린 나와 달리, 메린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천막 쳐야겠네. 카엘, 네 것도 해둔다.”
“어? 아니, 내 건 내가,”
“하는 김에 같이 하는 게 낫잖아. 넌 이야기나 해.”
인정사정없이 내 말을 뚝 끊어버리며,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들을 묶어 놓은 데로 향했다.
……나 참, 진짜 막무가내야.
절로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런 메린을 따라가려는 듯이, 위슨도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럼 위슨도 미리 해둬야지. 귀쟁이 너도 쓸데없이 죽치고 있지 말고 와라.”
“엥? 난 딱히 천막 없는데?”
“눈치 좀 챙겨라, 귀쟁아. 170살이나 먹은 할망구가 눈치 하나 더럽게 없네.”
“이 꼬맹이 새끼가 누구 보고 할망구…… 으아아아, 끌지 마, 술 흘리잖아!!”
어거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괜히 술을 흘리는 게 더 싫다니, 정말 진성 술꾼이로군.
그보다 뭐지?
갑자기 막 자리를 비켜주고 있네.
멀뚱히 눈을 끔벅이는 나를 향해, 위슨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손짓하고 메린을 따라갔다.
……늑대를 시켜 블루벨을 질질 끌고 가면서.
“……”
갑자기 이렇게 사람이 쏙 빠져버리니까 뭔가 어색하잖아!
공연히 머리를 긁적인 다음, 나는 고기를 뜯고 있는 로나에게 다시 물었다.
“그…… 어쨌든 주술사를 잡았으니 다 끝난 거 아냐? 굳이 마을에 가서 더 깊은 원한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잖아.”
“그렇죠. 근데 주술사는 아무나 될 수 있거든요. 어쩌면 거기 후계자가 있을지도 모르고요.”
어깨를 으쓱이며 로나가 말을 이었다.
“카엘 님, 어차피 여기 찾아온 사람들을 잡은 이상, 이미 원수가 된 거나 다름없어요. 게다가 이제 거대 그리폰도 없으니, 다른 살아있는 부락민들도 제 거처로 돌아갔을 거고, 그럼 슬슬 근처의 다른 부락민을 납치해서 제물로 바치기 시작할 거에요. 그러면 소환의식의 진행도가 팍팍 올라갈 거고요.”
“……”
“카엘 님이 왜 그렇게 저를 만류하시는 건지는 여럿 떠오르는 게 있긴 한데요. 악마숭배는 빠르게, 철저하게 처리해야 돼요. 의식이 여러 차례 진행될수록 세력이 커지고 강해지거든요. 그럼 피해도 커지고요.”
이단이 사람의 생활력을 빨아먹는다면, 악마숭배는 사람의 생명력을 고갈시킨다.
파멸밖에 불러오지 않을 초월적인 존재를 불러오기 위해, 수십 명의 피를 먹이는 것이다.
몬스터는 제물로 바치는 효과가 낮기 때문에, 사람만을 바쳤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피가 필요하게 된다.
사람과 몬스터, 둘 모두에게 민폐인 것이다.
로나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 알 수가 없어요. 단순히 음식을 차리고 그 앞에 기도하는 건 아무도 안 말리는데 말이죠. 짐승도 괜찮고요.
근데 꼭 사람을 바쳐요. 그러면 우리가 찾아온다는 걸 뻔히 알면서 말이에요. 그 끝에 기다리는 건 파멸뿐인데.”
“그만큼 갈망이 큰 거겠지.”
내 말을 들은 로나가 눈썹을 살짝 추켜올렸다.
내가 곧바로 대답한 게 의외였던 모양이지?
나 스스로도 좀 뜻밖이긴 해.
“흐음? 예를 들면요?”
“……사람이나 세상에 복수하고 싶은 거야. 원한이 너무 깊고 강한 탓에 미쳐버려서,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는 거지.”
인간이 어떤 환경이든 꿋꿋하게 대를 이어갈 정도로 강한 적응력을 지닌 건, 그만큼 살아남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인간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 대신, 마음을 강하게 품은 것을 잃게 되면 홱 주저앉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인생이 망가져버리는 것 같은 거지.
그 상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아예 전부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는 것도 딱히 이상하진 않은 것이다.
나 역시……
……하나 남은 것마저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로나는 그런 나를 마주하며, 가만히 눈만 여러 번 깜빡였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인데, 해도 되는지 가늠하고 있는 듯했다.
“할 말 있으면 해. 너답지 않게 뭘 재고 있냐?”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엔 나와 로나, 둘밖에 없는데 말야.
물론 다른 세 녀석도 가까이에 있긴 하다.
근데 천막을 치느라 바빠서, 우리 이야기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있을 게 뻔해.
……아니, 평소에도 그리 귀담아듣는 편은 아니구나.
블루벨은 어떤지 아직 모르겠지만, 다른 두 녀석은 남의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는 성격이니까.
“진짜 해도 돼요?”
“언제는 뭐, 내 허락받고 했냐?”
“그럼 카엘 님도, 메린 님이 죽으면 세상이 망하라고 비시겠네요?”
“……”
해도 되냐고 물을 만했다!
이 녀석, 이 흐름에서 날 또 놀려먹으려는 건가?
……그러나 가만히 살펴본 그녀의 얼굴에는 농담하는 기색이 조금도 묻어나 있지 않다.
그저 두 눈을 살짝 동그랗게 뜬 채, 덤덤히 모닥불의 빛을 받고 반짝이고 있었다.
정말로, 순수하게 사실을 묻고 있는 눈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있는 그대로 대답해줘야지.
어차피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데다, 로나에겐 이미 몇 번이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래서나는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깊이 끄덕였다.
“그럴 거야.”
더할나위 없는 굳은 확신을 담고, 깊이 품고 있는 진심을 고했다.
“저주하고 또 저주할 거야.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을 원망하고 저주하겠지.”
강자만이 살아남는 곳에 약골로 태어나,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낙인찍혔다.
그런 놈도 아들이라고 사랑해주신 엄마는 숲이 삼켜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메린까지 잃는다?
여태까지 내 목숨과 마음을 지탱해준 그녀를……?
……하하, 절대 용서 못하지. 용서 못하고 말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곳에 있는 존재까지, 그야말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저주해줄 거야.
왜 죄다 빼앗아가냐고, 왜 이렇게까지 고통을 주냐고, 왜 이 순간까지도 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냐고 마구마구 원망해줄 테다.
그래도……
“……그래도 악마를 불러낼 생각은 안 할 거 같아. 얼마나 크든, 나 한 사람만의 원한이잖아. 그걸 가지고 세상에 화풀이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기도 하고. 그러니 뭐…… 그냥 자살할걸?”
메린이 없는 내 삶엔 아무런 가치도 없고, 또 그녀가 없는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이전에 깨달았던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어렸을 때도 죽으려고 했었는데, 다 커서 못할까?
게다가 지금은 날붙이도 바로 가까이에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내 손으로 직접 내 인생에 종지부를 찍어줄 수 있겠지.
신이 아니면 구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그러시군요.”
내 말에, 로나는 무던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용사의 일행으로선 곤란하지만, 전투사제로서는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해요.”
“……”
“……그리고 저 개인으로선 안타까운 답변이고요.”
조용히 덧붙인 후, 로나는 나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메린 님과 무관하게, 당신의 삶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말씀드렸었는데 말이죠. 역시 그 부분은 고칠 생각이 없으신 모양이네요.”
“……”
“뭐, 그만큼 메린 님을 깊이 생각하신다는 거겠죠. 카엘 님답네요. 정말 그런 일이 생기면, 아트라토스를 물리친 뒤에 존중해드릴게요.”
“아, 그래, 참 고맙다.”
사명만 아니면 자결하더라도 말리지 않겠다는 이 자세를 보라……!
후후후, 이게 사제라니 정말 무섭군.
내가 말하는 것도 웃긴데 말야.
사제라면 ‘창조주가 주신 생명을 함부로 하지 마라’고 하거나,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슬프게 하면 안 돼요’라는 둥으로 설교해야 되는 거 아냐?
돌겠네, 진짜.
어처구니없음에 고개를 살짝 젓는 내 귀로, 로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카엘 님 말씀처럼 원망이나 복수심 때문이라면, 뭐, 이해할 수 있어요. 그 자신도 마땅히 대가를 치를 각오가 돼있다는 거겠죠.
근데 말이죠. 단순히 세상의 왕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저지르기도 해요. 누구처럼 일족을 부흥시키고 싶어하기도 하고요. 그를 위해 다른 사람은 희생시키면서, 자신은 결코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죠.”
참 옹졸하지 않나요?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짧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사람은 어리석어요.”
“……”
“이번엔 무슨 이유일까요……?”
멀거니 모닥불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읊조리는 로나.
그녀의 두 잿빛 눈은 일렁이는 불꽃을 비추고 있다.
모닥불은 이 쌀쌀한 밤공기를 데울 정도로 뜨겁건만, 그녀의 눈 속에 담긴 불꽃은 그저 차가울 뿐이다.
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가 생각나는 눈빛이었다.
“로나.”
그런 그녀에게 쓴웃음을 보내며, 나는 입을 열었다.
“같이 갈게.”
“왜요?”
“동료니까.”
멀뚱히 나를 쳐다보는 모습에, 나는 또 한 번 씁쓸히 웃으며 항복하듯이 두 손을 들었다.
“걱정 마. 몇 명을 죽이든 몇 채를 태우든 안 말릴게. 노인을 때리든 아이를 날려버리든 보고만 있을 거야. 돕지도 않을 거고.”
“그럼 뭐 하러 같이 가신다는 거죠? 조금이라도 길을 가기 위해서인가요?”
“아니, 지켜보려고.”
“……?”
“너…… 아니, 전투사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고 싶어서. 너도 알다시피, 난 들은 것도 별로 없잖아. 이 기회에 확실히 아는 게 좋지 않겠어?”
어째서 사람들이 전투사제를 무서워하는 건지, 어째서 이 산의 부락민들이 사제를 증오하는 건지.
……그리고 어째서 많은 전투사제들이 종국에는 마음이 꺾이게 되는 건지, 그 답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확인해야 한다.
설령 이후에 내가 그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실체를 보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로나를 안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굳게 각오한 나를 향해 로나는 환히 웃으며,
“사양할게요.”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렸다.
일말의 망설임도 비치지 않는 그 웃음처럼, 설득의 여지 따위 전혀 보이지 않는 말투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가차없이 퇴짜맞았음에도 굉장히 평온하게 묻고 있었다.
“왜? 같이 가면 안 돼?”
“같은 전투사제 외에는 동행하지 않는 게 원칙이거든요. 사람을 끼었다가 오히려 상황만 복잡해진 적이 많다고 해요. 아무래도 사람이 보기엔 영 좋지 않은 꼴이니까요. 특히 카엘 님처럼 다정하신 분은 더더욱 크게 상처받으실 거고요.”
“……”
“그러니 같이 가시겠다는 제안은 거절할게요. 여기서 쉬시면서 메린 님과 대련이라도 하시거나, 아니면 메린 님 글공부를 보시거나 하세요.”
덫과 연결된 은신처의 당번도 주술사 일행에 합류한 상태라, 지금 여기를 살피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니 동굴이 아닌 바깥에서 잠을 자더라도 아무 일도 없을 것이고, 낮에 무엇을 하건 우리를 방해하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로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수프를 한 국자 더 떴다.
“행여나 제 뒤를 따라오거나 하시지 마세요. 위슨 씨를 통해 상황을 살피지도 마시고요.”
“그럼 중간에서 기다릴게.”
“아뇨, 그러지 마세요. 카엘 님까지 눈에 띌 수도 있잖아요. 그냥 여기서 저를 기다려주세요.”
한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구만.
결국 그녀의 고집에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더 끈질기게 굴었다가는, 그녀가 휘두르는 철퇴의 무게를 느끼게 될 테니까.
“……나 참, 고집 센 건 진짜 알아줘야 돼. 그것도 사제의 덕목이냐?”
“당연하죠!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듣든, 믿음을 관철해야 하니까요!”
어휴, 진짜 한 마디도 안 지네.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카엘 님,”
“왜.”
공연히 장작을 뒤적거리며 무심히 대꾸하자,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뭐가?”
“저희의 의무를 부정하지 않으시는 거요. 그리고 저를 사제로 대해주시는 것도 감사해요. 그걸로 충분해요.”
“……별 소리를 다한다.”
악마가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아는데 어떻게 부정해?
한 번도 아니고, 벌써 셋이나 직접 봤구만.
……아니, 넷인가?
아무튼, 놈들이 지상에 강림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보고 느낀 것이다.
그런데도 로나가 아직 어리다는 거나 죽어 나갈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이유로 그녀를 만류한다면, 그게 바로 등신 호구이겠지.
“그리고 넌 누가 봐도 사제잖아. 나이가 좀 적고, 키가 조금 많이 작아서 그렇지.”
“저 키 안 작은데요!”
“네 전용 사제복을 따로 만든 시점에서 설득력이 전혀 없단다, 얘야.”
“그건 제가 최연소로 서품을 받아서 그런 거거든요!”
빽 소리지르는 그녀는, 여느 아이처럼 키에 민감하고 먹을 것을 좋아하는 소녀이다.
그와 동시에, 무지막지한 힘으로 적을 쳐부수며 때로는 방황하는 사람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사제이기도 하다.
그것이 내가 아는 로나인 것이다.
그걸로 충분해요.
……그리고 그 정도 아는 걸로 충분하다고 그녀는 웃었다.
그 이상의 이해는 바라지 않는다고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본인 뜻이 그렇다면 따라줘야지, 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아무리 우겨도, 네 키가 또래 애들보다 작다는 건 변하지 않아. 어릴 때부터 그렇게 큰 철퇴 휘두르니까 안 자라는 거 아냐.
근데 진짜 성년까지 계속 안 자라면 어쩌냐? 진짜 다들 드워프 사제인 줄 알겠다.”
“으이익……! 두고 보세요! 오 년 뒤엔 카엘 님이 깜짝 놀랄 만큼 자라서, 교단 최고의 전투사제이자 미녀 사제가 될 테니까요! 반드시 본때를 보여드릴 테니 각오해두세요!”
“그래그래. 열심히 자라렴.”
“으으……!”
……네가 바라는 게 이 정도인 거지? 로나.
부루퉁한 얼굴로 볼이 빵빵하게 되도록 수프를 퍼먹는 그녀를 보며, 나는 가만히 미소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