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 222화 : 흔하다면 흔한 일 (1)
* * *
다음날 아침,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천막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로나는 출발하고 난 뒤였다.
배낭만 들고 간 건지, 그녀의 말은 여전히 제자리에 매여 있다.
……근데 내가 잠이 덜 깨긴 했나봐. 동굴이 안 보여.
물통의 물로 눈만 대강 씻은 다음,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
어라? 진짜 없는데?
동굴이 있었던 것 같은 곳에는 웬 둔덕만 고이 자리하고 있다.
뭐지……?
분명히 동굴이 있었던 것 같은데……?
멍하니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 머리를 통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자, 메린이 예전에 쓰던 검 두 자루를 든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뭘 멍하니 서 있냐? 잠 깼으면 이거나 들어.”
“어……”
엉겁결에 그녀가 내민 검을 받은 뒤, 나는 눈을 끔벅이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야, 메린……, 저기 동굴 있지 않았냐……?”
“있었는데 없어졌지.”
“왜?”
“무너뜨려서.”
“엥? 동굴을 무너뜨렸다고? 누가? 왜?”
“위슨이 테라 시켜서 무너뜨리던데. 이유는 안 물어봐서 몰라. 궁금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던 동굴을 갑자기 무너뜨린 건데,어떻게 그게 안 궁금할 수가 있지?
참 희한한 사고방식이야.
“그게 왜 안 궁금한지 이해가 안 가네.”
“난 그게 왜 궁금한지 이해가 안 된다. 위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했겠지. 우리한테 말 안 해도 되니까 안 한 걸 거고. 너 그렇게 쓸데없는 거에 자꾸 신경 쓰면 머리 다 빠진다.”
“……”
‘같이 다니는 동료인데 그건 너무 무정한 거 아니냐’고 따지려고 했는데.
젠장, 마지막 말에 그만 전의가 깎여버렸다.
대머리를 언급하다니 너무 치사한 거 아니냐!
녀석과 함께 천막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면서 작게 투덜거렸다.
“야박한 자식.”
“오냐, 좀생아.”
곧바로 맞받아치며 거리를 벌리는 메린.
그녀와 거의 동시에 검을 뽑고 대치한 다음,
“후…….”
“덤벼.”
손가락을 까닥이는 그녀에게 달려드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삼십 분 후,
“으으……….”
나는 늘 그랬듯이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고르려 애썼다.
그런 내 입에 여느 때처럼 물약을 흘려 넣은 위슨이, 파랑새의 입을 빌어 메린에게 말을 걸었다.
“메린, 이 놈이 대련하고나서 앉아 있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체력단련은 안 되는 거냐?”
“글쎄? 꽤 신나게 움직이고 있으니 어느 정도 단련되고 있을걸? 애초에 산도 타고 있잖아.”
“그런가?”
아직 입을 뗄 기력이 없어서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아마 어느 정도 체력이 붙긴 했을 거다.
막 산을 올랐던 때보다 덜 지친 상태로 하루를 마치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그녀와 대련할 때마다 내가 이 모양이 되는 건, 애초에 그녀가 그렇게 계획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대련하는 것도 아니니, 한 번에 할 때 거세게 해줘야 훈련이 될 거라나 뭐라나…….
그렇게 무자비하게 나를 두들겨대는 답례로, 나 역시 그녀의 머릿속을 가차없이 헤집어줄 셈이다.
다름아닌 글자로……!
“근데 꼬맹아, 넌 뭐 안 하니?”
양손에 단검 하나씩 들고 혼자 허공에 휘두르던 블루벨이 그에게 물었다.
“위슨이 뭐.”
“아무리 네가 정령을 다룬다고 해도, 전투 중엔 반드시 틈이 생기는 법이야. 마녀들처럼 마법을 펑펑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맨손으로 다니는 건 무슨 배짱이니?”
“무기 있으면 뭐 다르냐? 빈틈 생기는 건 똑같잖아. 그리고 굳이 따지면 물약이 무기이지.”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블루벨은 단검들을 검집에 한 번에 꽂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비상시에 긴급히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무기 하나는 다룰 줄 알아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거지. 너도 일단은 마녀…… 마법사인 거 숨기고 있다며? 그럼 정령을 못 쓸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거 아니야?”
흠, 일리가 있군.
나는 바닥에 엎어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누구 눈치도 볼 필요 없는 길바닥이면 몰라도, 마을 같은 곳에서는 소환수를 꺼낼 수 없다.
이건 목을 고친 뒤에도 마찬가지일 터.
아직 사람들은 마녀에 대한 공포를 잊지 않고 있으니, 공공연히 마법을 쓰는 건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 자신이 말한 것처럼, 물약을 쓰거나 그가 만든 도구를 활용할 수 있겠지만……
역시 무기를 하나 가지고 다니는 게 제일이긴 하지?
“맞아…… 너도 메린한테 검 배워, 검…….”
“검? 왜, 너 혼자 뻗어 있는 게 억울하냐?”
“어.”
“수긍하지 마, 미친놈아.”
그치만……그치만 메린과 대련하는 사람 중에 뻗는 건 나밖에 없는걸!
지난번에 고기를 건드린 괘씸죄로 블루벨이 뻗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그녀가 야채만 건드리고 있는 탓에 무사하다.
개인적으론 야채도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아, 팔다리가 묵직하던 게 조금 사라졌다.
위슨이 먹인 기력회복제 약효가 돌기 시작한 모양이군.
나는 비실비실 일어나 앉은 후, 긴 숨을 내쉬었다.
“후우…… 근데 진짜 무기 하나 있는 게 좋지 않냐? 적어도 단검은 있는 게 마음 편하지 않아? 나이프 말고.”
“위슨 무기 있는데.”
“엉? 뭔데?”
“몸.”
“………”
이거 봐, 이거.이딴 소리를 당당하게 지껄이는 녀석이 있는데, 왜 내가 맨날 미친놈 소리를 듣는 거야?
특히나 위슨 이 자식, 바로 조금 전에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하더니, 지가 더 돌은 소리를 하고 있네.
뭐? 몸이 무기?
뭔 절세미녀가 할 법한 소리를 하고 있어?
당연히 그런 뜻은 아니겠지만 말야!
살짝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문질렀다.
“얌마, 저기 쟤처럼 한 손으로 굳은 빵을 가루내지도 못하면서 그딴 소리를 하냐? 아니면 그 근처에서 노닥거리는 엘프처럼 주먹질로 사람 내장을 곤죽으로 만들 수 있든가.”
“미친놈아, 기준이 왜 그 따위야?! 제발 일반인 관점에서 좀 봐라.”
“아, 그러냐? 그래서, 일반인 기준으로 네 특기가 몸싸움이라고?”
그렇게 되묻자, 위슨은 어깨를 으쓱였다.
“특기까지는 아니고, 위험에 대처할 수는 있어.”
“흠……”
코트를 입지 않아 튜닉에 바지 차림인 그를 살펴보았다.
팔다리 모두 가느다란 게, 주먹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말이지…….
주먹싸움, 그러니까 격투기를 수련한 사람은 대개 근육이 빵빵하지 않나?
그래야 주먹으로 곰도 때려잡고 살 거 아냐.
애초에 가느다란 팔로 거대 멧돼지 배를 뚫는 메린이 이상한 거다.
블루벨은 뭐, 종족이 다르니까 넘어가고.
“왜. 안 믿기냐?”
“미안, 솔직히 안 믿긴다.”
“하, 몸이 거의 뼈다귀나 다름없는데 그걸 누가 믿겠, 꺄으윽?!”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하던 블루벨이 갑자기 귀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위슨이 그녀를 가리키고 있는 걸 보니, 파랑새한테 귀를 울려버리라고 시킨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파랑새에게 귀를 공격당한 지 꽤 되는군.
내가 녀석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도 조금 줄은 것 같고.
흠흠, 드디어 파랑새 녀석이 버릇을 고치기 시작했구나.
그간 잔소리를 퍼 부은 보람이 있었어!
그 대신 블루벨에게 쌍소리를 퍼붓는 것 같지만, 애초에 엘프를 싫어한다니 어쩔 수 없지, 뭐.
홀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위슨이 돌연 나를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야, 카엘, 움직일 수 있냐?”
“어? 응, 조금.”
메린과 대련할 때처럼 마구 뛰어다니지는 못해도, 가볍게 뛰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래는 잠시 낮잠이라도 자야 그만큼 기운을 차릴 수 있겠지만, 위슨의 약 덕분에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
“그래? 그럼 이거 들고 있어봐.”
그렇게 말하며, 위슨은 나에게 빈 유리병 하나를 건넸다.
그런 뒤, 대강 열 걸음 정도 떨어져선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위슨이 그거 빼앗아볼 테니까 한 번 지켜봐라.”
“너 이 자식, 이 기회에 나 두들겨 패려는 속셈이냐?!”
그간 잔소리를 먹은 울분을 모조리 풀려는 게 틀림없어……!
곧바로 벌떡 일어나 경계 태세를 취하자, 위슨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고갯짓하며 손을 내저었다.
“등신아, 위슨이 널 왜 패냐? 메린한테 뒤질 게 뻔한데.”
“……그거 메린 아니면 나 팼을 거란 소리 아니냐?”
“당연하지. 그간 쌓인 게 있는데.”
“아니 내가 뭐 어쨌다고?”
남의 물건을 멋대로 가져가려는 걸 막고, 자꾸 제조법 바꿔서 물약 실험하는 거 못하게 하고, 수프를 빙자한 물약 먹이는 거 금지시킨 것밖에 없구만!
“애초에 그게 잘못된 짓이니까 내가 뭐라고 한 거 아냐. 그래도 너 술 먹는 거랑 동굴 뛰어드는 건 뭐라고 안 하고 있구만. 왜 불만이 쌓여?!”
“그래, 딴 놈도 아닌 네가 하는 소리이니 맞겠지. 위슨도 알아. 그래서 말 듣고 있잖아.”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한 후, 위슨은 가볍게 체조를 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근데 말야……”
그러다 갑자기 자세를 확 낮추었다!
으악, 달려들 셈이구나!
“기분 엿 같은 건 똑같거든!!”
“꺄아아아악?!”
……그렇게 검은 바람이 매서운 기세로 나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기껏 회복한 기운을 다 써버리고 바닥에 도로 드러누운 것이었다.
“이, 박정한, 자식, 같으니……!”
잔기침 섞인 숨을 몰아쉬며 녀석을 규탄했다.
으으,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은 사람을 괴롭히다니, 이 나쁜 자식!
그리고 위슨은 사악한 마법사답게,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뺏기고서 계속 덤비래?”
“그럼 그걸 가만히 있냐! 콜록콜록……! 하으…….”
아니, 단단히 손에 쥐고 있던 게 갑자기 홱 낚아채였는데, 그걸 그냥 보고만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고.
게다가 이 녀석, 이것 보라는 듯이 유리병을 흔들고 말야!
그 모습에 왠지 오기가 솟아서, 이번엔 내가 빼앗아주겠다고 덤벼들었다.
……그리고 성공하기 직전에 기운이 죄다 빠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큭…… 거의 다 됐었는데……!”
“그건 네 착각이지. 위슨은 하나도 안 지쳤잖아.”
“망할.”
체력이 떨어진 상태이긴 했지만, 어쨌든 진 건 진 거지.
하…… 맨몸의 위슨도 못 이기는 건가?
그것도 네 살이나 어린 놈인데……!
부스스 일어나 앉아서 한숨을 푹 쉬자,녀석이 내 등을 퍽퍽 치며 입을 열었다.
“야, 너무 실망하지 마. 네가 탈진한 상태만 아니었다면 달랐을걸? 역시 제대로 수련하는 놈은 뭐가 다르구만.”
“하, 꼭 수련한 적 없는 것처럼 말하는구만? 더럽게 잘 움직이던데, 타고나기라도 했다는 거냐?”
뚱한 눈으로 녀석을 보면서 쏘아붙이자, 녀석이 눈을 살짝 크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련은 안 했지. 플레마랑 술래잡기 했을 뿐인데? 나무열매 빼앗기 같은 것도 하고.”
“그게 수련이 아니면 뭐냐!”
아니, 스라소니의 싸대기 공격을 피하고, 녀석의 움직임을 따라잡으려 뛰어다니는 게 수련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정령들이 진짜 그를 강하게 키우기로 굳게 마음 먹었던 모양이다.
세상에, 고양이 친척인 스라소니를 붙여서 민첩성 훈련을 시키다니……!
아무튼 위슨이 빈틈을 공격당해도 알아서 대처할 수 있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안 맞아봤지만, 아마 주먹이나 발차기도 제법 매섭겠지.
민첩하게 움직이도록 훈련도 시켰는데, 주먹과 발을 더 강하게 내지르는 훈련을 안 했을 리가 없으니까.
“결국 나는 내 걱정만 하면 되는구나.”
“어. 맞아. 넌 네 걱정이나 하면 돼. 네가 제일 약하니까.”
“하아아아……….”
또 다시 눈앞에 들이밀어진 무자비한 사실에, 다시 한번 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 뒤, 메린의 글공부를 봐주기도 하고 늑대와 힘싸움을 하거나 노닥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점심을 대강 때우려는 순간,
“다녀왔습니다~”
“……”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간 꼬마가 해맑게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두 눈을 천으로 가린 어떤 여자의 손을 잡고서.
“……위슨.”
“오냐.”
위슨이 허리춤에서 꺼낸 병을 바닥에 던지자, 뭉실거리는 연기 속에서커다란 거북이가나타났다.
그는 거북이의 등껍질을 툭툭 두드리며, 온 몸이 빨갛게 물든 채 번들번들거리는 녀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씻겨.”
“허허허~”
“엥? 으와아앗?!”
푸샤아아
거북이가 곧바로 빨간 꼬마에게 물을 내뿜었다!
대뜸 물벼락을 맞은 꼬마는 팔을 휘저으며 허둥거렸고,
“켁, 케헥……! 으으, 갑자기 뭐하시는 거에요!”
이윽고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로나가 되어 빽 소리질렀다.
이야, 역시 물의 정령이 만드는 물은 대단하구나.
비누 한 조각 안 썼는데도 깔끔하게 씻어버렸네.
……그보다 로나 녀석, 역시 남의 피를 뒤집어쓴 거였구만?!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녀에게 소리쳤다.
“야, 임마, 밥 먹으려는 순간에 피투성이 꼴로 오면 어떡하냐! 아, 이게 아니지, 대체 뭘 얼마나 죽였길래 그런 꼴이 된 거야?!”
“그거요? 마지막 남은 놈이 숭배자들의 생명력을 다 빨아서 변신했거든요. 그걸 처치했더니, 놈이 모은 피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바람에…….”
그리고 그걸 죄다 맞은 탓에 온통 빨개졌다는 듯했다.
세상에, 변신이라니…….
악마숭배자들이 무기 들고 덤비는 수준인 줄 알았는데, 뒤틀린 괴물로 변한 놈과 싸우는 모양이군.
이야, 전투사제 굉장해.
근데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나는 옷에서 물기를 빨아들이는 거북이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로나에게 물었다.
“근데 그 사람은 누구야?”
“제물로 잡혀 있던 사람이요. 거기 혼자 둘 순 없어서 데려왔어요.”
혼자 둘 순 없어서……?
허허헛, 그렇구나. 싹 다 처치해버렸구나!
아무래도 악마숭배자가 섞인 마을이 아니라, 그들만 모여 사는 본거지였던 모양이지?
그리고 혼자서 그걸 죄다……
하, 나 참, 진짜 뭐라 할 말이 없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는 로나가 데려온 여자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피부도 갈색이고, 알록달록한 문양이 그려진 옷도 그렇고……
이 산의 다른 부락에 살다가 납치된 사람인 게 분명했다.
눈가리개도 씌워져 있고 말이지.
……근데 왜 씌운 채로 데리고 왔대?
얼굴 보이기 싫어서 그런가?
사제인 걸 알면 적대할까봐?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구해준 사람을, 고작 사제라는 이유로 적대하진 않을 것 같은데.
나는 여자의 눈가리개를 가리키며 로나에게 물었다.
“굳이 그거 계속 씌울 필요 없지 않냐? 포로 잡은 것 같아서 좀 그런데.”
“아, 이거요? 어쩔 수 없어요. 눈이 멀었거든요.”
“아, 맹인이시구나.”
“네. 눈을 지져버렸다네요.”
“………”
빙그레 웃는 얼굴로 끔찍한 소리를 하는 로나였다.
돌겠네, 진짜.
이 녀석, 설마 내가 살짝 질색해하는 걸 보고 싶어서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니겠지?
아니었으면 좋겠다. 무섭잖아.
“……그 놈들이?”
마른 침을 삼키며 묻자, 로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이 분 친족들이 그랬대요. 위대한 영의 신부로 선택이 되었다던가? 맞나요?”
“……맞아요.”
살짝 겁에 질린 듯한 목소리로, 여자가 조용히 대답했다.
“산 위에 사는 위대한 영…… 드래곤의 신부로 간택되어서…….”
“허……?”
이건 또 뭔 소리야……?
상상을 초월한 발언에,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