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화 〉 223화 : 흔하다면 흔한 일 (2)
* * *
드래곤의 신부로 간택된 몸이다.
개미 눈곱만큼도 예상하지 못한 여자의 말에, 나 스스로도 튀어나가는 거 아닐까 싶을 만큼 눈이 커졌다.
신부는 그렇다 치고, 드래곤이라니?
내가 알기로 이 대륙엔 이제 드래곤이 없는데?
다 죽은 건지, 아니면 어느 한적한 곳에서 잠이나 자고 있는 건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시점에서 죄다 모습을 감췄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머나먼 옛날에 대현자 마일린이 죄다 죽여버린 거 아닌가 싶지만 말야.
아무튼 지금 이 대륙에서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드래곤은 딱 한 마리밖에 없다.
북쪽 산에 봉인되었다가 깨어난 놈, 아트라토스 하나뿐인 것이다.
“어…… 설마 그 아트라토스의 신부로……?!”
“아트라토스……? 아니요, 제 낭군될 분의 성함은 키리오스에요.”
어라? 아니네.이름이 완전히 다르다.
흠……, 그럼 드래곤을 자칭하는 무언가로군.
……그런데 이 산맥은 되살아난 시체인 거대 그리폰이랑 흰 머리 미친 엘프가 날뛰던 곳 아니었나?
대피하긴커녕, 인간 외의 존재에게 보낼 신부를 고르고 있었다니 굉장히 평화로웠는걸?!
나는 불안한 듯이 손을 꼼지락거리는 여자에게 물었다.
“저기, 당신의 부락은 그리폰이나 대머리 수리에게 공격 안 받았나요? 저희가 지나온 곳 몇몇은 처참히 부숴졌는데 말이죠.”
“그리폰…… 아아, 네, 들은 적이 있어요. 산맥의 북부와 중부에 옛 산신이 다시 강림했다고……. 저희는 위대한 영의 손이 닿는 곳에 있어서 무사했답니다.”
“북부와 중부……? 그럼 당신은 남쪽에 살던 분이시군요.”
“아, 네, 맞아요.”
여자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산맥은 대륙의 동서를 구분하는 경계선이나 다름없는데, 살짝 뭉툭한 J 형태로 되어 있다.
아마 여자가 살던 부락은 모퉁이라고 해야 하나?
그 부근에 있겠지.
그나저나 위대한 영의 손이 닿아서 무사했다니.
영역이나 권역 같은, 뭐 그런 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는 건, 이 여자를 신부로 맞이할 자 역시 예사로운 존재가 아닐 터.
설마 진짜 드래곤인가?
나는 여자에게 재차 물었다.
“신부로 간택됐다고 하셨죠? 그자를 본 적이 있나요?”
“이야기만 들었어요.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를 마주한 자는 돌이 되어 굳어버리고, 입에서 뿜는 불꽃을 당해낼 자가 없다고……. 설사 그에 벗어난다고 해도, 그가 길게 뻗은 꼬리를 휘둘러서 도망치는 자를 모조리 카우스트의 목구멍 속으로 떨어뜨린다고…….”
어이씨, 어째 점점 드래곤 같은데!
일단 인간이 아닌 건 확실하다.
그건 그렇고……
“그 카우스트의 목구멍이라는 게 뭐죠? 산에 사는 분들이 자주 입에 올리시던데요.”
“모르시나요……? 머나먼 옛날에, 카우스트라는 거대한 거인이 있었어요. 그 거인이 이 대륙에 죽어 쓰러질 때, 몸 여기저기가 흩어지면서 산이 되었답니다.
이 산맥은 그의 얼굴이에요. 카우스트의 목구멍은 그 이름대로,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깊은 골짜기이죠. 거인이 품은 원한과 사념(??)이 지금도 그곳에서 솟아나온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흠흠,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다.
다른 세 녀석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어깨를 으쓱이는 등,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이다.
모르는 건 나랑 메린 뿐인 듯했다.
뭐, 우리 고향 마을이 워낙 구석에 처박혀 있어야지.
아버지가 매년 수도에 다녀올 때마다 책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가져오긴 하셨지만, 역시 그걸론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마녀가 백여 년간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애들을 납치했다는 것도 전혀 몰랐는걸, 뭐.
……근데 생각해보니 좀 희한하네.
우리 마을에서 마녀에 대한 소문이 돌지 않았다는 건, 달리 말하면 그들이 우리 마을에 한 번도 안 왔다는 소리잖아?
왜지? 재능 있는 애들만 납치한 것도 아닌 것 같던데.
뭐, 아무튼 눈앞에 있는 이 갈색피부의 아가씨는 인간이 아닌 생물의 신부로서, 혼인식을 올리러 가다가 납치되었다는 듯했다.
얄궂게도 신부로 간택되었을 때 눈이 멀어버려, 어느 방향으로 끌려왔는지조차 알 수 없다.
여자는 침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진짜 어이가 없군.
새신부의 눈을 멀게 한 이유는 뻔하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남편으로 맞이해야 하니, 절대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거겠지.
화상으로 흉해진 눈가는 가리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그 때문에 이 새신부는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되었다.
떠나온 집으로 돌아갈 수도, 본디 향해야 하는 곳으로도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음…… 이를 어찌한다?
나는 턱을 문지르며 여자에게 물었다.
“저기…… 아, 맞다. 죄송해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저는 카엘입니다.”
“마이라…… 마이라에요.”
“마이라 씨, 신랑분이 어디 사시는지 모르시나요? 대충 방향이라도 알려주시면 좋겠는데요.”
“……저를, 그곳으로 데려가시려는 건가요?”
“방향 봐서요.”
아니면 어차피 우리도 남쪽으로 가는 거, 그녀가 떠나온 부락에 다시 데려다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뭐, 그쪽에서 알아서 사람을 꾸리든가 해서 다시 그 위대한 영이라는 존재에게 보내겠지.
“………그렇겠죠. 그게 순리이겠죠.”
마이라는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작게 한숨을 쉰 후 고개를 들었다.
“우리를 돌보는 위대한 영, 키리오스 님은 카우스트의 코끝에 머무르고 계세요. 이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이죠.
굉장히 날카로워서, 태양이 서쪽으로 지나가다가 항상 베인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 태양이 흘린 피 때문에 그 주변 땅은 붉게 물들어 있죠.”
흠흠, 이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주변 땅이 붉은 곳이다…….
서쪽으로 가던 태양 어쩌고 하는 걸 보니, 마이라가 살던 곳에서 서쪽에 있는 곳이겠군.
산맥 형태를 생각하면 당연한 거겠지만.
그럼 여기서 남서쪽 어느 곳에 있는 게 될 거 같은데.
나는 배낭에서 지도와 나침판을 꺼내어, 이곳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표시한 것과, 위슨이 표시해둔 ‘끝없는 장서관’의 위치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여기서 남서쪽이면 대충 같은 방향인데.”
일단 위치가 확실한 ‘장서관’으로 가는 방향과 비슷하다.
음, 마이라가 가야 하는 곳이 이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라고 했으니, 어느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보면 어느 산으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나무랑 둔덕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서 안 보이……지만 잠깐.
안 보이면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면 되잖아?
마침 적절한 인재도 있고.
“블루벨,”
“싫어.”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나보고 산꼭대기 올라갔다 오라고 하려는 거 아냐?”
나 참, 어이가 없네.
내가 그런 의미 없는 짓을 시킬 사람으로 보이나?
나는 헛웃음을 켜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산꼭대기 올라가서 제일 높은 산이 어디에 있는지 지도에 표시하라고 하려 했구만. 나 참.”
“뭐가 ‘나 참’이야, 미친놈아, 그게 그거잖아! 싫어, 안 해!”
“아, 왜.”
“무섭단 말야!”
“…………”
나무 꼭대기나 지붕은 괜찮고, 산꼭대기는 무섭다고?
벼랑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사람이 뭐?
산꼭대기가 무서워?
뭐야, 이 선택적 고소공포는?
높은 데를 무서워할 거면 계단부터 무서워하든가!
“……진짜 무서워서 싫다는 거지? 그냥 귀찮아서 구라 치는 거 아니고?”
“진짜라고! 저번에 여기 지날 때 궁금해서 올라가봤는데…… 으으으, 올라갈 땐 괜찮았는데 내려올 때가……!”
생각만 해도 무서운지, 블루벨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다른 생물이야 발 미끄러지면 끝장이니까 본능적으로 무서워하는 건데, 블루벨은 엘프잖아.
그것도 옛 능력이 남아있는 엘프.
떨어질 일이 없을 텐데 왜 무서워하지?
“엄살 같은데…….”
“안 올라가본 놈이 뭘 안다고 지껄여?! 저 위가 바람이 얼마나 센 줄 아냐, 이 새끼야! 사람 하나 홱 날아갈 거 같다고, 모르면 아가리 싸물어!!”
“우와.”
이야, 곧바로 눈에 핏발 세우고 물어뜯으려고 하네.
쌍소리까지 퍼붓다니, 진짜로 무서웠던 모양이다.
나는 그녀에게 두 손 들고 항복 표시를 하며 사과했다.
“미안, 블루벨. 내가 말실수했어. 사과할 테니까 칼자루에서 손 떼.”
“……”
“진짜 미안하다니까. 사과의 뜻으로, 다음에 위슨이 술 나눠줄 때, 내 몫은 댁 줄게. 응? 화 풀어.”
위슨은 이따금 자신이 담근 술을 나와 메린에게 한두 잔씩 나눠주고 있다.
마시면 기운이 나는 편이라 조금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러자 블루벨은 험악하게 구기던 얼굴을 편 후, 툭 내뱉듯이 말했다.
“……흥, 내가 너그러운 걸 다행으로 알아. ……지도 줘.”
“엥? 왜?”
“어쨌든 산봉우리들이 보이면 되는 거 아냐? 꼭대기까지 안 가도 벼랑에 가면 보일 테니, 보고 와줄게.”
허? 이건 예상밖인걸?
이 술꾼이 화를 푼 것도 모자라 내 부탁을 어떻게든 들어주려 하다니, 생각보다 위슨의 술이 퍽 좋은 축에 속하는 모양이다.
“차, 착각하지 마! 네가 저 꼬맹이 술 준다고 하니까 특별히 해주는 거야! 너 도와주려고 하는 거 아니라고!”
“어, 응. 알아. 그래도 고마워.”
“……흥!!”
블루벨은 내가 내민 지도를 홱 낚아채듯이 가져가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그대로 떠나려는 찰나, 별안간 마이라가 조금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저를 거기 데려가주시려거든…… 카엘 씨에게 먼저 부탁드릴 게 있어요.”
“부탁? 뭔데요?”
“제…… 제 순결을 가져가주세요.”
“…………네?”
혹시나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되묻자, 마이라는 굳게 결심했다는 듯이 두 손을 꽉 쥔 채 한층 더 힘주어 말했다.
“제 처녀를 빼앗아주세요.”
“…………………”
이 여자가 미치셨나……?
새하얗게 텅 비워진 머릿속에 그 생각만이 고요히 떠올랐다.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멍하니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로나도 위슨도 블루벨도 모두 넋이 나가 있다.
오로지 메린만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마이라를 보고 있었다.
불쾌감이 아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우리 중 누구도 다시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동안, 그녀가 대신 입을 열어,
“왜요?”
내가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져주었다.
마이라는 그 물음에 살짝 고개를 떨군 후,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저는…… 어차피 혼자서는 어디에도 갈 수 없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저를 위대한 영이 계신 곳으로 데려가신다 해도 따를 수밖에요. 아니, 그래야만 하겠죠. 그래야 제 동포들이 무사할 테니까.
하지만 정 그렇다면…… 첫 경험은 같은 인간이었으면 해요.”
“이해가…… 잘…….”
겨우겨우 그 말을 꺼내자, 마이라가 갑자기 어깨를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눈가리개가 젖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마 착각이겠지.
타버린 두 눈에선 이제 눈물이 흐르지 않을 테니까.
“저는…… 저는 이제 앞으로 평생 드래곤에게 안기게 돼요. 어쩌면 못 버티고 죽을지도 모르죠! 상대는 인간이 아닌걸!
언젠가 사랑하는 낭군님에게 바치려고, 일부러 풍요의 여신대회도 참가 안 했는데! 으흑, 눈이 이 꼴이 됐으니, 설령 다른 곳으로 간다 해도 평범한 여인으로 살긴 글렀고요!”
“……”
“그래서 내심, 이런 운명에서 나를 구해주실 분이 나타나시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는데……. 아아, 차라리 그때 저항하지 말 걸!
그랬다면 지금쯤 죽었겠지만, 그래도 남자는 실컷 알고 죽었을 텐데!”
보이지 않는 그녀의 눈물과 함께 비탄에 젖어가던 마음이, 뒷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메말라버렸다.
뭐? 남자는 실컷……? 이 여자가 지금 뭔 소리하는 거야?!
“처음엔 공포에 질린 비명, 그 다음은 고통에 찬 흐느낌! 그 뒤 얼마 안 가서 다들 쾌감에 헐떡이고……! 아아, 그걸 바로 옆에서 하루종일 밤새서 듣는 내 기분을 당신이 알아요?! 눈이 안 보여서 귀가 더 예민해졌는데……!”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알고 싶지도 않거든요! 이 사람이 지금 애들도 있는데 대낮에 뭔 소리하는 거에요?!”
그러나 이미 마이라는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머리를 감싸며 혼자 계속 떠들기 시작했다.
“그때…… 그때 그 놈이 ‘너도 곧 저렇게 될 것’이라며 음흉하게 웃으면서 더듬어도 고개를 저었는데!
처음엔 저항하던 사람이 ‘인생 절반 손해봤다’나 ‘자* 좋아, 더줘’나‘*액 받아서 행복해’라고 소리지르는 들으면서도 절대 안 넘어갈 거라고 굳게 마음먹었는데!
결국 인간 아닌 것에게 안길 운명이라면, 순결이라도 인간 사내에게 바칠 거에요!
어차피 그분은 처녀이든 아니든 신경 안 쓰시는걸! 지난번 신부는 과부였는걸!!”
마이라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미친 사람처럼 마구 외치더니,
“카엘 씨! 절 안아주세요! 날 범해줘!!”
“꺄아아악?!”
곧장 나에게 안겨들었다!!
눈 안 보이는 사람 맞아, 이거?!
살짝 사선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똑바로 달려들었는데!!
덕분에 나는 그대로 그녀에게 깔리고 말았다.
“윽?!”
아앗, 방금 전까진 별 생각 안 들던 거대하면서 물컹한 두 덩어리가 가슴에 닿고 있어……!
안돼안돼, 안 된다고, 이거 진짜 위험해!!
“으아악! 진정해요, 마이라 씨, 진정하고 좀 떨어져요! 아, 떨어지라니까?! 야, 이 미친년아, 떨어지라고!!”
“왜 거부하는 거죠?! 저 얼굴은 어쨌든 몸매는 자신 있다고요! 가슴이라든가 특히!”
“아아아, 얼굴에 누르지 마, 옷 벗지 마!! 다리 더듬지도 말고!! 당신 사실 눈 보이는 거 아냐?!”
“절 범하지 않겠다면, 제가 당신을 범할 수밖에요!! 처녀로 죽을까보냐!!”
“그냥 뒤져!!”
망할, 그렇다고 이거 확 내팽개칠 수도 없고……!
일단 마이라의 두 손목을 꽉 붙들고 어떻게든 그 몸을 떼어내려 애썼다.
“아잇, 씨발……! 아니 뭐 이리 필사적이야?!”
“당신이야말로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절 거부하는 거죠?! 혹시 남자 좋아해요?! 아니면 고자에요?!”
“다 아니거든요! 생판 모르는 사람이 덮치는 걸 누가 좋아하냐고! 게다가 전 좋아하는 여자가……!”
……잠깐. 그러고보니 메린 녀석, 왜 조용하지?
나에게 엉겨붙는 마이라를 온 힘을 다해 밀어내면서, 고개를 돌려 메린을 보았다.
“……”
그녀는 뚱한 눈으로 나와 마이라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 지난번에 마구마구 내뿜던 서늘한 살기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다.
아니 진짜 어이가 없네?!
“야, 임마, 메린 이 자식아!! 너 왜 그냥 보고만 있냐?! 블루벨이 붙을 땐 온갖 생지랄은 다 떨면서 왜 지금은 얌전히 있냐고!”
“뭐. 그 여자 나보다 가슴 크잖아. 그리고 그냥 여자이고.”
“뭔 소리야, 그게! 아무튼 보고만 있지 말고 도와줘! 이 여자 좀 떼달라고!”
“내가 왜? 네 힘으로도 뿌리칠 수 있잖아. 싫으면 내던지면 될 걸.”
“다칠까봐 못하고 있는 거잖아, 등신아아아!! 새끼들아, 너네도 그만 넋 놓고 좀 도와줘어어!!”
내 간절한 호소에, 세 사람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마이라를 떼어놓았다.
그러자 이번엔 그녀가 위슨에게 달라붙었고, 결국 메린이 그녀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키는 것으로 소란이 일단락되었다.
오오, 인간의 광기란 대체……!
그보다위슨은 한 마디도 안 했는데, 녀석이 남자인 건 어떻게 알고 덤빈 거지?
진짜 눈 안 보이는 거 맞아?!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숨을 고르며, 치솟아 오른 빡침과 열기와 기타 등등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하아, 하아…… 씨발, 진짜 별별 * 같은 일은 다 겪네, 이런 미친 개 같은……!”
“진짜 싫어하는 거였구나. 근데도 거기가 서는 거냐? 되게 신기하네.”
“본능이다, 이 자식아, 불만 있냐, 이 나쁜 새끼야!!”
울분에 찬 고함을 지르자, 그녀가 쪼그리고 앉아서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화 풀어라. 왜 화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으으으……!!”
하…… 돌겠네, 진짜.
대낮부터 이게 뭔 해괴망측한 꼴이야?
다짜고짜 여자가 덮친 것도 웃기고, 얼굴보다 큰 가슴이 마구 눌러댔다고 아랫도리가 반응한 것도 참담하다.
……근데 가장 기가 막힌 건, 메린이 화 풀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고 진짜로 화가 풀려간다는 거다.
아오, 빌어먹을.
“하…… 진짜 존나 엿 같네.”
“화 많이 났어? 내가 뭐 잘못했던 거냐?”
“………아니. 넌 잘못 없어.”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나는 그저 한숨만 푹 쉬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