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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50화 (250/475)

〈 250화 〉 241화 :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3)

* * *

목욕탕이라고?

빨래도 할 수 있다고?

아니 뭐, 믿기 힘들긴 하지만, 위슨이 글자까지 남겼으니 진짜로 이 문 너머에 있는 거겠지.

근데 미로 안에 왜 그딴 시설이 있는 건데?

여기 설계한 놈,대체 무슨 꿍꿍이이지?

“목욕탕에 빨래까지 된다고요? 이야~ 마침 잘됐네요~ 저희 몰골이 지금 말이 아니잖아요!”

어지간히 기쁜지, 로나는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헤실 웃었다.

“위슨이 지금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너무 태평한 거 아니냐?”

“에이, 위슨 씨는 무사하실 거에요. 힘이 없으신 것도 아니고, 독에도 어느 정도 면역이 있으시니까요. 아마 이 미로의 끝이나 바깥에서, 굉장히 느긋~하게 기다리고 계실걸요.”

“아니 그래도 식량이………아, 위슨 녀석도 아까 그 방을 지나왔을 테니 먹고 챙겼겠군.”

싱글벙글한 얼굴로 먹다 남은 후식을 포장하던 메린처럼.

그것도 상하기 쉬운 생크림케이크나 크림파이가 아닌, 그럭저럭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치즈케이크와 사과푸딩을 가져간다는 치밀함까지 보여주었다.

후, 버터 비스킷이나 젤리 같은 과자 종류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쯤 메린은 피가 잔뜩 묻은 장갑으로 과자 집어먹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입가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 핥아 먹었겠지.

얼굴에 몬스터의 피가 마구 튀어 있는데도 아무 거리낌없이……!

……보기 좋지 않고 몸에도 안 좋은 걸 넘어서, 조금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을 거다.

아무튼 위슨이 무사할 거라는 건 나도 동의하고, 또 그러리라 믿는다.

그에겐 엘크 외에도 다른 정령이 있고, 설령 정령을 부를 수 없다 해도 물약이나 그 양피지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터.

혼자 떨어져 있는 거에 겁먹고 움츠러들 성격도 아니니 괜찮겠지.

그래도……

“그래도 역시 기다리고 있는 거잖아. 가능한 빨리 가줘야지.”

“그럼 이 꼴로 계속 가시려고요?”

“음…….”

눈을 깜빡이며 묻는 로나의 말에, 내 시선은 자연히 엘크를 향했다.

몬스터를 해치우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가 이따금 졸다가 그의 등에 엎드린 탓에, 그의 몸은 지금 내 옷에 묻어 있던 피 때문에 여기저기 얼룩이 져 있다.

그 때문에 한껏 기분이 쳐져 있는 그는, 내 시선을 알아채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자~알 생각하고 답하쇼잉.”

시큰둥하게 말하면서 되새김질을 하는 그의 눈은 좀더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냥 가자고 하면 나를 조져버리겠다고……!

“……”

오오, 보였다!

내가 그냥 간다고 하면 녀석이 저 뿔로 날 공중으로 걷어올린 다음, 내 입에서 씻고 가자는 말이 나올 때까지 마구 굴려버릴 거라는 미래가 보였어!

……후우, 무서운 자식 같으니.

나는 엘크의 살기등등한 눈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씻기만……”

“빨래도 해야 되는데. 이거 너무 오래되면 안 지워질 거 아냐.”

메린이 투덜거리자, 블루벨도 그에 동조하듯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건조까진 안 해도 세탁은 한 번 해야 돼. 그 꼬맹이는 분명 무사할걸?”

“……”

“이 미로가 그 녀석에게 버거웠다면, 입구나 아까 그 방에서 우릴 기다렸을 거야. 하지만 녀석은 표식을 남기면서 계속 혼자 갔어. 꼭 척후병처럼.”

척후병이라……

그럴싸한데?

위슨이 갈림길마다 표식을 남길 수 있었던 건,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대지의 정령인 늑대의 힘으로 길을 알았을 거고.

……흠, 그럼 이렇게 된 건가?

모종의 방법으로 이 미로에 들어온 위슨은, 미로 끝으로 나가는 것 외엔 나가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늑대를 불러내어 길을 알아낸 뒤, 표식을 남기며 출구로 향했다.

한편, 그는 엘크와 나를 연결시킨 다음, 자신과의 연결을 끊어버렸다.

그래야 우리가 그를 찾아 이 안으로 올 거고, 또 엘크가 있으면 그가 남긴 표식을 잘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겠지.

녀석이 갑자기 사라진 게 진짜 그 이유 때문이라 해도, 여전히 나는 잔소리를 퍼부어줄 생각이다.

그 녀석은 아직 동굴 입구에 있었을 때, 무언가 느낀 것처럼 정색하고서 이쪽으로 왔다.

아니 뭘 느꼈는지 말을 하고 가야지, 왜 혼자 가냐고!

……뭐, 안 물어본 나도 책임이 있긴 하다.

앞으로는 꼬박꼬박 확인받든가 해야지, 원.

어쨌든, 아무리 위슨이 무사태평하게 노닥거리고 있을 거라 해도, 우리가 여기서 여유를 부려도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대강 씻기만 하고 길을 서둘러야 하겠지만……

피범벅이 된 옷을 배낭에 넣고 다니면 다른 몬스터나 짐승이 꼬일 수도 있고…….

하…… 어쩔 수 없구만.

“목욕에 빨래라……, 시간 얼마나 쓸지 모르겠네.”

한숨을 쉬며 그렇게 푸념하자, 메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오래 안 걸리게 후딱후딱 하면 되지.”

“말은 쉽지, 임마.”

하……, 기왕 하는 거 시간이라도 절약하게, 큰 탕이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으면 좋겠다.

목욕하는 동안 누가 대신 빨래를 해준다면 훨씬 더 좋고.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문을 열자,

“어머, 어서오세,”

콰직!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로나가 방 안에서 철퇴를 들고 서 있는 게 보였다.

꼭 크게 한 방 휘두른 것 같은 자세인데.

그리고 이 방에도 입구 바로 맞은편에 문이 달려 있는데, 그 앞에 사지가 괴상하게 뒤틀려 있는 여자가 하나 쓰러져 있다.

어째서 그곳에 여자가 널부러져 있는지,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

아무 이유도 없이 로나가 그러진 않았겠지.

하지만 어떤 위협도 해오지 않은 사람을, 그녀가 뜬금없이 공격한 것이다.

그것도 내 눈앞에서.

그 사실에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려는 순간,

사아악……

여자의 몸이 모래처럼 변해 바닥에 쏟아져 내리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내 속에서 올라오던 격정도, 그와 함께 도로 저 아래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뭐야?”

“글쎄요? 악마의 기운이 느껴져서 일단 쳐봤는데요. 와, 진짜 깜짝 놀랐네요!”

“놀란 건 나야……. 먼저 말 좀 해, 제발…….”

괜히 화낼 뻔했네…….

깊고 깊은 심연까지 닿도록 한숨을 쉬며, 나는 터벅터벅 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십시오, 손님~”

“……”

그러자 곧바로, 정갈하게 옷을 입은 남녀 여럿이 일렬로 서서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무척이나 태연한 목소리로.

……눈앞에서 사람이 철퇴를 맞고 날아가선 모래가 되어 사라졌는데,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한다고?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일단 사람은 아닌 게 분명했다.

“신사 한 분에 숙녀 세 분이시군요. 자아, 안으로 드시지요.”

“타고 오신 짐승들도 저희가 말끔히 손질해드리겠습니다.”

무어라 대답하기 전에, 남자 넷이 와선 말들이 짊어지고 있던 배낭들을 우리에게 건넸다.

그런 뒤, 재빠른 손놀림으로 고삐를 넘겨받더니 방 한편으로 가버렸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얼이 빠져 있는데, 갑자기 여자들이 들러붙더니, 안쪽에 있는 또 다른 방으로 나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다른 세 사람도 뒤에서 따라오고 있긴 한데, 그래도 뭐지, 이거?!

“아, 저기, 잠깐, 어디로……!”

“그야 물론, 피로를 푸실 수 있는 곳이지요~ 후훗, 긴장하지 마세요~”

“저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남김없이, 영혼까지 전~부, 후후, 말끔하게 해드릴테니까요~”

구석구석?!

아, 아아, 맞아, 여기 목욕탕이지!

들은 적이 있어, 돈을 좀더 내면 여종업원에게 목욕 시중을 받을 수 있다고!

“아, 아니요, 괜찮아요, 저 혼자 씻을게요!!”

황급히 종업원들의 손에서 빠져나와, 두 손을 내밀며 열심히 사양했다.

그보다 네 명이나 나한테 붙어 있던 건가!

어쩐지 발이 거의 공중에 뜬 것처럼 쭉쭉 밀리더라!

“어머, 사양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요~ 요금을 낼 필요도 없으시다고요~”

“저희가 아주 성심성의껏 모실게요~ 아니, 부디 모시게 해주세요~”

“원하신다면, 후훗, 온 몸으로 봉사…해드릴 수 있는데~”

오, 온 몸으로 봉사……!

으아악, 안 돼! 유혹에 넘어가지 마, 이 새끼야!

여러모로 큰일난다고!

봐, 뒤에 있는 여자 셋이 엄청나게 건조하게 쳐다보고 있잖아!

아니 근데 나 처음부터 사양하고 있구만, 왜 그딴 눈으로 보는 거야?!

억울해!

“그러니 손님~”

“봉사는 목욕 말고 빨래 쪽으로 힘내주세요!!”

“어머, 아쉬워라~”

정말로 아쉽다는 듯이 어깨를 떨어뜨린 뒤, 여종업원 넷은 나에게서 약간 더 멀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사근사근하게 웃으면서 계속 방으로 가라며 손짓했다.

자연히 나는 다시 세 아가씨에게 합류했고, 로나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나를 뚱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카엘 님, 이런 곳에 자주 와보셨나봐요?”

“아니야!”

곧바로 부정하자, 이번엔 블루벨이 코웃음을 치면서 입을 열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도 남자니까 경험 있을 거 아냐. 인간 남자들이 여기 우글우글하는 거 봤어. 시중받을 여자를 지명하기도 하던데?”

“난 목욕탕 가본 적 없어! 애초에 마을에 있지도 않았고!”

“그래~ 목욕탕은 없었고, 목욕집은 있었지. 개별 방에 목욕통 하나씩 놓여 있는 목욕집 말야. 너 거기 자주 갔잖아.”

“비누 사러 간 거 알잖아, 메린 너까지 이러기냐?!”

우리 고향 마을의 목욕집에선, 목욕 서비스뿐 아니라 여러 향초를 넣어 만든 비누나 향기름도 팔고 있었다.

나는 그저 엄마 심부름으로 비누를 사러 갔을 뿐, 맹세코 거기서 목욕한 적이 없다!

“그래~ 그렇겠지~”

“………”

왜지? 왜 안 믿는 거야?

내가 이 자식들 앞에서 여자 밝힌 적도 없고, 방금 전에도 온 힘을 다해 유혹을 뿌리쳤는데, 대체 왜……?

억울한 심정을 가득 담아 세 사람을 노려보자, 메린이 뚱한 눈으로 나를 마주보며 말했다.

“왜 못 믿는지 알려줄까?”

“어.”

“너 저 여자들이 달라붙었을 때 얼굴 빨개지고 헤벌쭉거렸는데, 지금도 그러고 있어.”

“……젠장!”

아아, 슬프기 그지없구나.

팔을 휘감았던 그 푹신하고 말랑한 감촉만으로 마구 흔들리며 계속 상기하려 하다니, ‘남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생물이리라!

하늘을 우러러 통탄하며, 종업원들의 안내를 받아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온 방 안엔, 두 개의 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그림도, 심지어 꽃병조차 하나 놓여있지 않다.

이 삭막하기까지 한 공간에 우리를 들인 후, 여종업원 넷은 호호 웃으며 각각의 문을 가리켰다.

“보시다시피 탕은 둘로 나뉘어져 있답니다~ 편하신 대로 이용하시면 돼요~”

“옷은 안에 있는 바구니에 담아 두시면, 저희가 잠시 후에 가져가서 말끔히 세탁해드릴게요~”

“갑옷이라 해도 아무런 문제없으니 안심하고 뭐든 맡겨주세요~”

“자아,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각자 한 마디씩 하더니, 각각의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라는 듯이 손짓했다.

잠시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깜빡인 후, 나는 세 아가씨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따 봐.”

“아, 네~ 이따 봬요~”

……응? 로나 녀석, 웬일이지?

메린이랑 들어가라고 놀릴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내게 인사하곤 메린과 블루벨을 끌고 먼저 문으로 들어갔다!

오오, 드디어 놋지빌식 악령퇴치법, 통칭 딱밤이 효과를 보기 시작한 건가!

아아…… 정말 길고 긴 싸움이었어…….

이제 평화가 찾아온 거야……!

깊이 안도하며 다른 문으로 들어가자, 맞은편에 엷은 커튼으로 가려진 출입구가 있고, 그 근처에 커다란 바구니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흠흠, 저 커튼 너머에 목욕통이 있는 거겠지?

……근데 무슨 콸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며, 나는 완전히 더러워진 옷들을 전부 벗어 바구니에 담고, 커튼을 젖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목욕통이 아니라 작은 호수가 있다!

호숫가엔 술을 따르는 여인의 석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술동이에서 끊임없이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것도 김이 펄펄 나는 물이……!

왜 콸콸 소리가 들리나 했더니, 진짜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어서 그런 거였다.

근데 어디서 물을 끓여서 여기로 보내고 있는 거지?

맨 처음, 통로에서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화덕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는데.

게다가 저렇게 뜨거운 물이 쉴 새 없이 나오고 있는데도,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이 없다.

천장에 구멍이 나 있긴 한데, 저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전부 내보내기엔 턱없이 모자랄 거 같은데.

“진짜 신기하네.”

“그러게………………허?”

뭐야, 이 목소리. 이게 왜 여기서 들려?

환청인가? 환청이겠지?

……환청이라고 해줘!

간절히 빌며 딱딱하게 굳은 고개를 힘겹게 돌리자,

“나 왔어.”

“…………”

갈색머리를 길다랗게 풀어서 앞뒤로 늘어뜨리고 있는 메린이 손을 살짝 흔들고 있었다.

머리카락만으로 몸을 가린 채로!!

“꺄아아아아!!”

곧바로 호수에 뛰어들어서 등을 돌렸다!

“이야, 이때까지 본 것 중에 제일 빠른 것 같은데?”

“너 미쳤어?! 갑자기 뭐야, 왜 쳐들어온 건데?!”

탕이 좁아서 온 건 절대 아닐 거야.

일행 중에 가장 몸집이 큰 내가 들어왔는데도, 아직 공간이 한참 남을 정도로 넓은 탕이다.

분명 반대쪽에도 이거랑 똑같은 크기의 호수……가 아니라 탕이 마련되어 있을 터.

세 여자 중에 메린을 빼곤 죄다 체구가 작으니, 자리가 모자랄 리가 없을 텐데!

“왜 왔냐고? 그야 너랑 같이 씻으러 왔지.”

“뭐? 아니 대체 왜?! 아, 설마……! 그래, 로나가 보냈구나!”

“아닌데?”

……어라? 로나가 보낸 게 아니라고?

그럼 메린 스스로 이런 음란, 아니 허무맹랑한 짓을 벌인 거야?

어이씨, 그것도 충분히 있을 법하긴 한데……!

“아, 근데 걔가 그러더라. 너 혼자선 등을 씻지 못할 테니, 위슨이 없어서 좀 아쉽다고. 그래서 내가 해주러 왔어. 마침 너랑 나는 볼 거 다 본 사이니까 괜찮지 않냐?”

“……”

로나 이 자식, 미끼를 던졌구나!

어디까지나 자신의 제안이 아닌, 메린 저 녀석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유도하다니……!

젠장, 완전히 당했어.

아까 그 문에서 날 놀리지 않은 것도 분명 이걸 위한 밑작업이었을 거야.

날 방심시키려는 수작이었던 거지!

제기랄, 이를 어쩌지?

옷은 여기 들어올 때 이미 빨래감으로 다 내놨을 테니,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잖아.

아무리 실내라고 해도, 다 큰 아가씨를 알몸으로 나다니게 할 순 없어.

그렇다고 이대로 같이 씻기엔 여러모로 위험하고……!

으으…… 하지만 메린은 순수하게 나를 생각해서 온 거잖아.

불손한 의도도 전혀 없고, 또 혼자서는 등을 못 씻는 것도 맞는 말이고……

철퍽.

“히익?!”

갑자기 등에 뭔가 푹 젖은 게 닿았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거품 묻은 스펀지를 든 메린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눈을 질끈 감은 채 소리쳤다.

“가, 갑자기 뭐하는……!”

“등 씻어준다니까?”

그리고 메린은 무척이나 태연하게 대꾸하면서 다시 스펀지로 등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으와아아, 역시 안 돼!

“돼돼돼, 됐어, 안 해도 돼! 네가 해줄 필요 없어!”

“필요 없긴 개뿔. 너 지금 등이 엄청 얼룩덜룩한 건 아냐? 대체 아까 얼마나 땀을 흘렸길래…….”

“……”

빌어먹을 가고일에 거미 놈들, 왜 그렇게 개떼 같이 몰려와선……!

젠장, 아주아주 명확한 명분이 생겨버렸잖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속으로 원망하고 있는데, 그녀가 등을 쿡쿡 찌르더니 내 앞쪽으로 비누와 다른 스펀지가 든 나무통을 내밀었다.

“그만 쪽팔려 하고 앞쪽 씻지? 머리도 감고. 아니면 내가 다,”

“아뇨아뇨아뇨, 제가 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냉큼 통을 받아들고, 스펀지에 비누를 문질러서 거품을 일으킨 다음 몸을 닦기 시작했다.

슥슥슥.

살짝 까끌한 스펀지로 여기저기 문지르자, 이내 몸에 묻어있던먼지와 땀, 그리고 핏자국들을 머금은 거품이 하나 둘, 물 위에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 거품들이 전부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맨 안쪽 벽에 구멍이 하나 나 있다.

아마 물이 넘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겠지.

의외로 되게 철두철미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떠내려가는 거품을 보면서 머리까지 다 감았을 무렵, 물이 찰랑이며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눈앞을 막아섰다.

“……”

목선부터 시작해 매끄러운 곡선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물방울이 마구 맺혀 있는 등.

여기저기 얼룩이 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얗고 아름다운 그녀의 등이다.

“네 차례야.”

“………”

……애써 머릿속에서 밀어내고 있던 그녀가, 머리카락 한 올조차 가리지 않은 등을 나에게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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