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57화 (257/475)

〈 257화 〉 248화 : 끝없고 한없는 서고 (3)

* * *

기둥을 따라가듯, 천천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무수히 꽂혀 있는 이 기둥의 끝이 어디에 있을지 보려고 했는데……

세상에, 그 미로의 천장처럼 깜깜해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거 대체 얼마나 높은 거야?

게다가, 중앙의 기둥에만 책이 꽂혀 있는 게 아니었다.

거의 홀리듯 기둥을 향해 몇 걸음 다가간 후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벽이 완전히 책장 그 자체였다!

아니, 조명등 때문에 약간 간격이 있으니, 그냥 책장을 벽으로 삼았다고 하는 게 훨씬 낫겠군.

이 많은 책을 어디서 구한 거지……?

진짜 말 그대로 한없이 위로 뻗어 있는 듯한 책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득 무언가가 기둥 주위를 빙글빙글 돌거나 책장 주변에 둥둥 떠 있는 게 보였다.

아마 다른 마법사……

여기서 말하는 사서이겠지.

도저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이 경이로운 광경을,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훑어본 다음, 나는 살짝 싱글거리고 있는 줄무늬 로브 남자에게 말했다.

“여기 대체 몇 권이나 있는 거죠?”

“글쎄요? 세어본 적이 없네요. 그걸 궁금해한 적도 없고요. 뭐,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책이 늘어나고 있고, 이 서고의 벽과 기둥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만 말씀드리죠.”

우와, ‘세상의 온갖 지식이 모이는 곳’이라고 하더니, 허세나 과장이 아니었어.

진짜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었다!

그보다 책장들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니, 역시 마법과 관련된 곳이 맞긴 하구나.

그 탑이라는 이름의 거대하고 높은 흑단나무와 좋은 승부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둠 속에 숨겨진 천장을 멀거니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저 위에 있는 책은 어떻게 꺼내는 거죠? 디딤대 같은 게 안 보이는데.”

사다리는 물론이고, 움직이는 발판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이전에, 여기서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을지부터 의심스럽다.

내 질문을 들은 남자는 빙긋 웃었다.

“물론 저희가 꺼내드리죠. 책을 꺼내고 꽂는 것, 그게 저희 일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일반적인 손님이었다면 ‘어떤 지식을 찾으시냐’고 여쭙겠지만, 그건 안 되겠네요. 일단은 저희 관장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우리를 데리고 건너편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또 다시 짧은 복도를 지나자, 로비와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넓이는 몇 배나 더 되는 듯한 홀에 들어서게 되었다.

중앙에는 서너 명이 나란히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을 듯한 커다란 나선형 계단이, 사방 벽에는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 문이 깔려 있다.

그리고 수정을 깎아 만든 듯한 조명등이 벽과 천장에 달려서 불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여긴 그래도 천장이 제대로 있네.

근데 창문이 하나도 없다.

책들이 있던 서고야 책이 상하니까 일부러 안 만든 거겠지만, 왜 홀에도 만들지 않은 건지 살짝 의문이 들었다.

“……?”

문득 바람 소리 비슷한 게 들린 것 같아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허둥지둥 자리를 피하는 게 보였다.

하나같이 날개모양 핀을 꽂은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들이다.

몰래 우리 얘기를 했나보군.

나는 멀어지는 그들의 등을 바라보며 남자에게 물었다.

“저 모자 쓴 사람들도 마법사…… 사서인가요?”

“네? 아~ 아니요, 기록자입니다.”

역시 아니로군.

어쩐지 여자가 한두 명 섞여 있더라.

참고로 여기까지 오면서 슬쩍 본 사서들은,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죄다 남자였다.

“흠…… 그럼 저 사람들이 쓴 책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건가요?”

“아니요. 저들이 기록하는 건 특별한 사건들뿐입니다. 이 장서관에 지금도 추가되고 있는 책들은 모두 저절로 생겨나는 거고요.”

말도 안 돼……!

필사이긴 해도 책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설사 마법으로 해결한다고 해도, 내용을 쓸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할 텐데?

나도 모르게 고개가 옆으로 저어졌다.

“알아서 책이 만들어지다니, 죄송한데 믿기 힘드네요.”

“하하, 무척 오랜만에 듣는 말이네요. 뭐, 여긴 그런 곳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내가 놀래는 모습을 보는 게 퍽 즐거운지, 남자는 만면에 웃음을 짓고 다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중앙의 계단이 아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문으로 들어간 뒤, 남자는 우리를 이끌고 기나긴 복도를 쭉 걸어갔다.

간간이 맞은편에서 오는 다른 사서나 기록자들과 마주쳤는데, 남자에게 가볍게 인사하면서 우리를 힐끔거리는 게 약간 신경에 거슬렸다.

그런 내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남자는 나를 힐끗 돌아보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죄송합니다. 손님이 오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라서, 다들 들떴나봐요.”

입구에 그런 미로를 뒀는데도 ‘오랜만’이라니, 손님용 길이 따로 있나보군.

여기에 미리 연락하고 왔다면, 그런 괴상한 미로를 통과하지 않고 편하게 올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연락하느냐가 또 문제이긴 하지만.

흠, 관장을 만나면 물어봐야겠군.

이 남자의 반응을 보아, 위슨이 무척 귀한 손님인 것 같으니, 그를 통해서 물으면 될 듯했다.

“관장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음……… 굉장히 유쾌하신 분입니다.”

뭐지? 방금 엄청나게 고뇌하는 표정이 스친 것 같은데?

유쾌하다는 게 그냥 단순히 잘 웃고 재미있는 사람이란 게 아닌 건 분명했다.

일단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두는 게 좋겠군.

이윽고 이란 명패가 달린 문 앞에 도착한 다음, 남자는 문을 몇 번 두드리고는 그대로 문을 열어버렸다.

……아무 대답도 안 들렸는데, 진짜 들어가도 되는 건가?

“들어가세요. 관장님이 기다리십니다.”

“아, 예…….”

주춤주춤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에 놓여 있는 커다란 책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뒤에는 벽에 걸린 커다란 지도를 멀거니 보고 있는 어떤 사람이 보인다.

아마 저 사람이 관장이겠지.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슬쩍 방을 둘러보았다.

한쪽 벽에는 책이 천장까지 가득 꽂혀 있는 천장이, 또 다른 벽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가득 들어있는 장식장이 놓여 있다.

아마 개인공간으로 이어질 듯한 문 옆의 벽에는, 길다란 시계추가 달린 올빼미 모양 시계가 걸려 있었다.

철커덩, 뒤쪽에서 문이 닫히는 희미한 소리가 무슨 신호였던 모양이다.

발소리를 여럿 울리면서 가까이 가고 있는데도 뒤를 돌아보지 않던 관장이, 문 소리가 들려서야 겨우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후드를 푹 눌러쓰고 있는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지만, 빙그레 웃고 있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관장은 어째서인지 허리를 실룩거리는 걸음으로 가까이 오며,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를 천천히 벗었다.

그러자 구불구불하게 뻗은 긴 연회색 머리카락이 불빛에 반짝이며,

“우후후, 만나서 반가워요, 여러분.”

“……?!”

눈가에 점이 있는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 머릿속에 울렸다.

여자? 웬 여자?

여기 사서들, 그러니까 마법사들은 죄다 남자만 있는 거 아니었어?

근데 장서관의 관장이 여자라니, 그새 전통을 바꾸었나……?

망연히 쳐다보는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관장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부드럽게 웃으면서 책상 앞에 섰다. 그 상태로, 우리 일행 한 사람 한 사람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영원하고 끝없는 장서관’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저는 오이스, 이곳의 25번째 관장을 맡고 있는 몸이랍니다. 잘 부탁드려요.”

우아하게 허리를 숙이는 그녀를 따라, 나도 모르게 덩달아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 예, 처음 뵙겠습니다, 오이스 관장님. 카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어, 제 동반자인 메린과……”

“메린? 어머, 혹시 성씨가 소더 맞나요?”

“네? 아, 네, 그렇기는 한데……”

……잠깐, 이 사람이 메린의 이름을 어떻게 알지?

나는 그 선포식에서 대대적으로 까발렸지만, 메린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름을 밝힌 적이 없을 텐데?

강한 위화감과 함께 경계심이 엄습하려는 찰나,

“꺄아~ 어머어머어머, 세상에, 어쩌면 좋아! 새끼 부엉이가 찾아온 것도 감격스러운데!”

갑자기 제자리에서 뛸 듯이 기뻐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러더니 내 손을 꽉 잡더니 위아래로 붕붕 흔드는데, 보기와 다르게 굉장히 억센 힘이 느껴졌다.

“그럼 당신이 용사님이군요?! 우와, 1부를 읽었을 때 어떤 분일지 굉장히 궁금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부드러운 인상이시네요!”

“어, 네? 1부를 읽었다뇨? 아니지, 저희를 아세요?”

“당연히 알죠! 한창 기록되고 있는 서사인데! 이야~ 이렇게 직접 만나는 날이 오다니, 지루하고 지루한 관장직을 계속 해온 보람이 있네요!”

기록? 서사?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 순간, 머릿속에 아까 그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날개모양 핀이 달린 모자를 쓴 기록자들을 봤을 때 들었던 말.

­­저들이 기록하는 건 특별한 사건들뿐입니다.

설마 그 ‘특별한 사건’이란 거에 이번 여정도 포함되어 있는 건가?!

관장은 즐거운 듯이 활짝 웃으며, 우리 주위를 통통 뛰면서 빙글빙글 돌았다.

“흐름 자체는 흔한 편이었지만, 후후후,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은근히 인상적이었어요! 용사님이 귀족 아가씨를 위해 보검을 훔치는 것도 그렇지만, 역시 마지막 장에 여기 메린 아가씨와 그날 밤에 춤추면서 이마에 키스하던 게 제일 좋았어요!”

“아, 그건……!”

이런 망할, 보검을 훔친 건 비밀인데!

아앗, 옆과 뒤에서 시선이 느껴져……!

옆은 그냥 의외라는 듯한 시선인데, 뒤쪽은 따갑다 못해 뒤통수가 저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카엘 님…… 도둑질하셨어요……?”

와, 로나 목소리 가라앉은 거 봐.

좀 지나치지 않나 싶을 만큼 항상 밝고 활기찼던 목소리가, 왠지 질투하는 메린처럼 묵직하고 서늘하다!

으으, 뒤돌기 싫어!

하지만 여기서 돌아보지 않으면 몇 배는 더 무서워질 거야!

나는 굳게 마음을 먹고 뒤를 돌아보았다.

“……”

로나는 아무런 감정도 들어있지 않은 잿빛 눈동자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두 손에 철퇴를 쥔 채!

히익, 죽는다!

저거 맞으면 몸이 아니라 정신이 죽어버린다고!

나는 두 손을 내밀며 필사적으로 말했다.

“아냐아냐아냐,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진짜야. 그건 어디까지나 좋은 뜻에서……”

“도둑질, 하셨어요?”

“했다고 할 수도 있고…… 아, 아아아아, 그래! 주인! 주인 찾아준 거야! 그러니까 그 철퇴 좀 내려놓지 않으시겠습니까, 사제님?”

쿵!

철퇴가 바닥을 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제자리에서 펄쩍 뛰고 말았다.

“……몰래 훔쳐서 피터 왕자에게 가져다주신 거군요? 게다가 가짜 검을 그 자리에 두어서 속이기까지 하셨고요.

그런 사악하고 위험한 짓을, 저나 메린 님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 몰래 저지르셨군요?”

“…………네.”

사실 위슨은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들 모르게 한 건 맞으니 그냥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애초에 녀석이 말리는 걸 듣지 않고 저지른 거니까.

그러자 로나는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쉬더니,

“정신이 있으신 거에요?!”

방 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화를 퍼붓기 시작했다!

“아무리 당신이 용사라는 자각이 없다 해도 정도가 있죠! 어떻게 그런 위험한 일에 함부로 뛰어들 수가 있어요?!”

“아니, 그…….”

“애초에 당신이 왜 그 일에 나선 거죠?! 아무라 사람 좋은 성격이라 해도 그렇지!!”

“히으……”

……그렇게 로나의 꾸지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블루벨이 쏘아대는 화살만큼이나 빠르게, 평소에 로나 자신이 휘두르는 철퇴와 같이 강력하게.

“후…… 아셨죠? 다음부턴 주의하세요.”

마침내 폭풍같이 몰아치던 호통이 끝났을 즈음, 나는 자신이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거의 엎드리다시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나 같은 놈은 이러고 있어야지.

무슨 자격으로 고개를 들겠어?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는 자각도 없는 등신 얼간이인걸.

흑…… 나는 정말 바보야…….

“야, 뭘 잘했다고 우냐? 그러게 누가 호구 짓 하래?”

“……안 울거든. 그리고 호구도 아니고.”

“네가 호구가 아니면, 블루벨도 술꾼 아니겠네. 어휴, 등신 새끼, 언제나 정신 차릴래?”

그렇게 말하면서도, 메린은 바닥에 닿도록 처박고 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흑, 역시 메린은 상냥해…….

“어머, 이런,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나보네요. 죄송해요.”

“관장님이 잘못하신 건 없어요~ 카엘 님이 너무 다정하신 탓이죠. 세상에, 그렇다고 도둑질까지 하시다니……!”

거짓을 말하는 죄를 씻는다는 명목으로 비명 터져나오는 방법을 써서 진실을 끌어내는 사제님이,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물건을 훔치는 짓은 도무지 용납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뭐, 도둑질 그 자체보다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그 거대한 판에 끼어들었다는 것 때문에 더 화를 냈던 거지만.

……그나마 일이 잘 끝났으니 망정이지.

그때 어디 다치거나 했었다면, 붉은 사제님의 분노는 지금보다 세 배는 더 컸겠지?

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 그래도 메린이 머리 쓰다듬어주니까 나쁘기만 한 건 아니군.

“……”

얼이 나갈 만큼 혼쭐이 난 다음에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나 자신이 보기에도 어이가 없다.

속에 차오른 울적함이 그녀의 손길에 조금씩 흩어져가는 듯한 기분에,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진짜 이 녀석에게 푹 빠져 있나 봐.

그렇게 자조하는 내 귀에, 관장이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또 들렸다.

“그나저나 참 신기하네요. 엘프분이 동료가 되시다니.”

“……왜요?”

관장을 힐끗 올려다보며 되묻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새끼 부엉이가 저 분에게 엄청난 물약을 먹였잖아요? 그거 때문에 여러 위병들의 눈앞에서 마구 물을 내뿜고 헐떡이면서 애원까지 했는데 동료가 되다니……”

“아.”

저런, 저것도 비밀이었는데.

그러나 위슨은 나처럼 얼굴색이 변하기는커녕, 극히 태연한 표정으로 뒷짐을 진 채 블루벨을 힐끗힐끗 쳐다볼 뿐이었다.

“위병들이 보는 앞에서……? 어, 그럼 설마 그 꿈이……?”

홀로 중얼거리는 그녀의 눈에서 온기가 사악 사라져가는 게 보였다.

완전히 냉담해진 짙은 녹색 눈동자가 천천히 위슨을 향했고,그는 무던한 표정으로 그 시선을 마주하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 있었던 일이다.”

“……그래. 그랬구나.”

응? 격분해서 날뛸 줄 알았는데, 블루벨은 의외로 굉장히 차분했다.

오래 묵은 수수께끼를 해결한 것처럼 후련한 얼굴로 한숨을 푹 쉰 후, 그녀는 위슨을 다시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 맞을래, 아니면 내 앞에서 그 약 먹고 분수가 될래?”

“둘 다 싫은데.”

“그럼 뒈져, 개새끼야!!”

그냥 폭풍 전날의 고요였구나!

고함을 지르며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블루벨과, 그런 그녀를 요리조리 피하며 방 안을 마구 뛰어다니는 위슨.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던 관장실은, 이 두 사람의 살기 어린 술래잡기로 인해 점차 쑥대밭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머…… 제가 또 쓸데없는 말을 했나보네요?”

“네.”

조금 난감한 듯이 묻는 관장에게,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