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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63화 (263/475)

〈 263화 〉 254화 : 두근두근! 설렘 가득한 견학! (2)

* * *

남자는 멍하니 서서 눈을 끔벅거리다,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설마 성공하신 겁니까?”

“후후, 웃후후후! 역시 눈썰미가 좋다니까요! 귀여운 우리 클라이드, 정말 대견하기도 하지!”

“……아, 네.”

클라이드라 불린 남자는, 콧소리가 잔뜩 들어간 관장 놈의 칭찬을 듣고 뭐라 형용하기 힘든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놈이 여자가 되기 전의 생김새를 기억하고 있는 탓이리라.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이 고개를 살짝 흔든 후, 건조한 눈으로 관장 놈을 쳐다보며 입을 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셨죠? 가능한 짧고 확실하게 말씀해주세요.”

“쌀쌀맞긴! 간만에 부른 건데, 같이 차라도 마시고 그러면 정 좋아요?”

“지극히 송구스럽습니다만, 단 오 분이라도 더 오래 여기 있고 싶지 않습니다. 차를 드시고 싶으시다면 직속 제자분들과 하시지요.”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등골이 서릴 만큼 싸늘한 말투였다.

저 놈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모양이지?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관장 놈은, 질척이는 웃음소리를 내며 말을 꺼냈다.

“클라이드도 참, 지능 없는 고깃덩어리와 어떻게 차를 마셔요? 마력을 내뿜는 것 말고는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무능한 놈들이잖아요. 차라리 인형을 앉히지.”

“뵐 때마다 말씀드리는 거지만, 관장님 때문에 그렇게 되신 분들입니다.”

“매번 하는 대답인데, 후후, 그 애들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나를 따랐으니 결말에 대한 책임도 그 애들 자신에게 있답니다.”

막힘없이 대답하는 놈의 모습에, 클라이드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서 왜 부르신 거죠?”

“내 정신 좀 봐! 대화가 너무 즐거워서 깜빡했네요! 여기 이 네 분이 오늘 이곳에 묵으실 거에요. 견학도 요청하셨으니, 클라이드가 맡아서 안내해드리세요. 식사와 침소도 챙겨드리고요.”

“……다섯 분인 것 같은데, 나머지 한 분은요?”

그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묻자, 놈이 위슨을 가리키며 방긋 웃었다.

“이 아이는 제가 교습해주기로 했답니다. 아아, 걱정 마세요! 지금의 저에겐 클라이드, 당신 말고 다른 사내는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요!”

“아, 예. 얼른 늙어 죽든가 해야지, 돌아버리겠네요.”

대놓고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투덜거리고 있는데도, 관장 놈은 화를 내기는커녕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또 다시 깊은 한숨을 쉰 후, 클라이드는 바닥에 앉은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일어나라는 듯이 손짓했다.

“죄송합니다만, 네 분께서는 속히 저를 따라와주십시오.”

군인처럼 꽤 강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바닥에서 일어서서 짐을 챙겼다.

……으으으, 배낭이 무거워졌어.

안 그래도 별로 세지도 않았는데, 여자가 되면서 힘이 더 약해졌나봐.

몸의 무게중심도 좀 달라진 것 같고…….

그 탓에 걸음을 떼자마자 몸이 비틀거렸지만, 메린이 곧바로 팔을 잡아준 덕분에 꼴사납게 넘어지진 않았다.

“……”

그렇게 마주하게 된 그녀의 얼굴은 거의 정면에 있었다.

……서 있을 땐 항상 나를 올려다보던 눈동자가, 지금은 이렇게 똑바로 마주하고 있다.

왠지 평소보다 더 가깝게 보이는 것 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버렸다.

“오, 여자가 되니까 나보다 작아졌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이지만.”

“별 차이 안 나는 거잖아……….”

하, 씨발, 내 목소리 진짜 적응 안 되네.

오늘은 가급적 입을 다물고 있어야겠군.

한숨을 쉬며 몇 걸음 떼어보았다.

으, 신발도 그렇고 옷 전부 헐거워져서 걷기 힘들어!

게다가 위에는 흔들리면서 자기 존재를 과시하는데, 아래쪽은 원래 느꼈던 존재감이 없어져서 기분이 진짜 이상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는 클라이드의 시선이란……

그야말로 관장 놈을 보던 시선과 똑같았다.

아니야…….

난 그런 놈 아니란 말야……!!

“괜찮으시겠어요? 여기 나갈 때까지만이라도 메린 님에게 업히시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그게 나을걸? 안 그러면 저 클라이드라는 인간이 속 터져 죽을 거 같다. 봐, 실시간으로 얼굴 구겨지고 있어.”

“………”

진짜로 차츰차츰 표정이 더 험악해지고 있었다!

어지간히 여기 있기 싫은가보군.

메린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배낭을 앞으로 옮겨 메고 나에게 등을 보였다.

“업혀라.”

“……웬일이냐? 평소엔 업기 싫다고 하면서.”

“그땐 키가 안 맞았잖아. 지금은 엇비슷하니 괜찮지. 업혀.”

“하…………”

진짜 꼴이 말이 아니로구만.

걸음마 못 배운 팔푼이도 아니고, 다리 멀쩡한 놈이 제 발로 못 걸어서 업혀가야 하다니.

하지만 클라이드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으으, 어쩔 수 없지.

신발이 따로 노는 상태로 그 긴 복도를 빨리 걷는 건 불가능하다.

안 그래도 울적한 마음에 자괴감이 더해지겠지만, 여기선 메린에게 업히는 수밖에 없어.

침통한 심정으로 그녀의 등에 올라타기 전, 나는 위슨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내일 보자………….”

[이야, 다 죽어가네. 네네, 내일 봐요,누나.]

“크흑……!”

녀석이 히죽거리며 띄운 말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관장실을 나와서 복도를 걸어나가는 동안, 클라이드는 우리에게 단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꽤 서둘러 걷는 게, 한시라도 빨리 이 복도에서 나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메린에게 업히지 않았다면, 시작부터 굉장히 삐걱거렸겠군.

무겁고도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 가운데, 이윽고 다시 그 커다란 홀로 나왔다.

클라이드는 우리가 전부 문 바깥으로 빠져나온 걸 확인한 후, 굳은 표정으로 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런 뒤에야, 그는 굳게 꽉 닫고 있던 입을 열고,

“하아아아…………”

마치 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길고도 긴 한숨을 쉬었다.

그대로 문에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아서 눈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저기, 괜찮으세요?”

그는 조심스럽게 묻는 로나를 잠시 멍하니 올려다보더니, 갑자기 놀란 얼굴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마구 내저었다.

“아, 예!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긴장이 좀 풀렸을 뿐입니다!”

“역시 관장님이 버거우신가보네요.”

“관장님도 그렇지만…… 이 안에 있는 다른 분들이 더 심합니다. 기운을 주체할 줄을 모르고 마구 뿜어대거든요. 그냥 있기만 해도 짓눌리는 기분이에요.”

홀로 몸서리를 칠 정도로 심하게 압박을 받는 모양이었다.

음, 근데 난 그런 거 못 느꼈는데.

메린을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도 그냥 눈만 멀뚱거리는 거 보면, 마법사만 느낄 수 있는 듯했다.

이번엔 좀더 짧은 한숨을 쉰 후, 클라이드는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탓에 조금 전엔 실례를 범했습니다. 불쾌하시게 한 것 사과드립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 중에 그걸 불쾌해할 만큼 섬세한 사람은 없거든요.”

툭 내던지는 블루벨의 말에, 나 역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압박감은 잘 모르겠지만, 그걸 빼더라도 그 관장 놈은 그리 좋은 대화 상대가 못 된다.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는 놈이니까.

단 일 초라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근데 그런 놈의 가르침을 받는다니……

하, 위슨 녀석, 이상한 물이 드는 건 아니겠지?

“그리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일단 방부터 안내해드리는 게 낫겠죠? 그 모습으로는 조금 다니시기 힘들 것 같네요. 잠시만요.”

나를 보면서 그렇게 말한 후, 클라이드는 눈을 감고 허공에 손가락을 까닥거리기 시작했다.

위에서 아래로 선을 긋거나, 허공에 콕콕 점을 찍는 등, 무언가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주문을 외우는 건지, 별안간 입을 달싹이며 소리없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같이, 그가 모종의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세 아가씨는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어떻게 할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속옷이랑 옷은 내 거 입히면 될 거고, 신발은 어쩌지? 야, 잠깐 벗어봐.”

말은 벗어보라고 하면서 제 손으로 신발을 벗겨버리는 메린이었다.

이 녀석, 어째 평소보다 더 거침없는 거 같은데 내 착각인가?

메린은 자신도 신발 한쪽을 벗더니, 내 발 옆에 자신의 발을 나란히 대었다.

……세상에, 내가 얘보다 발이 더 작네.

“내 것도 조금 헐렁하겠는데?”

“저 정도면…… 내 거는 맞겠네. 하, 어쩔 수 없지. 이번만 특별히 빌려줄게. 신발이 커서 어기적거리는 놈 때문에 이상한 사람 취급받긴 싫으니까.

그럼 머리는 어떻게 할까? 메린처럼 땋아내리기엔 길이가 짧으니까…… 몇 가닥만 땋고 나머지는 그냥 둘까?”

그렇게 말하면서 내 머리를 만진 순간, 블루벨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머리 꼴이…… 하, 너 평소에 빗 안 쓰지? 이거 빗질하는 데에만 시간 좀 걸리겠네.”

“와, 진짜네요! 손가락이 안 내려가요!”

“……”

그치만…… 그치만 나 남자인걸!

남자는 보통 귀족 말고는 빗 안 쓰는걸!

내가 칠칠맞은 게 아니라고!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

“아, 그러고보니 이름도 다른 거 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카엘이라는 이름은 남자만 쓰잖아요. 음…… 카엘라는 어때요?”

“아예 연관 없는 걸로 하는 게 낫지 않아? 릴리 같은 걸로.”

“싫어.”

블루벨의 제안을 칼같이 잘라버렸다.

딱히 백합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때가 좋지 않다.

지금 그 이름을 써선 안 될 거 같아.

무언가 위험한 느낌이 마구마구 들고 있어……!

“그럼 아그네스? 엘리자베스? 클로에? 클라라? 헤더? 제니퍼?”

“……에스트레야.”

불쑥 중얼거린 내 말에, 온갖 여자 이름을 대던 로나의 눈이 살짝 동그래졌다.

로나는 그대로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이내 방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에스트레야! 혹시 무슨 뜻이라도 있나요?”

“……별이라는 뜻이야.”

에스트레야.

지금은 없어진 옛 언어들 중 하나에서 ‘별’을 가리키는 말이자, 내 성씨인 ‘에스트렐’의 어원이다.

아버지는 종종 그렇게 운을 떼면서 별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별이라…… 그러고보니, 지난번에 그 무도회에서 만난 변태 백작이 그랬던가?

에스트렐이, 아이레라는 곳의 천문학자 가문 이름이었다고.

여기엔 세상의 모든 지식이 모인다 했으니, 분명 그에 대한 정보도 찾을 수 있을 터.

여유가 되면 한 번 찾아볼까?

물론 그저 부르기만 같을 뿐,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별개의 가문일 수도 있지만……

뭐, 어때. 그냥 재미로 찾아보는 건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둘러싼 채 진지하게 벌어지고 있는 세 아가씨의 토론을 애써 흘려버리고 있었다.

“여러분, 방이 배정되었습니다. 안내해드릴 테니 저에게 가까이 와주세요.”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클라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지, 이 다음이 더 곤욕이잖아!

이제 이 세 녀석이 신나게 떠들던 걸 내가 직접 겪을 거 아냐!

하…… 진짜 돌겠네.

한숨을 푹푹 쉬며 터덜터덜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내 속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그럼 준비되셨죠? 이동합니다.”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그가 발을 구르자, 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약간 널따란 복도, 살짝 끼익거리는 나무바닥, 그리고 양쪽 벽에 세워져 있는 문들이 보인다.

조금 커다랗고 고급스러운 여관이 떠오르는 이 복도엔, 조용하지만 쓸쓸하지는 않은……

포근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클라이드는 쭉 나열되어 있는 문들 중, 둥그런 화환이 걸려 있는 두 문을 가리켰다.

“이 두 방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보시다시피 이 두 곳만 화환으로 표시해놨으니, 방이 헷갈리실 일은 없을 거에요.

음…… 옷을 갈아입으셔야 하죠? 얼마나 걸릴까요?”

“대충 한 시간쯤……?”

블루벨이 말끝을 흐리며, 동의를 구하듯 다른 두 아가씨를 힐끗 쳐다보았다.

끄덕끄덕, 메린과 로나 모두 힘차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고, 누구도 내 의견을 묻지 않은 채 이야기가 끝나버렸다.

뭐, 그건 상관없는데, 이 녀석들을 보니 불안해죽겠다.

하나같이 표정이 너무 밝고 화사해……!

메린조차도 뭘 기대하는 건지 눈을 빛내고 있다!

이 녀석들,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할 생각인 거지?

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한 시간 뒤에 이 복도로 나와주세요. 이따 뵙겠습니다.”

빙그레 웃으며 말을 마친 그의 주변이, 불현듯 아지랑이가 핀 것처럼 일렁거렸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새에모습이사라져버렸다.

혼자 이동할 때는 발을 구를 필요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한 시간인가?

그냥 옷만 갈아입으면 되는 거 같은데, 어째서 이 녀석들은 한 시간이라는 긴 유예를 요청한 것일까?

“우후후후……”

그리고 왜 음산하게 웃고 지랄들을 하고 계신 걸까?

“하……. 죽일 테면 죽여라……….”

“누가 죽인댔냐? 하여간 호들갑 떨긴.”

“자~ 한 시간밖에 없어! 빨리빨리 움직이자!”

“네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 내려놓은 나를 끌고 가는 여자들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경쾌했다.

언제 그렇게 사이 좋아진 거냐고 캐묻고 싶어질 만큼 서로 화기애애하게 웃으면서, 녀석들은 노란 화환이 걸린 문을 열고 나를 안에 밀어넣었다.

쿵.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어쩐지 굉장히 크게 들렸다.

아아, 올 게 왔구나.

……저 아래 땅 속 깊은 데까지 가라앉은 마음속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렇게 영겁과 같은 한 시간이 흐른 후,

“……허.”

나는 또 다시 클라이드의 멍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래, 놀라겠지.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부스스하고 후줄근한 차림이었으니까.

나도 처음에 거울 봤을 땐 생판 모르는 사람이 비춰져서 엄청 놀랐다.

……산발이었던 머리는 말끔히 빗어진 데다, 일부는 블루벨의 손에 곱게 땋여 있다.

치수가 맞지 않아 우스꽝스러웠던 옷차림은, 메린이 전에 입던 셔츠에 조끼, 그리고 바지를 입으면서 한결 깔끔해진 상태였다.

그뿐인가?

어째서인지 화장품을 가지고 있던 블루벨 때문에, 입술까지 약간 화사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그런 나를, 턱이 떡 벌어진 채 상하좌우로 살펴본 후, 클라이드는 얼이 나간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에, 어디를 봐도 여성이시네요.”

“크흑……!”

바닥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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