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75화 (275/475)

〈 275화 〉 266화 : 위법의 값 (3)

* * *

저 사람이 셰인?

근데 왜 방 밖에 엎드려 있는 거지?

그 꽃뱀에게 꿀만 빨리고 버림받은 게 분해서 저러고 있나?

그럼 여기에 기계장치가 없는 것도, 저 사람이 손을 쓴 덕분…이라 볼 수도 있지만…….

“셰인!!”

격렬한 노성에 몸이 절로 흠칫 떨렸다.

곧바로 옆을 돌아보자, 클라이드가 두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으악, 안 돼!

“잠깐……!”

재빨리 손을 뻗었다.

붙잡아야……되는데, 젠장, 키가 작아져서 안 닿잖아!!

“영차.”

“크악!”

털썩!

그리고 다음 순간, 터크가 클라이드를 바닥에 깔아뭉개고 있었다.

클라이드의 양손을 등 뒤로 꺾어서 붙잡고, 그 목에 팔을 감아 꽉 조이면서, 터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진정해, 욘석아.”

“이거, 놔요……!”

“진정하라고.”

“커흑!”

터크가 나지막이 말하면서 팔에 힘을 더 주자, 숨이 막힌클라이드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거의 잦아들려 할 즈음에야, 터크는 목을 조르던 팔을 풀어주고 그의 위에서 비켜섰다.

“심정은 아는데, 그럴수록 더 침착해야지. 어디 보자………”

막혔던 숨을 한꺼번에 쉬느라 정신이 없는 클라이드의 등을 몇 번 두드려 준 후, 터크는 문 앞에 엎드려 있는 사서를 향해 외쳤다.

“셰인! 너 셰인 글렌이냐?! 고개 들어봐라!”

“흐흑…… 으……?”

흐느끼던 사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민무늬 로브에 두꺼운 테가 달린 안경…… 왠지 눈에 익은데.

어디서 봤더라?

…………아, 생각났다.

로비에서 우리 보자마자 신참이라고 뛰어들어갔던 그 사람이구나!

그럼 혹시 저 사람을 신나게 갈군 다음, 우리를 관장실로 안내해준 사람이 코레의 네이선…… 네이트였던 건가?

셰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우리를 향해 눈을 몇 번 끔벅거리더니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섰다.

“터크 선배님에…… 클라이드 선배님……? 여, 여긴 어떻게……?”

“너 땜빵하러 왔다, 자식아.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처박혀서 땡땡이치고 있었냐?”

“아, 아니에요, 저, 저는……!”

“농담이야, 임마. 클라이드 녀석에게 대강 들었다. 사고 좀 크게 쳤다며? 걱정 마, 네가 솔직하게만 나오면 어느 정도 참작해줄 거야. 원래 자수하면 좀 감형해주잖아.”

터크는 마치 도움의 손길이라는 듯이 손을 내밀며, 무척이나 온화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나보다 조금 앞쪽에 서 있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왠지 잔잔히 웃고 있을 것 같았다.

“밀라 클라운이 다 불었어. 그 여자가 널 꼬드겼다며? 미로의 마법을 이용해서 장서관을 쳐버리자고 말야.”

“마, 맞아요! 그 여우 같은 년이……!”

셰인은 그렇게 침을 튀기면서 횡설수설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말소리가 통로를 울리고 터크가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줄 때마다, 로나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나는 셰인이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기를 바라며, 조용히 클라이드를 부축해서 일으켜주었다.

“으, 감사합니다…….”

“진정하신 거죠?”

“조금은요…….”

셰인을 노려보는 눈초리는 여전히 매섭다.

그래도 이제 혼자 튀어나가진 않겠지.

속으로 안도하며, 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터크를 보고 있는 메린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내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내 귀에 가만히 속삭였다.

“저 아저씨, 왜 저런 말하는 거냐?”

“나도 몰라. 일단 지켜보자고.”

……터크가 어째서 하지도 않은 말을 셰인에게 하는 것인가?

어째서 그의 횡설수설한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깊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가?

그걸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진 않아서,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일 수밖에 없었다.

뭐, 일단 지켜보는 게 좋겠지.

나이 많은 사람의 생각은 바로 알기 어려울 때가 많으니까.

그녀는 내 대답에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도로 펴지라고 그 부분을 손으로 살살 문질러주면서, 나는 힐끗 터크를 바라보았다.

마침 이야기가 한차례 끝난 모양인지, 터크가 깊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나쁜 건 그 여자이지. 넌 그저 속았을 뿐이야, 그렇지?”

“흑, 으흐흑…… 터크 선배님……!”

“징그러우니까 울지 말고 대답이나 해라. 내 말이 맞냐?”

확인을 요구하는 터크의 말투는 여전히 온화하다.

당장이라도 셰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라도 건넬 것 같은 분위기인데,그는 여전히 로나의 반 걸음 뒤에 서 있다.

셰인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묻고 있었다.

모든 것은 밀라 클라운의 잘못인가?

셰인 글렌은 그저 미인계에 당한 피해자일 뿐인가?

그 질문에, 셰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잠시 눈을 멀뚱거린 후, 간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 네……! 저도 그 여자에게 속았을 뿐이에요, 선배님!”

“………그러냐? 그럼 묻겠는데,”

짧은 한숨 뒤에 이어진 터크의 말투는, 무척이나 심드렁했다.

“네이트는 어디 있냐?”

“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되묻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클라이드가 주먹을 꽉 쥐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살짝 떨구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아마 이를 악물고 있겠지.

“네 얘기를 정리해볼까? 손님들의 말을 마구간에 묶고, 미로랑 부엌을 한 번 오갔다. 그런데 또 다른 식재료를 요청받았고, 그래서 다시 가는 길에 밀라 클라운을 만났다.

그리고 그 여자가 갑자기 찰싹 달라붙더니 좋은 거 해주겠다면서 마구간으로 데려갔다. 맞지?”

터크는 셰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처음엔 거절하려 했지만, 뭐에 홀린 것처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건초더미 위에서 좋은 걸 받은 다음, 그 여자가 네 처지를 동정하면서 같이 장서관에 본때를 보여주자고 꼬셨다.

그리고 그 여자랑 같이 여기 와서, 그 여자의 머릿속 구상이 이뤄지도록 도와줬고.”

그러나 셰인은 점점 자신이 그저 이용만 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장서관을 공격할 생각을 했던 걸 후회하며, 밀라 클라운이 바깥으로 나간 틈을 타 모든 것을 정리해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준비한 그 무기들은 제법 강력했으므로, 아무리 장서관의 사서들이라 해도 무사하진 못할 터.

그는 자신이 초래한 비극을 마주하기가 두려워, 이 안에서 나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이 일의 전말이자, 셰인 자신이 직접 입에 올린 고해였다.

터크는 긴 말을 마치고 목을 가볍게 가다듬은 후, 재차 입을 열었다.

“하나 빠졌는데? 내가 솔직하게 나오라고 하지 않았냐?”

“소, 솔직하게 다 말씀드린 거에요! 정말이에요!”

말할 것은 다 했는데, 왜 자신을 추궁하는 것인가?

억울함이 약간 섞인 눈빛을 받으면서, 중년의 사서는 담담히 말했다.

“그럼 말해. 네이트 어쨌어?”

“네이트……? 네이선 선배님이요……?”

“그래. 어쨌냐?”

터크가 무미건조한 말투로 그에게 묻자, 셰인은 멍한 눈으로 이쪽을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저한테 물으시죠? 저는 못 봤는데요?”

“같잖은 소리 집어치워, 셰인 글렌!!”

뻔하디 뻔한 거짓말에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온 거겠지.

결국 클라이드가 분통을 터뜨렸다.

“네놈이 네이트에게 해를 입힌 건 다 알고 왔어!! 말해, 그 녀석 어디 있어?!”

“클라이드 선배님,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못 봤다니까요? 조식 때 이후로 본 적이 없는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

얼굴을 찌푸리며 날카롭게 대꾸하는 셰인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방금 전까지 울먹이며 애원하던 놈이, 완전히 태도가 달라졌어……!

“……하하.”

그리고 터크는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최근에 들었던 농담이라도 떠올랐는지, 배를 잡기까지 하며 웃고 있었다.

“……?”

별안간 허리 쪽 옷자락이 잡힌 느낌이 들었다.

중년 아저씨의 폭소를 한 귀로 흘리며 시선을 돌리자, 메린이 나에게 바짝 붙어서 셔츠 자락을 잡고 있었다.

……그 드워프 연구소장이 생각났나?

메린 녀석, 맛이 간 사람에겐 좀 약한 것 같으니까 말야.

근데 저 사람은 그 정도는 아닐 텐데, 그 연구소장에 대한 기억이 어지간히 강하게 박혔나보다.

……골렘도 드래곤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녀석이, 사람에겐 겁을 먹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엄지로 그 손등을 토닥이듯 두드려주며 작게 말했다.

“괜찮아.”

주홍빛 눈동자가 불안한 듯이 살짝 떨면서 나에게 향했다.

나는 그 눈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살며시 웃어주었다.

“괜찮아, 메린.”

“……”

잔뜩 찡그려져 있던 그녀의 얼굴이 어느 정도 펴지며, 고개가 살짝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나는 다시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며 여전히 폭소 중인 터크를 돌아보았다.

……음, 왠지 어깨에 뭐가 닿은 것 같은데.

그리고 뭔 숨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

신경 쓰면 안 돼!!

메린이 내 어깨에 기대든 말든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야, 눈앞의 일이 더 중요하잖아!!

쓸데없이 고양되려는 마음을 어째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을 무렵, 터크가 웃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와, 이제 다른 거에 집중할 수 있겠어!

“후우…… 참 웃긴 농담이었다, 셰인. 아침 일찍 때 말곤 네이트를 본 적 없다니, 하하, 보기보다 배짱 있구나. 그런 대담한 농담도 하고.”

“……농담이라니요? 저는 정말로……!”

“‘새끼 부엉이가 육백 년만에 찾아왔다’고 확성마법을 때린 게 네이트인데, 네가 그 녀석을 못 봤다고? 그럼 넌 누구한테 들어서 손님들 말을 마구간에 넣은 거냐?”

“……텔레파시로,”

“너 못 받잖아, 셰인 글렌.”

시선을 돌리며 변명하듯 우물거리는 셰인의 말을 가차없이 잘라버리면서, 터크가 말을 이었다.

“너 제대로 쓸 수 있는 마법은 두 개밖에 없잖아. 이동이랑 복제. 내가 모를 줄 아냐? 내 귀에 그 이야기가 안 들어왔을 줄 알아? 감히 선임을 속여먹으려 하다니, 네이트 녀석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모양이다.”

“그 새끼가 뭘……!”

갑자기 셰인이 분통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 새끼는 절 괴롭히는 거에 맛 들린 미친놈이에요! 잘 대해준 것처럼 말씀하지 마세요! 못 믿으시겠거든 클라이드 선배님에게 물어보세요! 선배님도 그 새끼 나무라셨었으니까!

그딴 놈은 없는 게 훨씬 더 나은데, 왜 갑자기 네이트, 네이트 하면서 찾으시는 건데요?!”

“셰인……!”

“저는 몰라요! 그 새끼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요! 그러니……!”

더는 묻지 말아라, 이대로 바깥에 나가도록 해달라.

아마 그런 말을 하려던 거겠지.

터크가 손을 내밀어서 막은 탓에 끝맺지 못했지만.

터크는 셰인을 빤히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사제님, 준비는 이미 되어 있습니까?”

“네. 이미 전개 중이에요.”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두 아가씨께서도 이쪽으로 가까이 오시죠. ……클라이드, 던져.”

뭘 던져?

그러나 터크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고, 클라이드 역시 말없이 허리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옆으로 몇 걸음 간 뒤,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휙 던졌다.

둥글둥글한 결정 같은 게 셰인을 지나쳐서 활짝 열린 문 쪽으로 날아가더니,

파앙!

“꺅?!”

별안간 공중에서 터지며 오색 빛깔의 가루를 여기저기 흩뿌렸다!

……젠장, 여자 몸이라서 비명 질러버렸잖아!

평소였다면 깜짝 놀라긴 해도 비명은 안 질렀을 텐데!

속으로 투덜대며 결정이 터진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냥 허공이 반짝반짝 빛나기만 하는 것 같은데?

조명용이었나?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한 순간,

“……?!”

마치 얼음이 녹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공간이 주르륵 녹으며 흘러내려갔다.

그 너머에 드러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길 위에, 하얀 기계장치들이 빼곡히 서 있다.

다행히 우리 뒤쪽에는 없고, 저 앞에 서 있는 셰인 글렌의 주변에 우글거리고 있는데, 활짝 열려 있는 문에서 한 대씩 새로운 기계장치가 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미로로 들어왔을 때보단 간격이 수 배는 크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문틈으로 방 안을 좀 볼 수 있었는데,용도를 전혀 알 수 없는 커다란 물건이 슬쩍 보였다.

평평한 면 위로 툭 튀어나온 것들이나 손잡이가 잔뜩 달려 있는데, 뭐에 쓰는 거지?

……그보다 이 피냄새, 저 안쪽에서 나는 것 같은데 말야.

방 안의 바닥이 좀 붉은 것 같기도 하고?

“……”

그리고 셰인 글렌은 무감정한 얼굴로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까지 봤던 모든 감정들은 연기를 했을 뿐이라는 것처럼, 그 얼굴엔 일말의 동요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나와라, 셰인 글렌. 앞뒤 사정 가리고 싶다면 말이다.”

응? 저기 서 있는데 뭔 소리래?

터크의 이상한 지시에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하……… 이걸 안 넘어가주시네.”

빈정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며, 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터덜터덜 걸어 나와 문에 기대어 섰다.

……민무늬 로브에 두꺼운 테가 달린 안경을 쓴 남자.

영락없는 셰인 글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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