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6화 〉 267화 : 위법의 값 (4)
* * *
똑같이 생긴 사람이 하나 더 나타난 이 상황.
다른 곳이었다면 ‘꺄악, 쌍둥이었나봐!’ 라면서 호들갑을 떨었겠지.
그러나 여기엔 뭐든지 일어날 수 있는 마법이 걸려 있으며, 저기 서 있는 사람은 마법사이다.
둘 중 하나는 마법으로 만들어낸 가짜이겠지, 뭐.
……그건 그렇고, 나 이젠 생각에서까지 꺄악거리고 있네.
이것도 관장 놈의 마법 때문인가?
‘아닐걸.’
맞을걸.
‘아닐 거 같은데.’
맞을 거 같은데.
……뜬금없이 나 자신과의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는 동안, 셰인은 삐딱하게 서서 거들먹거리는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분부대로 나와드렸습니다, 선배님들. 이제 어쩔까요? 이 안에서 제가 뭘 했는지 알려드리면 되겠습니까?”
“아니, 하나만 말해.”
클라이드는 그 관장 놈을 대할 때만큼이나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이트를 어쨌지?”
“보고 계시잖아요.”
“……뭐?”
되묻는 그를 비웃듯이 입을 비죽거리며, 셰인이 정면을 향해 고갯짓했다.
“앞에 깔려 있는데 안 보이세요? 방금 또 하나 늘어나셨네.”
“…………”
놈의 턱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건 하얀 기계장치뿐.
명령을 기다리며 꼿꼿이 서 있는 군단밖에 없다.
‘방금 하나 늘었다’고 말한 것도, 마침 새 기계장치 하나가 문 밖으로 걸어 나왔기 때문이리라.
……그러고보니 이 기계장치들, 뭘로 움직인다고 했더라?
미로에 들어오기 전, 클라이드는 이 기계장치를 보며 말했다.
어느 세계에선 기계장치들과 사람이 서로 싸운다고.
그곳에선 기계장치들이 사람을 잡아가서는 또 다른 기계장치의 동력원으로 만들죠.
……그래, 사람이야.
자세한 원리는 모르지만, 이 하얀 군단은 사람을 재료로 써서 움직이고 있다.
그럼 셰인이 ‘네이트가 눈앞에 깔려 있다’고 한 건……!
“……”
근데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사람 한 명으로 백 대는 족히 될 것 같은 숫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아무리 다른 세계의 기술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건 너무 많은 거 아냐?
그 정도로 효율이 좋다면, 그 세계는 이미 기계장치가 싹 쓸어버리고도 남았을 거 같은데.
하지만 그거 말곤 다른 해석이 나올 수가 없잖아.
뭐지……?
“……복제했군. 멍청한 새끼 같으니.”
낮게 내뱉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터크의 인상이 험악하게 구겨져 있었다.
네이트가 죽었을 거란 말을 할 때도, 심지어 분노에 찬 클라이드를 진정시키면서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었는데, 셰인이 무언가를 복제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마치 그게 크나큰 잘못이라는 것처럼.
그보다 복제했다는 건……
설마 고기나 채소 양을 불린 원리로……?
그 무정함에 숨이 덜컥 막히려던 순간, 메린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그래, 식재료로 쓰는 고기도 따지고 보면 시체이지? 사람 거라고 안 될 건 없겠구나. 역시 마법사는 똑똑하네.”
“……”
……숨이 콱 막히려던 게 긴 한숨으로 풀어지며 입 밖으로 빠져나갔다.
수수께끼가 풀려서? 아니, 어이가 없어서.
저 녀석이 원래 저런 성격인 거 알고 있는데도 이렇게 맥이 풀리는 걸 보면, 아직도 다 익숙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이러니, 내성 따위 조금도 없는 블루벨이 얼굴을 찌푸리는 것도 당연하지.
“……메린, 넌 놀랍지도 않아?”
“뭐가?”
“아니, 죽은 사람을 그렇게 취급했다는데……”
“그게 뭐?”
“………”
짐승 사체와 사람 시체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인가?
필요에 따라 쓰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되묻는 메린의 모습에, 블루벨은 말문이 막혔는지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었다.
“고기 양을 늘린 거랑 뭐가 다르다고 놀라냐?”
“……”
“메린, 나중에 해, 나중에.”
블루벨을 몰아세우는 꼴이 될 것 같아 말리자, 메린이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아니, 블루벨이……”
“알아.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중에 해. 블루벨도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그게 지금 뭐가 중요하다고 그래? 집중해, 집중.”
“……응, 미안.”
블루벨은 작게 웅얼거리면서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사실 그녀가 잘못을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을지 모르니, 이렇게 미리 못을 박아두는 게 낫겠지.
“……시체를 복제한 게 아니에요.”
“네?”
불쑥 들려온 클라이드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되묻자, 그가 한층 더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놈이 복제한 건 생사람입니다. 영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사람이요.”
“네? 어, 그야 저기 둘이 있는 걸 보면 그렇기는 하지만……”
“아뇨,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에요. 놈은 살아있는 네이트를 복제했습니다.”
뭐? 살아있다고?
그렇게 피를 많이 흘렸는데?!
그보다도, 클라이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기계장치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재료로 쓴다는 말이 된다.
그럼 저 방 안에서 풍겨오는 피냄새는 설마……!
“아직 숨이 붙어있는 네이트를 복제해서, 저 기계장치들의 재료로 삼은 겁니다. 안 그런가, 셰인 글렌?”
조용히 통로를 울리는 클라이드의 목소리엔 분노가 단단히 서려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걸 직면하는 셰인은, 몸을 움츠리긴커녕 오히려 유쾌하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맞아요, 정답! 이야~ 처음엔 죽은 줄 알고 어쩌나 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직 숨이 붙어있더라고요. 덕분에 맘도 편해지고, 계획도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지요! 겸사겸사 그간의 원한을 풀기도 하고요.하하, 어때요, 클라이드 선배님? 이제 맘이 놓이시나요?”
“그래, 맘이 놓인다.”
이를 악물면서 클라이드가 대꾸했다.
“네놈이 이렇게 생각 없는 놈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셰인 글렌, 네놈은 선을 넘었어! 여기서 즉결 처단한다!”
“……처단? 제가 왜 처단되어야 하는 거죠?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신나게 웃던 셰인 글렌이 정색하며 물었다.
“무엇이 잘못됐죠? 마법으로 산 사람을 복제하는 거? 그게 금지된 거라면, 애초에 쓰지 못하도록 해놓아야죠. 그렇지 않은 건, 써도 된다고 허락한 거나 다름없는 거 아니에요?
……다 그런 식이에요.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완전히 금지시키지는 않아요. 이곳에 갇힌 것도, 애초에 관장님을 막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다른 차원의 문을 여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면, 애초에 그 문이 열리지 않도록 단단히 닫아두었어야 한다.
아니, 애초에 그 지식이 전해지지 않도록 막았어야 한다.
살아있는 생명을 복제하는 것도, 만들어내는 것도, 그리고 그 생명을 물건처럼 제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도금지되어 있다면, 애초에 손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도리일 터.
그러나 장서관에 벌을 내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지식을 가지도록 내버려두었다.
실현시킬 재료를 마련하는 데에 어떠한 방해도 하지 않고 방관했다.
“그래 놓곤 관장님이 진짜로 저지르니까 벌을 내린답시고 우릴 이 꼴로 만들었어요! 세상 바깥에 격리시켜서,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요!
그 탓에 나만 계속 이 꼴이잖아요! 내 밑으로 아무도 안 오니까 다들 나만 존나게 부려먹고 있잖아! 씨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실력을 쌓냐고! 수행할 틈도 없는데!”
……아, 그래서 처음에 우리가 왔을 때 엄청나게 좋아했던 거구나.
드디어 신참이 왔다고 폴짝폴짝 뛰었던 이유가 있었군.
셰인은 억울해 죽겠다는 듯이 계속 소리쳤다.
“그렇다고 누구 한 사람 나에게 고마워하지도 않고! 씨발, 그냥 써먹기 좋은 잡일꾼이라는 거 아냐! 그래서 엎어버릴 기회가 왔길래 써먹은 것뿐이에요! 난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자격 어쩌고는 차치하고, 그 쇳덩어리들로 장서관을 무너뜨리려 했다? 진심으로 그게 될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하, 절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터크 선배님. 그렇게까지 멍청하진 않다고요. 이건 그냥 거래를 위한 일이었을 뿐이에요.”
기계장치로 장서관을 치는 건 어디까지나 밀라 클라운의 바람이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셰인은 진지한 얼굴로 재차 입을 열었다.
“이 쇳덩어리들과 그 광대가 장서관을 어지럽히는 동안, 저는 큰 마법을 하나 쓰려고 했죠. 이미 그른 것 같지만요.”
“그래, 잘 아네. 넌 이제 끝났어, 셰인 글렌. 그러니 유언 삼아 대답해주라. 여기서 뭔 마법을 쓰려고 했냐?”
“회귀마법이요.”
정말로 체념한 건지, 셰인은 의외로 순순히 대답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계속 기계장치는 하나씩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지만, 클라이드와 터크는 그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괜찮은 건가?
“아,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왜, 여기가 이 꼴이 되기 전에 탈출이라도 하려고?”
“네, 그래요! 돌아가자마자 이딴 데에서 당장 나가서! 내 맘대로 자유롭게 살 생각이었어요! 누구도 날 힘들게 하지 않는 곳에서!”
울분이 철철 넘치는 목소리로 소리치는 셰인을 마주하며, 터크는 또 다시 클클클,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웃기신 거죠?! 전 진지하다고요! 아무리 제가 마법 실력이 떨어져도 여기서라면 충분히 가능,”
“그래그래, 알아. 크흐흐, 여기라면 너도 그런 큰 마법을 부릴 기적이 일어날 수 있겠지. 근데 셰인, 까먹은 모양인데장서관…… 옛날엔 까마귀관이었던가? 아무튼 관장님 허가 없이는 탈퇴가 안 돼.
정 탈퇴하고 싶다면, 마력을 전부 봉인하는 건 물론이고, 이곳에 대한 기억도 싸그리 없애야 하고 말야.”
“그까짓 거……!”
“자유를 위해선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하하하하!”
터크의 웃음소리가 또 다시 메아리 치며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웃음이 길지 않았고, 덕분에 내가 입은 셔츠 옷자락이 또 구겨질 일은 없었다.
“다들 그러면서 의식 직전에 꼭 튀더라! 제대로 끝내고 간 놈이 손에 꼽혀요! 의식 중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게 그렇게 무섭나?
그럼 처음부터 들어오지를 말았어야지! 입단 전에 다 알려주는 이야기들이었는데! 그걸 듣고도, 그냥 객원으로 지내는 거에 만족 못하고 정식 관원이 됐으면서 참 말이 많아! 안 그러냐, 셰인?!”
“저는……!”
“다를 거라고? 천만에.”
웃느라 여유가 없는 터크를 대신하듯, 클라이드가 셰인의 말을 똑 잘라버렸다.
“너 같은 놈을 한둘 본 줄 알아? 잡일이든 뭐든 하겠다고 사정사정해서 입단하고는, 나중엔 힘들다고 불평하고 핑계를 찾아대면서 후회하기 시작하지.
괜히 들어왔다, 왜 재능이 없다고 미리 말해주지 않은 거냐, 그냥 부려먹을 일꾼이 필요해서 받아들인 거 아니냐 등등,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면서.”
“크크, 그래, 맞아. 하나같이 그렇게 억지 부리다가 튀어요. 그리고 내가 찾아가면,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면서 살려달라고 구걸하지. 하, 다 큰 사내 새끼들이 그러는 꼬라지가 얼마나 징글맞던지!”
킬킬거리면서 들려온 터크의 말에, 순간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죽을지도 모르는 의식을 거부하고 도망친 마법사들.
터크는 그들을 찾아갔고, 그를 만난 마법사들은 전부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했다.
그게 의미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진짜 사냥꾼이었네요.”
“다 옛날 일이에요. 직업이 바뀐 뒤로는 얌전히 책만 보고 있죠. 이따금 불려 나가긴 하지만, 옛날에 비하면 그냥 산책 다녀오는 수준이니 그리 나쁘지 않고요.”
넉살 좋게 내게 대답한 후, 터크는 셰인을 향해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알겠냐, 셰인? 넌 진짜 망한 거야. 넌 과거로 못 돌아가. 왜냐? 여기서 죽을 테니까.
설령 돌아간다 해도 결국 내 손에 죽겠지. 잡일꾼 생활도 못 이겨낸 놈이, 탈퇴의식을 해낼 수 있을 리가 있겠어?”
“큭……! 그렇다고 이대로 순순히 죽어줄 줄 알아요?!”
셰인의 외침에 호응하듯, 문 앞에 정렬해 있던 기계장치들이 일제히 무기를 겨누었다.
그뿐 아니라, 또 다른 셰인 글렌들이 나타나선 우리를 완전히 포위했다!
아오, 저 이동마법, 진짜!
“셰인 글렌, 헛된 발악은 관두고 자결해. 그럼 곱게 묻어는 줄 테니까.”
“웃기지 마! 아무리 댁들이 대단해도 총 맞으면 뒈지는 건 똑같아! 그래, 온 힘을 다해 발악해서, 댁들을 전부 죽여버리고 과거로 돌아가, 아예 여기 근처에도 오지 않겠어!”
“그래도 죽는 건 매한가지일 텐데.”
“닥쳐, 늙은이! 죽을 준비나 하시지! 아, 맞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인질로라도 써먹어야겠군!”
불현듯 셰인이 손가락을 딱 퉁기자, 활짝 열린 문 앞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남자 여럿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벽에 기대어져선 바닥에 철썩 주저앉혀져 있고, 배 부분에 가로로 찔린 상처가 세 개가 나 있다.
마구간에 있던 쇠스랑 때문에 난 상처겠지.
아직도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게,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것 같았다.
그 중 한 명을 발로 짓밟으며, 셰인이 입을 비죽거렸다.
“이 놈들 말고도 안에 또 있긴 해. 아무튼 한 놈이라도 살리고 싶으면, 여기 일대를 불태울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아, 그래.”
터크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걸 마지막으로, 긴장감 어린 침묵이 찾아왔다.
우리 여섯 명은 모두 로나의 보호막 안에 있긴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로나는 뛰어난 전투사제이긴 하지만, ‘보호’를 전문으로 하는 사제가 아니니까.
그러니 상대가 공격하기 전에 먼저 쳐서, 가능한 많은 수를 해치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나는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터크 씨, 클라이드 씨,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
클라이드가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선량하고 점잖게만 보이는 그 눈을 마주하며, 나는 셰인이 울분을 터뜨릴 때에 품은 의문을 입에 올렸다.
“……정말로 셰인 씨 혼자서만 잡일을 한 건가요?”
……나는 외부인이니까 장서관의 내부 사정에 무어라 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셰인의 그 말이 사실이라면, 놈이 이렇게 비뚤어진 거엔 이들을 비롯한 다른 사서들의 잘못도 있는 거잖아.
한 사람에게 일을 몰아서 주는 건 좋지 않은 일이야.
……굉장히, 좋지 않은 일이라고.
“대답해주시겠어요? 정말로 저 사람이 개인시간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잡다한 일을 전부 맡고 있던 건가요?”
대답을 채근하는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굉장히 딱딱했다.
그런 내 모습에 당황한 건지, 클라이드는 두 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대답했다.
“아뇨아뇨, 그런 적 없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
“각자 사정으로, 사서 일을 하기 힘든 분들이 계세요. 그 분들이 서로 일을 나누어서 하고 있어요, 정말이에요! 저 놈 동기도 열 명 정도 있고요!”
허둥지둥 변명하듯이 말하는 클라이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가 말을 마친 후, 나는 로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저 정면을 꼿꼿이 향하고 있을 뿐, 어떤 신호도 보내오지 않는다.
저 녀석, 내가 뭔 결정을 해야 될 때엔 아무 말도 안 한단 말이지…….
이것도 내 감만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안건인가보다.
짧게 한숨을 쉬자, 클라이드가 살짝 불안감이 서린 얼굴로 내 눈치를 살피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에스트레야 씨……?”
“음, 결정했어요.”
무엇을?
그렇게 묻는 듯한 시선을 받으며,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점심은 역시 고기파이가 좋을 거 같아요. 그 유명인사가 사갔다는 거요.”
“어…… 네……?”
“후딱 처리하고 점심 먹으러 가죠. 슬슬 배가 고파오네요.”
“네? 아, 아아…… 예에, 물론이죠.”
그의 얼굴에 안도하는 기색이 슬쩍 떠올랐다.
그는 다시 셰인을 향해 고개를 돌린 뒤, 홀로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내가 왜 그런 질문을 던진 건지 알 수 없는 탓이리라.
이유는 항상 그랬듯이 단순하다.
끝까지 이 사람을 돕느냐, 아니면 손을 빼냐……그걸 정하려고 물었을 뿐.
그리고 나는 그를 끝까지 돕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 역시 간단하다.
클라이드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으니까.
단지 그뿐이야.
……믿기로 했으니 잘 끝내고 나가자고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그의 뒷모습에 미소를 보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