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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80화 (280/475)

〈 280화 〉 271화 : 오후는 평화롭게 보내야 제맛 (2)

* * *

잠결에 뭘 먹으면 체할 수 있다고 했던가?

그러나 지금 여기에, 눈이 말똥말똥하게 떠져 있는데도 체하기 직전인 두 남자가 있다.

그 중 한 명인 터크는 살짝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그 미친놈이…… 그딴 마법을 진짜로 완성시키다니…… 이제 가망이 없어…….”

텅 빈 눈길로 연신 중얼거리면서 스튜를 입에 넣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내가 알아서 먹는다니까……!”

“웃기고 있네,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잖아. 좋은 말할 때 입 벌려라.”

“우읍.”

뿌리치거나 고개를 돌리지도 못한 채, 마구마구 음식을 먹여지는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누가? 내가.

누구에게? 메린에게.

우리 일행 다섯만 있어도 쪽팔려 뒤질 거 같은데, 수십 명이 우글우글 모여드는 곳에서 대놓고 이러고 있으니 돌아버릴 거 같다.

아으, 여기저기서 시선이 슬쩍슬쩍 느껴지고 있어.

얼굴 타버릴 거 같아……!

“와, 이거 양고기이죠? 근데 냄새가 하나도 안 나요! 질기지도 않고!”

“기름기가 많은데도 담백하다니, 양고기가 이런 맛도 나는구나~ 맥주랑 완전 딱 맞아!”

“아, 조금 특이한 양이거든요. ‘아로십’이라고, 박하나 세이지 같은 허브만 먹고 사는 몬스터인데, 식성 때문인지 독이 없어요. 그냥 ‘노린내 안 나는 양’이라 봐도 무방하답니다. 스튜에도 들어갔을 거에요.”

“그래서 스튜에 허브가 없는데도 향이 나는 거였군요. 아, 이거 박스티? 감자 팬케이크도 맛있고요!”

“스튜도 그렇고, 죄다 감자가 들어갔네. 히히, 맥주 쭉쭉 들어간다~”

………정작 지근거리에선 눈길도 안 주고 있지만 말야.

테이블에 차려진 양다리구이에 박스티, 스튜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그보다 지금 굉장히 신경 쓰이는 단어가 들린 것 같은데……

“자.”

“……”

메린이 또 한 입을 내미는 바람에 머릿속이 정지되어 버렸다.

으으, 이런 상황에서 무슨 생각이야, 생각은!

그나마 녀석이 먹이는 게 스튜이니 망정이지, 다른 음식이었다면 십중팔구 체했을 거다.

맛도 제대로 못 느꼈을 거고.

“맛있냐?”

“………응.”

솔직하게 기뻐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조금 슬펐다.

그렇게 메린에게 스튜 반 그릇 정도 먹여졌을 무렵, 나는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험 삼아 나에게 또 한 스푼을 내밀려 드는 메린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텁.

“……?!”

우와, 생각하자마자 팔이 움직였어!

녀석의 손목을 잡기까지 그리 힘도 들지 않았고!

바로 전까지도 묵직한 추가 달린 것처럼 무거워서, 팔을 제대로 들 수가 없었는데!

메린 역시 내가 손목을 잡은 것에 놀랐는지, 눈이 살짝 동그래져 있었다.

“엉? 기운 차린 거냐?”

“어. 그런 거 같아.”

스튜의 따끈한 기운 덕분인가?

아니면 마법사가 만들어서 특별한 효능이 있는 걸까?

어쩌면 이 수치플레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내 간절한 소망이 만든 기적인지도 몰라!

얏호, 이제 손 움직인다, 내가 직접 손 움직여서 먹을 수 있어!!

“오, 주님, 감사합니다……!”

“……너무 기쁘면 눈물 난다고 그랬었지? 그렇게 좋냐?”

감격해하는 나와 달리, 메린은 살짝 샐쭉해진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음식을 먹여줄 구실이 사라져서 아쉬운 모양이지?

후후후, 그딴 거 알게 뭐냐!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칫, 끝났나”나 “더 보고 싶었는데……”라는 소리들도 내 알 바 아니다.

먹다가 사레나 들려라, 나쁜 자식들.

나는 스튜가 베풀어준 은혜에 깊이깊이 감사하며,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들을 차분히 살펴보았다.

스튜가 들어있는 솥, 통째로 구운 양다리 두 개가 놓인 접시, 강판에 간 감자를 밀가루와 같이 반죽해서 지진 박스티……

중앙에 놓여 있는, 하얀 천이 덮여져 있는 오목한 그릇은 아마 파이이겠지.

하나같이 굉장히 익숙한 요리들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무척 놀라고 있었다.

설마 박스티를 여기서 먹게 될 줄이야.

어느 여관에서도 안 팔길래, 우리 고향 마을에서만 먹는 요리인가보다 했는데. 어, 혹시 동향 사람이……?

“응? 왜 그러세요, 에스트레야 씨? 무슨 문제라도……?”

“네? 어, 아뇨, 정반대에요. 너무 잘 맞아서 놀라고 있었어요.”

화들짝 놀라며 그렇게 대답하자, 클라이드는 다행이라는 듯이 하하 웃었다.

“다행이네요. 비정기적으로만 맛볼 수 있는 특별 메뉴인데, 입에 안 맞으시면 어쩌나 했습니다.”

“엥? 이게 특별 메뉴에요?”

뭐, 우리 고향에서도 가을에나 주로 먹는 요리이니까 특별하긴 특별하지?

그래도 대놓고 특별 취급할 만한 요리는 아닌데…….

멀뚱멀뚱 눈을 깜빡이는 나를 향해, 클라이드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에스트레야…… 그 괴짜 기록자가 먹고 가는 요리를 ‘오늘의 특별 메뉴’로 해서 하루동안 내놓고 있어요. 저기 보시다시피, 기록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엄청납니다.”

그가 슬쩍 가리킨 식당 입구에는, 여전히 날개모양 핀을 단 사람들이 길고 긴 줄을 서 있다.

그 에스트레야라는 사람, 어지간히 존경을 받는 모양이군.

……그러고보니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못 들었네.

우리가 이번 사건에 끼어든 건, 그 사람이 보낸 쪽지 때문이었잖아.

“그러고보니, 그 괴짜 양반은 네이선 씨가 마구간에서 일을 당한 걸 어떻게 아셨대요? 네이선 씨가 말을 전했던 건가요?”

“아, 그거요.”

내 의문에 답한 건, 의외로 터크였다.

그 역시 스튜의 치유력 덕을 봤는지, 텅 비어 있던 눈에 어느 정도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안 그래도 추측이 무성합니다. 네이트는 쇠스랑에 찔리자마자 정신을 잃었거든요. 녀석의 기억을 직접 확인했으니 틀림없어요.”

“엥? 그럼……”

“그 양반에게 연락을 넣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대체 어떻게 알고 그랬던 건지, 원…….”

그래서 그 괴짜에게 직접 물으려 했으나, 어디서도 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렇게 볼멘 소리로 투덜거리는 터크를 향해, 클라이드는 씁쓸한 웃음을 띄웠다.

“초대 기록자잖아요. 특전 썼겠죠.”

“하긴, 지금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으니 특전은 좀 쌓였겠군. 나 참, 진짜 특이한 양반이야. 다른 기록자는 오 년도 안 돼서 때려치는 걸 아직도 쭉 하고 있다니……. 기록 일이 그렇게 좋은가? 진짜 괴짜야, 괴짜.”

“저번에 듣기론, 아내분 보는 재미가 더 크다던데요.”

“어쨌든 기록 일도 재미있다는 소리잖아.”

터크는 질색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그에게 또 한차례 쓴웃음을 건네는 클라이드에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기록자들이 일을 금방 그만두나봐요? 의외네요.”

“특별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을 직접 마주하거든요. ‘그냥 보기만 해야 하는 게 괴롭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기록자는 사건에 간섭할 수 없거든요.”

불이 난 집에 물을 뿌려줄 수 없다.

암습을 당하려는 사람을 구해줄 수 없다.

목이 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거나, 배고픈 아이에게 빵을 줄 수 없다.

그저 관찰하고 기록할 뿐.

설령 특별 사건으로 인해 세계가 멸망에 치닫을지라도, 그들은 그 흘러가는 양상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 무력감 때문에 퇴직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과 함께, 클라이드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점에 착안해서 죄인을 영입하게 됐죠. 인력도 채울 수 있고, 죄인에게도 벌이 되니 일석이조 아니냐는 근거로.”

“참 합리적이네요.”

“그래서 그 분이 괴짜라고 불리고 있어요. 수많은 희비를 봤으면서도 여전히 일을 계속하고, 또 방금 그것처럼 특이한 발상을 자주 하시니까.”

괴짜라고 할 만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아내가 있어요? 기록자는 결혼을 못한다면서요.”

“계약조건이었답니다. 자세하게는 알려주지 않더군요.”

다른 기록자들은 결혼을 못한다는 걸 보면, 기록자가 된 후 새로 결혼한 건 아닐 거야.

아마 생전에 같이 살던 아내를 데려온 거겠지.

데려왔다고 해야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야…… 누구인지 몰라도 엄청난 애처가구만?

“그나저나 클라이드 씨는 그 괴짜분이랑 친하신가봐요? 이것저것 많이 알고 계시네요.”

“쉬는 시간대가 맞아서 자주 마주치거든요. 그때 이것저것 들었죠. 친한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의 말에, 터크가 코웃음을 치며 끼어들었다.

“친하다 못해 총애를 받고 있지. 장서관에 오자마자 너한테 악수부터 건넸잖아. 전에 만났던 거 아니냐?”

“글쎄요…….”

클라이드는 턱을 문지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짐작가는 게 전혀 없는지, 이내 어깨를 으쓱이고는 화제를 돌려버렸다.

“뭐, 아무튼 그 괴짜 양반은 질리지도 않고 이 스튜와 파이를 찾아요. 다른 메뉴는 바뀌는데, 이 두 가지는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죠. 스튜는 맛을 보셨으니, 파이도 한 번 드셔보시지요. 꽤 맛있더군요.”

사실 이게 주 메뉴이나 다름없어요.

농담조로 말하면서, 클라이드는 오목한 그릇에 덮여 있던 흰 천을 살며시 벗겨내었다.

하얀 김이 뭉클 올라오면서, 그릇에서 느껴지던 그 그리운 냄새가 훨씬 더 진하게 풍겼다.

……냄새 때문일까?

보기엔 그냥 평범한 고기파이인데, 왠지 모르게 기대가 된다.

클라이드가 한 조각 덜어서 나에게 전해주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동안,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가슴이 설레었다.

이층케이크나 새끼 양 통구이면 몰라, 고작 파이 정도로 두근거리다니 뭔 애도 아니고.

나 자신에게 쓴소리를 던지면서, 내 앞에 놓인 파이를 작게 잘라서 입에 넣었다.

“……!!”

……말도 안 돼. 정말로, 진짜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이 맛을, 이런 곳에서……?!

살살 녹는 듯한 쇠고기 조각, 약간 사각거리는 양파.

진한 풍미가 입 안에 가득 차면서, 그에 물리지 말라는 듯이 홉의 씁쓸한 향이 아주아주 살짝 스쳐 지나간다.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에스트레야 씨? 왜 그러세요?”

“………”

걱정 어린 목소리. 의아해하는 시선. 놀란 눈길.

갑자기 스푼을 놓곤 고개를 떨구고 있으니, 이상히 여기는 것도 당연하지.

하지만……, 목이 메어버려서, 다시 스푼을 들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맛이 이상하냐? 어디……”

달그락, 달그락.

메린 녀석이 자신의 몫을 덜어간 듯한 소리가 들린 후,

“와, 아주머니가 했던 맛이네. 신기하다.”

“………”

내가 절대로 착각한 게 아니라는 걸, 단단히 확인시켜주었다.

“에스트레야 씨…….”

“맛…있어서요. 정말로, 맛있어서……”

말을 꺼내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꼴사납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런 맛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걸.

……사무치게 그리웠고, 앞으로도 계속 그리울 맛.

너무나도 빨리 헤어져서, 누구에게도 이어지지 않은 맛.

진득하게 눌러 붙은 기억에서도 결코 되살릴 수 없었던, 이년 전에 잃어버린 엄마의 맛이니까.

“죄송, 해요…… 진짜, 맛있어서……”

“……그렇죠? 마음껏 드세요.”

“흑, 우읏……!”

맛있는 걸 먹으려면, 일단 속을 비워야지.

눈물을 흘릴 때마다 나를 감싸주는 따스한 온기 속에서, 나는 이년 동안 쌓였던 그리움을 털어내었다.

늦은 점심 후, 나는 방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비록 특별 메뉴 덕분에 기운을 차리긴 했지만, 장서관 안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닐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또 울어서 눈이 빨갛기도 했고.

내 결정을 들은 클라이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시죠. 음…… 책이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어, 그럼…… 혹시 에스트렐 가문에 대한 책도 있나요?”

“에스트렐이요?”

클라이드는 턱을 문지르며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그대로 천천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가문……은 물론이고, 지금 인물에 대한 정보는 열람이 금지되어 있어요. 에스트렐……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이레의 천문학자 가문이었지. 거긴 이미 무너지고 없지만 말야. 그런데 그 가문이 왜 궁금하신 거죠?”

터크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충 대답했다.

“친척 성씨이거든요. 저희 고향 토박이가 아니라 외지인인데, 원래 어디서 뭐하던 집안인지 좀 궁금해서요. 본인에게 묻기엔 좀 그렇고요.”

“흠…… 친척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어어…… 리…가 아니라 엘리아스요. 엘리아스 에스트렐.”

약간 더듬거리면서 아버지 이름을 댔다.

물론 까먹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고, 본명을 대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릴 만큼 적당한 사이인 걸로 보이기 위함이다.

아무튼 그렇다.

“엘리아스 에스트렐…… 이렇게 적는 거 맞죠? 흠흠, 네, 알겠습니다. 에스트렐 가문 족보에서 확인해본 후, 적당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책을 가져다 드리죠. 또 찾으시는 건 없고요?”

고개를 젓자, 터크는 흡족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클라이드, 나머지 두 분을 모셔라. 에스트레야 씨의 책은 내가 찾을 테니.”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실례하죠.”

고개를 까닥이며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눈 깜짝할 새에 모습이 휙 사라져버렸다.

……역시 뭔가 연출을 넣도록 해야 할 거 같은데.

중년 사서가 일을 하러 자리를 떠난 후, 클라이드는 나머지 세 사람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다.

로나와 블루벨은 말로만 듣고 말았던 오락시설에 흥미를 보였고, 메린은……

“나도 방에 있을래요.”

“……”

역시나, 나랑 같이 방에 있겠다고 말을 꺼내버렸다.

나는 짧게 한숨을 쉬며, 덤덤한 얼굴로 내 팔에 팔짱을 끼는 메린에게 말했다.

“나 책 읽는다니까? 너도 저 둘이랑 같이 놀다 와.”

“싫어. 너랑 같이 방에 있을래.”

“………공부시킨다?”

“그러던가.”

“……”

나 없이 다른 애들이랑 놀 바에야 공부를 하겠다는 건가!

우와, 여자 몸이라서 진짜 다행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에 열이 나긴 해도, 그 외에 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으니까 말야.

허리를 숙여야 할 필요도 없고.

“참 사이좋다~ 그래~ 오순도순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으렴~”

“아하하, 블루벨 씨, 슬슬 옆구리 시리시나봐요~”

“시끄러, 꼬맹아, 그딴 거 아니라고!”

로나의 말에, 블루벨이 곧바로 얼굴을 붉히며 빽 소리질렀다.

블루벨도 로나의 놀림거리 대상이 되었구나.

하긴, 내 기준에도 놀리는 재미가 있는 사람인데, 저 사악한 사제님은 오죽하겠어?

아, 그렇지.

블루벨이 있으니, 이제 로나 녀석이 나를 조금 덜 건드리겠구나!

아아, 역시 블루벨을 일행에 들이길 잘했어!

나는 블루벨의 어깨를 두드리며 활짝 웃었다.

“정말 고마워, 블루벨. 댁의 희생은 잊지 않을게.”

“개소리를 하는 거 보니 또 병이 도졌구나. 빨리 방에 들어가서 쉬렴.”

진심을 담뿍 담은 말이었는데, 블루벨은 싸늘하게 내쳐버렸다.

흑, 너무해.

……그렇게 세 사람과 잠시 헤어지고, 메린과 함께 방에 들어갔다.

몇 시간 전에 잠깐 들어와 있었을 뿐인데, 어쩐지 며칠동안 묵었던 방처럼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터크가 책을 찾아와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까……

“………”

……했는데, 방 한가운데에 들어서자마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포근한 온기가, 부드러운 두 팔이, 뒤에서 나를 얽어버렸으니까.

“메, 메린? 뭐하는……”

“방이잖아.”

“어, 근데 그게 뭐……?”

“방에선 껴안아도 된다며?”

“아니 내가 언제……! ……아.”

생각났다. 나버리고 말았어.

이 녀석이 밖에서 대놓고 껴안았을 때, 너무 쪽팔리고 당황스러워서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을 해버렸다는 것을……!

­­방이면 몰라도 밖에서 이러면 안 된다고!

엄청난 자폭이었잖아, 빌어먹을!!

“자, 자자, 잠깐, 메린, 그,”

“거짓말이었냐?”

“아니, 그건 아닌데, 터크 씨가 올 거잖아.”

“바로 오는 것도 아닌데, 뭐. 노크하겠지.”

그야 그렇겠지! 쓸데없이 예리하긴!

“아으……! 아, 맞아, 너, 고, 공부한다며, 공부!”

“이러고 하면 되지. 어차피 뭐 읽을 거 아냐?”

“우으으……!”

젠장, 더 할 말이 없어!

터크 씨, 빨리 와주세요! 빨리 와서 살려줘어!

내 뺨에 얼굴을 부비적대며 키득거리는 그녀에게 꽉 껴안긴 채, 바들바들 떨며 속으로 외쳤다.

­­­­­­­­­­­­­­­­­­­­­­­­­­­­­­­­­­­­­­­­­­­­­­­­­­­­­­­­­­­­­­­­­­­­­­­­­

WA! 끼적끼적대던 게 완성되었습니다!' ▽')

계약서에 사인 안 하면 물약 먹여버린다...고 협박하는 거 절대 아님.

아무튼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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