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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82화 (282/475)

〈 282화 〉 273화 : “또 뵙겠습니다.” (1)

* * *

바깥에선 평화롭게 새가 짹짹거릴 화창한 아침.

나는 신발을 제외한 본래 내 옷을 입고 별관의 식당으로 향했다.

헐렁헐렁해서 웃기겠지만 그딴 건 내 알 바 아냐.

식당에 도착해, 건더기가 풍부한 수프와 폭신폭신한 빵이라는 최고의 구성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 후,

쾅!

“관장 나와아아아!!”

관장실의 문을 힘차게 발로 까며 쳐들어갔다.

“어머어머, 역시 젊으신 분은 다르네요~ 발이 아닌 손으로 노크하는 상식을 가져주셨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요!”

책상 앞에 앉아 사글사글하게 웃는 오이스 관장 새끼의 말을 씹고, 나는 책상에 다가가면서 칼자루를 쥐었다.

스르릉—

콰직!

그리고 주저없이 검을 뽑아 책상에 꽂았다.

예상대로 늘씬한 은검이 아닌, 찬란하게 빛나는 널찍한 성검이나타났다.

관장 새끼는 그 위용에 정말로 놀란 것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아, 이게 그 성검인가요? 생각보다 훨씬 더 아름답네요.”

“됐고. 마법 풀어.”

“마법? 무슨 말씀이신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놈의 표정을 보자, 칼자루를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성별전환 마법, 좋은 말할 때, 풀으시라고요.”

“……어머나.”

입은 여전히 싱글거리면서도, 놈의 눈에서는 확실하게 웃음기가 사라졌다.

역시 이 새끼, 전부 다 알고서……!

“이거 놀랍네요? 아직도 완전히 동화가 안 되었다니……. 아무리 용사이시라 해도, 개인의 의지력으로 버티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을 텐데요.”

“……”

“아하~ 우리 귀염둥이 클라이드가 손을 썼군요? 우후후, 역시 클라이드네요, 믿고 있었다고요!”

“잡소리까지 말고 얼른 마법이나 풀어, 개새끼야!!”

“어머머, 귀여운 아가씨의 얼굴로 그런 험한 말을 쓰시면 안 되죠~ 보기엔 괜찮은데, 왜 그렇게 열을 내시는 걸까나~? 어디어디……”

풀라는 마법은 안 풀고, 놈은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더니 자신의 오른쪽 눈에 바짝 댔다.

그리곤 왼쪽 눈을 감더니,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나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윽, 왠지 속까지 다 들여다보이고 있는 기분이야.

그냥 확 썰어버릴까?

안 돼, 마법이 풀릴 때까지 참아야 돼……!

칼자루를 꽉 쥐며 버티는 동안, 놈의 진득한 시선이 점점 아래로 향하더니………

“……어머?”

갑자기 우뚝 멈추었다.

설마 진짜로 속이 들여다보이나?!

“아하하하핫!! 하반신 쪽은 벗겨지고 있었네요!! 세상에, 이거 완전 양성,”

서걱!

빡친 나머지 그대로 검을 휘둘러버렸다!

모노클 시늉을 내던 놈의 팔뚝이 바닥에 철퍽 떨어졌다.

그리고는 혼자 파닥파닥거리다가 축 늘어지더니, 하얀 재가 되어 사라졌다.

……내가 뭘 본 거지?

잘려 나간 팔뚝이 혼자 파닥거리다니, 따로 붙은 생물이야, 뭐야?!

경악에 찬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관장은 하얀 불꽃이 타오른 팔꿈치에 입김을 불고 있었다.

아니 팔이 잘렸는데 아프지도 않나?

무슨 먼지라도 묻은 것처럼 호호 불면서 손으로 툭툭 두드리고 있어!

더 어이가 없는 건, 그걸로 불꽃이 꺼졌다는 것이다!

무려 성검이 일으킨 불꽃이었는데!

“에잇.”

“?!”

이번엔 잘린 부위에서 무언가 길고 질척한 덩굴 같은 게 여러 줄기 나오더니, 자신들끼리 마구 얽히기 시작했다!

저건……손……?!

아니나다를까, 덩굴덩어리가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팔뚝과 손으로 변했다!

“허, 씨발, 주님, 제가 지금 뭘 본 거랍니까?!”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어이씨, 저 놈 뭐야, 지금 소름 쫙 돋았어!!

그런 나를 뾰로통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오이스 관장 놈은 입을 비쭉 내밀었다.

“재미있는 거 보고 웃었을 뿐인데 화를 내시다니,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다, 다다당신 대체 정체가……!”

“어머, 보고도 모르시겠어요? 심연에 잠긴 신비로운 여인이잖아요.”

“아니, 심연의 바다에 헤엄치는 문어겠죠.”

굉장히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로나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내가 여태까지 본 것 중 가장 메마른 눈으로 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마법이나 푸시죠. 슬슬 일부러 용사를 방해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머어머어머, 사제님, 그건 크나큰 오해세요.”

손을 살짝 흔들며 그렇게 말한 후, 놈은 태연한 얼굴로 손을 딱 퉁겼다.

그러자 놈의 드레스가 다른 형태로 바뀌었고, 퍽 맘에 들었는지 놈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제 본의는 어디까지나 용사님의 정체를 숨겨드리는 거였어요. 마침 그걸 완벽하게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활용했을 뿐이랍니다.

평행세계의 정보가 덧씌워진다는 작은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그건 ‘카엘 에스트렐’이라는 개인의 사정일 뿐.‘용사’와는 상관없잖아요?”

“아~ 이름과 성별만 바뀌고 나머지는 그대로이니까 아무런 지장도 없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신 건가요?”

헤실 웃으며 재확인하듯 묻는 로나에게, 관장 놈 역시 활짝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네!”

콰아아앙—!

“?!”

갑자기 천둥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였다!

여기 방 안일 텐데?! 그보다 눈부셔!

뜬금없는 빛 공격을 받은 눈이 저절로 여러 번 깜빡였다.

잠시 후, 시력이 회복된 나는 고개를 들었고,

“……”

관장 놈이 검게 그을린 채 바닥에 엎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몸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고 있는 놈을 건조한 눈으로 내려다보면서, 로나는 성호를 긋고 나지막이 말했다.

“주께서 역사하셨도다.”

“……살아있는 거겠지?”

“콜록콜록, 당연하죠!”

놈이 입에서도 연기를 내뿜으며 벌떡 일어났다!

세상에, 벼락을 정통으로 맞았는데도 안 죽었어!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다더니 진짜였구나!

“아으으…… 일주일 동안 차 금지라니. 너무해!”

벼락을 맞으면서 무언가 들었나?

놈은 검게 탄 얼굴을 구기며 투정을 부렸다.

“멋대로 가지들을 건드린 것 치고는 가벼운 벌 같은데요.”

“가볍긴 무슨! 전 차를 못 마시면 아무것도 못한단 말이에요! 우으으…… 일주일이나 연구를 못하잖아!

평행세계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술식 수정하라는 것도 짜증나는데, 차까지……!”

우리가 오기 전에 마법을 고치라는 명령을 받았나보군.

근데 희한하네.왜그 마법 자체를 금지시키지 않는 거지?

대체 왜……?

“하…… 마지막으로 완성된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글렀고…….”

진심으로 낙심한 건지, 놈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완전히 의욕이 떨어진 얼굴로 나를 마주보면서, 손을 들고 허공에 대강 휘휘 젓기 시작했다.

아, 마법 풀려나보다.

말 좀 하고 시작할 것이지, 진짜.

나는 재빨리 신고 있던 신발을 벗었다.

“디스펠.”

놈이 나를 가리키며 심드렁한 말투로 중얼거리자, 또 다시 빛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눈을 감을 새도 없이, 몸에서 무언가 벗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

펑퍼짐하던 옷이 몸에 꽉 맞아가는 게 느껴졌다!

이윽고 빛이 완전히 사라진 후, 떨리는 손으로 나 자신을 여기저기 살피면서 더듬어보았다.

도로 평탄해진 가슴, 꼭 맞는 더블릿과 바지. 다시 짧아진 머리.

그리고,

“오, 원래대로 돌아왔네.”

나를 살짝 올려다보는 메린의 얼굴.

그녀를 보니 완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아아……원래대로 돌아왔어……!!

“와아아! 돌아왔다아아!!”

“억.”

그녀를 꽉 껴안고 번쩍 들어올리며 마구마구 환호했다.

어흑, 이제 절대로 이딴 몸 어쩌고 하면서 불평 안 할 거야.

팔다리 잘 움직이고 그럭저럭 남자 구실도 할 수 있는 거에 감사해야지!!

제자리에서 대충 세 바퀴쯤 돈 다음, 나는 메린을 놔주고 검게 그을린 관장의 손을 잡았다.

“할 말은 더럽게 많지만 아무튼 감사합니다. 팔이랑 다리 한 번씩만 자르는 걸로 봐드릴게요.”

“어떻게 그게 봐주는 게 되는 거죠? 그새 ‘봐준다’는 말의 뜻이 바뀐 건가요? 하, 됐고, 얼른 갈 길이나 가세요.”

“거 되게 박하시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당신이 그리 애지중지 아끼는 클라이드 씨를 도와서 장서관의 위기를 해결한 사람인데.”

내 말에, 관장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흥! 어차피 여기가 무너지진 않는걸요. 고작해야 사서 몇 명 줄어들어서, 정문 닫을 시간이 조금 빨라질 뿐이지. 그것도 저랑은 요만큼도 상관없는 일이고요. 그러니 사례 안 드릴 거에요. 꿈도 꾸지 마세요.”

“줘도 안 받아요, 대머리 양반. 위슨이나 돌려주시죠.”

“내 어디가 대머리라는 거에요, 머리 콱 밀어버린다, 새꺄!!”

음, 굉장히 격하게 반응하는 걸 보니 대머리가 맞군.

어제 봤던 클라이드의 그 기묘한 그림은, 관장의 진짜 모습을 간략하게 표현했던 게 분명하다.

관장은 심호흡을 한 후, 박수를 한 번 쳐서 자신에게 붙은 그을음을 모두 말끔히 지워버렸다.

그런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도로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꺼냈다.

“어디까지 했었죠? 아, 그래, 위슨.

……위슨! 준비 다 됐으면 나오렴!”

그의 목소리가 방을 울리자, 관장실 안쪽에 있던 문이 끼익 열리며, 검은 모자와 코트를 걸친 위슨이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대충 봤을 땐,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인다.

항상 데리고 다니는 파랑새의 모습이 없는 건, 뭐, 문자 마법으로 전환시킨 거겠지.

늘 입을 가리고 있던 목깃을 열어젖힌 것만 빼면, 줄곧 봤던 위슨의 모습 그대로였다.

“휴, 무사했구나. 진짜 다행이다, 위슨. 저 놈한테 몹쓸 짓이라도 당한 건 아니겠지?”

“어머머, 전 어린애한텐 관심없거든요? 당신이라면…… 흐음…… 얼굴만 조금 고치면 가능할 거 같네요.”

“히익!”

빨리 여길 떠나야지, 진짜 돌아버리겠네!

나는 위슨을 끌고 다른 일행들과 나란히 선 후, 관장을 향해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아무튼 어제 하루 잘 묵고 갑니다, 오이스 관장님. 말썽 작작 피우시고 하루 빨리 소멸하시길 기도할게요.”

“싫은데요~ 영원불멸의 여인으로 여기 계속 있으면서 마법 팍팍 개발할 건데요~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소멸을 해요? 그래도 용사님의 이야기는 기대하고 있을게요.

부디, 좋은 결말을 맞이하시길.”

생긋 웃는 놈의 얼굴은, 한 대 때리고 싶을 만큼 쓸데없이 자애로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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