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화 〉 282화 : 폭풍전야 (2)
* * *
뱃속 한가득 생선으로 가득 채운 점심식사 후, 나는 찬찬히 맥주를 비우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신전에서 들은 이야기를 지금 여기서 해야 할 것인가?
만약, 내가 내일 입 뻥끗 잘못하면 이 마을이 작살난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 중 한 명은 반드시 소화불량으로 고생하겠지.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블루벨.
뾰족한 귀를 모자로 감춘 채, 여관주인이 직접 옥수수로 빚은 술을 마시면서 꺅꺅대고 있는 술꾼이다.
………왠지 고민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음, 아니야.
그래도 기왕 고민하기로 한 건데, 일 분은 채워줘야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만약 내가 여기서 그 일을 꺼낸다면, 시장에서 내일에 대비하기 위한 물품들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신,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다니진 못하겠지.
그렇다고 나중으로 미룬다면……
음…… 미뤄봤자 그다지 오래가지 않을 거 같아.
시장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듣게 될 테니까.
어차피 하게 될 거, 지금처럼 한자리에 앉아 있을 때 하는 게 제일 낫겠지.
마침 메린이 한창 호박파이를 먹는 중이고.
“있잖아, 너희 모두에게 할 말이 있어.”
나름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지만, 단 한 사람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내 옆의 녀석은 포크 움직이고 있고, 그 옆의 녀석은 옥수수차를 홀짝이고 있으며, 그 다음 녀석은 옥수수술을 잔에 콸콸 따르고 있고, 또 그 다음은 책 보고 있다.
환장하리만치 시선이 분산되어 있는 이 상황.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엔 굉장히 탁월한 환경이었다.
“아까 신전에서 들은 건데, 이 마을 조만간 바닷속에 가라앉을 거야. 인어들이 공격할 거래.”
“알아요.”
“……?!”
위슨이 툭 던지듯 대답하는 걸 듣고 놀랐다.
세상에, 위슨 녀석, 제대로 듣고 있었구나!
다들 이야기할 때마다 맨날 혼자 책 읽으면서 잠자코 있길래, 누가 무슨 얘길 하든 전혀 안 듣는 줄 알았는데!
“시장에서 들었어요. 여기 영주도 잡혀갔다면서요? 꼭 바다에 뛰어드는 것처럼 보였다던가.”
“왜 인어들이 복수하겠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고 하더라. 맹약이니 동맹이니, 못 알아들을 소리만 했대.”
그의 말을 잇듯이, 블루벨이 턱을 괸 채 중얼거리면서 술잔을 들었다.
그대로 입에 대기 전, 그녀는 나를 힐끗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넌 이유 제대로 듣고 온 거지? 뭣 때문이래? 자신들의 왕국이 멸망한 걸 인간 탓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망할 때 안 도와줘서.”
“………농담이지?”
“이 녀석이 파이 두 조각째 먹고 있는 것만큼 무시무시한 진담이야.”
메린을 가리키며 그렇게 대꾸하자, 블루벨은 무척이나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술을 들이켰다.
그 모습이 신경에 걸렸는지, 메린이 포크를 입에 문 채 미간을 좁히며 웅얼거렸다.
“내가 뭐.”
“참 잘 먹는다고.”
테이블을 점거하고 있던 여덟 가지 음식들을 말끔하게 먹어치웠으면서도, 굉장히 여유롭게 호박파이를 처치하고 있다.
벌써 두 조각째 먹고 있는데, 속도가 전혀 줄지 않고 있어……!
아무리 다섯이서 나눠 먹은 거라 해도, 요리 하나당 2인분은 됐으니 거의 16인분이 차려져 있었지?
한 명당 3인분 먹어도 남는 양이었단 말야.
근데 메린은 그걸 끝까지 다 먹고서 후식까지 챙겨 먹고 있는 거다!
물론 나를 포함한 네 명은 배가 불러서 파이에 손도 안 대고 있는 상태이다.
난 지금 맥주도 겨우겨우 넘기고 있는걸.
“야, 메린…… 너 배 안 부르냐?”
“조금.”
“오, 주여.”
아니 키도 나보다 작구만, 대체 위장이 어떻게 되어 있길래 그 많은 걸 먹고서도 배가 조금밖에 안 부르는 거야?
아무리 힘을 많이 쓴다고 해도 그렇지, 세상에……!
고개를 살짝 흔든 후, 녀석의 왼팔을 살며시 잡아보았다.
그런 뒤, 다시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사기야.
이렇게 많이 먹는데, 그리고 그렇게 굉장한 힘을 내는 녀석의 팔이 이래도 돼?
그럭저럭 가느다랄 뿐 아니라 말랑거리다니 말이 되냐고.
그럼 그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
힘주면 갑자기 팔이 굵어지면서 근육 튀어나오기라도 하나?
손가락도 가느다랗고 말야.
물론 이건 왼손이지만, 메린은 오른손을 더 많이 쓸 뿐 기본적으로 양손잡이다.
손 가느다란 건 양손이 거의 비슷하단 말이지.
……가만히 녀석의 왼손가락과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굳은살이 배겨서 거친 느낌이긴 하지만, 이 녀석이 발휘하는 힘을 생각하면 역시 말도 안 되는 수준이야.
메린이 딱히 별말 없길래, 나는 그대로 녀석의 왼손을 만지면서 알스 사제에게 들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래서 내가 내일 그 사제님과 같이 대담에 참석해야 돼.”
콱.
으악, 이럴 줄 알았어!
말을 마치자마자 녀석의 왼손이 내 손목을 세게 붙잡았다!
“야, 야야야, 아파, 아프다니까……!”
“선전포고한 새끼들이 뭔 짓을 할 줄 알고 거길 기어나가? 미쳤냐?”
“아니, 그, 협상,”
“마지막으로 변명 들어주겠다고 응한 거라며? 협상은 개뿔, 그냥 공개적으로 유언 발표하는 거구만!”
꽈아아악.
“으아아악! 메린메린메린, 미안해, 잘못했어! 놔줘, 놔주세요!”
“너야 원래 호구 새끼이니까 그렇다 쳐, 그 사제님은 뭔데 부탁도 아니고 명령질을 하냐? 공주님 옆에 있었다고 지가 그만큼 높은 줄 알아……!”
“호구 아니, 꺄아아악!”
따지려던 순간, 손목을 잡은 녀석의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으아아아, 이 마을보다 내가 먼저 작살날 거 같아!!
근데 이 자식, 왜 알스 사제한테 화를 내면서 내 손목을 분지르려는 건데?!
“메린 님, 화나시는 건 아는데 손은 놓아주세요. 카엘 님의 손목을 부러뜨린다고 알스 사제님의 손목이 부숴지지 않아요.”
“……”
로나가 헤실 웃으면서 타이르자, 메린은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내 손목을 놓아주었다.
보라색이 되어 있던 손이 서서히 원래의 빛깔을 되찾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쏙쏙 아려오는 손목을 문질렀다.
흑, 존나 아파…….
“쟤 말이 틀리진 않네. 굳이 거길 왜 나가니? 녀석들이 그 자리에서 널 죽일지도 모르는데.”
“용사니까.”
으으, 손목이 잘 안 움직이는 거 같아.
자세히 보니 부어오른 거 같기도 하고…….
말없이 로나에게 시선을 향하자, 그녀가 곧바로 나에게 다가와 손목을 쿡쿡 찔러본 후, 그 위에 손을 대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내 팔자 진짜 더럽긴 하다…….
작게 한숨을 쉬는 내 귀에, 블루벨이 의혹에 찬 목소리로 묻는 게 들렸다.
“용사인 게 이유라고?”
“……맹약을 맺은 다섯 종족의 수장을 만나서 지원을 요청하고 대재앙을 무찌르는 것. 그게 용사의 일이야. 인어가 인간을 적으로 돌려서 좀 애매해지긴 했지만, 천사가 ‘여왕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으니 만나는 봐야지. 그리고,”
통증이 사라진 손을 들어, 기도를 마치고 방실 웃는 로나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안 가면 그 사제님 혼자 인어들을 상대해야 되는데, 나라도 있는 게 낫지 않겠어? 잘하면 선전포고를 철회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인어들이 내세운 복수의 명분은, 맹약을 나눈 동맹들이 자신들의 멸망을 방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인간, 즉 교단은 어떠한 징조도 받지 못했고, 마법사는 옛적에 마녀가 된 탓에 자신들의 욕망을 우선시하도록 타락해 있었고, 엘프는 그보다 더 전부터 온 대륙을 따돌리고 있었다.
드워프는…… 글쎄, 산 속 지하에 사는데 알 방법이 있나?
설령 있다고 해도, 도와주러 가기엔 너무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지.
이렇듯, 나는 각 종족들의 사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상태이다.
그러니 내가 알스 사제를 도와서 잘 변명한다면, 그들이 분노를 거둘지도 몰라.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돕는 상황이었다고 납득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다.
달그락, 메린이 재차 포크를 움직이면서 심드렁하게 물었다.
“자신 있냐?”
“아니.”
“망하면 여기 뜰 거냐?”
“아니.”
“안 뜨면 뭐, 여기랑 같이 바다에 빠져서 물고기 밥이 될 거냐?”
“아니.”
내 고향이라 해도 망설여질 판에, 나랑 아무 연관도 없는 마을과 운명을 같이 할 리가 있나.
난 그런 성자가 아니다.
위험에 빠진 마을 사람들을 그냥 두고 떠나지 못하는 영웅도 아니고.
성자도, 영웅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조져버릴 거야.”
무작정 들이대어진 분노에 칼날로 답하는 것뿐.
자꾸 억지를 부리면서 성질내는 놈에게 지랄하지 말라고 주먹을 날리는 것뿐이다.
“놈들이 덤빈다면, 그 하반신을 썰어서 구워 먹어줘야지. 안 그래?”
삽시간에 찾아온 침묵.
다섯 명이나 앉아 있는 테이블에, 내가 맥주를 들이켜는 소리만 조용히 들려왔다.
다시 잔을 내려놓자, 메린이 동그랗게 뜬 눈을 나에게 향하며 물었다.
“인어 먹어도 되는 거냐?”
“허리 아래는 물고기라고 하더라. 먹어도 되지 않을까?”
“먹지 마, 미친놈아!”
쾅.
블루벨이 가볍게 테이블을 내려치며 일갈했다.
여관을 나온 후, 나는 메린과 위슨을 따라 무두장이의 집으로 향했다.
거의 마을 끝자락까지 가야 했는데, 무두질 작업 특성상 지독한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찾아간 무두장이의 집은, 여느 마을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커다란 나무통이 여럿 놓여 있고, 가죽이 걸려 있는 건조대도 몇 개 보인다.
지독한 냄새에 살짝 현기증을 느끼며 문으로 다가가자, 한창 털을 제거하고 있던 무두장이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 뒤, 그는 그대로 다시 작업을 시작하면서 말했다.
“뭐 찾으쇼? 의뢰는 안 받아요. 조만간 이 마을이 없어질 거거든.”
“그런데도 작업하시는 거에요?”
“달리 할 게 없으니까. 그리고 이게 때를 놓치면 못 써지거든. 어차피 내일이면 바다에 떠내려가겠지만, 그래도 그냥 가만둘 수가 없네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기가 막힌 모양이다.
무두장이는 자조하듯이 헛웃음을 켜며 계속 손을 놀렸다.
“피난은 안 가시고요?”
“요즘 같은 때에 가긴 어디로 가요? 물론 나처럼 가죽 만지는 놈이야 어느 마을을 가든 먹고 살 수야 있겠지만, 요 위쪽 동네들도 속속 망하고 있다더만. 잘 보이지 않던 몬스터 놈들도 돌아다니고.
몬스터 놈들 뱃속에 들어가나 물고기밥이 되나 거기서 거기인데, 발버둥쳐서 뭣해요?”
술집에 모여 있던 그 사람들도 이런 생각인 걸까?
그저 이 무두장이는 직업정신이 투철해서 술이 아닌 평소 작업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거겠지.
무두장이가 일하고 있다길래 혹시나 하고 와봤는데, 역시 그러길 잘한 것 같군.
나는 메린과 함께, 위슨의 배낭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생가죽 두 장을 꺼냈다.
부스럭대는 소리에 다시 고개를 든 무두장이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휘둥그레 커진 게 보였다.
“이게 있으면 조금 의욕이 나실까요? 곰 가죽인데.”
“하나는 그냥 곰이 아닌 거 같은데요?! 세상에, 스톤베어 가죽, 그것도 대가리까지 다 달려 있다니?!”
응? 생각보다 귀한 거였나보네.
경악에 찬 채 입을 떡 벌리고 선 무두장이에게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혹시 작업 다 된 곰 가죽 있나요? 털 달린 거면 더 좋은데.”
“어어, 영주님이 맡기셨던 게 있죠. 옷감으로 쓰신다고 해서 대가리는 잘랐는데요.”
“그렇다는데?”
메린에게 말을 넘기며 눈짓하자, 그녀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상관없어요. 두 장 주실 수 있나요? 이거랑 바꾸고 싶은데요.”
“어어, 예, 자, 잠시만요!”
무두장이는 칼을 내려놓고 후다닥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곰 가죽 두 장을 실은 수레를 밀며 서둘러 돌아왔다.
“영주님이 의뢰하셨던 거라 품질은 보장합니다. 이대로 깔개나 담요로 써도 되고요.”
“그럼 바꾸시는 거죠? 얼마 더 드려야 돼요?”
“아뇨아뇨아뇨, 당치도 않아요. 그 가죽으로 충분해요!”
말을 하면서도, 그의 눈은 연신 스톤베어 가죽에 꽂혀 있었다.
그냥 가죽도 아니고 영주에게 납품할 거랑 맞먹다니, 진짜 엄청 귀한 놈이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영주에게 주려던 걸 선뜻 넘기려 하네.
이 아저씨는 영주가 살아있을 거란 생각을 안 하고 있구만?
덕분에 좋은 물건을 얻었긴 한데,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순수하게 기뻐할 순 없었다.
여하튼 거래는 성립되었고, 다른 두 사람이 곰 가죽들을 가져가서 배낭에 넣는 동안, 나는 무두장이와 함께 생가죽을 수레에 실었다.
어디 보자……
메린이나 위슨이나 여길 안 보고 있군.
나는 조용히 돈주머니를 꺼내어, 무두장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후 그에게 은화 열 닢을 쥐어 주었다.
“왜……?”
당혹스러운 눈으로 묻는 그에게, 나는 미소를 지어주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발버둥치시려면 좀 필요하실 거 같아서요. 배나 마차 삯으로 보태세요.”
“그러니까 왜……?”
“이런 상황에도 일해주신 게 감사해서요. 부디 포기하지 마시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셔서 살아남으세요. 제 생각보다도 엄청 귀한 가죽인가본데, 그냥 버리면 아깝잖아요?”
“………고마워요.”
고개를 숙이려는 그에게 손을 내저어 만류한 후, 나는 집 울타리문 바깥으로 나왔다.
마침 배낭을 다시 멘 메린이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늦게 나왔다? 뭐 또 샀냐?”
“어, 아니, 그냥 이것저것 대화 좀 하느라.”
“대화……… 대화를 했다고……….”
메린은 가만히 되뇌면서 나를 뚱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으, 설마 들린 건 아니겠지?
녀석이 추궁할 법한 말을 떠올리면서 미리 답을 짜내고 있는데,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의외로 녀석은 더 캐묻지 않고 다시 마을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라, 웬일로 그냥 넘어가는 거지?
이제 포기한 건가?
위슨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따라잡자, 그녀가 불쑥 말을 꺼냈다.
“여기도 젤리 팔까?”
“어? 어어, 아마 팔겠지?”
“그럼 한 봉지 사줘.”
……진짜 뜬금없네.
그보다 그렇게 단 걸 먹었으면서 또 다른 간식을 찾다니, 어째서 충치가 안 생기는 건지 정말 모를 일이야.
내가 대답이 없는 게 거슬렸는지, 메린은 건조한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며 물었다.
“왜, 싫어?”
“그건 아닌데……. 오늘따라 단 게 막 땡기나보다? 더워서 그래?”
“아니, 입막음으론 딱 좋을 거 같아서.”
이건 또 뭔 소리야?
이번엔 내가 미간을 좁힐 차례였다.
“웬 입막음? 누구 입을 막을 건데?”
“내 입.”
“허?”
“예상보다 엄청 좋은 가죽을 얻었으니, 젤리 한 봉지로 봐줄게.”
“………아, 응. 고마워.”
젠장, 들켰구나!
돈 꺼낼 때나 말을 건넬 때나, 메린에게 안 들리도록 조심했는데 어째서……?
메린 녀석, 진짜로 저 더듬이 같은 머리로 뭔가 감지하는 거 아냐?
작게 한숨을 쉬자, 위슨이 위로하듯이 내 팔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형은 얼굴에 다 티 난다니까요. 쓸데없이 얼굴빛이 환해졌는데 안 들키는 게 이상하지.”
“제길.”
말하는 걸 보니 위슨도 알아챈 게 분명했다.
하, 너무 솔직한 것도 문제로구만.
재차 한숨을 푹 쉬면서, 터덜터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