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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90화 (390/475)

〈 390화 〉 372화 : ‘만약’을 입은 너와 함께

* * *

떠들썩한 아침식사 후, 메린과 함께 시장으로 향했다.

무언가 살지도 몰라서 배낭을 하나 메고 갔는데,

아니나다를까,

“카엘! 야채 사야 돼! 빨리!!”

“엥?!”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메린이 갑자기 나를 끌고가기 시작했다!

뭐, 야채?

장은 내일 봐도 될 텐데?!

“야, 메린, 갑자기 왜……”

“들렸어! 어제보다 비싸!”

“뛰어어어!!”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길한복판을 느긋하게 지나는 짐수레를 뛰어넘는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낙네의 옆을 스치며 지나간다.

두 일꾼이 크고 길다란 널빤지를 짊어진 채 길을 가로지르는 걸, 몸을 낮추어 널빤지 아래의 틈으로 미끄러져 지나간다.

메린 녀석은 그 위를 그냥 뛰어넘었는지, 길게 땋아 내린 머리를 휘날리며 사뿐히 착지.

내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다시 몸을 가누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예정에도 없던 곡예를 부리며 쉬지 않고 뛴 덕에,

“오오, 첫 손님이시네! 어서오세요!”

“야, 여기 바구니! 넌 그쪽 맡아!!”

“알았어! 감자감자감자!”

대난투가 벌어지기 전에 무사히 값을 치르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 청과물점에서 멀어진 후, 둘이서 가슴을 쓸며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서로 마주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야, 우리 미친 거 아니냐? 하하, 데이트 시작하자마자 야채 사러 뛰어가다니!”

“뭐 어떠냐? 어차피 시장 도는 건데. 아, 재밌었다. 옛날 생각도 나고!”

“옛날? 아~ 맞아, 어렸을 때도 미친듯이 뛰어다녔었지.”

정확하게는 메린 녀석에게 쫓긴 거지만.

필사적으로 달아나던 그때를 떠올리자,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나저나 야채들을 일단 자루 하나에 다 넣었는데, 분류하는 게 좋겠지?

리크 같은 건 찌그러질지도 모르니까.

좀 많이 웃기긴 하지만, 여관으로 돌아가서 정리하는 게 좋을 듯했다.

메린은 내 제안에 덤덤히 끄덕이더니,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데이트 끝이냐?”

“아니야!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온 힘을 다해 부정했다.

야채를 정리하고 다시 돌아온 시장.

완전히 오전 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훨씬 더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가게도 다 열었을 테니 오히려 잘됐지, 뭐.

나는 안쪽에서 포효 비슷한 게 들려오는 걸 무시하며, 메린과 함께 다른 가게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과자가게는 없네.”

“먹을 게 귀해졌으니까.”

조금 전에 우리가 산 야채들의 값도 평상시의 네다섯 배는 더 준 것 같았다.

가게주인이 어제보다 더 높은 값을 불렀다고 했으니, 내일은 값이 그보다 더 높아지거나 아예 물건이 없어서 문을 닫겠지.

메린 아니었으면 때를 놓쳐버렸을 거야.

“또 뭐 사야 되던가?”

“아니.”

“그래? 그럼 저기 가보자.”

메린은 내가 가리킨 가게를 보고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의류…점? 저거 옷가게지? 왜?”

“왜긴? 구경하려는 거지. 헌옷 팔고 있을걸? 괜찮은 거 있으면 하나 사자.”

“옷 충분한데?”

“……안 충분해.아무튼 가보자고.”

모처럼 쉬는 거니, 메린에게 치마를 입힐 생각이었다.

그간 마을 지날 때마다 메린이 또래 여자애처럼 입은 게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뭐, 헌옷이니까 썩 좋은 건 없겠지.

그래도 괜찮은 게 있으면 오늘 하루 입고 다녀달라고 해야겠다.

그럼 누가 봐도 남녀 한 쌍이 데이트하는 걸로 보이겠지?

녀석의 지금 옷차림도 좋긴 하지만, 뒤에서 보면 키 작은 남자 같으니까 말야.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얄팍한 마음으로 옷을 고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이건 어떻습니까?”

“으윽……!”

보자마자 가슴을 부여잡으며 고개를 떨궜다.

벽에 손을 짚고서 쓰러지지 않으려 버텼다.

말도 안 돼.

아아아,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뭔 애가 뭘 입든 죄다 예뻐?!

바로 직전에 입은 여성용 서코트도 예뻤는데 이건 더하잖아!!

어떻게 이래?

레이스가 마구 달린 드레스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슈미즈에 오버드레스인데.

장식이라 할 건 끈밖에 없잖아, 근데 왜 저렇게 예쁜 거야?!

혹시 오버드레스가 가슴과 허리를 강조하는 모양이라서 그런 걸까?

가슴께가 둥그스름하게 깊이 파인 거 봐, 꼭 받치는 거 같잖아!

거기다 허리 조이게 되어 있고! 저러니 더 잘록해지지!

그리고 슈미즈를 입어서 훤히 드러난 쇄골 아래에, 내가 전에 선물했던 은방울꽃 펜던트가 자리하고 있다.

아윽, 진짜, 심장 터질 거 같아……!

“이것도 있는데 말이죠.”

주인장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또 다른 옷을 입은 메린을 보여주었다.

조금 부유한 여인이 입었을 법한 실크 드레스.

금빛 안감에 붉은빛 겉감을 대고, 가슴 바로 위까지 파여 있다.

……살려줘.

“이런 것도 있고요.”

어깨가 훤히 드러난 짙은 녹색 드레스.

그래도 목과 가슴은 덮여 있어서 일견 정숙해보이지만, 등이 깊이 파이고 끈으로 매듭을 짓게 되어 있다.

역시나 허리를 조이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심장이 아플 뿐 아니라 눈까지 화끈거렸다.

……진짜 죽을 거 같아!

그리고 또 한 벌, 단색 드레스에 앞치마라는 엄청나게 단조로운 옷차림을 본 순간, 나는 더 못 버티고 바닥에 엎드리고 말았다.

너무 강하잖아……!

완전 평범한 차림으로 내가 준 반지 끼고 있고 말야.

이미 결혼해서 같이 살고 있는 것 같잖아, 이걸 어떻게 버텨?!

“헤엑… 더는 안 돼애… 흐으… 봐줘어… 이제 무리야아…….”

“지랄병 도졌냐? 존나 호들갑 떠네.”

“아니, 진짜 죽겠다고…….”

벽에 기댄 채로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런 뒤, 되게 재미있다는 듯이 싱글거리는 주인장에게 물었다.

“혹시… 치수 고쳐야 되나요…….”

“아니요. 거의 딱 맞으셔서, 그냥 이대로 입고 다니셔도 괜찮을 거에요. 뭘로 하시겠어요?”

“메린… 넌 뭐가 제일 좋냐……?”

메린은 멀뚱히 선 채로 눈만 깜빡거리더니, 곧 어깨를 으쓱였다.

“몰라. 다 그게 그거야.”

이 녀석, 바보 아냐?

모양이 다 다른데 어떻게 다 그게 그거야?

아, 그래, 관심이 없구만?

그럼 또 내가 골라줘야지, 뭐.

“두 번째로 주세요. 하얀 슈미즈에 빨간 오버드레스. 아예 입고 갈 거에요. 그치, 메린?”

“뭐? 야, 이걸 뭐 하러……”

“오늘만 입고 다녀주라. 응?”

엄청 예쁘니까, 아마 오늘 하루종일 두근거릴 거야.

다른 놈들도 분명 쳐다보겠지.

뭐, 예쁜 여자에게 눈이 가는 건 본능이니, 그 정도는 너그럽게 넘어가줄 수 있다.

수작 거는 즉시 조져버릴 거지만.

“입어줄 거지? 데이트이니까.”

“어어……”

메린의 얼굴에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스쳤다.

뭐가 문제라도 있나?

“왜? 싫어? 아니면 지금은 치마 못 입어?”

“아니, 다리가 허전해서……”

“별 거 아니네. 그럼 입을 거지?”

“으……”

“입을 거지?”

기대감에 들떠서 묻는데, 어째서인지 메린의 얼굴에 진땀이 약간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감사합니다! 예쁘게 입으세요~”

우리는 주인장의 인사를 받으며 의류점을 나섰다.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갈 생각이 없는 나와 달리, 메린은 약간 시무룩해져 있었다.

“으으, 허전해……. 야, 꼭 이러고 다녀야 되냐?”

“어. 조금만 참아봐. 금방 적응할 거야. 전에도 그랬잖아.”

“그땐 안에 속치마 엄청 입었었거든? 하……”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메린.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이번엔 절대 물러나주지 않을 것이다.

무지하게 예쁘니까!!

“계속 쪼개네. 야, 내가 이거 입으니까 그렇게 좋냐?”

“응!”

“존나 해맑네…….”

메린은 화를 낼 기운도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고는 또 한숨을 쉬었다.

뭐, 거의 안 입던 거 입었으니 불편하긴 하겠지.

그래도 신발은 갈아 신지 않았으니 좀 낫지 않나?

아무튼 나는 무척 기뻤다.

무도회 때문에 입었던 파티용 드레스보다 지금 옷이 훨씬 더 좋은 거 같아.

“야야, 메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봐.”

“……”

“한 번만 해줘, 응? 딱 한 번만! 제발!”

돌아버리겠다는 눈으로 나를 빤히 보던 메린은, 이내 한숨을 푹 쉬더니 두 팔을 살짝 벌리고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발목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치마가 약간 넓게 펼쳐지고, 그녀의 땋은 머리가 살며시 허공에 나부낀다.

다시 땅에 내려온 치마가 산들산들 잔물결을 일으키고, 그 뒤에서 갈색 머리카락이 좀더 춤추고 싶다는 듯이 살랑거린다.

……아아, 여기가 마을 한복판이라서 다행이야.

그녀가 산들바람이 부는 초원이나 들판……

그래, 고향의 그 들판에서 이랬다면 정말로 버티지 못했겠지.

다행히 우리는 시장에 있었고, 덕분에 그녀의 평온한 아름다움이 우중충한 빛깔에 조금 묻힐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동작들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모두 지켜본 뒤에도,

“헤윽……”

가슴을 부여잡으며 제자리에 쪼그려 앉는 걸로 끝났던 것이었다!

“으으으… 메린… 진짜 장난 아니다… 하, 숨이, 하악, 잘 안 쉬어져…! 하으… 죽을 거 같아……!”

“……너 나 놀리는 거지? 이상하니까 일부러 더 떠드는 거 아냐?”

“뭔 소리야. 그럴 리가 없잖아.”

아직 일어날 기운이 없는 탓에, 고개만 움직여 메린을 올려다보았다.

……우와, 의도한 건 아닌데 이거 엄청난 구도잖아.

코앞에서 올려다보면 얼굴 안 보이는 거 아냐?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하냐, 등신아, 정신 안 차려?!

안 되겠어.

이 자세로는 멀쩡한 말이 안 나올 거 같아……!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뒤, 샐쭉한 표정으로 불신 가득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검…… 아니, 싸움 자체와 연이 없을 듯한 청초한 모습.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녀가 사실 검술의 달인이고, 무지막지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저 얼굴과 손에는, 꽃향기를 담은 오일보다 피가 묻어 있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아마 아무도 못 믿겠지.

……메린이 입고 있는 건 그냥 옷이 아니다.

드래곤이 수작부리지 않았다면, 아니 그 마을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당연하게 보내고 있을 나날.

그녀가 가지지 못했던 삶의 형태이다.

그런 네가 어떻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너를 보고, 어떻게 내가 담담히 있을 수 있을까?

지금 눈앞에 꿈이 서 있는데.

손을 뻗어서 만질 수 있는데.

“정말 예뻐. 예쁘다는 말론 모자랄 정도야. 너한테 또 반해버린 거 같아.”

“어어…… 그, 그래?”

“응. 진짜 귀여워. 하……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니…….”

으으, 끌어안고 싶어.

아무데도 못 가고, 누구도 못 빼앗아가게 꽉 껴안고 싶어.

얼굴이랑 머리랑 마구 쓰다듬으면서 키스하고 싶어.

뺨 맞대고 비비고 싶어……!

“……야, 너 눈이 맛탱이 갔는데? 옷 입은 거 보고도 발정하냐?”

“뭐, 임마. 네가 꼴려서 그러는 걸 어쩌라고.”

“쓸데없는 데에서 당당하네. 흐음…… 그렇다는 거지? 흠흠.”

메린은 무언가 생각 중인지 잠시 다른 데를 보았다.

이윽고, 빙긋 웃으며 홀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어. 네가 그렇게 좋아하니 뭐, 좀 이상해도 참을게.”

“진짜? 응응, 고마워. 잘 생각했어.”

“나중에 쓸 만할 거 같아. 처음엔 왜 이런 걸 사나 했는데, 나쁘지 않을 거 같네.”

……응?

옷으로 나중에 뭐 하려고……?

어라, 참 이상하네.

메린이 킥킥 웃는 걸 보니 좀 불안해진다.

안 그래도 귀여운 모습이, 옷차림에 어우러져서 한층 더 사랑스러워졌는데 말이지?

“그리고 내가 이렇게 꾹 참으면서 너 원하는 거 들어줬으니, 너도 이따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게 해줄 거고. 안 그러냐?”

“………”

눈을 가늘게 뜨면서 씨익 웃는 메린.

먹이감을 노리는 맹수가 떠오르는 눈빛이다.

이 자식, 어제에 이어서 뭘 할 작정이지?!

지금이라도 갈아입으라고 할까?

그럼 오늘밤은 무사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럼 이 예쁜 모습을 못 보잖아……!

근데 안 그러면 이따가 뭘 당할지 모르고……!

끄으으으……!!

마음속으로 치열한 혈투를 벌인 결과,

“……아, 몰라, 맘대로 해!! 어쨌든 너 오늘 하루동안 그거 입고 다니는 거다!”

“그래~ 알았어~ 히히, 히히히……!”

“크흑……”

장렬히 산화하기로 했다.

아, 남자는 참 슬픈 생물인 것 같아…….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아니, 이 한 몸뚱이의 값으로는 모자랄 만큼 차고도 넘쳤다.

길거리엔 구걸하는 사람이 가득하고, 맛있는 간식도, 연극이나 음유시인의 연주공연도 없다.

눈길을 확 끄는 물건도 보이지 않는다.

시장에 있는 것은 모두 극히 평범한 것뿐.

그릇과 병, 장신구, 종이와 잉크 같은 잡화들, 모자, 신발, 여러 옷감들…….

모두 여느 마을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물건들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즐거웠다.

서로 모자를 써보기도 하고, 메린의 귀에 귀걸이를 대어보기도 했다.

잡화점에서 안경을 발견한 메린이 내 얼굴에 씌우고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렇게 웃긴가 싶어서 거울을 보고 같이 웃은 건 덤이다.

도중에 치료사집에 들러, 슐 누나에게 메린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하는 등,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는데도 무척 즐거웠다.

여태 놀았던 것 중에 가장 좋았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특별한 것 없이 흔한, 대부분의 사람이 보내는 평범한 시간.

우리에겐 그간 허락되지 않았기에, 여느 때보다도 값지고 눈부신 시간이었다.

시장을 나오는 길, 어느새 같이 팔짱을 끼고 있는 메린에게 말을 걸었다.

“이야~ 아까는 장관이었어. 슐 누나가 그렇게 좋아할 줄이야.”

놀랄 줄은 알았는데, 설마 비명까지 지르면서 방방 뛸 줄은 몰랐다.

그리고는 잔뜩 흥분해선 메린을 껴안고 마구 뺨을 비벼대는데…… 솔직히 좀 부러웠다.

으으, 나도 바깥만 아니었다면!

“이게 그렇게 예뻐? 난 잘 모르겠는데.”

“장난 아니야. 평소에도 예쁘고 귀여운데, 지금은 훨씬 더해. 네가 고향에서 치마 입고 안 다녀서 다행이다 싶을 만큼.”

“엥? 다행이야? 아쉬운 게 아니라?”

“어. 다행이야. 네가 고향에서 이러고 다녔으면, 딴 놈들이 너 엄청 집적댔을걸?”

그러다 누군가와 약혼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스스로에게도 숨기고 있던, 메린을 좋아하는 마음을 완전히 버렸겠지.

이렇게 같이 여행을 떠나는 건 꿈도 못 꿨을 거고.

메린은 내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성인식 이후는 모르겠는데, 그전에 약혼하는 일은 없었을걸?”

“왜, 다들 너 무서워해서?”

“아니, 내가 하기 싫어서. 옆에 붙는 것도 싫어. 신경 써야 하잖아. 귀찮아. 넌 편해서 좋지만.”

“………아, 그래.”

다른 사람은 신경 써야 해서 싫다. 나는 편해서 좋았다.

즉, 나 빼고는 죄다 거북해서 싫다는 이야기 아냐.

아으,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냐?

나는 막 대해도 되니까 편하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아마 내 부정적인 심성이 꾸민 사악한 왜곡이리라.

“근데 성인식 이후엔 왜? 나 말고 편한 사람 생겼었냐?”

“아니, 아무래도 좋아져서. 마을에 있을 수 있으면 상관없었거든.”

“뭐? 그게 뭔……”

캐물으려는 걸 막듯이 눈앞에 광장이 펼쳐졌다.

신비한 인형극을 보았던 자그마한 분수대 앞엔, 아이들이 모여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다.

그 주변에서 구걸하는 피난민들에게 눈길도 안 주는 걸 보니, 아직 어린 그들의 눈에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풍경인 듯했다.

“광장이네. 이제 어떡할 거야? 돌아갈 거냐?”

“아니, 갈 데가 있어. 여기 명물이래. 저쪽이야.”

메린의 손을 잡고, 어제 입구를 보았던 그 인형가게로 향했다.

오늘도 의자에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살짝 까닥여 인사한 후, <영업중>이란 팻말이 걸린 문 앞에 섰다.

곧바로 문을 열려는 찰나, 메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걸었다.

“옷 맞추게?”

“엉?”

“여기 양복점이잖아.”

녀석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가위와 바늘 그림이 그려진 간판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근처에, <인형의 집→="">이라 적힌 팻말이 있는 게 보였다.

화살표 방향에…… 위층으로 바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군?

우와, 쪽팔릴 뻔했네.

황급히 녀석을 데리고, 팻말이 가리키는 계단을 올라갔다.

작은 인형이 달린 <영업중> 팻말에 확신을 가지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끼이익, 낡은 문이 방문객을 알리자,

“어머, 어서오세요.”

가지각색의 인형들에 둘러싸인 은빛머리 여인이, 우리를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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