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1화 〉 373화 : 조금 특별한 인형사 (1)
* * *
제자리에서 한 바퀴 둘러보자, 눈이 닿는 모든 곳에 인형이 놓여 있었다.
한데 모여 앉아서 티 타임을 가지는 소녀들, 서로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남녀 한 쌍, 사이좋게 노는 꼬마애와 강아지, 고양이를 무릎에 올린 채 책을 읽는 할머니.
심지어 텃밭의 잡초를 뽑거나 소젖을 짜는 일꾼도 있다.
그야말로 .
이곳의 주인인 은빛머리 여인이, 오히려 인형들에게 얹혀 사는 느낌이었다.
“어떤 인형을 찾으세요? 선물용인가요?”
“어, 아뇨, 딱히 생각해둔 건 없어요. 그냥 구경 다니던 중이라……”
맘에 드는 게 있으면 사겠지.
근데 나나 메린이나 인형에 홀딱 빠질 나이는,
“카엘, 나 이거!!”
“……”
아니었을 텐데?!
어렸을 때는 거들떠도 안 보던 녀석이, 가게에 들어온 지 오 분도 안 되어서 인형 하나에 푹 빠져버렸다!
어우, 너무 놀랐나? 살짝 현기증이 이네.
아니, 메린이 인형을 가리키면서 헤헤 웃던 게 귀여워서 그런가?
눈두덩이를 가볍게 문지르면서 메린에게 다가가, 녀석이빤히 쳐다보고 있는 인형을 보았다.
어디 보자……
남자 인형이네.
튜닉에 조끼를 걸친 소년이 바위에 앉아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
바위는 속이 빈 나무를 칠해서 만든 가짜이지만, 낚시대는 바늘까지 착실히 달려 있는 게 의외로 공들여 만들어져 있었다.
근데 이거 봉제인형 같은데, 낚시대가 어떻게 들려 있는 건지 모르겠다.
실로 묶은 것 같지도 않은데 신기하네.
아무튼 메린은 이게 마음에 든 모양이다.
옷에 별다른 장식이 없어서 엄청 수수한데, 그 건너편에서 말 타고있는 풀 플레이트갑옷 기사가 더 낫지 않나?
아니면 기사의 맞은편에 있는 커다란 곰이 좋을 듯했다.
둥글둥글해서 꽤 귀여우니까.
그러나 메린은 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싫어. 그건 그냥 보기에만 좋잖아. 가지고 다닐 거 생각하면 이게 더 좋아.”
애들은 자기 몸뚱이만 한 곰인형도 가지고 다니던데.
뭐, 메린은 아이도 아니고, 감성도 특이하니까 인형 보는 눈도 다르겠지.
“그래, 맘대로 해. 근데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이게 왜 좋은 거냐?”
“너 같아서.”
“………아, 그래.”
겨우겨우 대꾸할 수 있었다.
아으, 진짜 시도때도 없이 기습을 해대네……!
그리고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그 인형이 갈색머리에 파란색 눈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낚시…… 내가 낚시 좋아하긴 하지.
고향에서 자주 했었으니, 낚시하는 모습에서 날 떠올리는 것도 당연해.
근데 내가 떠오르는 인형이 가지고 다니기 좋다고?
어차피 배낭에 넣을 거 아냐?
뭐, 옆구리에 끼고 다니기라도 할 생각인가?
……하으.
“이거 사줘. 응? 내가 잘 돌볼게.”
“뭘 돌봐, 임마, 인형이잖아……… 잠깐 숨 좀 쉬고.”
손으로 얼굴을 덮고서 크게 세 번 심호흡을 한 후, 여주인을 돌아보았다.
“저 봉제인형, 얼마……”
말을 끝맺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방긋 웃고 있는 여주인의 손에, 소녀 모습을 한 봉제인형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다홍색 옷에 하얀 앞치마를 입은, 갈색머리의 소녀.
굵직한 실로 된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있긴 하지만, 눈 색깔은 확실하게 붉은빛을 띠고 있다.
“어떠세요?”
“음…… 저는……”
“아니면 주문제작 하시겠어요? 모습은 힘들어도, 분위기는 정말 확실히 닮게 만들어드릴 수 있는데.”
닮게……
……아니야, 넘어가면 안 돼!
여기 계속 머무를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주문제작이라고 하면 비쌀 게 뻔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고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그건 힘들 거 같아요. 저희가 모레 아침에 여길 떠날 거거든요.”
“어머, 괜찮아요. 봉제나 털실인형은 하루면 충분하거든요. 어떠세요? 두 분, 굉~장히 가까운 사이인 것 같은데…… 한 쌍, 만들어드릴까요?”
시간이 충분……
으으, 아니야, 주문제작이잖아!
아무리 봉제인형이라 해도 비쌀 거라니까?!
거절해야 돼. 메린이 홀딱 빠져 있는 인형만 사고 가야 한다고!
“한 번 상상해보세요. 두 분을 닮은 인형이 서로 다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 아니면…… 그래요, 이건 어때요?”
그래야 하는데,
“아가씨가 혼자 있을 때, 손님을 닮은 인형에게 입맞추며 속삭일지도 몰라요. ‘보고싶어…….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
여주인의 요사스러운 속삭임이 들리기 시작했다……!
“또는 아가씨가 밤에 인형을 꼬옥 껴안고 자는 거죠. 꿈 속에서 손님을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으……!”
그럴 리 없다.
메린은 그런 감상적인 애가 아니야.
게다가 야영할 때도 이제 따로 자진 않을 텐데, 뭐.
……라고 머리가 열심히 사실을 늘어놓는데, 조금도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계속 같이 잘 거긴 한데, 그래도 불침번은 설 거 아냐.
어쩌면 그때……
“당연~히!”
돌연 여주인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특별한 인형답게, 특별한 처치가 들어갈 거랍니다!”
“처치……?”
“네! 두 분에게 내려질 재액을 대신 받아줄 거에요! 조금 불쌍하지만, 그것도 인형의 역할이니 어쩔 수 없죠. 덤으로 잡귀와 날벌레도 쫓아줄 거에요.”
잡귀가 날벌레랑 같이 언급될 존재가 아닐 텐데?
아무튼 뭐, 부적 비슷한 역할도 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인 듯했다.
……근데 그냥 인형사 아닌가?
부적이 되라고 빌면서 한 땀 한 땀 뜬다고 되는 게 아닐 거 같은데.
“인형은 다른 분이 만드시나요? 아니면, 혹시 사제님에게 축복이라도……?”
“네? 후후, 아니에요. 제가 직접 만들고, 축복도 저 한 사람의 것만 들어간답니다. 제가 약~간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 네에…….”
그냥 정성껏 만든다는 거군.
부적이란 게 그렇지, 뭐.
아무튼 조금 끌리는 건 사실이다.
너무 비싸지 않다면, 기념 삼아 주문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
……메린이 나 닮은 인형에 뽀뽀하는 걸 보고 싶어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
아무튼 아니야!
“음…… 메린, 어때?”
뒤를 살짝 돌아보니, 메린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멍하니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내 비틀비틀 일어나 주인장에게 다가가서는, 그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구석구석 다 닮는 건가요?”
“인형이니까, 사람 몸과 똑같이 되지는 않아요. 그래도 분위기는 똑 닮을 거에요!”
“그럼 옷 갈아입히는 건요?”
“당연히 되죠~”
“나 할래!! 주문!!”
“………”
녀석의 눈이 반짝반짝거리고 있다.
옷 갈아입힐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좋은가?
그 전에 구석구석 닮았냐는 건 왜 물은 거고?
저 자식, 나 닮은 인형으로 뭘 하려는 거지?!
살짝 불안해졌지만, 어쨌든 주문하기로 했다.
그러자 은빛머리 여주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이 손짓했다.
그녀는 가게 안쪽에 놓인 테이블에 우리를 앉힌 후, 따끈한 차가 담긴 잔 둘을 가져와 우리 앞에 각각 놓았다.
이어서 종이와 필기도구를 들고 오더니, 맞은편에 앉아 깃펜을 들었다.
“봉제랑 털실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재질을 고르는 걸로 시작해, 여러 질문이 오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크게 할 것이냐, 오염방지처리 할 거냐, 필수 소품이 있냐……
그 밖의 여러 주문사항들을 적은 후, 여주인은 펜의 깃털로 입술을 슬슬 쓰다듬으면서 종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계산이라도 하나보군.
차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주변 인형들을 구경하는데, 여주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짙은 보랏빛 눈이라 그런가?
조금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흠흠, 이제 보니 무척 인상적인 분이시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좀더 서비스해드릴까?”
“네? 서비스라뇨?”
“귀한 보물, 가지고 계시죠? 예를 들면~ 연한 파란빛 산호 같은 거?”
“허……?! 그, 그걸 어떻게……!”
뭐지, 이 사람?
인형이 부적 비슷한 역할을 하게 만들겠다더니, 그냥 인형사가 아니라 점쟁이 겸직이었나?!
“후후, 말씀드렸죠? 제가 조금 특별한 기술이 있다고. 그 보물을 저한테 맡겨주세요. 그럼 예쁜 브로치로 만들어서 아가씨 인형에 달아드릴게요. 서비스로.”
“예에, 뭐……. 그래서 얼마인가요?”
“합쳐서 은화 여섯 닢이에요.”
음, 비싸군. 역시 주문제작이야.
나무나 도자기였으면 훨씬 더 비쌌겠지?
주머니가 두둑해서 천만다행이다.
나는 여주인의 요청대로 착수금인 은화 세 닢과, 바닷가 마을에서 받았던 산호를 건넸다.
그녀는 산호를 보며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인 후, 나와 메린에게 각각 작은 천 조각을 내밀었다.
“머리카락이 필요해요. 신사분은 다섯 가닥, 숙녀분은 한 가닥만 주시겠어요?”
“왜 저는 다섯 가닥이죠?”
“짧으시잖아요.”
“아.”
상당히 타당한 이유였다.
메린은 땋았던 머리를 풀고 한 올을 뽑아서 천 조각에 올리고 끝.
그러나 나는 꽤 고역이었다.
세 가닥까지는 그냥 뽑았는데, 네 가닥부터는 왠지 손이 살짝 떨리면서 말을 잘 안 듣기 시작한 것이다!
으으, 연속으로 뽑으니까 은근히 아파!
메린이 다시 머리를 다 땋았을 무렵이 되어서야, 나는 눈에 맺힌 물기를 닦으며 다섯 가닥째의 머리카락을 천 조각에 올릴 수 있었다.
여주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두 개의 천 조각을 곱게 싸서 끈으로 동여맸다.
“이걸로 준비는 다 됐어요. 내일 점심 후에 찾으러 오시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후후, 감사한 건 저이죠! 제 인형이 큰 역할을 맡게 되어 영광인걸요.”
“……?”
역할? 뭔 역할?
고개를 갸우뚱거려도, 여주인은 그저 방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뭔 얘기인지 안 알려줄 생각이군.
뭐, 나랑은 별 상관없는 거겠지.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여주인의 배웅을 받으면서 문으로 향했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맡겨주세요. 온 힘과 정성을 쏟을 테니까요!”
약간 호들갑스럽기까지 한 인사와 함께, 여주인이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가게를 나와서 다시 광장으로 내려오니, 시계가 오후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배가 고프네.
이대로 여관으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는 건……
데이트 끝내고 집에서 밥 먹는 거나 다름없잖아.
그건 좀 그런데.
“흠……”
광장을 슬쩍 둘러보았다.
술집과 빵집이 각각 하나씩 있는데, 술집에만 사람이 북적거리고 있다.
빵이 비싸서 사람이 없나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냥 문을 닫은 거였다.
재료가 다 떨어진 것이리라.
술집에 자리가 있어야 할 텐데.
안 그러면 여관에서 묽은 수프와 순무 빵이라는 애처로운 식사로 데이트를 끝내게 된다!
으으, 생각만 해도 우울해!
“메린, 저기서,”
술집을 가리키며 말을 꺼내려는 순간,
우르르르—
콰과가앙—!!
뜬금없이 천둥 소리가 울렸다!
하늘 맑은데?!
“……”
……뭐지? 대낮부터 술집 가지 말라는 계시인가?
근데 밤에만 가야 된다는 법도 없잖아.
술 퍼 마시러 가는 것도 아니고.
하늘을 빤히 쳐다보았다.
구름이 끼거나 빗방울이 떨어질 기미는 없이, 그저 높고 푸르기만 하다.
그 상태로 잠깐 기다려보았는데, 천둥이 또 울리는 일은 없었다.
다른 동네에서 울린 게 여기까지 들렸던 건가봐.
그냥 계획대로 술집에 가자.
“메린, 저기서 점심 먹을까?”
“술집? 상관은 없는데……”
뚝 끊겨버렸던 말을 다시 전하자, 메린이 말끝을 흐리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왜? 천둥 때문에 그래? 비 올 거 같아?”
“아니, 그건 아니고……”
메린은 약간 입을 내밀면서 말을 이었다.
“단 거 없을까? 케이크나 파이 같은 거.”
“……없지 않을까? 술집이잖아.”
여관에서도 안 파는데, 술집에서 팔 리가 있나.
구운 감자와 순무 말고 다른 게 있기를 빌어야 할 판인데.
“역시 그렇겠지……?”
“아, 구운 사과는 있을지도 몰라. 그걸로 참아.”
“응…….”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메린을 다독이며 술집으로 향했다.
나 참, 진짜 단 거 좋아한다니까.
쓴웃음과 함께 들어선 술집.
다행히 테이블 몇이 비어 있었다.
천둥 소리에 찔려서 집에 가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다행인 건,
“와, 메린, 이거 봐.”
“엉? 호두 강정? 이게 뭔데?”
“설명도 봐야지.”
“버터랑… 꿀에 볶은 호두… 꿀? 꿀!”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기뻐할 메뉴가 있었다는 것이다.
구운 달걀 셋과 훈제 베이컨 한 조각, 으깬 감자와 거위 알 샐러드 한 그릇, 그리고 그녀를 위한 호두 강정과 구운 사과.
보통 사람의 두세 배는 더 먹을 수 있는 그녀에겐 턱없이 부족한 양이지만,
“자, 메린, 건배!”
“히힛, 건배애~!”
사과술이 담긴 잔을 부딪치며 환히 웃는 걸 보니, 크게 불만은 없는 듯했다.
아마 호두 강정이란 메뉴 덕분이겠지.
술안주라서 꿀보다는 버터 맛이 더 강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달콤했으니까.
“자, 카엘, 아~”
“……”
……아니, 엄청 달콤했다.
취기가 단번에 올라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식으로 신청해서 한 데이트.
손을 맞잡고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그녀의 얼굴엔 여름해에 지지 않는 환한 웃음꽃이 펴 있었다.
……날이 저물면서 그 밝은 웃음이 가늘어졌을 땐 조금 섬찟했지만.
뭐, 두 연인이 함께 침대에 드는 것만큼, 하루를 끝맺기에 더 어울리고 좋은 건 없긴 하지?
사정상 깊이 이어질 순 없었지만, 서로 끓어오른 열을 식힐 수는 있었다.
“근데 너 있잖아.”
“응……?”
아직 떨림이 남아있는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어제는 그렇다 치고, 오늘 한 거…… 누구한테 들었냐?”
“슐 언니.”
“………”
이 자식, 이제 보니 그런 거 물어보려고 날 쫓아냈었구만?!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막을 게 뻔하니까!
어쩐지 어제 손놀림도 저번이랑은 완전 딴판이더라!
“히히, 이것저것 들었어. 기대해.”
“……야, 너랑 나 체력 차이 장난 아닌 거 알지? 나 말려 죽일 거 아니면, 뭘 들었건 하지 마.”
“야, 날 뭘로 보는 거냐? 내가 설마 너 죽일 기세로 할까.”
할 거 같은데.
실제로 전에 한 번 했었고 말야?
……뭐, 어쨌든 죽지는 않겠지.
그녀를 깊이 끌어안으며 어깨를 토닥이자, 품 속에서 만족스러운 한숨 소리가 들렸다.
“메린,오늘 하루 고마웠어.”
“아까 거 포함해서?”
“……그래, 임마. 엄청 고맙다!”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나쁜 자식, 틈만 나면 놀리고 말야.
……이내 웃음소리가 잠잠해지고, 그녀가 살짝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잠들기 직전마다 하는 그녀의 버릇이다.
고개를 살짝 숙여, 잠 속으로 빠져가는 갈색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사랑해, 메린. 잘 자.”
“응…… 잘 자아…….”
정말로, 녹아내릴 것처럼 포근하고 행복한 밤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찾아온 아침.
“그러고보니 카엘 님, 오늘은 멀쩡히 메린 님을 보고 계시네요? 이야~ 이틀만에 익숙해지신 건가요?”
“그런 거 아니니까 조용히 차나 드십쇼, 사제님.”
오늘도 사춘기가 한창인 빨간 사제님의 넉살에 이어,
“아니, 어제는 가슴,”
“아잇, 진짜! 내 앞에서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내 처절한 외침이 식당을 울리며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돌겠네, 진짜…….
서로 귓속말하면서 킥킥 웃는 두 아가씨를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