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7화 〉 383화 : 귀성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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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말해달라고 요청하자, 블루벨이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왜 인상을 쓰나 했더니, 숲을 나선 위슨이 나무 그늘에 엎어져 있는 블루벨을 발견한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인 듯했다.
더위를 타지 않는 엘프라 해도 이 뜨거운 날씨엔 버티지 못했던 건지, 나무에 기댄 채 축 쳐져선 눈만 겨우 깜빡이는 게 고작이었다며 분한 듯이 투덜대는 것이었다.
“역시 뻗어 있었냐?”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메린이 한숨 섞인 말을 던지며 꼬치구이를 뜯어먹었다.
다른 손으로 늑대의 앞발공격을 착착 막으면서.
……대단하긴 한데, 진지한 이야기 중에 정신 사나우니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늑대 녀석도 아직 화가 안 풀린 모양이네.
어떻게 안 되나?
“내, 내가 약한 거 아냐! 그 근방이 이상하게 뜨거웠던 거지! 우리 숲의 일족은 원래 더위도, 추위도 느끼지 않는다고!”
항의하듯이 크게 소리친 후, 블루벨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이 숲 외엔 전부 엉망진창이었어. 나무나 풀은 전부 푹 익어 있고, 곳곳에 말라비틀어진 시체가 널부러진 상태야. 인간, 짐승, 몬스터, 벌레…… 전부 다.”
“……”
“어쨌든 쟤 덕분에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 같이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어.”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으니, 두 사람은 길을 따라 더 위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위슨의 정령 중에 불을 다루는 스라소니의 힘으로, 몸을 태워버릴 듯한 열기를 차단시킨 채.
“쭉 그러고 다닌 거야?”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위슨의 모습에, 나는 이 숲 너머가 엄청나게 끔찍한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계약을 맺은 정령이 어떠한 힘을 발휘할 때엔, 그 대가로서 계약자의 기력이 소모된다고 했다.
정령이 힘을 오래 쓸수록 계약자는 점차 지치게 되는 것이다.
바닷가 마을에서 거북이와 파랑새의 힘을 연이어 빌린 후에 위슨이 뻗어버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위슨은 지극히 멀쩡하다.
오늘 낮 내내 정찰을 하고 온 것임에도 피곤한 기색이 없을 뿐 아니라 요리까지 거뜬히 해냈다.
숲 바깥에서 움직이는 동안, 쭉 스라소니의 힘을 빌렸으면서.
위슨이 그 사이에 기량을 높인 것인가?
바닷가 마을에서 어느 공작령까지 호위하는 동안?
아니, 아무리 녀석의 능력이 ‘마력’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이라 해도, 그게 단기간에 확 강해질 수 있는 건 아닐 거야.
그렇게 쉽게 강해질 수 있는 거였다면, 이 세상에 마녀가 탄생하지도 않았겠지.
위슨이 아직 팔팔한 건, 단순히 기운을 별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라소니가 힘을 발휘하면서도 계약자의 기력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건………
“여기 위가 진짜 더럽게 뜨겁구나.”
“그런가봐요.”
위쪽 지역은 불의 힘이 철철 흘러 넘치는 불바다란 뜻이나 마찬가지이다!
물의 정령인 거북이가 바닷속에서 자유자재로 힘을 발휘했던 것처럼!
만약 오늘 아침에 비가 왔다면 우리는 숲으로 빠지는 대신에 길을 더 갔겠지.
그러다 비가 그치고 해가 떴다면……
우와, 나는 어쨌든 말들은 확실히 죽었을 거야.
……여하튼 그렇게 북쪽으로 더 올라간 두 사람은, 안개가 자욱이 낀 지대를 발견했다.
“안에 들어가봤는데, 아까 말했듯이 진짜 앞이 하나도 안 보이더라. 비도 장난 아니게 퍼붓고. 그래서 위로 올라갔어.”
“위?”
되묻는 나를 보며, 블루벨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 하늘……
“………아, 벤투스?”
내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에 껄끄럽다는 듯이 서로 흘겨봤지만.
아무튼 두 사람은 엘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도 시야가 맑아지진 않았으나, 어느 순간, 주변을 둘러보던 블루벨의 눈에 무언가가 또렷이 잡힌 것이었다.
“틀림없어. 그건 불꽃이었어.”
“불꽃……”
번쩍번쩍 붉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진중한 표정으로 덧붙이는 블루벨에 이어, 위슨이 잿빛 강아지 한 마리를 품에 꽉 안은 채 말을 꺼냈다.
“그래서 다시 내려와서 주변 지형을 확인했어요. 요 녀석한테 시켜서.”
말을 마치면서 품에 안은 강아지를 좌우로 흔드는 위슨.
그러자 강아지가 마구 바동거리면서 짧게 짖었다.
“왕! 왕!”
“……”
아니, 어느 틈에 강아지가 생겼나 했더니 늑대였어?
옆을 돌아보자, 조금 전까지 열심히 늑대와 투닥거리던 메린이 편안하게 식사를 즐기고 있다.
아마 늑대가 계속 심통을 부리니 위슨이 무언가 조치를 취해버린 것이리라.
“자.”
그래도 계속 바동거리는 게 보기 좀 그런지, 위슨이 새끼가 된 늑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늑대가 약간 뒤뚱거리면서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대로 순순히 받아서 품에 안아주니, 늑대는 꼬리를 신나게 흔들면서 손가락을 핥고는 곧바로 크게 하품하며 몸을 축 늘어뜨렸다.
……나 참.
내가 뭐 그리 좋은 놈이라고.
나는 어려진 늑대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지형을 확인했더니 ‘불구덩이’가 있었던 거구나.”
“네. 아무래도 그 안에 있는 ‘불의 호수’가 위로 올라온 거 같아요. 그래서 주변이 뜨거워졌고, 주위의 물이 마르면서 비가 내린 게 아닐까 해요.”
그리고 그 비가 ‘불구덩이’로 떨어지면서 수증기가 일어났고, 그게 또 모여서 더 큰 비구름이 된 것 같다.
하늘로 채 올라가지 못한 수증기들은 지상에 머물면서 안개가 되었다고 본다.
그것이 위슨의 추측이었다.
그럴싸한 이야기 같아서 고개를 주억거린 다음, 블루벨을 힐끔 쳐다보았다.
진중한 얼굴로 술을 홀짝이고 있는데, 꼭 세상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왠지 이 일을 나보다도 더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거 같은데.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으면 될 것도 안 되므로, 나는 짐짓 밝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세상에, 블루벨! 드디어 정찰을 해주었구나! 이제 우리 믿을 수 있게 된 거야?”
“뭐?! 무, 무슨 착각을 하는 거야? 난 그냥 약속을 지켰을 뿐이야! 믿니 마니 하는 그런 거 때문이 아니라고!”
예상대로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바로 발끈하는 블루벨이었다.
하하, 고맙기도 해라.
“얘들아, 여기 할머니가 드디어 우리를 동료로 인정하셨단다! 야, 건배하자, 건배!”
“그러고보니 그랬네요! 와, 드디어 블루벨 씨가 밥값을 하시게 됐어요! 이건 꼭 축하해야죠!”
“사제님, 그러면서 은근슬쩍 내 술 가져가지 마! 아무튼 네, 건배해요!”
“잠깐, 야, 사람 민망하게 뭐 이런 걸로 건배를 하려고 그래?!”
당황해하는 블루벨은 싹 무시하면서 나와 로나, 그리고 위슨은 척척 건배할 준비를 했다.
하하하, 이럴 땐 이 두 녀석의 영악함이 참 좋다니까!
“엥? 갑자기 웬 건배? 밥값하는 게 축하할 일이야?”
“어. 잔말 말고 해.”
아연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메린에게도 잔을 쥐어준 후,
“건배~!”
통.
다섯이서 잔을 맞부딪치고 쭉 들이켰다.
이야~ 찻물도 시원하니 잘 넘어가네!
“하하, 인간불신이 나아서 다행이야. 앞으로도 부탁할게! 수프 끓일 때 간도 좀 잘 보고!”
“끝판에라도 제 역할 하실 수 있게 되셔서 안심이에요! 머릿수만 채우고 마시는 거 아닌가 걱정했거든요! 정말 다행이에요!”
“저희 정신건강을 위해 변태끼도 고쳐줬으면 하지만, 그건 역시 무리겠죠? 하하, 적당히만 해주세요.”
“닥쳐, 이 새끼들아!!”
활기차게 웃으면서 잔을 비운 후, 다시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럼 다시 하던 얘기하자. 이제 어쩌지?”
“……응? 갑자기 다시 진지한 얘기하는 거야? 분위기 못 맞추겠어!”
투정부리는 할머니는 그냥 내버려둔 채, 나는 턱을 매만지며 재차 말을 꺼냈다.
“플레마의 힘으로 올라가더라도 물 없어서 죽을 테니 위로는 절대 못 가. 그렇다고 옆으로 빙 돌아서 갈 수도 없고.”
“왜? 길 있잖아. 위슨네 섬 쪽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냐?”
“안 돼. 너무 오래 걸려.”
나는 배낭에서 지도를 가져와 바닥에 펼친 후, 고개를 갸웃하는 메린에게 보여주었다.
“우리가 지금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여기 ‘불구덩이’와는 멀리 있겠지? 대충 이 근방에 있다고 치고, 여기서 동쪽으로 간 다음 북쪽으로 올라간다고 쳐. 그럼 메린, 뭐가 있냐?”
“찌그러진 동그라미 여러 개.”
“………고원이야. 그것도 좀 높은 거 같아. 길이 고원 위가 아니라 빙 둘러서 나 있는 걸 보면, 멀쩡히 지나다닐 만한 데는 아닐 거야.”
길을 따라가면 거의 동쪽 끝까지 간 다음에 북쪽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가서 위슨이 나온 섬이 있는 호수로 간 다음, 왕국 수도를 통과해야 놋지빌로 갈 수 있다.
“여기 남쪽 끝의 마을에서 슐 누나가 있는 데까지 닷새쯤 걸렸지? 그리고 여기 중부 어디까지 또 나흘쯤 걸렸고. 원래 거기서 놋지빌까지 대략 열흘 잡았었는데, 그간 더워서 속도가 좀 줄었잖아. 아마 며칠분은 더 남았을 거야.
만약 빙 돌아갈 거라면, 일단 하루나 이틀 정도는 남쪽으로 내려가야 돼. 여기는 땡볕이라서 그냥 앉아 있는 것도 죽을 맛이니까. 그 다음에 동쪽 끝까지 가고, 거기서 또 빙 돌아서 가는 거야. 가다가 몬스터를 만날 게 뻔하니 대충 한 달은 걸릴걸?”
원래 계획은 서쪽 산맥 입구에 있던 마을, 웨셋으로 가서 돈독 오른 도시인 말리스로 간 다음, 서쪽 길을 따라 수도 근교의 마을로 가는 것이었다.
거기서 놋지빌까지는 대략 이틀이면 될 터.
다 합쳐서 보름쯤 걸리는 여로가 거의 한 달이나 족히 넘게, 즉 두 배나 조금 넘게 늘어지는 것이다!
으으, 절대 안 돼!
성검이 나타나고서 이제 석 달밖에 안 지났는데도 이 꼬라지야.
여기서 한 달이나 더 지체할 순 없어. 또 무슨 이변이 일어날지 몰라!
“그래도 지금 거기밖에 길이 없잖아.”
“그렇기는 한데…….”
나는 손가락으로 턱을 두드리면서 로나와 위슨, 그리고 블루벨을 돌아보았다.
“아까 들었어. 연락 어쩌고 하는 거 같던데? 뭐 생각해둔 게 있는 거야?”
내 질문에, 로나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빙긋 웃더니 그릇 안에 남은 수프를 단숨에 비워버렸다.
“음, 역시 짜네요! 그래도 땀 많이 흘렸으니까 오히려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 그래서 일부러 간을 좀 세게 한 거야! 흥, 그래도 한 명은 알아봐주는구나.”
일부러 하긴 개뿔.
아까 내가 뭐라고 할 때는 하나도 안 짜다고 우겼으면서.
하, 진짜 어이가 없네.
“그건 그렇고, 수도의 지하 신전에 남아있던 ‘특별사제’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율리아 님이 며칠 전에 왕성을 점령하셨다네요.”
“………”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탑에 갇혀 있다가 탈출하는 걸로 모자라서 아예 왕성을 점령했다고?
아니, 이 난리통에 뭐하는 거야?
그 공주님, 사실 왕위에 관심이 있었나?
로나는 내가 말문이 막혀 있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제 자유로워지셨으니, 율리아 님께서 다른 종족에게 연락하셔서 도움을 구하실 수 있을 거에요.”
“연락…… 아, 방에 연락수단이 있다고 했었지?”
“맞아요! 역시 카엘 님, 공사구분을 잘하시는 것처럼 꼭 기억해둘 것과 아닌 것을 철저히 구분하시는군요! 나머지는 깜빡해도 크게 중요하지 않긴 하니까요! 인간의 기억용량은 한정되어 있으니 효율적으로 써야 하긴 하죠!”
녀석은 진심으로 감탄하는 거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평소에 깜빡깜빡한다고 까는 거 같아!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나는 내 평소의 글러먹은 사고방식이 만든 왜곡, 또는 로나의 교묘한 빈정거림을 그냥 흘려버리면서 재차 말했다.
“근데 왕성을 점령한 거면 이것저것 할 게 많지 않아? 숙청 같은 거.”
“아, 그러겠네요. 악마가 수작을 부렸었다는 거 같더라고요. 놈의 조각을 찾느라 바쁘시겠네요. 직접적인 관련자부터 그 자가 부리는 하인들까지 싹 조사해야 하니까요.”
조사는 무슨. 의식을 겸한 고문이겠지.
……다행히 아직 수프가 남아있던 덕에,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오려던 말을 가까스로 삼킬 수 있었다!
“아니면 제가 섬…… 부엉이탑에 가는 방법도 있어요.”
시무룩해하는 로나에 이어, 위슨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부엉이탑? 마일…이 아니라 네이멜 부르려고?”
“네. 수장님이라면 ‘불구덩이’ 지대를 주파할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을 거에요. 아니면 더 빨리 우회하거나요.”
지금으로선 가장 가능성이 큰 이야기이다.
새로 수장이 된 그 사람은 마법의 대가이자 정령의 친구이니, 분명 이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줄 수 있겠지.
“음…… 네가 거기까지 가는 데에 얼마나 걸릴지가 문제인데. 네이멜이 탑에 얌전히 있는지도 그렇고.”
“부엉이탑이 아니더라도 일단 섬에 계시긴 할 거에요. 할 일이 있으시니까.”
그건 그렇겠지.
마녀가 되어버린 제자라는 이름의 의붓딸들을 구할 방도를 찾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테니까.
“근데 대충 이삼 일은 걸릴 거에요. 여기서 섬까지 가고, 수장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수장님이 준비를 마치고 여기 다시 오시기까지 다해서 이삼 일.”
“이삼 일 뒤에 출발…… 그래도 우리가 직접 빙 돌아가는 것보단 빠르겠네.”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인 순간,
“그보다 훨~씬 더 짧게 걸리지요!”
어디서 들은 듯한 낭랑한 목소리가 숲 속을 쩌렁쩌렁 울렸다!
어디서 울리는 거지?!
화들짝 놀라며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역시 내 눈에는 나무 이파리만 어슴푸레하게 겨우 보일 뿐이었다.
“카엘, 저기.”
메린이 내 어깨를 콕콕 찌르더니 개울 쪽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옮기자, 연둣빛 알갱이 몇이 빛을 내며 주변을 떠돌고 있었다.
저거 반딧불이 아니야?
녀석에게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촤아—!
“?!”
갑자기 물이 혼자 솟구치면서 무수히 많은 물방울들이 공중에 튀어올랐다.
그리고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 둥실둥실 뜬 채 그대로 머물렀다.
나는 세 아가씨와 달리 밤눈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연두색의 작은 조명이 떠있어도 개울이 희끄무레하게만 보인다.
그럼에도 허공에 떠있는 물방울들이 무언가 특정한 모양, 문을 그리고 있는 건 알 수 있었다.
“저거……”
어디서 봤더라?
아니, 어디서 봤든 무슨 상관이야?
어쨌든 평범한 현상이 아닌데!
저건 마법이다!
이내 개울 쪽에서 은은한 빛이 번쩍이더니, 붉은빛 머리카락이 살랑 나부끼는 게 보였다.
이윽고 그 주변에 연한 노란색의 빛덩어리들이 하나 둘 피어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연출을 부리면서 찾아온 손님의 얼굴을 비추었다.
“이삼 일은커녕 십 분도 안 되어서 도착~!”
불타는 듯한 빨간 머리카락에 뾰족한 귀, 그리고 황금빛 눈동자.
기억에 깊이 박혀버린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얏호~ 그간 잘 지내셨어요?”
장난스럽게 눈을 빛내며 부드럽게 웃는 엘프는,
“네이멜?!”
천 년 만에 돌아온 대현자 마일린이자, 현 부엉이탑의 수장인 네이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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