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08화 (408/475)

〈 408화 〉 384화 : 귀성길 (5)

* * *

섬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에……?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차 한 모금이 그녀의 목 너머로 흘러간 뒤에 바로 들을 수 있었다.

“지나가던 길에 보니 엄청 두꺼운 구름이 껴 있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그 근처에서 정령의 힘이 느껴지는 거 있죠? 이 일대에 자연적으로 힘이 모일 리가 없어서, 혹시나 해서 귀를 대봤죠. 근데, 후후, 역시 여러분이셨네요!”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에요?”

“네. 산을 좀 타봤답니다! 역시 높은 하늘은 공기가 맑고 차가워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지나가다 ‘불구덩이’를 봤다고 했으니, 역시 서쪽 산맥에 다녀오는 거겠지.

엄청 오랜만에 고향에 가보기라도 했나?

아니, 마법사이니 장서관을 방문했을 수도 있겠다.

일단 문도 열려 있고, 이 사람이라면 정문 말고도 다른 입구를 알고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전에 슬쩍 본 과거에선 섬 바깥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더니……

하긴 뭐, 이번이 두 번째 삶이니까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기도 한 거겠지.

그 큰 섬에 얘기가 통하는 사람은 물컹물컹해진 마녀 하나밖에 없으니 심심하기도 할 거고.

………아, 그러고보니,

“거기 남자들은 이제 다 떠난 건가요?”

“아니요. 거의 대부분 그대로 남아 계세요. 지금 위험한 시기이기도 하고……”

말끝을 흐린 네이멜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돌아갈 데가 없으시거든요. 이미 고향이 없어져 있거나, 아니면 고향은 있는데 가족이 이미 떠나서 소식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운 좋게 고향과 가족이 다 남아있는 분은…… 찾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정하시기도 하고요.”

마지막 유형은 비교적 젊은 사람이겠지.

아마 자신이 그리 좋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족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어쩌면 마녀에게 시달리면서 외양이 완전히 변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찾아가지 않을 거면, 소식만이라도 전해야 한다.

“네이멜, 가족 안 찾아가겠다는 사람에게, 평생 찾지 않을 거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라고 전해주세요.”

“응? 살아있다는 게 아니고요?”

“이미 세상에 없다는 걸 믿어야 더 기다리지 않으니까요.”

죽었다는 확실한 소식을 듣지 않는 이상, 몇 년이고 오매불망 기다리는 법이다.

그 사람에게 베푼 사랑만큼 간절하게.

설령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도, 그 실낱 같이 가는 희망을 붙잡고 늘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걸 확실히 끊어버려야 한다.

블루벨은 그러한 내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카엘, 보통은 그렇게 목 빠지게 기다리던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알면 크게 충격 받아. 네가 모를 거 같진 않은데.”

“알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 들어서 돌아버리겠더라. 근데 가족을 평생 찾지 않기로 한 거잖아? 그럼 감당해야지. 자기 마음 편하자고 계속 애매한 상태로 두는 거 아냐.

그건 있지, 죽었다고 거짓말하고, 그 때문에 가족이 몸져눕거나 목 매달아서 죽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짓이야.”

그것은 가족의 삶을 계속해서 묶어버리는 짓이다.

슬픔을 떨쳐내고 그 사람의 몫까지 살겠다고 다짐하든지, 눈물에 빠져 죽든지 선택할 수 있는 걸그 사람이 멋대로 막아버리는 거 아냐.

엄청난 악행이 아닐 수 없다.

“지옥 불바다에 녹여야 할 정도로 나빠.”

“그 정도야?!”

“어. 가족을 위한 거라고 자기합리화 하면서 괴롭히는 거니까. 부고 소식에 가족이 충격 먹는 게 싫으면, 그냥 살아있다고 알려주기만 하면 되잖아.

만날 필요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정기적으로 편지 보내면 되지.”

대부분은 그 정도로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지.

기다리고 그리워하느라 쓸데없이 시간 버리지 않고 말야.

“카엘 씨,”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잠자코 차를 홀짝이고 있던 네이멜이 말했다.

“아직 기다리는 분이 계신가요?”

“……모르겠어요. 기다리는 건지, 그냥 잊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건지.”

엄마는 돌아가셨다.

숲이 핏자국과 늑대 발자국 외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꿀꺽 삼켜버렸지만, 일단 돌아가신 걸로 되어 있다.

엄마가 늘 끼고 다니시던 결혼 금반지도, 옷에 달고 다니시던 브로치도, 심지어 늑대 이빨에 물어 뜯겼을 천 조각도.

숲은 나와 아버지에게 무엇 하나 남겨주지 않고 무정하게 엄마를 데려가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하얀 수의만 관에 넣고 묻을 수밖에 없었다.

옷장에 있던 엄마의 다른 옷가지들은 전부 태워버렸다.

원래 나눠주려 했는데, 불행한 사고를 당한 사람의 옷이라고 다들 안 가져간 탓이다.

근데 옷은 거들떠도 안 봤으면서 장신구는 꽤 노렸었지?

뭐, 아버지가 그냥 가지고 있겠다고 하셔서 안방 화장대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지만.

여하튼 우리는 그렇게 엄마를 묻었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땐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아버지는 정말로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인 걸까?

2년 전부터 환히 웃지 못하고, 이따금 테이블에 잔 두 개를 놓고 말없이 맥주를 홀짝이면서?

나는 어떨까?

2년이 지난 지금도 이따금 숲을 헤매며 엄마를 찾아다니는 꿈을 꾸고, 그러다 깨면 한동안 북받쳐서 진정을 못하는 나는?

묘지엔 얼씬도 안 하는 우리 부자(?子)는, 아직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몸을 비틀며 애도하는 걸까?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엄마 시신을 묻었다면 묘지에 자주 찾아갔을 거 같아요.”

비석 앞에 꽃을 놓고 잡초를 뽑으면서.

그렇게 천천히, 마음속에 묻었을 것이다.

네이멜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그럴 거에요. 나도 한동안은 묘지에 가는 게 일과였거든요. 아무튼 카엘 씨의 뜻은 그 사람에게 전해줄게요. 무슨 결정을 하건 도와주기도 할 거고요.”

“……”

“근데 그것도 이 난리가 끝나야 할 수 있단 말이죠? 그러니……”

꿀꺽.

빨강머리 대마법사는 말끝을 흐리더니 아직 다 식지 않은 차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을 망연히 올려다보는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자자, 카엘 씨에 위슨! 그리고 다른 분들도! 얼른 일어나서 짐 싸세요!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고요!”

“엥? 왜요?”

“왜냐니요? 차도 마셨겠다, 제가 할 일 하고 가려고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바람에, 잠시 말문이 막힌 채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저희 보고 길 떠나라고요? 이 밤중에?”

“걱정 마세요! 카엘 씨가 가려는 마을 근처 물가로 보내드리려는 거니까. 거기서 쉬시면 되잖아요?”

“아뇨아뇨, 절대 못 쉬어요! 낮에도 몬스터가 들끓는 곳이란 말이에요! 밤에 뭐가 튀어나오는지도 다 파악 안 된 곳이거든요?!”

“에이, 걱정하지 마세요. 자.”

네이멜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내 손을 잡더니, 품속에서 무슨 향초 같은 걸 꺼내더니 내 손바닥 위에 턱 놓았다.

“몬스터 쫓는 향초에요. 웬만한 놈은 근처에도 못 올 거에요. 이제 안심이 되죠?”

“웬만한 놈의 예시 하나만 들어주세요.”

“음……… 흡혈모기?”

“전혀 소용없잖아!!”

곧바로 던져버리려는 걸 꾹 참고서 따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곰은 쫓을 수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보다 흡혈모기가 뭐야, 그거 그냥 모기잖아요! 모기는 원래 피 빤다고! 솔직히 말해요, 네이멜. 이거 모기향이죠?”

“아니에요! 벌도 쫓을 수 있는걸요! 벌집 밑에 피우면 바로 우수수 떨어진다고요!”

벌이 약해지는 게 아니라 곧바로 죽는다고?

우와, 그럼 그걸 맡는 나도 목숨 떨어지는 거 아냐!

자다가 죽을 일 있나!

“아니, 진짜 엘프 중에 멀쩡한 사람이 없네. 어떻게 그런 맹독을 싱글벙글 웃으면서 줄 수가 있어요?”

“독 아니에요! 사람에겐 안 듣는다고요! 여름마다 옆에 켜 놓고 자는데도 멀쩡한걸요!”

“역시 모기향이구만?”

한숨을 푹 쉬며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네이멜,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건 저도 동의해요. 그래도 상황을 따져가면서 서둘러야죠. 집에 빨리 가고 싶으신가본데, 그래도 지금은 안 돼요. 적어도 동이 트고 나서 움직여야……”

“다른 분들은 짐 챙기고 계신데요?”

뭐, 씨발?

말허리를 뚝 자르고 귀에 꽂힌 말에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나를 뺀 다른 녀석들이 천막을 도로 접거나 솥 등의 기구들을 빠르게 챙기고 있었다!

심지어 메린도 그걸 돕고 있고!

아니, 딴 녀석들은 그렇다 쳐도 왜 쟤까지 거들고 있어?!

“야, 메린! 너 뭐하냐, 왜 안 말려?! 우리 동네 숲이 얼마나 위험한지 까먹었냐?!”

“엉? 아니, 알고 있긴 한데, 얘네들이면 괜찮겠다 싶어서.”

“괜찮긴 개뿔! 아니, 왜 몬스터 없는 편한 곳을 냅두고 위험지대에서 밤을 보내려는 건데?!”

혼신을 다해 외쳐 묻자, 짐을 정리하던 네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미리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입을 열었다.

“더워서.”“더워서요.”

“……”

그 한 마디를 듣자마자 실시간으로 넋이 나가버렸다.

고작 그런 이유로 위험에 뛰어든다고?

나보다 더위도 안 타는 놈들이?

존나 어이없네.

내가 얼이 빠져 있는 사이에 메린과 위슨, 그리고 블루벨은 짐을 다 정리해버렸고, 로나는 네이멜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우리 마을의 대략적인 위치를 짚어주었다.

지난번에 내가 대충 알려준 걸 잊지 않고 기억한 것이리라. 돌겠네, 진짜.

“여기에요? 정말요? 우와, 이런 데에까지 터전을 일구다니, 인간은 참 대단하네요~”

“진취적인 게 인간의 큰 특징이지요!”

“저돌적인 거겠지.”

대체 뭔 생각으로 그딴 구석에 마을을 세운 건지 진짜 이해가 안 된다.

물 풍부한 거 말고 다른 이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북쪽에 적국이 있는 건 더더욱 아닌데.

그렇다고 다른 마을이나 왕성이랑 교류가 활발한 것도 아니고 말야.

……혹시 전쟁에서 졌거나 도망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된 건가?

그러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여하튼 내 의견은 개미 다리털만큼도 반영되지 않고 묵살되었고, 네이멜은 물웅덩이 앞에 서서 박수를 두 번 착착 치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열려라, 열려라, 활짝활짝 열려라.

여기도 저기도 찰랑이는 물결.

저기도 거기도 비추이는 달빛.”

몸을 좌우로 살짝살짝 들썩이며 노래하는 네이멜.

귀까지 움찔거리는 게 좀 묘하다.

그보다 가사 이상해.

아, 혹시 엘프의 숲에 있는 그 동굴……

인어에게 연락을 걸면서 외운 주문이 그 모양이었던 건, 역시 그 옛 현자가 만든 마법이어서 그랬던 건지도 몰라!

“어디든 흐르는 물을 어디든 밝히는 달님,

문을 열어 우리를 초대해주세요!”

차악—!

네이멜이 노래를 끝내며 크게 손뼉을 치자, 물웅덩이가 크게 술렁거렸다.

그리고 이내 가장자리에서 커다란 물방울이 슬금슬금 올라오는 것이었다!

무슨 슬라임처럼 꿈틀꿈틀 기어올라온 물방울은 우리를 향해 몸을 굽혀서 꾸벅 인사하더니, 돌연 몸을 쭈욱 늘리면서 커다란 문이 되었다.

끼익 열린 문 안쪽엔 지금 우리가 선 곳보다 몇 배는 더 빽빽한 숲과 커다란 호수가 펼쳐져 있다.

네이멜의 의도대로 우리 마을 근처 숲과 연결된 거 같긴 한데……

“……”

영문을 모르겠어.

방금 뭘 본 거지?

“자, 얼른 들어가세요!”

“……”

다른 녀석들을 돌아보았다.

하나같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할 뿐,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이 서선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뭐, 나보고 먼저 가라고?

이 자식들이, 당장 뛰어들 것처럼 신나게 짐 챙길 땐 언제고!

“뭐하냐? 빨리 가.”

“용사다운 담대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용사님! 말은 저희가 끌고 갈게요.”

“맞아요, 대장답게 앞서가야죠.”

“그래, 얼른 가. 일단은 네가 대장이니까 특별히 선두를 양보해줄게.”

“……”

평소엔 존나 투닥대면서 꼭 이럴 때만 손발 기가 막히게 잘 맞더라.

이게 동료야? 이게 동료냐고!

“거지 같은 새끼들…… 두고 보자…….”

투덜투덜대면서 활짝 열린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자마자 몬스터 만날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제일 약한 나를 먼저 보낸다고?

나쁜 놈들, 내가 진짜 이거 기억해둔다!

“자기 전에 머리 쓰다듬어줄 테니까 힘내.”

“그거랑 이게 뭔 상관이야!”

“그럼 가슴 만,”

“와아악!! 시끄러, 임마아아!!”

소리치면서 힘차게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무언가 쑤욱 하는 느낌과 함께 바깥으로 튀어나오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무거운 느낌이 먼저 들었다.

찰랑이는 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리자, 노란 달을 담은 잔잔한 수면이 눈에 들어왔다.

석 달 전까지도 매일같이 찾아왔던 커다란 호수가,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 고요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 외에는……

“………”

주변을 돌아보던 그대로 몸이 뚝 굳어버렸다.

“와, 신기한 느낌이네요. 물방울이라서 그런가요?”

“그럴걸. 우와, 마력 엄청 진해! 형이 골골댄 것도 당연하네요. 오히려 메린 누나가 이상해요. 이런 데서 멀쩡하다니.”

“나만 멀쩡한 거 아닌데? 쟤 빼고는 다 팔팔해.”

“진짜 이런 데서 살고 있단 말야? 여기 생명수 심으면 되게 잘 자라겠네.”

웅성거리는 소리에도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콕콕, 메린 녀석이 내 옆구리를 찌르면서 불러도, 못 박힌 시선을 옆으로 옮길 수 없었다.

“왜 그러고 있냐? 뭐 있어?”

“저기 봐.”

“응? 아~”

메린이 길게 소리를 내었다.

아마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아챈 것이리라.

그리고 마치 그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부스스.

부스스스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고요한 호숫가에 웃음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무들에 섞여 느릿하게 일렁이는 그림자들.

부스스, 부스스, 환영한다는 듯이 신나게 팔을 흔들며 인사를 보내오고 있다.

한 걸음씩, 아니 한 뿌리씩,

나뭇잎을 떨어뜨리면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한밤중에 갑자기 나타난 먹이를 보고 뛸 듯이 기뻐하고 있었다!

“나무귀신이겠지?”

“나무귀신이겠지!!”

“왜 여기까지 내려왔지? 원래 이 주변에선 안 나오는데.”

“알게 뭐야?!”

냅다 소리치며 서둘러 검을 뽑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널찍한 검신.

잡귀를 비롯한 ‘밤의 존재’를 멸하는 성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저거 나무귀신이잖아! 근데 수가 뭐 저렇게 많아?!”

화들짝 놀라는 블루벨에 이어, 로나가 꺅꺅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와, 우와아~ 오자마자 전투라니! 역시 기대하길 잘했어요!”

“사제님, 그러다 끝나고 딱밤 맞는다.”

아니, 지금 걸로도 딱밤 갈기기엔 충분해!

로나 저 자식, 남의 동네에 뭐 그딴 기대를 하고 있어?

우선은 부스스 웃으면서 다가오는 나무귀신들을 해치우는 게 먼저다!

“으으, 역시 밤에 오면 안 된다니까!”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허? 잠깐, 네이멜, 안 도와줄 거에요?! 모기향으로 쫓을 수 있는 놈들도 아닌데!”

“거기서 섬까지 멀잖아요.”

문 너머에서 어깨를 으쓱이는 네이멜이었다.

아니, 뭐 저딴……

앗, 안 돼.

문의 모양이 흐트러지면서 흐릿해지고 있어!

“진짜 이대로 갈 거에요? 당신이 이러고도 맘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을 거 같아?!”

“네! 용사님을 믿으니까요!! 힘내세요, 용사님!”

“크아악! 네이멜! 네이메에엘!”

퐁.

내 간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물방울은 그대로 터지면서 덧없이 사라져버렸다.

“………저주해주마, 망할 엘프 놈들!!”

“하지 마, 미친놈아, 우리 일족이 걸릴 거 아냐!!”

“우아아아!”

……그렇게 내 원성 어린 함성을 시작으로, 호숫가에 갖가지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끼긱거리며 가지와 뿌리를 휘두르는 나무귀신에 이어,

왜 오밤중에 시끄럽게 하냐는 듯이 호수 속에 가라앉아 있던 드라우너가 튀어나와선 그 길다란 손톱을 미친듯이 휘두르기도 했다.

리자드맨, 인간, 고블린, 오크 등의 다양한 숙주들이 버섯에 머릿속을 지배당한 채 달려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 개미 눈알만큼도 계획하지 않았던 한밤의 싸움은, 달이 지고 어스름이 찾아올 때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끝을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겨우 끝났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몸이 축 늘어져버렸다.

“먼저 잔다……….”

“아.”

……바닥에 몸이 닿는 걸 느끼기도 전에 잠에 푹 빠져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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