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3화 〉 409화 : 대재앙의 강림 (2)
* * *
일순, 시간이 멈춰버린 듯했다.
메린이 있던 자리엔 붉은빛의 불길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다.
마침내 그녀를 가지게 되었다고, 뜻을 이루었다고 환희에 찬 것 같아서 무척 불쾌한 동시에 절망스럽다.
그 주위엔, 환장스러우면서 믿음직한 동료 셋이 굳은 표정으로 바람을 견디고 있다.
땅딸막한 빨간 사제를 제외한 두 사람의 얼굴엔 희미한 침통이 떠올라 있다.
그녀의 괜한 오해에 자주 시달렸던 엘프도 비통해하는 걸 보면, 변태라서 그렇지 역시 사람 됨됨이는 좋은 편이야.
그냥 변태도 아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초특급 변태이지만.
그리고 율리아는 여전히 딱딱한 표정으로 내 팔을 붙잡고 있고, 나는 그를 뿌리치지 못한 채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붉은 기운을 멀거니 보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모르겠지만, 저 기운이 걷히는 즉시 다시 볼 수 있겠지.
갈색머리를 곱게 땋아 내린 예쁘장한 아가씨.
아름다운 주홍빛 눈동자를 지닌,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의 메린을.
하지만…… 그건 진짜 ‘메린’이 아닐 거야.
겉은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일 터이지만, 속은 완전히 다른 놈이 들어차 있겠지.
운명이다.
기쁨에 찬 목소리가 속삭인다.
메린이 몸을 빼앗기고 그 손으로 나를 죽이는 것.
수정에 갇힌 놈은 그게 그녀의 운명이라고 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바꿀 수 없는 결말이라고.
그러나 절대신의 대리자는 그를 두고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예정.
그대로 이루어질 게 뻔하나, 만에 하나의 가능성…… 다른 결말로 이어질 샛길이 있을지도 모르는 길이라고.
허나 다른 결말 따위 없다.
네놈이 죽거나 죽이는 것, 그 둘 중 하나뿐.
그녀를 죽이겠다는 맹세를 지키지 못해 절망 속에서 죽거나, 약속을 지키고 어두운 행복에 잠기는 것.
그것이 네 운명이다.
단정하는 목소리가 가슴속을 무겁게 짓누른다.
눈앞이 번쩍이며, 기억나지 않지만 왠지 본 적 있는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하늘마저 불이 붙은 듯이 붉게 물든 사위.
재투성이 땅엔 모든 사람의 목이 굴러다닌다.
왕족들과 귀족, 사제와 평민.
드워프와 엘프. 둘만 남은 인어.
언젠가 만났던 사람들이, 각자의 피로 대지를 붉게 물들이며 호소한다.
원한을 갚아 달라고.
피값을 받아내 달라고.
자신의 목을 자른 대재앙, 타오르는 듯한 주홍빛 눈을 가진 여자를 죽여달라고 애원한다.
꿈에서 몇 번이나 본 듯한 장면.
몇 번이고 그녀에게 검을 겨누고, 그 목에 검을 꽂은 것 같다.
떠오르지 않지만,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고 몸이 말하고 있다.
마침내 현실로 마주할 때가 왔다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정말로……
이런 결말밖에 없는 거야?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에 고개를 떨구려는 순간,
바라시는 대로 이루어질 겁니다.
……문득, 완성되지 않은 인형극을 보여주며 이상한 말을 건네고 사라진 이야기꾼의 말이 떠올랐다.
최선의 행복을 약속한다고.
기적을 믿으라고 했던 그 말들이 생각났다.
기적……
‘기적을 믿나?’
익숙한 목소리가 묻는다.
어느 시점부터는 내 목소리인 척도 하지 않는 어이없는 속삭임이, 역시나 기시감이 있는 말투로 물음을 던졌다.
‘기적을 믿는가? 성검을 취(?)한 자여.’
……믿지 않아.
기적이 존재하는 건 알지만, 나에게 일어날 거란 건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현될 리가 없으니 기적이라 하지.
차마 버리지 못하는 희망을 포장하는 말이니까.
‘행복을 맞이할 거란 약속도 받았지. 그것은 어떠한가?’
……그 역시 믿지 않았어.
그녀에게 무엇이 예정되어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조금 전까지 그녀와 함께 있다는 행복으로 만족할 생각이다.
‘절망을 믿는군.’
……맞아. 좋은 이야기는 하나도 믿지 않아.
믿으면 기대하게 되고, 기대하면 배신당하니까.
어차피 이루어질 가능성도 희박한데, 차라리 실현될 게 뻔한 불행을 믿는 게 낫지.
이제껏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뿐이다.
나는 어쨌든 내년 봄꽃을 보지 못할 거고, 메린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죽을 거야.
우리는 살아서 이곳을 나가지 못할 거다.
그것이 네놈들의 마땅한 결말이다.
……그게 우리의 운명이라면, 우리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결말이라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바란다.
그때, 목초지에서 그녀와 함께 몬스터에게 둘러싸였을 때처럼.
살아날 가능성은 없었던 그때처럼.
나는 그저 바랄 뿐이다.
그녀와 함께 살아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래서 또 하나의 약속을 지킬 수 있기를.
그러한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야……!!
헛된 희망,
‘그를 이루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며, 그렇기에 그대를 택했다.’
조롱을 덮어버리는 진중한 목소리.
무언가 보이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미소를 띠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허나 그대의 이 소망은 헛되지도, 희박하지도 않다. 새벽빛보다 찬란히 빛나는 운명으로 벼려졌으니, 우리가 손을 댈 영역이 아니로다.’
부드러우면서 힘있는 목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린다.
‘눈을 들어 목도하라. 손을 뻗어 취하여라.
나의 결정을 돌려 택함을 얻어낸 자여. 이것이 그대의 소망, 그대가 빚어낸 결말이니라.’
종소리와 같은 묵직한 울림이 마음속에 퍼지며,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매섭게 휘몰아치던 바람이, 꼭 폭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를 날려버리고서 사라졌다.
홀이 넓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가장자리에 빠져서 녹았을 거야.
“으으……”
율리아와 다른 방향으로 구른 탓에, 혼자 비실비실 일어나야 했다.
가볍게 주위를 돌아보자, 다행히 어느 누구도 가장자리에 떨어지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메린……!”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던 자리엔, 메린이 고개를 떨군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안 돼!!”
시야가 갑자기 뒤집어지면서 바닥에 등을 부딪쳤다!
뭐지? 뭐가 가슴팍을 때린 거 같은데!
아니, 지금도 누르고 있……
“………”
눈을 뜨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세로로 찢어진 녹색 눈동자가 나를 날카롭게 쏘아보고 있었으니까.
아담한 두 손으로 내 가슴을 내리누르면서, 뭉툭하면서 가냘픈 몸이 내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매서운 눈초리를 한 여자가, 내 위에……!
“윽……!”
아마 평생 사라지지 않을 그 기억이 눈앞에 다시 떠오른다.
팔다리가 빳빳하게 굳으면서 숨이 막혀온다.
망할, 왜 하필이면 메린처럼 눈매 더러운 녀석이 달려들어서……!
……그러나 천만다행이게도, 블루벨은 곧바로 내 위에서 비켜서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덕분에 지금 상황과 하나도 맞지 않는 생난리를 피우지 않을 수 있었다.
힘은 좀 빠졌지만.
“앞뒤 좀 가려, 미친놈아!! 쟤가 지금 어떻게 됐을지 몰라?! 아주 그냥 목을 바치지 그래?!”
“하…… 알았으니까 떨어져…….”
“그럼 똑바로 서든가! 그렇게 세게 민 것도 아닌데 왜 비실거리니? 그래서 정말로 메린을……”
블루벨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그 이전에, 내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로나가 어느 한 지점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미동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있던 메린이 사라진 것도.
………어, 설마?
채앵—!
내 추측에 대답하듯, 갑자기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홀 안에 울려퍼졌다.
“죽어, 개년아아아아!!”
메린의 살벌한 외침과 함께!
가슴이 꽉 죄어들 만큼 적의, 아니, 살의가 팍팍 느껴지고 있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메린이 부모의 원수를 만난 듯한 얼굴로 검을 맞대며 죽여버리겠다고 마구 소리치고 있었다.
……블루벨에게.
“………어라? 왜 저 할망구야?”
나도 모르게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니, 나한테 달려들어야 하는 거 아냐?
왜 저쪽을 죽이려 들고 있대?
마치 내 의문에 답하는 듯이, 메린이 블루벨과 힘겨루기를 하며 엄청 험악하게 소리쳤다.
“내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감히 저 놈을 덮쳐?! 이 개 같은 년!! 죽여버리겠어!!”
“뭔 소리야, 미친년아! 내가 언제 그랬다는 거야?!”
“방금까지 해댔잖아, 개년아! 다 봤어! 다 들었다고! 내가 있어서 안 된다는 걸, 네가 ‘걔 어차피 모를 것’이라고 꼬시고 위에 올라타서 따먹었잖아!”
“뭘 보고 그딴 개소리를, 꺄아아악?!”
힘에서 밀린 블루벨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르듯이, 바닥이 마구 패이고 벽에 칼집이 쫙쫙 그어진다.
이따금 불꽃이 튀기면서 두 여자가 각각 검과 쌍단검을 맞대는 게 보인다.
“………”
그리고 나는 그걸 멍하니 서서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머리가 텅 비어서,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탓이다.
“………”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야?
쟤가 뭘 봤다고……?
블루벨이 나한테 뭘 해……?
옆에서 시선이 느껴지길래 망연히 고개를 돌렸다.
위슨과 율리아, 심지어 로나까지 아연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자연히 고개가 좌우로 움직였다.
아니야.
뭔 소리인지 몰라도 아니라고.
다른 쪽에서 파괴와 질겁한 비명이 울리는 가운데, 로나가 멍하니 입을 달싹였다.
“야, 양다리……?”
“아니야아아아!!”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쳤다!
양다리라니,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우와…… 맨날 변태, 변태 그러더니, 뒤로는 존나 즐기고 있었구만? 이래서 용사인가……!”
“아니라고 하잖아, 짜샤!! 아니야!!”
“세상에, 메린 씨 같은 여자를 옆에 두고 한눈을 팔다니. 특이한 자살법이군요!”
“율리아 님까지 왜 이래요?! 아니라니까요!!”
내가 왜 둔덕 하나 없이 평탄하기 그지없는 통나무 몸매의 할망구랑 놀아나?!
웃기지 마, 난 어린애 취향 아니라고!!
어디 하나 혹할 데가 없단 말야!!
“카엘은 내 거야, 개년아아아!! 발정 났으면 위슨이나 잡아먹든가! 왜 남의 걸 탐내냐고오오!!”
“개소리 그만해, 미친년아아!! 안 그랬다고 하잖아아아악?!”
“……”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뱉으며 검을 마구 휘두르는 메린을, 블루벨이질색해하는 얼굴로 요리조리 피하거나 그 검을 흘리고 받아내고 있다.
메린의 검에는 유니콘의 뿔이 들어가서 절삭력이 장난 아니라고 했는데 말야.
아무리 드워프가 벼렸다지만, 단검 두 자루로 그걸 상대하다니, 블루벨도 참 대단해.
“야, 이 새끼들아!! 왜 멍하니 보고만 있는 거야!! 너희도 나서야 할 거 아냐!!”
블루벨이 분통을 터뜨리는 걸 들어도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아니아니, 그 전에 저거, 어디를 어떻게 봐도 메린 아냐?
“메린……?”
멍하니 녀석을 가리키며 물음을 던지니,
“메린 님이죠?”
“메린이네.”
“메린 씨…가 저러셨던가요?”
각각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응, 메린이 맞군.
왜……?
“야!! 안 들려?! 같이 막으라고오오!!”
“아.”
그래,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야!
저게 메린이 맞다면, 블루벨이 썰리기 전에 말려야 돼!
“메린! 그만해!! 정신차려, 임마!!”
배에 힘주어 소리치자, 메린이 블루벨을 힘차게 날려버리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초점이 흐릿해보이는 눈동자로 멍하니 보다가,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거리는 것이었다!
“너……!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대체 뭔 소리하는 거야, 임마!! 나 저 할망구랑 아무 짓도 안 했거든?! 제발 정신차려!!”
“슐 언니는 결혼했잖아!! 내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미 늦었잖아!! 근데 왜 언니랑……!! 내가 아직 죽은 것도 아닌데!!”
“아아아악! 이건 또 뭔 소리야!! 얌마, 너 대체 뭘 보고 떠드는 거야?!”
아니, 진짜 돌아버리겠네!
대체 저 녀석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저 눈에 뭐가 보이길래 뜬금없이 불륜 로맨스를 줄줄 읊고 있냐고, 읽은 거라곤 동화책밖에 없는 녀석이!!
아, 숨이 막혀온다.
기가 막혀서 숨 넘어갈 거 같아……!
“언니를 죽일 순 없어……! 그러니 대신 널 죽이고, 나도 따라갈래!!”
“윽?!”
눈물 어린 살의.
반사적으로 성검을 들어 방패처럼 앞을 가로막자마자,
채앵—!
불꽃이 튀기며 압도적인 힘이 밀어붙이는 게 느껴졌다!
이거, 절대 못 당해……!
“나밖에 안 본다면서! 거짓말쟁이!!”
“거짓말 아냐!! 난 너밖에 없어!!”
나를 죽이려 드는 것보다, 내 마음을 믿지 않는 게 더 아프다.
진짜 미치겠네, 뭘 어떻게 해야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거야?!
“거짓말쟁이이!!”
그녀가 드높이 검을 들어올린다.
아마 내려치려는 거겠지.
손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 메린.
제발……!
“제발 정신차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메린이 힘있게 검을 내리쳤다.
손목이 부러질 듯한 통증과 함께, 칼날 끝부터 폼멜까지 웅웅 떨리기 시작했다.
그 진동이 메아리를 일으키며 홀 안에 울려퍼진다.
일정한 간격으로, 가슴속까지 떨리는 듯한 묵직한 울림을 자아냈다.
“아아아아!”
그러자 메린이 검을 떨어뜨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고통에 찬 소리를 내지르며 무릎을 꿇는 그녀를, 나도 모르게 깊이 끌어안았다.
이대로 목이 부러져 죽는다 해도 상관없어.
메린이 괴로워하는 걸 어떻게 그냥 두고 봐?!
나는 그녀를 힘껏 껴안으며 애걸하듯이 중얼거렸다.
“메린…, 아냐…. 아니야…! 대체 뭔 개판을 보고 있는지 몰라도 아니야! 제발 정신차려!”
“으으으……”
……이윽고 성검의 진동이 멈추고, 홀이 다시 조용해졌다.
숨소리조차 삼켜질 듯한 무거운 적막 속에서,
“으응…… 카엘……?”
메린이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얼굴이 보이도록 품에서 조금 떨어뜨리자, 그녀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한쪽 관자놀이를 매만지는 게 보였다.
“으… 머리 아파…….”
“메린… 너 괜찮아……?”
“머리 깨질 거 같아……. 지랄 맞은 꿈꿔서 기분도 안 좋고.”
“꿈? 아니, 그보다 어떻게 된 거야? 너 그 기운에 삼켜졌잖아!”
메린은 내 말에 잠시 멍하니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면서 말했다.
“음…… 잘 모르겠는데, 꿈에서 들은 목소리가 몸 내놓으라길래 꺼지라고 했거든? 그랬더니 뭐가 막 이리저리 뒤집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이건 어떠냐는 말이 들리더니 갑자기 꿈꿨어. 무지하게 기분 나쁜 꿈.”
“……뭐, 블루벨이 날 잡아먹거나 내가 슐 누나랑 놀아나는 꿈이냐?”
“어떻게 알았어? 너도 본 거냐?”
아니, 네가 존나 큰 소리로 떠들었지.
그러나 차마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틀림없어.
놈이 메린의 몸을 빼앗지 못한 거야. 분명해!
아아…… 기적이야.
기적이 진짜 일어났어!!
‘기적 아니라니까.’
속삭이는 걸 무시하고 메린을 꽉 끌어안았다.
영문을 모른다는 듯 어리둥절하던 그녀가, 이내 헤죽 웃으면서 내 등에 팔을 두르는 게 느껴졌다.
어째서……?!
그와 동시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말소리가 울렸다.
………메린의 배낭 속에서.
어……
뭐지……?
녀석이 등에 메고 있는 배낭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뭐가 하늘로 파앗 튀어오르는 게 아닌가!
“꺅?!”
나도 모르게 녀석을 바짝 안으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캄캄한 어둠이 자리한 시커먼 천장을 등지고,
어째서 이렇게 되는 것이냐!!
“………”
드레스를 입은 자그마한 메린……
그녀를 본 따 만든 인형이 허공에 뜬 채 성내고 있었다.
가슴에 단 푸른빛 브로치를 빛내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