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9화 〉 415화 : 새벽을 맞이할 때 (1)
* * *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렇게 운을 띄우면서 그가 말을 꺼냈다.
“자네가 그리 답할 줄 알고 있었으나…… 허, 그래도 기가 차는군. 이보게, 방금까지 저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떻게 바로 지상을 골라? 그것도 상세히 묻지도 않고!”
“제 속을 다 아시는 걸 보니, 제가 왜 그런 답을 드렸는지도 아실 거 같은데요.”
“알다마다.”
그는 허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품었었는지, 품고 있는지, 또 앞으로 품을 것인지. 무엇을 떠올리며 마지막 숨을 내뱉을 것인지도 다 알고 있네.
그뿐일까? 자네가 조금 전까지 발을 디디고 있던 세상의 탄생 때에 무엇이 있었는지, 자네가 보지 못할 그 끝날에 무슨 일이 있을지도 전부 알지.
심지어 박테리아의 운명도 알고 있다고.”
………박테리아가 뭐지?
뭐, 어쨌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티끌조차도 다 보실 수 있다는 뜻인 눈치였다.
“하지만 내가 먼저 손을 쓰진 않아. 먼저 답을 내지도 않지. 그것이 나 스스로에게 세운 법칙이거든.”
“왜요?”
“그래야 자유롭게 두는 의미가 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인형놀이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이지. 그런 걸 본들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는 과정에 먼저 개입하지 않는다.
설령 불행의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지게 되더라도, 결단코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불행해진다’는 등으로 먼저 알려주지 않는다.
피조물이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결말을 맞이하도록.
자신이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 아는 이야기라 해서, 직접 보는 재미가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대충 풀어놓고 구경하는 거군요.”
“음…… 틀린 말은 아닌데 좀 그렇군. 관망이라고 해주겠나?”
“방관이 아니고요?”
“전혀 아니지.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니거든. 말했잖은가? 내가 먼저 하지 않는다고. 도움을 청하면 들어준다네.”
물론 아무 부탁이나 다 들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천상과 지상 사이에는 물리적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으므로, 그 너머에 자리한 그의 의지를 움직이려면 굉장히 큰 힘이 필요하다.
“즉, 기도일세. 내 도움을 간절히 바라야 하지. 바라는 게 클수록, 더 많은 힘이 필요하고. 최소한 집 바깥에서 배탈이 났을 때 화장실을 찾는 정도는 되어야 내가 손을 댈 수 있어.”
“우와……”
그 정도의 간절함이 최소 수준이라는 거야?
그거 그냥 안 들어준다는 소리나 다름없잖아!
내 생각을 전부 안다고 했던 것처럼, 그는 껄껄 웃으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서 대언자를 세웠지. 아트라토스, 그 멍청이가 지상에서 날뛰었을 때처럼, 자네와 같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헤쳐갈 수 없을 때에도 멸종하지 않도록.”
“애초에 왜 이리 약하게 만든 거예요?”
날카롭고 단단한 이빨이나 손발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덩치가 큰 것도 아니다.
체모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추위를 버티지도 못하고.
심지어 날 때부터 수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진짜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종족이다.
무슨 설계를 이렇게 했대?
그 의문에, 모든 것의 원인이자 근원인 존재는 어깨를 으쓱이며,
“강하면 재미없으니까.”
“………”
상당히 빡치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것도 되게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울컥하는 걸 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그가 한층 더 크게 웃었다.
“하하하! 당연히 화가 나겠지! 자네는 직접 일을 겪는 당사자이니까!
허나 자네도 이야기를 읽으니 알 거야. 역경이 없는 기쁨, 또는 평온이 없는 고난만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지루하다는 걸.”
산꼭대기에서의 경관이 아름다운 건, 그에 도달하기까지 흘린 땀이 빛을 더하기 때문이다.
구덩이에 떨어졌을 때도, 위에서 맛보았던 것들을 잃어버리는 상실감 때문에 더더욱 괴롭기 마련이다.
인간이 그러한 굴곡을 마주하며 느끼는 감정들,
그 때문에 보이는 행동들, 그로 말미암아 맞이하는 결말들.
그 모든 것을 보는 게 즐겁다고 그는 말했다.
“그를 위해 인간을 빚었고, 그 무대로서 세상을 마련했네. 자네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며 웃고, 괴로워하는 것에 울기 위해서.”
“……감정 쏟는 게 목적인 겁니까? 그래야 본인이 존재한다는 걸 실감할 수 있기라도 한 건가요?”
“아니, 그냥 취미야.”
대수롭지 않게 딱 잘라 말한 후,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 타인의 관측 없이 스스로 의미를 가지는 자라네. 자네들이 없다고 내가 사라지진 않아. 그저 유희거리를 잃을 뿐.”
“………”
“이번 대언자가 그랬지? 천상은 자네들의 세상이 멸망해도 개의치 않는다고. 이게 그 이유일세. 없어지면 새로 만들면 될 뿐이야. 한두 시진쯤 안타까워한 다음에 말일세.”
……이따금 생각한 적이 있다.
교단에서 말하는 창조주가 정말 있다면, 언젠가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왜 나를 이렇게 약한 몸으로 태어나게 한 거냐는 것부터 시작해, 이것저것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게 이렇게 이뤄지니, 정말 여러모로 울컥 솟는구만.
그렇다고 길길이 날뛰면서 따지는 것도 웃기다.
저쪽은 나를 비롯한 모든 존재들이 서로 엉기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내지르고 구경하는 입장이니까.
애초에 관점부터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결코 맞물리지 않을 격차야.
그리고 ‘이야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고.
영웅담이 인기 있는 건, 그 영웅이 고난을 당하고 이겨내는 사건이 반복되기 때문이니까.
나는 한숨을 푹 쉬고서 말했다.
“그래서 뭐였죠? 제가 이유를 말해야 되는 거였나요?”
“그 전에 내 말을 듣게나. 매사엔 절차가 있는 법이니.”
그는 짧게 헛기침을 한 후, 아마 천상일 듯한 그 광경…… 커다란 광원과 그 주위를 떠도는 영혼들의 모습을 비추는 수면을 가리켰다.
“저들이 내 시종이라 했지? 대부분은 용도와 역할을 위해 만든 존재일세. 저렇게 형체를 취하기 전까진 의사를 지니지 못하지.
허나 자네는 다를 거야. 조금 전에 차의 향기를 맡을 수 있던 것처럼, 감각과 사고가 살아있는 상태로 나의 시종이 될 걸세.”
“어……”
입을 열려는 순간, 그가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입을 떼었다.
“아직 안 끝났어. ……물론 다시 지상에서 살 수도 있네. 자네가 지독하게 아끼는 여자와 그토록 간절히 꿈꾸던 삶을 이어갈 수도 있지. 이제껏 얻은 상흔을 모두 안은 채.”
상흔?
몸을 다쳐서 얻은 흉터를 가리키는 건 아닐 것이다.
사제의 힘으로 자그마한 흉터도 없이 모두 말끔하게 고쳤으니까.
그럼 뭐, 마음의 상처나 뭐 그런 걸 말하는 건가?
심심하면 꾸는 악몽 같은 거?
뭘 새삼스럽게.
“그래. 악몽. 여태까지는 자네가 버티기 힘든 것들은 내 ‘검’이 끊어버렸네. 그러한 꿈을 꾸었다는 기억까지.”
“……”
“허나 이후로는 그러한 도움은 얻을 수 없을 거야. 몇 년, 어쩌면 남은 평생 동안 악몽에 시달릴 걸세.”
그 괴로운 삶을 계속 잇기를 원하는가?
그는 상당히 진중한 눈길로 나를 보며 물었다.
악몽을 계속 꾸는 건…… 솔직히 싫어.
원래도 여러 꿈에 시달렸는데, 이 여정 때문에 종류가 훨씬 더 늘어버렸으니까.
그가 말하는 ‘검’은 아마 성검을 말하는 것일 터.
그나마 성검이 있었기에 자다가 깨서 조금 숨이 가쁜 걸로 끝났다는 건가?
그럼 이후엔 어떻게 되는 건데?
아니, 무슨 꿈을 꾸고 기억하게 되는 거야?
튜르 그 개놈을 비롯한 놈들에게 둘러싸이거나, 엄마를 찾아 숲을 헤매거나, 몬스터에 찢기거나, 숲에 버려지는 꿈.
내가 만든 사람 시체가 날 잡아먹으려 달려들거나, 거름더미가 된 아이들이 감싸거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원망을 듣거나, 메린이 없어지는 꿈 말고 또 뭘 꾸게 되는 건데?
“……저 안에 섞이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래,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기억만 어렴풋이 남을 거야. 더는 인간이 아니니, 지상의 괴로움과는 영영 작별하게 되지.”
“……”
악몽과의 작별이라……
나쁘지 않은 이야기이긴 하다.
……그래도,
“여전히 지상을 택하는가?”
“네.”
나는 돌아가야 한다.
더럽게 힘들고 빡센 지상으로.
“어째서?”
“저긴 메린이 없잖아요.”
내가 없어져서 망연히 주저앉은 메린의 곁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해.
그는 내 대답에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몸을 떠는 시늉을 한 후,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중증이구먼. 메린이 없는 것보다 악몽 속에 사는 게 더 낫다?”
“당연하죠. 그 녀석을 두고 가기 싫다고요.”
“그래? 그럼 메린도 함께한다면?”
뭐?
곧바로 가슴이 덜컥하면서 벙벙해졌다!
“지, 지금 그 말, 메린을 죽인다는 거죠?! 세상에, 먼저 개입 안 한다면서요! 그래도 되는 거예요?!”
“됐으니 대답이나 하게. 메린도 자네와 함께한다면 어찌하겠나? 그래도 지상을 택하겠는가?”
그렇게 묻는 그의 얼굴엔 농담하는 기색이 하나 묻어 있지 않다.
그럼…… 혹시 내가 천상에 가겠다고 하면, 진짜 메린이 여기로 오게 되는 건가?
메린과 함께 천상에서……?
음……
“……역시 지상이 좋은데요.”
“이유는?”
“결혼해서 아이 다섯 키우기로 했거든요. 여덟에서 다섯으로 줄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물거품으로 만들기 싫어요.”
“직접 들으니 해괴함이 한결 더 크게 느껴지는군.”
어디가 해괴하다는 거야?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살아가고 싶다는 걸 좀더 구체적으로 말했을 뿐인데.
만물의 아버지는 체념했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며 어깨를 으쓱였다.
“알고 있긴 해도 기가 막히는구먼. 완전소멸 아니면 지상으로의 복귀라니. 어떻게 천상을 택하는 경우가 단 하나도 없는지, 원. 뭐, 좋아. 자네의 뜻대로 해줌세.”
“……설마 영체나 다른 모습으로 보내는 건 아니죠?”
“날 뭘로 보는 건가? 놈과 싸우기 직전의 모습 그대로 돌려줄 테니 걱정 말게. 아, 그렇지. 뭐 궁금한 것 있나? 어차피 자네는 기억 못할 테니 뭐든 묻게. 내 답해줌세.”
………뭐?답을 들어도 기억 못한다고?
그럼 질문하는 의미가 없잖아!
“의미가 없지는 않아. 내가 답했다는 기록은 남으니까. 묻고 싶은 게 있지? 해보게.”
“제가 뭘 여쭐지도 아시는 거죠?”
“그래. 하지만 자네가 직접 묻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그럼……”
궁금한 건 많다.
율리아가 말했던 세상의 구조라는 것도 그렇고, 놋지빌 숲 속에 사는 그 괴이한 존재들의 정체도 알고 싶긴 해.
하지만 그것들은 지금 물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지상에 돌아가서 써먹을 수 없으니까.
그러니 실생활과 조금도 상관없는 질문을 하자.
지금처럼 순수 영혼 상태인 상황에 딱 맞는 물음.
그것은 단 하나밖에 없으리라.
“왜 제가 용사로 뽑힌 거죠?”
따뜻이 웃고 있는 그를 마주하며, 나는 여정 내내 풀 수 없었던 수수께끼를 입에 올렸다.
그러자 그가 한결 더 깊은 미소를 지으며,
“자네는 그 답을 이미 들었어.”
한층 더 알쏭달쏭한 답을 들려주었다!
내가 이미 답을 들었다고?
누구한테? 대체 언제?!
“말했듯이, 나는 자네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간간이 소망을 이뤄주고 있네. 내가 그러하니, 나의 시종들도 바라는 자의 목소리에 약해. 그 소망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더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지. 나의 ‘검’도 말했을 걸세. 자신들은 헛되어 보이는 희망을 실현시키는 게 역할이라고.”
그런 말을 듣기는 했다.
그럼…… 내가 용사가 되기를 누군가가 바라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럴 사람이 누가 있다고?
“아니, 그걸 바란 건 아니야. 조금 더 근본적인 걸 빌었어.”
“전혀 모르겠는데요…….”
“뭐, 아무려면 어떤가? 더는 용사가 아닐 것인데. 허나 장담하지. 자네는 그 답을 이미 들었어. 그리고 그러한 일이 일어날 기반을 쭉 쌓아왔고. 그렇기에 택함을 얻어냈다고 하는 걸세.”
그러고보니 율리아가 그런 말을 했었지.
원래 용사가 될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고.
원래는 누구였을까?
그 사람이 이 여정을 밟았다면, 메린은 예정대로 아트라토스가 되어서 죽었겠지?
………음, 내가 용사가 되어서 다행이야.
더럽게 힘들고 끔찍하고, 또 이렇게 한 번 죽기까지 했지만 그럴 가치는 충분했다.
몸도 고쳤으니 내년 봄꽃도 무사히 볼 수도 있을 거고.
“아.”
생각났다.
묻고 싶었던 게 또 있었어.
“저 왜 겨울마다 앓은 거예요? 올해 초엔 또 왜 앓았고?”
“그거? 그 동네 독기 때문이지, 뭘. 거기 있는 사제가 조만간 알아내겠지만, 그 동네 외곽엔 본래 독기를 정화하는 기도가 새겨져 있었네.”
그러나 마을이 큰 습격을 받았을 때에 기도문 일부가 지워지고 망가져 버렸다.
일부만 손상되었기에 어느 정도 기능이 살아있긴 했지만, 겨울에 눈이 내려서 기도문이 덮이면 그대로 기능이 멈춰버렸다.
“게다가 겨울은 자네와 같은 생물에겐 영~ 좋지 않은 상징이지. 그렇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연히 독기가 진해지네. 그게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들어왔으니, 내성이 없는 자네가 버티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
그리고 자경단이 마을의 외곽을 뒤덮지 않도록 눈을 치웠기에, 하루나 이틀 정도만 앓고 끝난 것이었다.
즉, 내가 독기 내성이 구더기 수준이라서 매년 앓은 거였군.
되게 어이없을 만큼 단순한 이유였다.
그럼 올해 초에 쓰러졌던 것도……?
“아니, 조금 달라.”
그는 내 의문에 고개를 저었다.
“올해 초는 아트라토스 때문이야. 봉인이 올해 풀린다는 걸 듣고 설인들을 죄다 녹이겠다며 힘을 발휘해버렸거든. 그러면서 내뿜는 기운에 영향을 받아버린 걸세.”
“허……”
그것도 아트라토스 때문이었다고?
이거 뭐, 나랑 메린의 인생을 놈이 좌지우지한 거나 다름없잖아!
메린이 비정상적인 힘을 지닌 건,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아트라토스가 손을 댔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사람들에게 배척당했지만, 동시에 나는 그 힘 덕에 죽지 않고 계속 살 수 있었다.
근데 올해 초에 앓은 것도 그 놈 탓이라니.
그 일 때문에 나는 얼마 못 살 거라 생각하게 되었다.실제로 죽을 뻔하기도 했고.
메린은 메린대로 나랑 거리를 두기 시작했지?
하, 나 참.
진짜 어이없는 인연이다.
이 정도면 누가 바라지 않았어도 내가 용사가 되어야 하는 거 아냐?
그는 기가 막혀서 고개를 젓는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재차 물었다.
“또 묻고 싶은 것 있나?”
“아뇨.”
“그럼 잘 돌아가시게. 또 보자고.”
쓴웃음이 절로 나오는 인사였다.
죽은 뒤에나 다시 만날 존재이니까.
“그 의미가 아니야.”
“네? 그럼……?”
“직접 알게 될 걸세. 우선 여생이나 실컷 보내라고.”
끝에 가서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진 후, 그는 나를 호수로 홱 밀어버렸다!
영혼이 맞긴 한 건지, 물보라도 없이 그대로 물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눈을 깜빡인 순간,
“하……!!”
크게 숨을 쉬면서 격한 기침을 마구 토해내게 되었다.
온 몸이 물에 푹 젖은 상태로.
……뭐야, 이거.뭐에 젖은 거야?
아트라토스의 피…는 아닐 거 같은데.
그 놈 피는 돌바닥도 녹이는 독이었으니까.
그럼 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있는 거지?
전혀 모르겠어.
“흐윽…! 으아아앙……!”
메린은 왜 날 껴안고서 펑펑 울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밤하늘이 훤히 보이는 걸 보니 바깥인 거 같긴 한데.
“진짜 살아났어…! 우으으… 카에엘……!”
“…………”
……역시 죽었었구나.
하긴, 사방에서 마구 터져버렸으니…….
근데 지금 살아있다는 건, 기적이 또 한 번 일어난 거겠지?
와, 하루에 두 번이나 기적을 보다니. 왠지 무서워지네.
“메린……”
어쩐지 무척이나 그리웠던 이름을 부르며, 바들바들 떠는 등을 깊이 감싸 안았다.
‘한 번이야, 한 번. 아까 거는 기적 아니라니까…….’
마음속에서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깔끔히 무시해버리면서,
그녀가 흘리는 기쁜 눈물을 한가득 받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