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0화 〉 416화 : 새벽을 맞이할 때 (2)
* * *
달이 휘영청 떠 있…지는 않군.
억지로 만든 밤이라 그런지 어디에도 달이 보이지 않다.
그래도 은빛 가루 같은 별이 한가득 반짝이고 있어서 분위기는 꽤 좋은 편이지?
여기엔 우리 둘까지 합친 여섯 명이서 드래곤 잡으러 우르르 몰려왔고, 나머지 넷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것만 아니면 계속 이러고 있을 텐데.
게다가 슬슬 등이 아프기도 해서, 나는 한 팔로 메린을 안은 채 몸을 일으켰다.
그런 다음, 아직 눈물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녀석을 계속 토닥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 근처에 돌기둥으로 뺑 둘러싸인 물웅덩이가 하나 있다.
그 기둥 하나하나엔 누가 지폈는지 놋쇠로 된 등잔에 횃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음…… 혹시 저 물 때문에 내가 푹 젖은 건가?
이 녀석이 나 깨우겠다고 집어 던졌던 거지.
메린이라면 그럴 만해.
애초에 내가 왜 여기 쓰러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뒤쪽엔……
오르막길 끝에 무슨 누각 비슷한 게 있는 것 같은데, 조명이 부족해서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따 상황이 진정되면 위에 올라가볼까?
높이가 꽤 되니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결정한 후, 메린을 다시 꽈악 껴안으면서 아이를 어르듯이 좌우로 살살 몸을 흔들었다.
“메린.”
“흑… 우으……”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
속삭이면서 그녀와 얼굴을 마주한다.
율리아나 로나에게 기도를 받았는지, 생채기 하나 나 있지 않은 얼굴이 훌쩍이며 웃음을 짓는다.
눈물에 젖은 주홍빛 눈동자, 그 안에 담긴 나 역시 한껏 미소 짓고 있다.
“메린……”
여기 오기 전까진, 이렇게 다시 마주 웃을 수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 못했어.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만 했지.
그게 정말로 이루어지다니 믿기지 않는다.
꿈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겸,
얼굴을 가까이해서 그 눈물 젖은 웃음을 머금으려는 찰나,
“저기요~ 그런 건 이따 하시죠?”
“으?!”
히죽거림을 담은 불평이 상당히 날카롭게 귀를 찔러왔다!
황급히 메린에게서 떨어지려 했지만, 녀석이 도리어 더 꽉 안으면서 달라붙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아오, 진짜 힘은 세가지고!
녀석을 떼길 포기하고 한숨을 쉬는데, 갑자기 저 앞에서 환한 불빛이 비추면서 잘 아는 사람 네 명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데 모여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식으로!
“……”
지금 막 도착한 건 절대 아닌 거 같지?
몸이 미세하게 떨기 시작하는 걸 느끼며, 히죽히죽 웃고 있거나 건조한 눈으로 쳐다보거나 하품을 하고 있는 네 명을 향해 입을 떼었다.
“저기, 언제부터……?”
“메린이 널 저 웅덩이에서 건졌을 때부터.”
“………”
블루벨의 무미건조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역시 저 물웅덩이 때문에 내가 흠뻑 젖은 거였어.
왜 저기 처박혀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어쨌든 처음부터 다 봤다는 거지?
의식을 찾은 나를 메린이 껴안으며 펑펑 우는 거랑, 그런 그녀를 내가 안고서 토닥인 거랑,
방금 키스하려던 것도 전부 다.
저 넷 중에 셋은 어두운 데에서도 문제없이 볼 수 있으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다 봤겠지?
“…………”
조용히 후드를 잡았다.
그리고 더 쓸 수 없을 때까지 깊이깊이 눌러쓴 후, 그 속에서 소리 없는 절규를 마구 질러대었다!
아으……
왜 잊을 만하면 이러냐고……!!
“죽다 살아나면 사람이 변한다던데 그렇지도 않네. 카엘 형, 완전 그대로야.”
“아하하,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요?”
“……아니, 저게 극한까지 온 상태인 거 아냐? 저기서 더 변하면 인간을 벗어나는 거지.”
“시끄러, 이 자식들아!”
일갈하는 내 목소리가 주변에 잔잔한 메아리를 퍼뜨렸다.
누각 같은 건물 그림자가 보이는 곳을 향해, 스라소니 덕에 환히 밝아진 길을 천천히 올라간다.
제법 길이가 되는 덕분에, 나는 가는 도중에 율리아에게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일단 내가 드래곤의 가슴 안에 들어가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놈이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폭발시키면서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는 듯했다.
고기조각 하나 남지 않을 만큼, 아주아주 세밀하게.
“그래서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실제로 죽었죠? 인간이 그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으니까요.”
율리아의 말에, 뒤에서 따라오고 있을 위슨이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화려하게 산화하겠다더니, 그런 식으로 그 말을 지킬 줄은 몰랐어요. 자폭이라니, 세상에.”
“본체엔 영향이 눈곱만큼도 가지 않으니까 그런 걸 거예요. 저는 놈이 지옥의 군주가 된 게 더 놀라운데요? 이제 ‘썩을 악마 놈들’이 아니라 ‘썩을 사탄’이라고 욕해야 될까요? 율리아 님?”
“그러라고 놈들이 일부러 욕받이로 세운 거니, 조만간 자연히 그런 식으로 비난하게 될 거야. 어쨌든 카엘 님, 당신은 그렇게 자취 하나 남기지 못하고 없어졌어요.”
숲이 삼켜버린 우리 엄마처럼, 유품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성검조차 보이지 않는 건 조금 의문스러웠다나.
여하튼 그 때문에 메린은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리 잡아당기고 말을 걸어도 꼼짝도 안 하길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는 듯했다.
……내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자책이라도 했던 건 아니겠지?
갑자기 자폭한 미친 도마뱀 대가리가 나쁜 거지, 메린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덕분에 놈을 해치울 수 있었으니 오히려 칭찬을 들어야 한다.
그 뜻을 담아, 내 등에 업힌 채 잠든 메린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내가 후드를 쓰고 마음속으로 절규를 쏟는 사이에, 나를 껴안은 채로 잠들어버린 것이었다.
뭐, 많이 지쳤겠지.
불현듯 자그마한 웃음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자, 뭐가 우스운지 율리아가 킥킥 웃고 있었다.
“왠지 석 달 전이 생각나네요. 그때도 당신이 메린 씨를 업은 걸 봤었죠.”
“아…… 그랬었죠.”
메린이 그 전날에 사범님과 신나게 대련을 떠서 늦잠을 잔 탓에, 내가 녀석을 업고 집합 장소인 광장까지 가야 했다.
녀석의 짐까지 들고서.
아…… 그거 진짜 더럽게 무거웠지…….
정말 죽을 맛이었어.
“그때도 메린 씨는 당신을 꼭 껴안았죠. 놓치기 싫다는 듯이.”
“……”
“당신도 말 타면서 메린 씨 허리를 꽉 안았고요!”
“………”
뒤쪽이 시끄럽다.
진짜 쓸데없는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네!!
율리아는 내 표정이 만족스러운지 빙긋 웃으며 다시 앞을 돌아보았다.
“어디까지 했죠? 아, 그래. 당신이 그렇게 한 톨도 남지 않게 된 다음, 어떻게 해야 되나 했는데 갑자기 예언이 내려왔답니다.”
“예언이요?”
“무척 간단한 말씀이었어요. 위에 올라가서 종을 치라는 거였죠.”
무엇 하나 이해되지 않는 예언이었지만, 달리 할 것도 없으니 그대로 따랐다는 듯했다.
여전히 땅 아래를 내려다보며 망연히 앉은 메린을 끌고 오느라 고생 좀 하면서.
“나 참, 안 가겠다고 어찌나 우기시던지! 거의 싸울 판이었다니까요? 그러다 갑자기 빨리 올라가야 한다고 닦달하신 거 있죠? 왜 그러시는가 했는데, 이제 보니 당신의 기척을 느낀 거였네요.
참 대단하세요. 그 자리에서 이 바깥까지 거리가 꽤 되던데.”
“……”
“아무튼 저는 림을 타고, 다른 세 분은 파랑새랑 엘크를 타고 빠져나왔어요.”
그렇게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메린은 어딘가로 뛰어가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황급히 그 뒤를 쫓았을 때엔, 녀석이 이미 나를 물웅덩이에서 끌어내고 있었다는 듯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메린이 나를 찾아낸 것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래서, 음, 저게 종각인 건가요?”
가슴속이 벅차는 걸 숨기려고 목을 가다듬으며 묻자, 율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엔 그런 거 같아요. 저걸 울려서 뭐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안 알려주셨어요?”
“무엇을 하라는 것만 알려주시는 편이거든요. 용사가 나타날 거란 예언이 여태 들은 것 중에 가장 자세했죠.”
일단 하라는 대로 따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이유 때문인지, 율리아의 옆얼굴엔 조금 긴장이 서려 있는 듯했다.
이윽고 오르막이 끝나고 커다란 종이 달려 있는 누각 아래에 섰을 땐, 표정이 아예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기까지 했다.
불빛이 잘 닿지 않아서, 사람 둘은 끄떡없이 덮어버릴 만큼 큰 종이라는 것 말고는 모르겠어.
나는 손에 잡기 좋은 위치까지 내려와 있는 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당기면 되나요?”
“그렇지 않을까요? 주변에 다른 종이 있는 것 같진 않아요.”
“그럼 이게 맞겠죠, 뭐. 아, 잠시만요.”
긴장된 얼굴로 줄을 잡으려는 율리아를 말렸다.
메린이 여전히 내 등에서 쿨쿨 자고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이 녀석 없이 할 수는 없지.
녀석을 바닥에 앉히고 뺨을 마구 주무르면서 깨웠다.
“야~ 메린, 일어나~”
“우으응…….”
으으, 장갑 못 벗는 게 아쉬워!
이 말랑함을 느끼지 못하잖아!
……후, 안 되겠다.
돌아가면 실컷 만져야지.
‘왜? 아예 더 말랑한 가슴,’
닥쳐!!
상황에 안 맞게 뜬금없이 뭔 개소리야?!
……속에 든 잡귀를 향해 크게 일갈하면서, 나는 크게 하품하며 눈을 비비는 메린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런 뒤, 왠지 낄낄 웃는 듯한 환청을 흩으려 고개를 저은 다음, 율리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어지간히 긴장이 되는지,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서 줄을 홱 잡아당겼다.
그러자 종이 옆으로 크게 움직이면서,
대애애앵—!
“힉?!”
온 몸의 털이 바싹 솟을 만큼 큰 진동을 사방에 퍼뜨렸다!
잠이 덜 깬 메린이 눈을 번쩍 뜨며 제자리에서 폴짝 뛰어오르고, 블루벨이 소리를 지르며 두 귀를 틀어막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소리였다!
율리아조차 그 소리는 견디기 어려운지 곧바로 줄을 놓고 귀를 막았는데,
대애앵— 대애앵—
아무도 줄을 당기지 않고 있는데도, 종이 혼자 좌우로 흔들리며 계속 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건 그 기이한 광경보다도 귀에 들려오는 소리였다.
여태 들었던 종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
불안해지기는커녕 마음이 편안해지는 울림이야.
방금 전처럼 귓속을 마구 파낼 것처럼 세지도 않고.
아니, 율리아는 대체 얼마나 힘을 줘서 당겼길래…….
“와, 카엘 님, 저거 봐요!”
“응?”
별안간 로나가 누각 바깥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하늘 저편을 가리켰다.
뭘 봤길래 저러나 싶은 의문은, 종각 밖으로 나가자마자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
하늘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짙게 깔린 밤의 장막이 조금씩 걷어져 간다.
하늘을 수놓고 있던 은빛 별들이 한 뭉텅이씩 모습을 감추고 있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빠르게.
이윽고 지평선 너머에서 해가 고개를 쏙 내밀자, 갑자기 검집이 크게 떨리면서 찬란한 빛 덩어리가 튀어나와서는 내 눈앞에 둥실 떴다.
어……검은 그대로 있는데……?
마침내 끝이로군.
종소리를 덮지 않을 만큼 나지막한 울림.
허리춤에 옮겼던 시선을 들어 정면을 보자, 후드를 깊이 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허공에 둥실 떠 있었다!
어쩐지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누구이지?
……아니, 이 시점에서 저 남자의 정체야 뻔하지!
나는 빙긋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마침내 정체를 드러냈구나, 잡귀야!”
검이다, 검. 다 알면서 일부러 헛소리를 하다니, 참으로 특이한 성품이 아닐 수 없도다. 물들 일이 없다는 것이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남자… 성검은 두 손 다 들었다는 듯이 팔을 들고서 한숨을 푸우욱 내쉬었다.
역시 무례하군. 그러니 남의 속에서 멋대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지.
“하, 나도 이제 환청 안 듣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석 달간 수고했고, 다신 만나지 말자고.”
그래, 그대도 멸치 같은 몸을 혹사하느라 고생했다. 헌데…… 그 외엔 전부 정정해야 할 듯하군, 카엘.
멸치가 뭔지 모르겠지만 욕하는 건 줄은 알겠다.
그나저나 정정이라니?
내 말 어디가 틀렸다고?
공중에 둥실 떠 있는 남자를 멀뚱멀뚱 쳐다보자, 그가 씨익 웃으며 입을 움직였다.
석 달이 아니라 반년이야. 정확하게는 일곱 달이군. 넉 달은 속에 머물며 지켜보았을 뿐이지만 말이지?
“허?!”
뭐, 일곱 달?지금이 8월이니까……
뭐야, 1월부터 있었다고?!
놀라서 대꾸도 못하는 가운데, 그가 몸을 살짝 굽히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대와 나는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나에게는 찰나이나…… 글쎄, 그대에겐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까?
“뭐? 잠깐, 그게 무슨 뜻,”
캐물을 틈도 없이, 남자의 형체가 빛으로 흩어져버렸다.
그리고는 별처럼 반짝이면서 종각으로 날아가더니, 방금 들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포하노라.
대애애앵—!
가슴속까지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그의 선포가 저 먼 곳까지 널리 울려퍼졌다.
비탄의 밤은 물러가고, 여명이 돌아왔으니.
서서히 밝아오던 새벽이 한순간에 아침으로 바뀌고,
한탄하며 주저앉던 자들아, 일어나 수확의 기쁨을 맞이하라.
저 멀리, 금빛 무더기가 한자리에 모인 게 보인다.
마치 보리가 여물기라도 한 것처럼.
고난의 때가 지났으니, 사명을 완수한 자에게 축복 있으라.
……그리고 축복을 비는 말과 함께,
눈부시게 환한 빛이 우리를 감쌌다.
자연히 질끈 감았던 눈을 다시 뜨니, 어느새 우리 모두 산 아래에 내려와 있었다.
그것도 사람 그림자조차 하나 없는 마을 광장에.
“……”
틀림없어.
여긴 설인들이 있던 마을이야.
발목까지 쌓여 있던 눈이 전부 녹은 걸 넘어서 물기 하나 남지 않고 싹 말라버렸지만, 그래도 이 허름하면서 황량한 분위기도 그렇고, 광장에서 올려다본 북쪽 산의 모습도 무척 낯이 익다.
여기까지 보내준 건가?
“진짜 전부 다 없어졌네요~”
“……”
주변을 두런거리면서 중얼거리는 로나.
그 말대로 마을은 완전히 텅 비어 있다.
아트라토스를 멸하는 순간 스러진다더니,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에 인사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사라져버린 듯했다.
……되게 좋아했겠지?
드디어 죽게 되었다면서 말야.
아마 난 평생 이해 못할 감정일 것이다.
“뭐, 아무튼 돌아가자.”
여기서 놋지빌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이 시계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오전 여덟 시이니 아무리 천천히 가도 점심 전에 도착하겠지.
이렇게 가까운 곳으로 옮겨주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야.
난 또 그 종각이 있던 곳에서 아래까지 언제 내려가나 했네.
돌아가자는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걸어가기 시작하는데, 돌연 메린이 내 소매를 당기며 말을 걸었다.
“야, 카엘.”
“응?”
“하늘, 되게 예쁜 거 같지 않냐?”
평소에 보던 것보다 더 파랗고 맑은 것 같다.
천진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그녀.
나에겐 저 파란 하늘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게 보였다.
“아니, 네가 더 예뻐.”
“응……?”
그래서 솔직히 그 마음을 전하며, 경탄과 사랑을 담아 입술을 포개었다.
……조금 전에 하다 말아서 생긴 아쉬움도 몰래 넣어서.
그리고 서로를 보고 웃으면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와락 껴안았다.
마주 전해지는 온기와 웃음소리에서 그녀의 존재를 느끼며, 마침내 겨우겨우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로 다 끝났다는 것을.
짧고도 긴 여정이,
비로소 막을 내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