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0화 〉 외전 10) 여기, 바깥에서 (Side : Rlona) (3)
* * *
솥과 식기를 정리했을 즈음에는 이미 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로나는 여전히 활활 타오르며 커다란 모닥불 역할을 해주고 있는 오두막을 힐끗 보았다가, 옆에서 배낭을 뒤적거리고 있는 위슨에게 물었다.
“이제 가실 건가요?”
“아니, 여기서 밤을 보낼 거야. 집 안에 있는 게 아직 덜 탔을 거거든. 넉넉하게 내일 새벽에나 꺼야지.”
“그러시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눈에, 위슨이 배낭에서 투박한 병을 꺼내는 게 보였다.
아마 그가 물약재료로 쓰는 독주 중 하나이겠지.
물잔 하나를 치우지 않고 내버려둔 걸 보면, 여전히 식후에 한두 잔씩 홀짝이는 모양이다.
“……”
문득, 묻어두었던 그 사람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지금보다 한창 작았던 위슨이 잔을 홀짝이는 걸 보면서 작게 투덜대던 모습.
그가 나눠준 독주를 마시고 격하게 기침하던 모습.
맛 좀 보게 해달라는 그녀에게 이거나 맛보라면서 딱밤을 때리던 모습.
그리고 술꾼 엘프가 몰래 먹인 도수 높은 술에 취해, 연인에게 들러붙어서 헤죽헤죽 웃다가 훌쩍거리더니 잠들던 모습도, 약간 흐릿하게 하나씩 눈앞에 떠올라왔다.
혼자 잔을 기울일 때는 생각나지도 않더니,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 있다고 바로 영향을 받아버리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 추억들을 되새겨도 ‘그땐 그랬었지’라는 생각만 들면서 아주 조금 웃음이 나올 뿐, 그 사람이 강렬하게 그리워지거나 마음이 무거워지진 않는다.
여전히 그녀는 메마른 상태인 것이다.
무척 다행스럽게도.
“……사제님은 이제 갈 거지?”
잔을 채우면서 묻는 위슨의 목소리는 살짝 가라앉아 있었다.
기울인 술병을 다시 바닥에 세운 뒤에도, 정면에 있는 자그마한 모닥불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궁금해하지도, 떠날 거냐고 예상하는 것도 아닌, 떠나갈 게 틀림없다고 믿는 물음.
그러면서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모습에서, 그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는 게 훤히 보였다.
그럼 그냥 말해버리지, 왜 굳이 다른 말을 꺼내는 걸까?
로나는 속으로 어깨를 으쓱이면서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을 돌아보며 의아해하는 그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저도 주세요.”
“어?”
위슨의 눈이 한순간에 동그래졌다.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정말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그녀를 빤히 바라본 채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그러기를 잠시, 그는 곧 작게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같이 있으면 영향받아서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괜찮아?”
“네. 엄청나게 괜찮아요.”
추억을 떠올려도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잔잔하다.
게다가 이젠 누군가가 그녀의 감정변화를 살피지도 않으니, 공연히 주의하며 조심해야 할 필요도 없다.
“뭣보다도 여기 따뜻하잖아요~ 밤새 난방이 켜져 있을 건데 당연히 밤을 보내고 가야죠!”
“추위 안 타면서.”
“그래도 기왕이면 따뜻한 데가 좋죠! 기운이 더 잘 회복되니까요. 뭐, 위슨 씨가 혼자 있고 싶으시다면 자리 비켜드리겠지만요.”
“나야 같이 있으면 좋지.”
그 말을 하고서 혼자 흠칫 놀라는 위슨. 무심코 나와버린 말이었는지, 그는 멋쩍은 듯이 웃으면서 배낭 속에 다시 손을 넣었다.
술은 바로 그 앞에 있고, 잔은 그녀가 가진 것을 쓰면 되는데.
‘왠지 재미있어지셨네.’
로나는 약간 상기된 그의 옆얼굴을 보면서 혼자 키득 웃었다.
얼굴을 지적해봤자 모닥불 때문이라고 우길 게 뻔하니, 다른 걸 건드려보기로 했다.
“뭐 찾으세요? 술은 바로 앞에 있잖아요.”
“다른 거 주려고.”
부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사실에 그녀가 약간 실망을 느끼며 자신의 물잔을 꺼내는 한편, 위슨은 배낭에서 예쁘장한 와인병을 꺼내어 입구를 막은 마개를 퐁 빼냈다.
그리고 그녀가 준 잔을 채우면서 약간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 좋은 술이 있거든. 사제님도 마음에 들 거야.”
“뭔데요? 병 보니까 와인 같긴 한데…… 포도주?”
“아니, 딸기 와인.”
와인을 채운 잔을 건넨 후, 그는 독주가 담긴 자신의 잔을 단숨에 비우고 물로 헹구더니 와인을 한가득 채워넣었다.
그런 뒤, 그녀에게 잔을 살짝 내밀며 웃었다.
“다시 만난 기념으로 건배하자.”
“그거 좋네요~ 건배~!”
통.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서 입에 댄다.
새큼한 향이 먼저 코끝을 스치고, 이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술 특유의 알싸함에 혀가 얼얼해지는 걸 느끼며 꿀꺽 삼키자, 혀끝에 은은히 남은 달큰한 기운이 또 한 모금을 부르는 듯했다.
“이거 맛있네요. 딸기 와인이라고 하셨죠? 어디 거예요?”
“레드필드. 동부에 있는 마을이야. 딸기로 유명해.”
‘붉은 들판’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봄철에는 주변이 전부 빨갛게 물들 정도로 딸기가 많이 나는 곳이라는 듯했다.
심지어 근방 숲도 산딸기로 온통 붉어진다고 말한 후, 위슨은 잠시 틈을 두었다가 재차 입을 열었다.
“알아? 카엘 형네가 거기 살고 있어.”
“네, 알아요. 그간 실컷 들었거든요.”
2주에 한 번, 짧으면 사흘에 한 번 꼴로 그 동네 이야기를 들었다.
근방을 지나가면 지나가는 대로, 마을을 통과하지 않고 돌아가면 돌아가는 대로 그 이유를 캐물었다.
그녀가 복귀했을 때에 그곳의 영주가 수도에 있기라도 하면, 바깥을 나가건 말건 그녀를 지켜보는 시선을 느껴야 했다.
“진짜 무지 귀찮게 굴던 거 있죠? 안 나가고 신전 안에 있으면 ‘거기 영주랑 마주칠 것 같아서 안 나가는 거냐’고 묻고, 바람 좀 쐬려고 하면 ‘거기 영주 만나러 가냐’면서 캐묻고! 와, 확 받아버릴까 싶은 거 참느라 혼났다니까요!”
지금 다시 떠올려도 정말 진절머리 난다.
로나는 홀로 몸서리를 치며 잔을 홀짝였다.
“뭐 때문에 그렇게 집중감찰을 받은 거야? 이유 들었어?”
“당연히 들었죠. 제가 고장났을까봐 살펴본 거예요. 그래서 꾹꾹 참았죠.”
“고장……?”
눈썹을 추켜올리면서 되뇐 위슨은, 이내 미간을 찡그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뜻이냐고 묻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는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저에게 감정이 생겨난 게 아닌지 본 거예요. 혹시라도 더 생겼다면 억제시술을 하려고요.”
“……알고 있었어? 그런 짓을 당할 거란 걸?”
“설마요, 전혀 몰랐어요! 덕분에 교단이 굉장히 철저하다는 걸 새삼 알게 됐죠. 두 달 전에나 겨우겨우 끝났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랬구나.”
위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잔을 조금 더 크게 기울인 후에 그녀에게 물었다.
“………아까 그랬지? 나를 피할 이유가 없어서 저녁 얻어먹었다고.”
“네. 왜요?”
“혹시 감정억제 처치를 받은 거야? 그래서 감찰도 끝났고?”
“아뇨? 안 받았는데요? 그거 안 받으려고 들이받고 싶은 걸 참은 건데요?”
캐묻는 게 성가시다고 버럭 화를 내면, 그들은 용사와의 여정 때문에 감정이 발현됐다고 판단했을 터.
그녀가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하더라도, 결국 시술이 시행됐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전투사제 로나를 보는 교단 사제들의 눈초리는 부드러워졌겠지.
문득 두 달 전, 조언을 받고 싶다며 말을 걸었던 수련생이 떠올랐다.
6년간 그녀가 수도를 오갈 때마다 자꾸 접근해오던 그 별난 수련생은, 기어코 서품 전 마지막 단계, 즉 감정억제 시술을 앞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점심을 같이 먹자는 그 수련생에게, 로나는 일부러 저녁 식사 때에 보자는 약속을 했다.
시술은 경험이 없지만, 서품에 대해서는 말해줄 게 있을 거라며.
그리고 그날 저녁, 약속대로 식당 앞에서 만난 수련생은,
죄송합니다. 식사는 따로 하고 싶습니다.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상당히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
그래요? 맘이 갑자기 바뀐 이유가 있나요?
무슨 답이 올지 반쯤 알면서도 물은 그 질문에, 수련생은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사제님께선 처치를 받지 않으셨다고 했지요. 그런 어중간한 분의 조언을 받아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 쏘아붙이고 먼저 자리를 떠나버렸다.
다른 사제들처럼, ‘비워지는 고통’을 겪지 않은 그녀를 부러워하면서.
아마 그 자리에 예의범절이란 개념까지 창조주께 바쳐버린 치유사제가 있었다면, 뭔 머저리 같은 소리를 하냐며 그 수련생의 뒤통수를 갈겨버렸겠지.
대언자의 최측근이자 차 담당인 해석사제는 한숨을 푹 쉬면서 그녀의 어깨를 괜히 두드려주었을 것이다.
보직상 그녀와 자주 승부를 가르던 보호사제는…… ‘그딴 거 알게 뭐야. 이번에야말로 승부다!’라며 훈련장으로 끌고 갔을 게 분명하다.
그녀의 교육과정에 본의 아니게 참여하고, 종국엔 아트라토스에 대비하는 ‘특별 사제’로 임명되었던 그 셋을 제외한 나머지 사제들은, 그녀가 제대로 희생하지도 않고 서품을 받았다고 여기고 있다.
어떤 전투사제는 운 좋게 대언자의 눈에 들어서 사제가 되었을 뿐이 아니냐며 대놓고 시비를 걸기도 했다.
물론 대련으로 격차를 보여주긴 했으나, 여전히 그녀를 인정하는 기색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었다.
감정을 덜어내는 희생을 치르지 않았으면서 자신들보다 더 큰 힘을 받은 것을 납득할 수 없는 것이리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체념하고 시술을 받게 하려고 감독사제들이 더 집요하게 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나는 꿋꿋이 버텼다.
6년 조금 넘는 시간동안 주시되고, 감시를 받고, 관찰을 당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창조주가 자신에게 주는 시련이라 여기며, 속으로 신나게 불평하면서 인내하고 또 인내한 것이었다.
“시술을 받으면 더 이상 귀찮게 굴지도, 쌀쌀맞게 굴지도 않을 테니 여러모로 편해졌겠죠.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와 이야기하면서 술을 마시는 일 따위 하지 않겠죠. 의무와 사명에 불필요한 일이니까.
그리고 그 두 분을 떠올려도 지금처럼 웃음이 나거나 속이 약간 뭉글해지지도 않을 거고요. 또……”
잠시 말을 끊고, 잔 속에 든 와인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말을 이었다.
“……두 분을 붙이려고 했던 일들을 헛짓거리로 치부해버릴 거예요.”
“설마.”
“아뇨, 분명 그럴 거예요. 그리고 시술 후엔, 수련생 때의 성격으로 돌아간 전투사제 로나가 되어서 돌아다녔겠죠. 사명을 위해서라면 뭐든 이용해먹는 지독하게 냉혹한 전투사제 로나.”
그게 무엇보다도 싫었다.
무엇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 느낌도 없던 시절, 텅텅 비어서 허전한 마음으로 말을 건네는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희미하게나마 얻어낸, 그래봤자 다른 사제들에 비하면 손톱 때만큼도 안 되는 일렁거림을 도로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그것은 즉, 그녀가 용사의 여정에 함께하면서 얻은 의미들마저 사라지는 것이었으니까.
“원래부터 비어 있던 사람이 사제가 된 건 제가 처음이에요. 그래서 다들 모르는 거죠. 그냥 같이 다니는 걸로는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그렇게 쉽게 생겨날 것이었으면, 그녀는 수련생 시절에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제들처럼 감정억제 처치를 받았겠지.
용사와 그의 연인도, 이미 부부가 된 상태로 함께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그저 그 자리에 같이 있는 것으로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데.
문답을 나누는 것 또한 지식이 쌓일 뿐, 텅 빈 속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애착이 생겼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가엾게 여기게 되지도 않는다.
그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증명하고자, 로나는 6년간 사제들에게 시달리면서 묵묵히 철퇴를 휘두른 것이었다.
“석 달간 누군가와 친하게 지냈다고, 이삼 일간 친절을 베풀어준 여자아이를 못 죽일 리가 없는데 말이죠. 그건 그거이고, 이건 이거인데.”
“……”
“뭐, 조금 변한 건 있을지도 몰라요. 갈색머리에 파란 눈을 한 사람이 의심스러워질 때, 처단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뭐, 막상 그때가 됐을 땐 그냥 콰직해버렸지만.”
그리고 그 사실이 그리 무겁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저 인상이 조금 닮았을 뿐, 이름도 생김새도 완전히 다른 타인이었으니까.
어쩌면 그걸 확인하기 위해, 교단은 일부러 그 용의자를 조사하라고 그녀를 보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대가 여전히 주의 검으로서 굳게 서 있음이 판명되었다.
대사제가 두 달 전에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 대사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상대가 누구이건 창조주의 적이면 가차없이 없애다니, 역시 사람이 아니로구나. 잘 돼먹은 전투사제다’라고.
그게 비아냥이 아니라 칭찬이라는 것은, 같은 사제만 알 수 있는 사실이리라.
“그럼 이제 괜찮은 거 아냐?”
“네? 뭐가요?”
“……”
위슨은 잔 속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을 지키다, 다시금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카엘 형이랑 메린 누나, 만나도 되는 거 아니야?”
“………”
“시술없이 감찰을 넘겼다며? 형이랑 분위기가 닮은 사람을 처치해도 별 감흥 없었다며? 그럼 굳이 피할 필요 없는 거 아냐? 사제님이 나타나면 다들 긴장한다지만, 그 둘은 아니잖아. 형은 당연하고, 누나도 내심 사제님을 보고 싶어하고 있어.”
자신에게 저녁을 얻어먹고 술을 나눠 마시는 것처럼, 그 두 사람을 만나도 별일 없는 거 아니냐?
로나 스스로 말한 것처럼 석 달간 지내도 큰 영향이 없었으니, 하루쯤 만난다고 뭐가 달라지지 않을 터.
위슨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만나러 가자.”
“……”
“마을 안이 뭐하면 숲에서 보면 돼. 적당히 넓고 사람 안 오는 데가 있으니까,”
“아뇨.”
어딘지 간절하기까지 들리는 그의 말을 자르고,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손을 뺐다.
“만나서는 안 돼요. 그 두 분만은, 절대로.”
“……왜?”
“두 분은 특별하니까요. 그때 말씀드린 것처럼, 직접 보게 되면 크게 영향을 받아버릴 거예요.”
원인은 달라도 상태가 비슷했던 여자가, 평범한 사람처럼 사랑을 받으면서 사람들 틈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바랄 수도 없던 삶이 이루어져 있는 걸 보면, 아무리 감정이 희박한 그녀라 할지라도 무언가 품게 되겠지.
이미 예전에 체념하고 받아들인, 자신과 가장 어울리고 자랑스러운 이 삶.
창조주의 도구로 살아가는 자신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될 가능성 따위, 아예 싹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만나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위슨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런 이유를 붙이는 시점에서 그른 거 아냐?”
“그렇죠. 그래서 더 만나면 안 되는 거예요. 진짜로 흔들릴지도 모르니까.”
“그냥 사제 때려치지 그래?”
“싫어요. 그나마 사제이니까 도움되는 쪽으로 일하는 거지, 사제 아니었으면 뒷세계에서 한자리 떡 하고 차지하고 있을걸요? 그게 더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
단 한순간도 막히지 않고 대답을 꺼내는 그녀의 모습이 거슬린 걸까?
그는 단숨에 잔을 비우고는 다시 와인을 따르려다, 그 옆에 있는 병…… 자신의 독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그리고는 길게 숨을 내쉰 후, 그녀를 약간 매섭게 쳐다보았다.
“그래서, 계속 소식도 주고받지 않을 생각이야?”
“주고받을 만한 것도 없지 않아요? 이번엔 어디에서 악마가 나타나서 싹 쓸었다, 이런 얘기밖에 할 게 없잖아요. 거기 애들 정서교육에 안 좋을걸요.
그리고 두 분 가족의 소식은 좋은 거든 나쁜 거든 진짜로 영향이 와요. 메린 님이 위험했다는 얘기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안 그런 척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하필이면 그 직후의 임무에서 맞닥뜨린 게, 여자의 태반에서 태어나는 형태로 강림하려는 하급악마였다.
남몰래 기도를 올려서 침착을 되찾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자신이 동요한다는 걸 들켰을 것이다.
“그러다 기도가 듣지 않을 만큼 흔들릴지도 몰라요. 그날엔 제 발로 시술 받으러 가야 한다고요. 그러기 싫어요.”
“……그럼,”
위슨은 불평하듯이 말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거야?”
“네?”
“카엘 형이랑 메린 누나는 영향을 주니까 만나서도, 소식을 들어도 안 된다며. 근데 나랑은 지금 같이 시간 보내고 있잖아. 뭘 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건 아무 영향도 안 가니까 그런 거 아냐.”
손에 쥔 독주 병을 내려다보는 그의 옆얼굴에선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약간 떨구어서, 코트 옷깃에 가려진 탓이다.
“영향……”
그 말을 되뇌며 위슨을 보는 로나의 표정은 조금 찡그려져 있었다.
어째서 그가 갑자기 투정하듯이 쭉 말을 쏟아낸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있는 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다지 없네요.”
“………”
“위슨 씨를 만나서 놀라고, 예전 일이 떠올라서 조금 웃음이 나오고. 그뿐이에요.”
“…………”
독주 병을 쥔 그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