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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의 경호관-81화 (81/94)

81화. 씨암탉 대신 삼계탕2016.10.11.

이날 오후, 민준은 본가에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집에서 식구끼리 점심을 먹자고 했기 때문에 일정을 마치고 서둘러 온 것이었다. 아버지는 조금 늦게 도착할 예정이었다.

“만나는 여자가 있다던데 그게 사실이니?”

“네, 있습니다.”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던 민준은 어머니의 질문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잠시 내려놓았다.

당황하실까 봐 식사를 마치고 차분하게 말씀드리려 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께 들어서 이미 알고 계신 모양이었다.

“네 아버지도 본 적이 있다던데 엄마한테는 왜 얘기를 안 해준 거야?”

“일부러 보신 건 아니고 어쩌다 보시게 된 거예요.”

“혹시…… 너랑 같은 일을 하는 아가씨니?”

순간 그녀의 얼굴에 근심이 깃들었다.

그는 어머니가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더 걱정하실 것 같았기에, 민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실 범주 내에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니에요.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그래? 너랑 같은 일 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녀가 활짝 웃으며 반색을 했다.

누가 그녀에게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민준뿐 아니라 그의 짝이 될지도 모르는 아가씨마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녀는 밤에 다리를 뻗고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디서 만났는데?”

서연이 음식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물었다.

오빠는 분명 최근에 만난 게 틀림없을 테니 언제 만난 거냐고 물을 필요까지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냥. 일하다가.”

“예뻐?”

“응.”

“나보다 더?”

“응.”

그의 대답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서연은 전혀 섭섭해 하지 않고 오히려 눈을 반짝거리며 그에게 몸을 바짝 붙였다.

“그래서, 오빠는 지금 당장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응. 하려고. 저 그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

갑자기 민준의 폭탄선언을 들은 서연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아는 오빠는 저런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오빠는 조금 전 진심으로 결혼하겠다는 말을 한 거였다.

민준의 진지한 발언에 놀란 건 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해서 그저 몇 가지 가볍게 물어보려고만 했는데, 이 자리에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말까지 듣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말없이 민준을 응시했다. 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잘못 키운 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 아가씨인데? 그 아가씨 집에서도 널 알고 계시니?”

“좋은 사람이에요. 그 친구 부모님께는 아직 말씀을 못 드렸지만, 조만간 찾아뵐 생각은 하고 있어요.”

“그 아가씨는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어?”

그녀가 슬쩍 서연의 눈치를 살피더니 민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알고 있어요.”

“그래도 괜찮대?”

“네, 괜찮대요.”

민준의 대답에 그녀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렸다.

“아가씨는 몇 살이고 또 하는 일은 뭐야?”

“저보다 두 살 어리고 연구원이에요.”

“연구원? 무슨 연구원? 이왕이면 먹는 분야면 좋겠다.”

서연이 갑자기 두 사람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민준은 서연을 힐끗 쳐다본 뒤 다시 그의 어머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원자력연구원에서 일하는데 지금은 잠깐 휴직 중이에요.”

“에이, 먹는 게 아니었어.”

서연은 진심으로 실망한 얼굴이었다.

“아가씨는 언제 집에 데려올 거야? 네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니, 어떤 아가씨인지 엄만 너무 궁금해.”

“그 사람 부모님께서 허락하시면 그때 데려올게요.”

“허락을 안 하실까? 아가씨 집안이 어떤지는 몰라도 아버지 정도면 괜찮아, 민준아. 그래 참, 아가씨 부모님은 뭘 하는 분이셔?”

“아버지는 공무원이세요, 어머니는 가정주부시고요.”

민준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대통령은 정무직 공무원이고 영부인은 봉사 외에 별다른 활동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생각하는 공무원의 범위에 물론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아가씨 이름은? 내가 그 아가씨를 뭐라고 불러야 하지?”

“강조국이에요.”

“그 언니 이름이 강조국이야? 이름 되게 특이하다. 근데 또 강 씨…… 아, 미안.”

무심코 대꾸하던 서연이 당황해 얼른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녀는 오빠가 예전에 만났던 강설이라는 언니가 떠올라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다.

“괜찮아.”

서연 자신에게는 다행히도, 민준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민준아.”

“네.”

“지금 행복한 거지?”

“네, 어머니.”

“그럼 엄마는 그걸로 됐어, 이제 더 이상 묻지 않을게. 밥 먹자.”

그녀는 흐뭇한 얼굴로 젓가락을 손에 쥐었다.

어린 꼬마였던 민준이 벌써 이렇게 자라 일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난 아직 궁금한 게 많은데.”

“넌 그 사람한테 연락이나 하고.”

“그 사람이라니, 누굴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니야, 오빠! 신경 쓰지 마.”

“있어. 서연이가 좋아하는 사람.”

‘이 씨.’

서연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그녀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던졌다.

아무리 모녀간이라고 해도 엄연히 사생활인데 오빠한테 저렇게 날름 얘기하면 어떻게 하냔 말이다.

“뭐 하는 사람인데?”

전세가 역전되었다. 민준이 흥미로운 얼굴로 그녀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신경 안 써도 된다니까?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닌 사람이야.”

“아직 혼자 좋아하는 거야? 싫다는 사람 쫓아다니면 그거 범죄야, 김서연.”

“쫓아다닌 적 없거든? 지금 그 사람이 해외 출장 중이라서 연락이 안 될 뿐이야.”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이야?”

“엄마, 나 갈비찜 더 먹을래.”

서연이 말을 돌리며 어머니에게 바닥을 드러낸 둥근 접시를 내밀었다.

오빠와 더 말을 하다가는 건우의 이름이 입에서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이쯤에서 대화를 끝내야 했다.

그녀는 두 사람이 과거에 한 여자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는 걸 알고 있기에, 오빠가 건우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불을 보듯 훤했다.

“말 돌리는 걸 보니 내가 알면 안 되는 게 있나 보군.”

“…….”

“밥 먹고 오빠랑 얘기 좀 하자.”

“오빤 안 그렇게 생겨 가지고 은근히 잔소리쟁이야. 내가 별거 아니라는데도 왜 그렇게 신경 쓰는 거야?”

서연이 못마땅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그녀는 오빠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게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건우의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면 어떡하나 싶어 내심 걱정이 되었다.

“동생이니까 그렇지, 남이면 내가 뭐하러 신경을 써.”

“치이. 누가 뭐래?”

“둘 다 이제 얘기 끝났으면 마저 식사할까? 그리고 서연이 넌 오빠한테 그만 까불어.”

어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비찜이 수북이 쌓인 그릇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오빤 갈비찜 손대지 마, 내가 다 먹을 거야.”

“그래, 너 다 먹어라.”

서연이 그를 경계하듯 그릇을 두 팔로 끌어안자 민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나 그에게 양보하던 서연이 민준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서연의 그런 모습이 싫은 게 아니라 오히려 좋았다.

“쟨 누굴 닮아 저러는지, 쯧.”

“그러게요.”

민준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내린 후 한결 편해진 복장으로 식사를 이어갔다.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설이 있으니 이제 다른 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지금 충분히 행복했다.

**

다음 날 늦은 아침, 민준은 평창동 설의 집을 찾았다.

설은 휴직 상태이고 그도 공식적으로는 직무 정지 상태이니 두 사람은 아주 여유로운 휴가를 보낼 수가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직무정지를 풀어 달라고 건의할 법도 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민준은 설과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런 기회를 제 발로 차버릴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경우 말로만 직무 정지 상태일 뿐 이번처럼 위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 차출될지 모르는 것이니, 그녀와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했다.

평창동 집이 가까워질수록 민준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 까만 양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주변을 살피며 서 있었다.

민준의 자동차가 설의 집 근처에 천천히 다가가자 남자 한 명이 손을 뻗으며 그의 차를 제지했다.

민준이 자동차 창문을 내리자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몸을 숙이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십니까?”

“김민준이라고 합니다. 강조국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설의 집에 중요한 사람이 와 있는 게 분명했다.

그 중요한 손님이란 아마 대통령이거나 영부인, 아니면 둘 다일 터였다.

남자는 곧장 누군가에게 보고를 했고 잠시 후 민준의 자동차 앞길을 터주었다.

그는 자동차를 대문 가까이 주차한 뒤 차에서 내려 설의 대문 초인종을 꾹 눌렀다.

그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민준은 무심한 얼굴로 서서 대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자 민준은 기다렸다는 듯 안으로 발을 성큼 내디뎠다.

그리고 정원을 가로질러 뛰어오는 설을 향해 양팔을 벌리며 그제야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설은 자석처럼 그의 품 안에 쏙 들어와 안겼다.

“추운데 이렇게 입고 나오면 어떡해.”

그녀는 얇은 실내복 차림이었다. 민준은 찬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코트 자락으로 설의 등을 꽁꽁 감쌌다.

어제 설을 보았는데도 그는 밤과 아침 사이 그녀가 보고 싶었고 또 그리웠다.

설이 그의 가까이 있어도 어찌 된 일인지 그녀에 대한 그리움의 크기는 줄어들질 않았다.

“안에 엄마 와 계세요.”

“어머니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문 밖 까만 양복을 입은 남자들의 정체는 영부인의 경호관들이었다.

“내가 어제 전화로 당신하고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렸거든요. 그랬더니 아침 일찍 집으로 오셨어요.”

“그랬어?”

두 사람이 결혼을 하려면 우선 양가 어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게 순서였다.

그는 어제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으니 이제 설의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게 맞았다.

갑자기 긴장한 탓인지 설의 등을 코트로 감싼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당신 얼굴 지금 되게 어색해요.”

“……내가 뭘.”

민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가 저번에 영부인을 만났을 때와는 또 달랐다.

설과 함께 살기 위해서 차곡차곡 클리어해야 하는 단계들이 있다면 이건 시작부터 최고 레벨에 도전하는 셈이었다.

“엄마를 만나기 전에 미리 말해둘 게 있어요. 첫째, 난 봄이 오기 전에 결혼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둘째, 당신만 괜찮다면 난 결혼해서도 계속 이 집에서 살고 싶어요. 그리고 셋째, 만약 아빠가 허락을 안 해주신다고 해도 난 당신과 결혼할 거예요.”

“나한테 미리 해둘 얘기는 그게 전부야?”

설이 굳게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설이 꺼낸 결혼 얘기와 관련해 아빠는 엄마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설에게 그녀가 아빠한테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이라는 걸 알아달라고 말했지만,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인 건 민준도 마찬가지였다.

김 국장이 민준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그녀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를 생각하자 설은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김 국장은 설이 하는 일을 모두 알고 있었으며 그녀가 Pakin 연구동에서 의문의 남자친구와 애정 행각을 벌였다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 그게 거짓말이었다고 말을 할 수도 없으니,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다.

“나 어떡해요!”

“또 뭐가 남았어?”

“국장님이 내가 대전에서 다른 남자랑 밤에 연애했다고 알고 계시잖아요.”

“뭘 어떻게 해? 그 남자랑은 헤어졌다고 말해야지.”

“뭐라고요?”

설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민준은 울상을 짓고 있는 설을 보며 더 놀리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이쯤에서 그녀의 걱정거리를 덜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사실이 아니라는 거 알고 계셔.”

“정말요? 어떻게요?”

“내가 당신이 다른 남자랑 연애하도록 놔뒀을 리가 없잖아. 처음부터 믿지 않으셨어.”

“나 진짜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기다리시겠다. 들어가자.”

민준은 설과 함께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택 출입문 앞에 서 있던 구면의 경호관과 눈이 마주치자 민준은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예를 갖추어 민준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민준은 새삼스럽게 왜 저러나 의아해하며 그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와요. 밖이 많이 춥죠?”

영부인은 민준을 보자 빙긋 웃으며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번에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아닙니다.”

“차는 뭘로 하겠어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그녀는 가사 도우미를 불러 차를 내어오라 이른 뒤,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설과 민준을 잠시 바라보았다.

설이 결혼을 하겠다고 했으니 이건 해야 하는 결혼이었다.

그녀와 남편이 반대를 한다고 해도 설은 제 뜻을 굽히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는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할 생각 같은 건 없었다.

민준이 좀 더 안전한 일을 하는 남자였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직업을 가졌기에 설을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녀는 마음속에 작게 남아 있던 아쉬움마저 깨끗이 지울 수 있었다.

게다가 그의 친부는 그녀의 아버지인 이인호 박사를 지키려다 사망한 요원이었다.

그녀는 민준에게 고맙다는 말과 딸을 잘 부탁한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은 할 수 없었고, 또 하고 싶지도 않았다.

“좀 편한 팀으로 부서를 옮기는 건 어때요?”

“무얼 염려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걱정 끼쳐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그냥 한번 물어본 말이었는데 그의 대답은 역시 그녀가 예상했던 거였다.

“부모님께선 우리 딸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어머니께서는 자세히 모르시지만, 아버지께선 알고 계십니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조국 아버지에게는 아직 얘기하지 못했어요. 오늘 들어가면 찬찬히 얘기를 나눠볼 생각이에요.”

그녀는 남편이 그 얘기를 듣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는 말 대신 민준에게 다른 핑계를 댔다.

별말이 없었다는 건 부정적인 의견으로 비춰질 수 있었기에, 어차피 두 사람을 결혼시킬 마음을 먹은 이상 괜히 민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녀는 민준 옆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고 있는 설을 바라보았다.

설은 그녀와 민준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즐거운 듯 흘끔흘끔 민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딸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녀의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은 내가 음식 준비를 할 테니 점심 먹고 가요. 삼계탕 할 건데 닭 요리 괜찮죠?”

“네, 감사합니다.”

“두 사람 얘기 나누고 있어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을 향했다.

민준은 몰랐지만, 그녀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수행원을 통해 미리 준비해 둬야 할 재료 목록들을 일러두었다.

중요한 손님이 올 예정이기 때문에 그녀가 직접 요리를 할 거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설의 집에서 일하는 도우미들과 경호관들은 민준을 보자마자 바로 그가 영부인이 말한 중요한 손님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혹시 내가 삼계탕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어?”

“아니요? 왜요, 삼계탕 싫어해요?”

민준이 설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소곤거리자 설도 그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아니, 좋아해.”

“엄마가 정말 당신을 좋아하나 봐요. 엄마가 주방에 들어간 거 나도 오랜만에 봐요.”

이때부터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한 민준의 목덜미는 두어 시간이 지나 그가 식탁에 앉았을 때 그 붉은 기운이 절정을 이루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큼직한 뚝배기 안에는 겉으로 보기에도 힘이 세 보이는 닭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닭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에는 인삼, 대추, 은행에다가 바다에서 갓 잡아온 것처럼 탄력 있는 낙지와 큼지막한 전복 여러 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정성을 많이 들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민준은 붉은 얼굴로 수저를 손에 쥐었다.

“많이 먹어요, 힘든 일 하는데 체력이 좋아야죠. 혹시 장어도 좋아해요?”

“네, 좋아합니다.”

“기억해 둘게요, 어서 먹어요.”

그녀는 흐뭇한 얼굴로 민준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사위가 생긴다면 꼭 해주고 싶었던 일이었다.

몸에 좋은 음식을 그녀가 직접 만들어주고, 잘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이렇게 뿌듯할 줄은 몰랐다.

“맛있습니다.”

국물을 살짝 떠 입에 넣은 민준이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삼계탕뿐 아니라 다른 음식들도 정갈하고 깔끔한 게, 영부인의 요리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상차림은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해주는 음식과 많이 닮아 있었다. 두 사람의 음식에는 민준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정말 맛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민준은 음식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그의 진심 어린 칭찬과 감사에 기분이 좋아진 영부인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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