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애의 경호관-93화 (에필로그 3) (93/94)

[에필로그 3] 아빠는 천리안2016.11.22.

“건우 씨, 괜찮아요? 아무리 내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해도 그렇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어떡해요? 하마터면 진짜로 우리 아빠한테 두들겨 맞을 뻔했잖아요!”

“그러는 서연 씨야말로 거기서 나를 가로막으면 어떻게 해요? 심지어 홑몸도 아닌 사람이 말이에요.”

건우의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울상을 짓고 있던 서연은 그의 장난기 섞인 말에 양 볼에 바람을 집어넣으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조금 전 그녀는 아빠의 무자비한 구타로부터 간신히 건우를 구해냈다. 서연이 그의 앞을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건우는 아마 병원에 실려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든 그는 이제 그녀의 거짓말에 동참한 셈이 되었다. 그리고 건우까지 거짓말에 합세했으니 서연이 이제 와서 아빠한테 아까 말은 거짓말이었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아빠가 결혼을 허락할 때까지 당분간 진실을 숨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요?”

“괜히 내가 거짓말해 가지고 건우 씨만 나쁜 사람 만들었잖아요.”

“그러게 처음부터 상대방한테 마지막 카드를 내보이면 어떻게 해요?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놓았어야죠.”

그는 위급한 상황을 겪은 사람답지 않게, 서연에게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걱정했던 일이 막상 벌어지자 왠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김 국장은 건우에게 앞으로 자기 눈에 띄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김 국장을 자주 찾아갈 생각이었다.

부모 허락도 받지 않고 귀한 딸을 임신시킨 파렴치한 놈까지 되었으니 여기에서 더 나빠질 이미지도 없었다.

“건우 씨. 건우 씨한테 혹시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어요?”

그녀는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솔직히 서연은 아빠가 건우와의 결혼을 반대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녀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아빠는 딸을 가진 아빠로서 그냥 괜히 해보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반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연은 아까 그런 무리수까지 둘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이 세상에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서연 씨.”

“그럼 범위를 좁혀줄게요. 혹시 사기, 도박, 범죄 이렇게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건우 씨 양심에 걸리는 게 있어요?”

“아니요, 그런 건 없어요.”

건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왜 아빠는 건우 씨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거죠? 우리 아빠는 법이나 규율에 엄격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것 빼고는 웬만한 건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아마 내가 서연 씨한테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아빠 말마따나 건우 씨 정도면 나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그녀는 아빠가 그와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라면 오히려 좋아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었고, 왜 저렇게까지 건우를 반대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까 그런 거짓말을 한 거예요? 어차피 나중에 다 알게 되실 텐데도?”

“아빠한테 들키기 전에 결혼하면 나중엔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죠, 뭐.”

“그럼 부모님께서 많이 속상해하실 수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괜찮아요, 난 우리 아빠한테 그렇게 귀한 딸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난 솔직히 아빠가 저렇게까지 건우 씨를 반대하는 게 이해가 안 가요.”

서연은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결혼까지 결심한 마당에 새삼 그에게 숨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서연 씨는 국장님한테 귀한 딸이 맞아요.”

“그렇게 위로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렇다고 내가 뭐 막 구박받고 자랐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집 우선순위에서 좀 밀려있다는 얘기니까요.”

“서연 씨 말대로 국장님은 법이나 규율에 스스로 엄격한 분이 맞아요. 하지만 그런 국장님이 서연 씨 때문에 그 원칙을 어긴 적이 있어요.”

건우는 예전에 박 단장에게서 김 국장과 그녀와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용히 알아보았다.

그러던 중 그는 서연이 태어나던 날 공교롭게도 민준의 생부가 사망을 했고 그 일에 김 국장이 관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평생 단 한 번 원칙을 어긴 날이 바로 자신의 딸, 서연이 태어나던 날이었던 거였다.

“건우 씨가 잘못 안 거예요, 우리 아빠가 나 때문에 그럴 리가 없어요.”

“서연 씨가 아까 물었듯이 사실 나한텐 몇 가지 비밀이 있는데 이것도 그 비밀 중 하나예요. 자세히 말해줄 수 없지만, 국장님은 서연 씨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신 건 확실해요. 봐요, 나 정도 되는 사람도 지금 성에 안 찬다고 반대하고 계시잖아요.”

“그건 건우 씨한테 내가 너무 꿀린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요.”

“대통령 딸을 며느리로 삼은 분이 과연 그렇게 생각하셨을까요?”

“하긴, 새언니에 비하면 우리 오빠가 많이 부족하긴 하죠.”

그녀는 건우의 말을 듣고 보니 왠지 수긍이 갔다.

가진 건 얼굴밖에 없는 오빠도 새언니와 결혼을 했고, 아빠가 만약 집안 차이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는 거라면 그 문제는 오빠 쪽이 훨씬 더 심각했을 테니 말이다.

“그럼 도대체 아빤 왜 저러시는 건데요?”

“내가 아까 말했잖아요, 서연 씨가 나한테 많이 아깝다고 생각하시는 거라니까요.”

“치이, 말도 안 돼.”

서연은 토라진 얼굴로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아빠가 정말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왠지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나저나 큰일 났네요. 국장님이 거짓말을 눈치채시기 전에 서연 씨와 빨리 결혼을 해야 할 텐데 말이에요. 그렇다고…… 거짓말을 진짜로 만들 수도 없고.”

“무슨 말인지 알아요. 건우 씨는…… 약간.”

“약간?”

“……약간 플라토닉한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잖아요.”

“…….”

서연은 풀이 죽은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

두 사람이 만난 지 벌써 여러 계절이 지났는데도 건우는 그녀에게 15세 관람가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척 친구들에게 슬쩍 얘기를 흘리며 의견을 물어보니, 친구들은 아마 그가 서연을 별로 사랑하지 않거나 그도 아니면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건우가 자신을 사랑하는 건 확실하니 아무래도 문제가 되는 건 건강 쪽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도 서연은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플라토닉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미화시켜 말해줬는데, 건우는 그녀의 배려가 고맙지도 않은지 뭐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뭘 추구해요?”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난 건우 씨가 아프지만 않으면 정말 괜찮으니까요.”

그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서연을 바라보았다.

“나는 건강해요, 서연 씨.”

“알았어요, 미안해요. 그렇지만 난 이제 더 이상 건우 씨가 그 문제로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난 지금의 건우 씨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니까요.”

그녀는 건우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그동안 서연에게 청혼하지 않고 망설였던 이유와 그녀의 아빠가 건우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어쩌면 정말 그의 건강 때문인지도 몰랐다.

서연은 남녀 사이에 꼭 육체적인 사랑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애써 울적한 마음을 달랬다. 그녀는 건우와 함께라면 플라토닉한 사랑만 하면서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마, 서연 씨는 진심으로 내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그는 할 말을 잃고 서연을 멍하니 바라보다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에?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건우는 너무 억울하고 서러웠다. 그가 찬물 샤워로 힘들게 버텨온 시간이 얼마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해맑은 얼굴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진짜요? 진짜?”

하지만 그녀가 한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서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서연 씨가 직접 확인해 볼래요?”

“확인……이요? 어떻게요?”

“서연 씨만 괜찮다면 난 지금도 확인시켜 줄 수 있어요.”

서연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두 손으로 얼른 입을 가렸다.

‘확인이라니, 확인이라니!’

건우의 표정을 보니 빈말로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는 정색하는 얼굴로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건우는 서연이 고개만 끄덕이면 당장이라도 가까운 호텔로 차를 몰 기세였다.

‘어떡하지? 고개를 끄덕일까, 말까? 하지만 그럼 내가 그걸 너무 궁금해 하는 것 같잖아. 그렇지만 정말 궁금한데 어떡하지?’

“나한테…… 꼭 확인시켜 주고 싶어요?”

“옛날부터 몇 번이나 확인시켜 주고 싶었어요.”

그녀에게 그의 건강을 얼마나 증명하고 싶었는지, 건우의 호흡이 평소답지 않게 흐트러져 있었기에 서연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침착해.’

그의 눈빛을 보니 건우가 건강하다는 건 진심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눈대중만으로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건우 씨가 꼭 확인을 시켜주고 싶다면 어쩔 수 없죠.”

이윽고 마음을 굳힌 그녀가 안전벨트를 매며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은 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아빠한테 한 거짓말을 수정해야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건 꼭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건우의 건강을 확인하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고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서연은 도중에 몇 번이나 확인을 멈추려고 했지만, 그는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 달라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건우는 종종 서연에게 그의 건강 상태를 점검받았고, 김 국장의 구박과 외면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그녀의 집 초인종을 눌러댔다.

김 국장은 생각할수록 건우가 괘씸했으나 그렇다고 두 사람 사이에 이미 아이까지 있다는데도 무턱대고 반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건강한 아이를 낳은 건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고 1년이 지난 후였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서연이 임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 국장은 무척 분노했지만, 건우가 그의 집에 처음 인사 왔을 때와는 다르게 그에게 골프채를 휘두르진 않았다.

**

“이 녀석이 엄마 배 속에 무려 2년을 있다 나온 내 조카군. 보통 10개월이면 태어나는데 애가 아주 스케일이 남다르네, 나중에 아주 큰 인물이 되겠어.”

민준은 픽 웃으며,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조카를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씨이, 우리 아기한테 그렇게 얘기하지 마!”

“그러게 누가 어머니 아버지한테 그런 거짓말을 하래?”

“그래도 난 후회하지 않아! 그치, 건우 씨?”

“서연 씨가 지금까지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이에요. 덕분에 이렇게 예쁜 아기가 태어났잖아요.”

아기 침대에 두 팔을 얹고 있던 건우는 아기의 조그만 주먹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만지며 웃었다.

그는 아기를 팔에 안고 싶었지만 그러다 떨어뜨릴까 봐 겁이 나서, 아기의 손만 살살 만지고 있었다.

건우는 조금 있다 간호사가 병실로 오면 전문가인 그녀의 입회하에 다시 한 번 아기를 안아볼 생각이었다.

“우리 아기 진짜 예쁘죠? 주치의가 이렇게 예쁜 남자아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뿌듯한 얼굴을 한 그가 이번엔 아기의 발을 만졌다.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은 건우를 닮았고 하얀 피부에 짙은 속눈썹은 서연을 꼭 빼닮았다.

그래서 그는 주치의의 그 말이, 자신이 Pakin의 오너라서 한 말은 아닐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주치의가 아마 우리 민족이가 태어나는 걸 못 봐서 그런 말을 한 걸 겁니다.”

“그럴 리가요, 이렇게 예쁜 아기는 저도 처음 보는데요.”

건우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아기의 뺨을 엄지로 천천히 쓸었다.

그는 오늘따라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 몇 번이나 울컥했지만, 그때마다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면 가슴의 통증이 수그러들었다.

아기는 그 존재만으로도 그의 상처를 치유시켜 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축하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준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건우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민족이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대통령은 퇴임을 했고, 김 국장은 차장을 거쳐 원장이 되었다.

민준이 바보를 넘어 중독자가 될 만큼 아름다운 휘가 태어났고 어느덧 민족은 유치원생이 되었다.

민족에게는 요즘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김민족, 서점에서 뭐하니?”

그건 바로 아빠에 대한 것이었다.

아빠는 오늘도 어김없이, 밖에 나와 있는 민족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삼촌이랑 책 읽고 있어요, 아빠.”

“거기 간 지 한 시간이 넘었는데 나머지 독서는 집에 가서 하는 게 어떨까? 집에 너무 늦게 돌아가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걱정하실 텐데. 삼촌도 힘드실 테고 말이야.”

민족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변에 아빠가 없음을 확인한 그는 핸드폰에 대고 크게 말했다.

“아빠, 지금 망원경으로 민족일 보고 있어요?”

“당연하지. 민족이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아빠는 다 보인다고 했잖아.”

민족이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아빠는 그에게 입학 선물이라면서 손목시계를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민족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아빠는 그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이렇게 귀신같이 알아맞힐 수 있게 된 거였다.

아무래도 손목시계에 비밀이 있는 것 같아, 민족은 일부러 집에 시계를 두고 나온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민족이 집과 유치원을 벗어나게 되면 어김없이 아빠한테서 전화가 걸려왔고, 아빠는 그가 손목시계를 차고 있지 않아도 민족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아빠, 그럼 거기에서 휘도 보여요?”

“그럼.”

“휘는 지금 뭘 하고 있어요?”

“휘는…….”

민족이 침을 꼴깍 삼켰다.

엄마는 오늘 휘를 데리고 갑자기 고모네 집에 갔다. 엄마는 민족에게 함께 가자고 했지만 그는 오늘 서점에서 꼭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엄마와 같이 가지 않았다.

아빠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빠의 망원경이 진짜인지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휘는 여전히 예쁘네. 엄마랑 정말 똑같이 생겼어, 그렇지?”

“에이, 아빠!”

민족이 발을 구르며 울상을 지었다. 아빠가 숨죽여 웃는 소리가 들렸다.

“민족아, 이따 아빠랑 같이 마당에서 축구할까?”

“응? 아빠 오늘 일찍 와요?”

“고모네 집에 들러서 엄마랑 휘 데리고 갈게. 저녁 먹기 전에 도착할 테니까 할머니 집에서 놀고 있어, 알았지?”

“……진짜네.”

“응? 뭐가 진짜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쯤 되면 민족은 아빠의 망원경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서점에서 아무리 책을 찾아봐도 아빠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책은 없었던 것이다.

민족은 시무룩한 얼굴로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그 목걸이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목에 걸고 있던 거였다. 워낙 오랫동안 목에 걸고 있어서 그런지 민족은 목걸이를 만지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삼촌, 이제 집에 가요.”

민족은 옆에 서 있던 삼촌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럴까? 민족이 책 다 읽었어?”

“네, 다 읽었어요.”

민족은 삼촌의 손을 잡고 주차장을 향해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목걸이…… 목걸이?’

민족은 가던 걸음을 우뚝 멈췄다.

“민족아, 왜 그래?”

‘그러고 보니 휘도 나랑 똑같은 목걸이를 걸고 있잖아?’

휘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아빠는 휘의 목에 그의 것과 똑같이 생긴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아빠는 진지한 얼굴로 민족에게 목걸이는 사랑의 징표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아빠에게 눈을 흘기며 웃었다.

‘아빠는 왜 아빠 시계와 똑같은 손목시계를 나한테 선물해 준 걸까?’

경호관의 차에 탄 민족은 손목시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민족이 시계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리자 눈앞에 갑자기 지도가 나타났다. 빨간 점 하나가 지도 한 가운데서 깜빡거리는 게 보였다.

민족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민족인 오빠니까 앞으로 동생을 지켜주는 거야, 알았지?’

문득 아빠가 그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며 했던 말이 생각난 민족은 침을 꼴깍 삼키며 화면을 손가락으로 확대해 보았다.

그는 지도를 보고, 빨간 점이 보이는 곳이 고모네 동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휘다!’

빨간 점이 휘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는 걸 알아낸 민족은 신이 나서 발을 쿵쿵 굴렀다. 손목시계에 숨겨져 있던 비밀은 바로 휘와 관련이 있는 거였다.

“민족아,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있는 거야?”

백미러로 민족을 힐끗 쳐다본 경호관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삼촌!”

민족은 차창을 내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