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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3화 (3/124)

?제3화. 1장. 하필 오늘이라니 (2)

지금 이 상황이 내게 처한 함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알아내야만 그다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역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방을 나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방금 무슨 소리예요!?”

에밀이었다. 그녀는 황궁에서부터 함께 한 나의 유모였다.

“…에밀?”

에밀이 여기 어떻게 있는 거지? 그녀도 분명 죽었는데.

반역이 일어나고, 그 소식을 한발 늦게 알게 된 내가 황궁으로 달려 나가려고 할 때, 그녀는 나를 지키려다가 이름도 알지 못하는 기사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루이스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녀의 죽음을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난 것처럼 에밀도 다시 살아 돌아왔나 보다. 다행이다.

에밀을 향해 미소를 지으려고 할 때였다. 그녀가 번쩍, 하고 눈빛을 빛내더니 빛의 속도로 내게 달려왔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며 물었다.

“아기씨. 얼굴에 그 상처는 뭐에요!?”

그녀의 손이 내 얼굴 근처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아…이거…….”

좀 전에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뺨을 때린 게 자국이 남은 것 같았다. 적당히 얼버무리려 했지만, 이미 에밀의 분노는 최고조에 달했다.

“감히 누가…!”

“아냐. 이건 내가…….”

안 되겠다. 괜히 애먼 사람 잡기 전에 사정이 있어서 내가 한 거라고 얘기를…….

“네? 그게 무슨…아기씨가 왜…설마.”

하려고 했는데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이미 에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면서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물에 당황한 것은 바로 나였다. 아니 갑자기 왜 울어? 울더라도 설명할 기회는 주고 울어야지. 왜 혼자 멋대로 추측해서 울어. 울기는.

나는 당황해서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에밀을 달래 보려고 했지만, 에밀의 눈물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첫날밤에 퇴짜 맞은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우리 불쌍한 아기씨”

‘아기씨’라니. 에밀의 눈에는 내가 아직도 어린애로 보이나 보다. 에밀이 결국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근데 잠깐……. ‘첫날밤에 퇴짜’라니?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얘기인데.

갑자기 머릿속의 기억이 거꾸로 감기기 시작했다.

‘이 말…들어 본 적 있는데. 언제였지.’

과거에도 에밀이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첫날밤이 지난 다음 날 아침, 그녀가 내게 한 말이었다.

“…말도 안 돼.”

“당연하죠! 이게 어떻게 말이 될 수가 있냐고요!”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을 들은 에밀이 분노하며 맞장구쳤다.

아니, 내가 말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은 헤레이스가 첫날밤에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었다. 이 일은 무려 5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리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아기씨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개미 새끼인 줄 아는 황제께서도 하늘을 우러러보듯이 아끼는 분이…….”

“…….”

“왜 하필 그딴 놈하고 결혼하겠다고 하셨는지.”

에밀은 여전히 훌쩍이면서도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내게 들으라는 듯이 푸념을 했다.

‘근데 에밀, 그래도 그렇지. 아니. 오라버니가 날 아끼는 건 맞는데, 하늘을 우러러보듯이 아끼다니. 오라버니가 들으면 에밀을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데.’

에밀의 말은 과장을 넘어 왜곡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루이스의 난폭한 성격을 그대로 표현하고 헤레이스를 ‘그딴 놈’이라며 대놓고 욕했다.

하지만 에밀의 한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유모는 정말이지 속상해서 심장이 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좋은 혼처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타국의 왕도 있고 바다 건너에 황태자도 계시는데. 그런 분들을 두고 하필 골라도 저딴 놈을!”

에밀은 처음부터 헤레이스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에밀은 헤레이스가 나와의 결혼을 통해 자신의 이익만 쏙쏙 빨아 먹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나와 있을 때면 언제나 그를 ‘그놈’이라든지 ‘그 자식’이라고 부르면서 분노했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에밀은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만 했을 뿐이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지금 이 상태가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죽다 살아난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나는 죽은 그날로부터 5년 전으로 회귀한 것 같았다. 그 말은 곧 내게도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모두 맞는다면, 지금이 정확히 어떤 시기인지가 중요했다. 언제 어떤 상황으로 회귀했는지. 이미 예상되는 시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에밀. 오늘이 정확히 무슨 날이야.”

“무슨 날이긴요! 망할 헤레이스 공작 그놈과 결혼하고 맞는 첫날이죠!”

유모가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첫날부터 혼자 내팽개치다시피 한 자신의 주인을 보고 있으니 계속 화가 나는 것 같았다.

‘역시…….’

생각대로 그날이 맞았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었다. 내게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기회를 줬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왕 준 기회인데 결혼 전으로 보내 주지 않았을까.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도 원망스러웠다. 돌려보내 줄 거라면 심술 같은 거 부리지 말고 온전하게 결혼 전으로 보내 주시지. 왜 하필. 회귀를 해도…….

“어떻게 아기씨를 혼자 두고 그럴 수 있는지. 저는 아직도 분해서 이가 갈립니다…!”

에밀은 분노가 차 헤레이스를 열심히 물고 뜯으며 시원하게 욕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생각을 정리할 수 없었다.

일단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갑자기 너무 많은 변화를 겪었고, 너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에밀. 나 좀 혼자 쉬고 싶어.”

“알겠습니다. 문 앞에서 대기할 테니까 필요하시면 부르세요.”

에밀은 마지막까지 분노하면서 나갔다. 그러고 나서야 드디어 나는 혼자 있을 수 있었다.

하나씩 정리해 보자면, 지금은 헤레이스와 결혼을 하고 하루가 지난 시점이다. 과거에 겪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 지금도 펼쳐지고 있었다.

첫날밤은 내게 이미 5년이나 지난 일이었다. 나는 내 기억 속에는 5년 전이지만, 현실에서는 바로 전날 있었던 첫날밤을 떠올렸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방에서 그를 기다리는 동안, 앞으로의 신혼 생활에 대한 부푼 기대감으로 두근거려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 하지만 신방에 들어온 헤레이스는 나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혼자 자리를 잡고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셨다. 그러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오로지 내 의지만으로 성사시킨 결혼이었다. 그는 원하지 않지만, 황제의 힘에 눌려서 한 결혼이었다. 바람둥이로 유명한 그가 폭군인 황제가 끔찍이 아낀다는 황녀에게 팔리듯 결혼을 했으니 숨 막히는 것이 당연할 거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결혼을 강행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결혼을 하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를 배려하고 기다리면 그도 내 맘을 알아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결혼했다. 앞으로 평생 헤레이스와 함께할 것이다. 그러니 시간은 내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날부터 그를 벼랑 끝으로 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위로를 해 주고 싶었다.

‘제가 공작님께 해 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답니다.’

‘…….’

나와 결혼해 준 것을 보답하고 싶었다. 나와 결혼해서 그에게도 좋은 일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가 나와의 결혼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헤레이스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점점 더 초조해졌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얘기하세요.’

‘…….’

그 결과, 어쩌면 내가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망설인 끝에 용기를 내고 꺼냈던 한마디.

‘그러니…꼭 저한테 돌아오셔야 합니다.’

‘…….’

헤레이스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했다. 분명 그때의 나는 간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돌아올 곳이 저였으면 해요.’

‘예. 그러죠. 그럼 지금 나가서 아침에 돌아오기만 하면 되겠지요.’

헤레이스는 매정하게 그 말을 남기고 정말로 나가 버렸다.

‘피곤할 텐데 푹 쉬세요.’

그의 마지막 말만큼은 다정했다. 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가슴 위까지 끌어올렸다. 그때 잠시간 마주쳤던 눈빛이 다정해서 그가 마음을 바꾸고 내 옆자리에 함께 누울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었다.

하지만 헤레이스는 그대로 신방을 나서서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후 나는 5년 내내 매일 밤 나에게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눈물로 지새워야만 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듯 헤레이스는 하루에 한 번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다음 날 아침에 돌아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다음 날 저녁에 잠깐 얼굴만 비춘 채 다시 나가 버렸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그를 기다렸다.

우리가 여전히 부부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아 안심할 수 있는 만남은 그가 ‘돌아왔습니다.’라며 영혼 없는 인사를 내게 할 때뿐이었다.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것을 알면서도 언젠가 돌아와 나를 돌아봐 줄 그를 기대하면서,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헤레이스 공작가는 헤레이스의 부친의 사업 실패와 모친의 사치로 인해 가세가 기울고 있었다. 나는 헤레이스와 결혼하면서 그 빚을 탕감해 주고, 황실 지원 사업을 헤레이스 공작에게 연결해 주며 집안을 일으켰다.

헤레이스는 그 힘으로 황제이자 내 오라버니인 루이스를 죽였다.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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