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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2화 (2/124)

?제2화. 프롤로그. 나는 오늘 죽는다 (2)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구나.’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멍청한 것이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나는 공작가로 끌려온 뒤 지하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됐다. 지금 제국민들의 모든 관심은 공작가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반역 공신 헤레이스가, 황녀였던 공작 부인에게 어떤 최후를 가져다줄 지 추측하면서.

내 상태를 확인하러 온 하녀들이 계단 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들은 나의 최후를 두고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그럼 이제 곧 죽는 건가.”

“공작님께서 살려 주지 않을까. 그래도 오 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흥. 모르는 소리. 하루빨리 공작 부인을 죽이고 따로 마음에 둔 여자를 들이려고 혈안이라던데.”

“맞아. 그리고 같이 살기는. 대문만 같이 썼지, 먹고 자고 전부 다 따로 살았는데.”

“세상에. 황녀께서 이리 죽을 줄이야. 쯧쯧.”

그들의 대화 속에는 동정으로 위장한 비아냥거림과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하녀들의 말만으로도 내 앞에 펼쳐질 운명이 보였다. 이미 그들에겐 이미 내가 몰락한 황제 루이스와 같은 운명으로 보이는구나. 어쩌면…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설픈 동정, 주책없는 미련은 내게 사치였다.

‘처음부터 잘못된 관계였을지도…….’

헤레이스는 처음부터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고, 나는 그의 약점을 이용했다.

나와 헤레이스가 결혼하기 전, 공작가에는 엄청난 금액의 빚이 있었다. 껍데기만 공작가일 뿐,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재정적인 위기였다. 그것을 해결해 주는 대가로 나는 그와 결혼했다.

하지만 강요에 의한 결혼 때문이었는지, 그는 결혼 후에도 내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명목상 부부일 뿐 남보다 더 먼 사이가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모든 것이 끝나서야 나는 후회했다. 어쩌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해져 버린 것일까.

어차피 나는 오늘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비웃음을 사기 전에. 그들의 즐거움이 되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1장. 하필 오늘이라니 (1)

기다림이 짧았는지 길었는지 알 수 없었다.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 감옥. 나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 무엇으로도 시간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헤레이스가 한 번 찾아오기는 했다.

“괜찮습니까.”

감옥에 갇혀 있는 나를 향해 헤레이스가 물었다. 그는 걱정하지도, 그렇다고 나를 향해 비아냥거리며 웃지도 않았다. 그는 무심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비참해진 나를 구경하는 것처럼.

“안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오긴 왔네요.”

나는 그의 물음에 대한 대답 대신 그를 기다리며 생각했던 말을 꺼냈다.

정말 기다렸다. 죽기 전에 마지막 순간, 그를 보고 싶었다.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 내 말에 헤레이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럴 리 없겠지만.

“내가 이제껏 당신을 위해 숨죽이고 산 건.”

지난날에 대한 회고. 내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그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멍청하게도 당신을 지나치게 사랑했기 때문이야.”

너무 지독해서 미련하게. 나는 그렇게 헤레이스를 사랑했다.

그가 잘나서도. 좋은 사람이어서도 아니었다. 이미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사랑에 빠져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게 독인 줄도 모르고.”

결국, 내 사랑은 맹독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제국의 황제인 나의 오라버니마저도 파멸에 이르게 할 만큼. 그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헤레이스를 감정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더 이상 그에게 사랑을 말하기도 원망을 하기에도 지쳤다. 그저 메마른 감정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 나였더라면, 이렇게 쉽게 당하지 않았을 거야.”

내가 사랑이라는 알량한 감정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그가 반역을 공모하고 있다는 사실도 미리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후회가 남는다면 단 하나,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이 나를 봐 줄 거라고 믿으려 한 것.”

지난 5년 동안의 결혼생활. 나는 아집에 가까운 믿음으로 버텨 왔다.

언젠가는 그도 나를 바라보리라. 나와 같은 마음은 아니어도 부부의 정을 나누면서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날이 오리라.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어리석은 믿음으로. 주위에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냉정한 말에도 인정하지 못하고 버텼었다.

“알량한 연심을 버리지 못하고 미련하게 군 것. 그게 후회되긴 하네.”

더 이상 미련 같은 것은 없었다. 그게 너무 늦어 버리기는 했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나는 헤레이스를 마음속으로 버렸다. 나는 헤레이스를 보며 마지막으로 입술 끝을 끌어올리며 웃었다.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내 웃음에 놀라기라도 한 것처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가 무슨 이유로 놀란 것인지는 상관없었다. 언제나 휘둘리기만 하던 내가 그를 마지막 순간에 작은 동요라도 남긴 것이니까.

그건 썩 나쁘지 않군.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지막 이 순간만큼은 당신의 칠흑 같은 검은 눈동자에 각인됐으면 좋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품 안에 있던 독약을 꺼내 그대로 마셨다. 그의 시선을 마주하면서, 그가 보는 앞에서 죽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이 통쾌해하든,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든.

“…윽….”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독약이라더니, 말 그대로 마시자마자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이 뜨거워졌다. 그러고는 눈이 점점 감기기 시작했다. 세상이 흐려지고 귀로 들려오는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눈이 감기기 직전, 헤레이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눈이 완전히 감겼다. 세상이 깜깜해졌다.

아아, 이대로 끝이로구나.

* * *

나는 죽었다.

분명 죽었는데…이상하다?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새벽을 알리는 여명이 떠오르면 저절로 잠에서 깨는 일상의 아침처럼 눈이 떠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눈을 뜨자 갑자기 들어오는 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동시에 온몸이 무겁고 피곤했다. 살아 있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각들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섣부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일단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보았다. 익숙한 천장과 샹들리에…벽에 장식된 익숙한 패턴까지 낯익다. 5년 동안 밤과 아침을 함께한 침대 기둥이 보였다. 그제야 지극히 익숙한 공간이 어디인지 깨달았다.

이곳은 공작가의 내 침실이었다.

‘내가 왜 방에 있는 거지?’

분명 그때 내 심장은 멈췄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이할 정도로 내가 심장이 멈추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몸을 살짝 일으키는데, 역시나 온몸이 무거웠다.

이게 무슨 일이지. 혹시나 싶어 내 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반역이 일어난 날, 루이스를 만나기 위해 황궁으로 향할 때 몸 곳곳에 상처가 생겼었다. 하지만 곧바로 공작가의 감옥에 갇혀 상처를 치료하지 못했었다. 그러니 내 몸에는 상처가 그대로 있거나 치료한 흔적이라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피곤할 뿐, 내 몸 어느 부위도 아프지는 않았다.

설마…꿈인가. 그렇다면 어느 쪽이 꿈이지. 반역이 일어난 것이 꿈인가.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이 꿈인 건가.

“…….”

이게 만약 꿈이라면 악몽이다.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악몽.

팔을 높이 들었다. 그러고는 온 힘으로 내 뺨을 세게 아주 세게! 내리쳤다.

“아앗…!!”

뺨이 얼얼했다.

‘아파…….’

꿈속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이렇게까지 아픈데…이게 꿈일 리는 없다.

그럼 나는 죽은 게 맞을 텐데…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근데 어째서 죽은 후에 보는 풍경이 이 방인 걸까. 이곳에서 좋았던 기억은 하나도 없는데. 아니, 그 전에 죽었는데도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갑자기 방금 전까지 얼떨떨했던 감각이 모두 깨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반대편 뺨을 좀 전보다 더 세게 힘껏 때렸다.

“아읏…!”

역시나 아프다. 너무 아프다. 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마 꿈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죽은 사람이 고통을 느낀다니…이상했다. 죽은 사람이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다니. 이것만으로도 완벽한 모순이니까.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건가.”

가장 있을 수 없는 가능성이지만, 지금 내 상황에 가장 알맞은 가능성 역시 이것뿐이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얼얼할 정도로 느껴지는 고통, 익숙한 공간. 꿈도 사후 세계도 아니라면,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아무래도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분명 죽었을 텐데….’

독이 내 몸속에 퍼지던 순간의 모든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 몸속의 모든 장기가 독에 삼켜져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감각들. 그것은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평화로웠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평안.

그런데 어째서 내가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 거지?

누가 나를 살려서 그것도 공작가의 방으로 데려오기라도 한 걸까. …역시 이것도 말이 안 됐다. 그럴 사람이 없으니까.

그럼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거지. 이대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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