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도 바쁜 황녀님-58화 (58/124)

?제58화. 8장. 소문 (4)

“?!!”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가 모르는 내 스캔들이라니. 그런데 나보다 더 흥분한 것은 헤레이스였다. 내가 물었다.

“누구랑…요…?”

도대체 상대가 누구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황당함을 넘어서 궁금하기까지 했다.

“룩센 황태자라는군.”

“아….”

하긴,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룩센 황태자밖에 없긴 했다. 그렇다고 룩센 황태자와 스캔들이 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물었다.

“대체 왜요?”

룩센 황태자가 황궁에 머문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연회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루이스가 슬쩍 입가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건 이제 알아봐야지.”

어쩐지 루이스는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입은 웃고 있어도 그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 소문을 믿는 사람이 있나요?”

“글쎄. 알 수 없지. 하지만 믿건 안 믿건 사람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내용이긴 하지.”

정황상 뜬금없는 소문이었다. 게다가 상대가 타국의 황태자라니. 쉽게 믿을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소문이기도 했다.

“아쉽지만 오늘은 공작가에는 못 갈 것 같군.”

루이스의 말과 동시에 마차가 멈췄다.

별것 아닌 소문일 수도 있다. 일종의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하지만 그러지 않을 가능성을 언제나 염두해야 한다.

소문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루이스는 황궁으로 돌아갈 생각인 것이다. 루이스가 헤레이스를 향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나는 여기서 돌아가지.”

“조심히 가세요.”

“그래, 저택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지.”

루이스가 마차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황궁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황궁 마차를 타고 먼저 떠났다.

“부인, 저희도 출발하죠.”

루이스가 떠난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본 곳에는 헤레이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택에 가는 동안 헤레이스가 말을 걸려고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헤레이스가 나를 불렀다.

“부인.”

나는 대답 대신 헤레이스를 바라보았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헤레이스가 가장 신경 쓰는 것 같은데. 루이스와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헤레이스는 주먹을 꽉 쥔 채 얼굴이 험악하게 변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사실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그것은 타국의 황태자와의 스캔들로 괜한 분란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헤레이스가 오해하거나 눈치가 보여서 신경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내 무심한 답변에 헤레이스는 다시 침묵했다. 한 번 이어진 침묵은 끊어지지 않은 채, 우리는 공작가에 도착했다.

* * *

스캔들은 하루 만에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었다. 이제는 스캔들에 관한 소문을 듣지 못한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제국의 황녀와 타국의 황태자의 스캔들이라니. 스캔들의 내용도 상대도 어느 것 하나 좋지 않았다.

루이스가 소문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나 역시도 따로 확인해야 했다. 에밀이 제국에 돌고 있는 스캔들에 관한 정보를 자세히 조사했다. 그리고 내게 보고했다.

소문의 내용은 단순했다. 대신 자극적이었지만.

나는 어린 시절에 룩센 황태자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룩센 황태자와 계속 연락을 이어 온 관계다. 게다가 헤레이스와 결혼 전에 룩센과 결혼할 뻔했다.

하지만 그때 복잡한 사정으로 결혼하지 못하고 헤레이스와 결혼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나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힘들었고, 헤레이스에게는 언제나 안 좋은 소문이 따라다녔다.

그러다 황궁 연회에서 룩센 황태자와 재회. 그 만남을 계기로 나와 룩센 황태자는 연인이 되었고, 그래서 룩센 황태자가 제국에 머물면서 남몰래 나와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룩센 황태자는 나를 만나기 위해 황궁에서 머물고 있으며, 게다가 공작가의 시녀들이 내가 룩센 황태자와 은밀하게 주고받는 편지의 존재를 모두 알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언들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 사이 사이에 에밀이 내게 설명하지 않은 얘기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이런 소문에는 언제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것처럼 세세한 묘사가 따라다니곤 하니까.

“흐음…꽤 그럴싸하게 만들어졌네.”

에밀의 보고를 확인하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소문은 나름 진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졌다. 심지어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을 만한 요소들까지 잔뜩 들어가 있었다.

“소문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인가 보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역시…….”

에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었다.

특히, 소문의 내용에는 나름 사실인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룩센 황태자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알던 사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과거에 내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해 청혼서를 받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룩센 황태자 역시 청혼서를 보낸 적이 있었을 수도 있다. 어차피 그때 내게 온 청혼을 루이스가 모두 거절해서 누가 보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룩센 황태자가 서신을 보낸 적이 있었지.’

그게 나와 룩센 황태자가 은밀히 주고받는 편지가 된 것인가.

이 정도 소문이면 아무나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신상에 관한 정보는 대외적으로 공개된 것 외에는 철저하게 기밀 사항이었다. 그런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을 만큼의 정보력과 소문의 출처를 남기지 않고 퍼뜨리는 은밀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귀족이겠군.”

귀족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보를 수집한 것도 일을 키워 내는 방식도. 어느 정도의 힘과 부가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것도 계급이 낮은 귀족은 아닙니다.”

“그래, 적어도 보안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충실한 가신이 있으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을 많이 부릴 수 있을 만한 가문이겠지.”

에밀의 말에 나 역시도 동의했다. 바로 조건에 해당하는 몇몇 가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느 한 가문이라는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어느 쪽일까.”

그리고 목적이 뭘까. 나를 빌미로 황가에 흠집을 내서 루이스의 견고한 황권에 균열을 내려는 건가. 아니면 헤레이스를 사이에 둔 연적인 건가.

“이거 쉽게 생각하면 일이 꼬일지도 모르겠어.”

어느 쪽이든 피곤한 게 꼬인 건 분명한 것 같다.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쩌실 건가요?”

“글쎄.”

에밀의 물음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없었다. 소문이라는 것은 내가 해명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심지어 이렇게까지 확산된 소문은 더더욱.

소문을 잠재우려면 일단 그 출처를 알아야 했다.

“소문이 정확히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건지 확인할 수 있을까?”

에밀이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답했다.

“알아볼게요.”

“부탁해.”

“걱정 마세요.”

에밀의 든든한 목소리는 나를 토닥여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씩씩하게 웃어 주었다. 그래야 에밀이 안심할 테니까.

* * *

제국의 황녀와 타국의 황태자가 얽힌 스캔들이었다. 게다가 나는 결혼까지 했으니 치정극으로 보일 만큼 자극적인 소문이었다. 황가의 이미지, 타 국가의 외교 문제, 그리고 그동안 일부러 만들어 놓은 나와 헤레이스의 관계에 대한 소문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스캔들이었다.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 했다. 시간을 끌수록 소문은 점점 더 난잡하게 변할 것이다.

“부인.”

헤레이스가 찾아왔다. 그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랜만인 거 같습니다.”

요 며칠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헤레이스와는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 저녁 식사 역시 시간이 없어 뒤늦게 먹다 보니 더더욱 만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찾아온 건가.’

뭔가 해명이라도 듣고 싶었던 건가.

헤레이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소문이 점점 커지더군요.”

그의 말대로 소문은 감당이 안 될 만큼 커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에밀도 초조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덤덤히 대답했다.

“네. 그런 것 같더군요.”

그러자 나와 헤레이스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헤레이스가 물었다.

“…제게 할 말이 없는 겁니까.”

그의 목소리가 낮아 마치 물에 가라앉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무심하게 답했다.

“그런 게 있나요.”

그가 무슨 말을 원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나는 해 줄 말이 없었다. 헤레이스가 경고 같은 말을 했다.

“이대로 제가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의 눈이 화가 난 사람처럼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리고 돌아섰다. 서로 이런 말을 한 순간, 더 이상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 나눌 대화는 없었다.

돌아서는데 회귀하기 전 과거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과거와 닮은 상황이었다. 물론 나와 헤레이스의 입장은 달라졌지만.

헤레이스를 따라다니던 수많은 염문설. 처음에는 헤레이스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봤었다. 하지만 헤레이스는 언제나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한 뒤에 나는 결국 어떤 소문을 듣게 되더라도 헤레이스에게 절대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말해 주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나에게 인정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헤레이스를 포기하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부인…!”

그때였다. 헤레이스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나는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걸음은 멈추었다.

헤레이스는 혹시라도 내가 가 버릴까 봐 서둘러 말을 이어 나갔다.

“죄송합니다. 왠지 초조해서 말이 엇나갔습니다. 부인, 저는 스캔들 따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가 나를 달래기 위한 말들을 이어 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헤레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헤레이스의 눈이 순간 안도의 빛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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