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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60화 (60/124)

?제60화. 8장. 소문 (6)

“지금은 그때와 달라도 너무 많이 달라졌어.”

“예. 압니다. 이 저택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요. 이사벨 마님께서도 분명히 알고 계실 겁니다.”

앨버트는 열심히 이사벨을 변호했다. 오랜 시간 공작가를 모셔온 집사로서의 연민이 느껴졌다.

“그럼 답은 나왔군.”

“단지, 인정하기 싫은 겁니다. 특히나 선대 공작님께서 돌아가신 일로 충격을 받으신 후부터는 그 시기가 영원하다는 착각 속에서 행복해하고 싶어 하시는 겁니다.”

앨버트의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웃기군. 공작가가 위태로울 때 이사벨의 사치 때문에 분명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열심히 변호를 하다니.”

“…죄송합니다.”

앨버트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나에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기분이 별로인 것 역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더욱 단호하게 답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행동을 언제까지나 넘어가 줄 수는 없어.”

앨버트의 얼굴이 어두워진 것이 보였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보다 황궁에 가기 전에 들려야 할 곳이 생겼다.

“이사벨 부인은 방에 있겠지?”

“네.”

나는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방을 나서 이사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앨버트와 에밀이 그 뒤를 따랐다.

이사벨은 내가 찾아올 줄 알았는지 나를 보고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당당했다. 심지어 내가 찾아오자마자 무슨 말을 할지 안다는 얼굴로 먼저 선수를 쳤다.

“앞으로 내가 어디에 어떤 식으로 예산을 쓰더라도 방해할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까지처럼 멋대로 쓰겠다는 거다.

“이사벨, 아직도 그대에게 함부로 해도 되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우리 가문의 돈을 내가 쓴다는데 감히 누가 뭐라고 하나요.”

이사벨은 여전히 당당했다. 그럴수록 그녀가 가련하게 보였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화려했던 과거의 자신을 놓지 못하는 그녀가.

“아직도 포기하지 못했나요?”

“그대에게 뺏긴 걸 되찾아오려는 것뿐이에요!”

“이사벨, 이제 공작가의 살림은 모두 저에게 권한이 있어요. 더 이상 부인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이사벨은 여전히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권한이 이제는 내게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미 모든 권한이 내게 있었다. 헤레이스가 동의한 일이고, 이미 그렇게 정리된 일이다. 이것만큼은 이사벨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순간 말문이 막혔는지 이사벨이 나를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나는 그런 시선 따위 묵묵하게 받아 줄 뿐이다. 하지만 이사벨이 갑자기 여유로운 미소를 활짝 지었다.

갑자기 왜 웃는 거지? 이사벨의 미소는 억지로 위장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갑자기 자신감에 휩싸인 채 말했다.

“결국, 이 가문의 가장 어른은 납니다. 아무것도 아닌 에일린이 끼어들 일이 아니란 거죠.”

“저도 공작가의 일원입니다.”

“누가 공작가의 사람인가요? 난 한순간도 인정한 적이 없어요!”

이사벨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강하게 부정했다. 단 한 번도 나를 인정한 적 없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그녀가 다시 한번 자신의 진심을 터트렸다.

“그런데 어째서 공작가의 권한은 저한테 있는 거죠.”

이제 이사벨에겐 아무런 힘도 권한도 없다. 이사벨은 잠깐 멈칫하는 것 같더니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고작 그런 것으로 공작가가 그대 거라고 믿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 어디 마음대로 해 보세요. 결국, 후회하는 건 에일린, 그대일 테니까. 자리를 비켜 줄 테니 내 방을 뒤지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이사벨은 그러고는 그대로 저택을 나갔다.

순간의 자존심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었다. 불안해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떠올리다 보니, 이사벨은 어쩌면 내가 찾아오기를 기다린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뭔가 있구나.’

그래, 믿을 구석 하나 정도는 따로 마련해 뒀겠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대로 앨버트를 불렀다.

“앨버트.”

“예. 마님.”

“이사벨 부인이 무슨 짓을 해도 이 저택 안의 재산은 단 한 푼도 주지 말도록.”

“…예.”

어차피 이사벨에게 부탁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경고와 함께 통보하러 온 것이었다. 그것을 받아들이건 아니건, 이사벨의 몫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이사벨에게 엉뚱한 돈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막으면 그뿐이었다.

“만약에 이번과 같은 일이 한 번 더 발생할 경우에는 앨버트, 그대에게 책임을 확실히 따질 거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앨버트에게도 단단히 경고했다. 그가 괜한 동정심으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이사벨에게 내가 모르는 회심의 카드가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두고 보기로 했다. 내 경고를 받은 앨버트가 돌아갔다.

이사벨의 방에서 나와 내 방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에밀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채 말했다.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이사벨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은 것이다.

이사벨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공작가에서 그녀가 휘두를 수 있는 권한도 모두 나에게 빼앗기고 빚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가 그럴 수 있는 건 뭔가 있다는 것이다.

“저렇게 자신만만한 걸 보면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보지.”

“혹시 사고라도 치는 게 아닐지.”

에밀은 이사벨이 무슨 사고를 또 칠지가 걱정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게 피해라도 입힐까 염려했다.

물론 나도 이대로 마냥 방치할 생각은 없었다. 구석에 몰릴수록 이사벨은 자신이 잡고 있는 끈에 매달릴 테니까. 그럼 과연 그녀가 이토록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에밀, 이사벨의 동향을 파악할 사람 좀 붙여 줘.”

그녀가 움직일수록 분명 그녀가 무슨 짓을 하는지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내 뜻을 이해한 에밀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흘리며 답했다. 그녀의 대답은 흔들림이 없어서 언제나 든든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역시 에밀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해.”

“그럼요. 저만 믿으세요.”

내가 환하게 웃자 에밀이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주 웃었다.

그때였다. 나는 뭔가 허전한 기분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지. 뭔가 잊은 것 같은데.’

생각날 듯 말 듯 잡히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니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에밀이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왠지 나까지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기씨….”

“응…?”

“황궁에 가셔야 합니다…!”

“맞아…! 황궁!”

에밀의 외침에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해졌다.

루이스의 부름에 황궁에 가려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사벨에게 들렸었던 것인데, 그사이에 완전히 잊어버렸다. 아침 일찍 황궁에 출발하려던 계획이 이사벨 때문에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 * *

황궁에서 루이스는 룩센과 함께 에일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룩센과 함께 집무실로 향하는 데 갑자기 루이스가 걸음을 멈췄다.

“생각해 보니 그대에게도 이상한 경험을 시키는군.”

룩센 황태자는 손님이었다. 그런데 손님이 잠시 머무는 사이에 그를 둘러싼 악질적인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그에 대한 형식적인 인사치레였다.

그런데 룩센 황태자는 오히려 즐기듯이 웃음을 씨익, 지으며 말했다.

“저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자 루이스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럼. 소문을 즐기는 건가.”

혹시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필 때였다. 룩센 황태자가 웃음 가득한 얼굴을 굳히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황녀께 해를 끼치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야지요.”

분명 대화는 농담처럼 흘렀는데 두 사람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마치 전쟁에 나서는 장수처럼.

그때였다. 루이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십니까.”

룩센의 말에도 루이스는 반응하지 않고 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룩센이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시녀 몇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시녀들이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시녀들은 루이스와 룩센을 발견하지 못한 채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루이스와 룩센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엇! 나도 그 소문 들었어.”

“황녀께서 곧 이혼하시고 룩센 황태자 전하의 나라로 갈 거라는데.”

“아냐. 두 사람은 밀회만 즐기는 육체관계라던데.”

“근데 너 그 소문은 어디서 들었어?”

“나는 왕실부에 있는 시녀한테 들은 이야기야. 신빙성이 높다니까.”

시녀들은 최근 제국에서 그중에서도 특히 황궁에서 뜨거운 화제에 대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얘기하고 있었다. 대화는 점점 누가 더 비밀스러운 소문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경쟁으로 변해 갔고, 그럴수록 소문의 수위는 자극적으로 변해 갔다.

“흐음.”

룩센 황태자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황궁 안에서 시작된 소문이라 하더니, 소문이 가장 변질된 곳 또한 황궁이었군.

그때였다.

“꺄아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시녀의 비명 소리가 울렸다.

루이스의 눈짓 한 번에 지키고 있던 병사 두 사람이 양쪽으로 시녀의 목에 검을 갖다 댔다. 시녀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잘못 움직였다가는 자신의 몸 어디에 검이 박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으읏!”

“조심해야지. 목숨이 여러 개일 리는 없을 텐데.”

시녀가 몸을 움츠렸다. 루이스의 목소리는 전혀 걱정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조심하라는 말은 최후의 경고처럼 들렸다.

“방금 한 말 다시 해 봐. 토씨 한마디라도 틀릴 때마다 손가락이 하나씩 날아가게 될 거야.”

“죄, 죄송합니다!”

시녀는 무조건 빌었다. 그런다고 루이스가 봐줄 리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열심히 비는 것이 전부였다.

“아니. 내가 하라고 한 말은 그게 아닐 텐데.”

“사, 살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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