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8장. 소문 (7)
시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루이스의 음성이 울릴 때마다 살이 베어지는 것 같았다. 소름이 끼치고 온몸이 딱딱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루이스의 심기를 거스를 뿐이었다. 루이스의 얼굴에 점점 더 냉기가 흘렀다.
“황궁에서 입을 잘못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직 교육이 안 되었나 보군.”
“으아아악!!”
분명 루이스에게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어느새 병사들에게 지시한 건지, 시녀의 목에 검이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갔다. 여기서 조금만 더 검이 그녀의 살을 파고든다면, 단번에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검 때문에 제대로 고개를 움직이지도 못하는 시녀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뭐, 뭐든 하겠습니다…!! 부디…!!!”
시녀의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사이에 쉰 목소리는 쇳소리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런 것 따위 문제가 아니었다. 시녀는 죽을 힘을 다해 외쳤다. 부디 황제가 자신을 놓아주기를 바라면서.
“이제는 말할 준비가 된 건가.”
“네, 네네…뭐든지 말하겠습니다.”
공포에 질린 시녀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시녀는 여기서 한 번이라도 눈에 벗어나는 짓을 했다가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것에서 끝나지 않을 것을 본능적으로 알 것 같았다. 그제야 루이스는 시녀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풀어준 것은 아니었다. 루이스의 눈짓 한 번에 시녀들은 단숨에 포박을 당한 채로 루이스의 앞에 엎드렸다.
“그럼 이제 얘기를 좀 천천히 들어 볼까.”
모두가 공포에 질려 온몸을 떨었다. 이 상황에서 여유로운 것은 루이스가 유일했다.
“그 소문. 누가 먼저 시작한 거지?”
루이스는 시녀들을 한 명씩 차근차근 눈을 맞추며 말을 이어 나갔다.
“너희가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내가 직접 일일이 확인할 거다.”
“…….”
“그러니 대답 똑바로 해야 할 거다.”
공포에 눌려 굳어 버린 머리여도 시녀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생각해 내야만 했다. 자신에게 이 소문을 전해 준 최초의 인물을.
“그, 그게…!”
하지만 당장 죽을 것 같은데 차분하게 기억을 되짚어 보는 것은 무리였다. 시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든 생각해 내야만 한다. 그래야 목숨이라도 건진다!
시녀는 말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절박하게 외쳤다.
“구, 궁내부입니다…! 궁내부에서 일하는 시녀에게 들었습니다!”
“그 시녀 이름은 뭐지.”
시녀는 순간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그녀 역시 자신과 똑같은 꼴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시녀의 생각을 읽은 루이스가 피식, 비웃으며 말했다. 물론, 위협 역시 잊지 않았다.
“왜, 그 시녀가 위험해질까 걱정이라도 되는 건가. 네 목숨은 괜찮고?”
“애, 애슐리…! …애슐리입니다…….”
시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자신이 먼저 살아야 했다. 루이스가 시녀의 목에 갖다 댄 검을 내려놓았다.
루이스는 대기하고 있던 기사에게 눈짓을 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궁내부 소속의 애슐리라는 시녀를 데려왔다. 그녀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추궁했고, 이번에는 보니라는 동료에게서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새로운 인물이 루이스의 발밑에 끌려왔다.
루이스가 슬슬 지루해하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황궁 외곽에서 일하는 코이라는 시녀가 말했다.
“황궁에 출납하는 하녀에게 들었습니다.”
“출납하는 하녀…?”
“이, 이름은 모르고 갈색에 가까운 금발 머리에 주근깨가 많고…얼굴에…호, 홍조가 있는 아이입니다!”
코이라는 시녀는 최대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열심히 설명했다.
하필 황궁 출납 하녀였다. 심부름 오는 하녀들은 매번 바뀌는 데다가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것처럼 꾀죄죄한 차림이어서 말도 제대로 섞지 않는다. 왜 그때 괜한 호기심이 자극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바람에…이게 무슨 꼴이야. 코이라는 시녀는 마음속으로 그때 이름도 알지 못하는 하녀와 얘기를 한 것을 후회했다.
“아이…? 어린가?”
루이스는 시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 따위 없었다. 그래서 엎드려 있는 등이 아무리 떨려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이는 것은 방금 전 시녀가 말한 ‘아이’라는 표현이었다.
“예, 예…! 어립니다! 제가 보기엔 열넷 정도로 보였는데 아무리 많아도 열여섯 정도일 겁니다…!”
“그래…?”
루이스는 벌벌 떨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코이라는 시녀에게서 고개를 돌려 기사에게 눈짓했다. 기사는 곧 황궁 외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혼자였다.
“저 시녀가 말한 하녀는 이제 없다고 합니다.”
“없다니. 그만뒀다는 건가.”
“황궁 출납 하녀는 원래 자주 바뀐다고 합니다.”
“하필…….”
루이스가 인상을 쓰며 혀를 찼다. 하필 여기서 끊기다니 재수 없긴.
그런데 순간 루이스는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출납하는 하녀들의 명부는? 자주 바뀐다고 해도 관리는 하고 있겠지.”
황궁은 그 어느 곳보다 보안이 철저한 곳이었다.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자는 절대 들어올 수 없었다.
“명부도 확인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인적사항이 있어?”
기사가 황궁 외곽에서 관리자로부터 받아온 명단을 내밀었다. 루이스는 눈을 반짝이며 한 장씩 뒤로 넘겼다. 하지만 뒤로 넘길수록 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명단에 그런 하녀는 없었습니다.”
기사의 말 대로였다. 명단에는 출납 하녀들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간단한 특이사항이 적혀 있었다. 특이사항에는 생김새나 성격, 집안의 특징 같은 것이 적혀 있었는데, 이 명단에는 조건에 부합하는 하녀가 없었다.
“그만둔 시녀라고 해도 최근이면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고 합니다. 외궁 측 얘기로는 아마 하루나 며칠만 누군가의 대신으로 나왔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충분히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소문을 내려면 치고 빠져야 할 테니 소문을 내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게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쥐새끼가 있었군.”
소문은 황궁 밖에서 들어온 외부인에 의해 황궁 안에서부터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황궁에서 시작된 소문은 다른 소문들에 비해 사람들은 쉽게 믿는다. 그래서 소문의 신빙성을 더 높이면서 꼬리가 쉽게 잡히지 않게 한 것이다.
루이스가 잡혀 온 시녀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황궁은 철저하게 통제된 곳이다. 그런 곳에 있는 시녀들의 입에서 소문이 시작됐다니.
“감히 황궁 안에서 입을 쉽게 놀리다니. 그동안 내가 너무 살기 편하게 해 줬나 보군.”
루이스가 시녀들을 쭉 둘러보았다. 겁도 없이 감히 자신이 있는 곳에서 소문을 나른 시녀들을 향한 그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시녀들의 어깨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하게 떨렸다.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만 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시녀들은 자신의 앞에 닥칠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차라리 잘됐군. 이번 기회로 입을 함부로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모두에게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루이스의 목소리에는 조소가 묻어났다. 그의 얼굴은 비뚜름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폐, 폐하…! 제발 살려 주세요…….”
시녀들이 루이스의 발 앞에 바짝 엎드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일단 지하 감옥에 넣어 둬.”
시녀들은 병사들에 의해 질질 끌려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려 달라고 외치며 버텼지만, 그녀들의 힘으로는 병사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험악하게 굳어 있는 분위기 속에는 없는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 말은 소문의 씨앗을 가져온 건 황궁 밖의 인물이라는 거네요.”
여전히 검을 든 채 흉흉한 기세를 뿜고 있던 루이스가 돌아봤다. 룩센 또한 이미 소리가 난 쪽을 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에일린이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서 있었다.
“에일린, 언제 온 거지.”
“방금 도착했어요.”
이사벨 때문에 황궁에 도착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사용했다. 황궁 입구에 도착했을 때 시종이 어딘가 초조해하기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녀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눈앞에 이런 상황이 펼쳐져 있을 줄은.
* * *
소문의 근원은 외부에서 들어온 누군가가 황궁을 거점으로 소문을 확산시켜 나간 것이다. 보통 황궁에서 시작된 소문은 폐쇄적이기에 황궁 밖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다른 소문에 비하면 확산 속도 역시 매우 느리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은 다른 소문과 비교하더라도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숨길 생각 없이 퍼트릴 목적으로 소문을 나르는 역할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황궁에서 나온 소문이라고 하니 더더욱 신빙성이 높았을 것이다.
룩센 황태자가 먼저 내게 다가와 인사했다. 소문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루이스와 함께 있던 룩센을 의식하지 못했다. 나 역시 정중하게 미소를 머금은 채로 인사를 나눴다.
“괜찮으십니까?”
“…황태자 전하, 걱정해 주신 덕분에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괜한 일에 휘말리게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내 말에 룩센 황태자가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었다.
“헤레이스 공작께서 오해는 하지 않으시나요?”
그는 자신 역시 얽힌 스캔들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내가 죄책감을 느낄까 봐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곧 정리될 겁니다. 너무 심려치 마세요.”
룩센 황태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나타난 루이스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쪽은 괜찮지 않은 것 같군.”
“그쪽이라니요.”
내 물음에 루이스가 서신을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아……. 황후 마마께서 보낸 거군요.”
서신을 보자마자 룩센이 바로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황후’라는 사람이 룩센 황태자의 어머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대도 받았나 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