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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78화 (78/124)

?제78화. 10장.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 (2)

에밀은 별장에서 급하게 옮겨 적은 것들을 보고했다. 별장에서 자세하게 적힌 문서를 보았지만, 시간이 부족해 전부 옮겨올 수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에밀은 사실상 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 메모해 놓은 핵심적인 내용을 다시 확인한 에밀은 정리한 내용을 내게 보고했다.

“사병들은 총 백여 명 정도가 됩니다. 별장 근처는 숲으로 이루어져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훈련하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

내 지시에 에밀은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들은 대부분 최근에 모은 사병입니다. 기본적으로 검을 다뤄 본 적 있는 이들로 구성한 것으로 보아, 지금은 실력이 상당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건 역시.”

“네. 아무래도 맞는 것 같습니다.”

에밀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부터 실력 있는 자들을 모아 훈련 시킨다는 것은 목적이 명백했다. 앞으로 전쟁과 비슷한 싸움을 목전에 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무기를 들여오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병사들을 키우고 있었다. 이건 누가 봐도 명확한 상황이었다.

‘결국, 헤레이스는 끝까지 나를 배신하는구나.’

그의 변화는 달라진 나를 속이기 위해 과거와는 다른 계책을 꾸민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에 나는 속은 것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충격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사벨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철저하게 이용당했다. 반역을 준비하기 위해 가볍고 허영심 많은 미끼가 그들에겐 필요했었던 거다.

그럼 그렇지. 내가 지금까지 반역을 막는다는 이유로 헤레이스에게 했던 행동들이 모두 우스워졌다. 고작 그런 것으로 헤레이스가 달라질 리 없지.

* * *

헤레이스는 별장을 한 바퀴 둘러보며 상황을 면밀하게 살폈다.

병사들의 훈련 상태를 살핀 뒤, 별장에 따로 마련해 둔 집무실에서 보고를 받았다. 공작가에서는 받을 수 없는 내용의 보고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준비는 잘 되어 가나.”

“네, 계획에 차질 없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헤레이스는 병사들을 비밀리에 훈련 시키고 있었다.

비밀리에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병사를 모으는 것은 위험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이지만 한 기사단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정예로 만들었다. 그들은 대부분 평민 출신이거나 그보다 못한 경우가 많았다.

헤레이스는 계획하고 있는 일이 마무리되면 그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약속했다. 현재도 그들에게 충분한 대가를 주고 있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기에 헤레이스는 공작가에서 상당한 양의 재산을 이곳에 쏟아붓고 있었다.

헤레이스가 별장에서 각종 보고를 받고 있을 때였다.

“공작님, 침입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침입자…?”

“네, 잡지는 못했는데 분명 수상한 인기척을 느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누군지 알아내. 이곳에 대해서는 절대 비밀이 새어 나가서는 안 돼.”

“네, 알겠습니다.”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해야 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준비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

“공작님. 서신이 왔습니다.”

“확인하지.”

보낸 이가 적혀 있지 않은 빈 봉투로 오는 서신은 중간에 누군가가 확인하려는 시도만 해도 흔적이 남도록 되어 있었다.

헤레이스는 그 서신을 주기적으로 받고 있었다. 그 안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는 헤레이스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 * *

공작가에 돌아온 후, 나는 일부러 대문 근처 후원에서 산책을 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도록.

산책을 핑계로 주위를 거닐고 있으니, 역시나 별장에서 돌아온 헤레이스가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부인!”

그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만연했다. 방금 전까지 심각한 얼굴로 사람들을 지휘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차이가 너무 커서 오히려 혹시나 하는 마음까지 사라졌다.

그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숨긴 채 나를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아무것도 관심 없는 척하다가 반역을 일으켰던 것처럼. 이번에는 나에게 잘하는 척하면서 반역을 저지를 생각인 것이다.

나는 당장이라도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을 갈무리하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가 어디에 있다 오는지 알면서도 물었다.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외출했다 돌아오시는 겁니까.”

“방금 왔습니다. 사업 때문에 직접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서요.”

역시나 그는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 예전부터 그랬다. 그는 언제나 내게 명확하게 말해 준 적이 없었다.

헤레이스가 사업이라고 애매하게 말했지만, 내가 별장에서 본 것은 고도로 훈련이 된 사병 집단이었다. 용병 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정도로 많은 양의 사병을 따로 교육하는 사업은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는 없었다. 결국, 그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헤레이스의 등을 바라보았다. 헤레이스가 나를 돌아보았다.

“부인…?”

나는 입꼬리를 최대한 말아 올리며 미소 지었다. 웃는 얼굴을 유지해야 한다. 그가 나를 의심하지 않도록.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

“황궁에 좀 다녀올게요.”

“네?”

“폐하를 뵌 지 좀 된 것 같아서요. 제가 처리해야 되는 일들도 있고.”

이제 헤레이스가 반역을 저지르는 것은 사실이 되었다. 그는 나에게 반하지도, 마음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도 하나였다. 더 이상 여러 가능성을 따지지 말고 철저하게 그의 반역을 막아 내는 것.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제 오라버니에게 모든 걸 말해야 해.’

헤레이스가 반역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것. 그 중심에는 헤레이스가 있고, 귀족 연합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 본 별장의 존재까지. 루이스에게 알려야만 했다.

“지금 말입니까.”

“네. 황궁에 황후 자리가 비어 있으니, 제가 처리해 줘야 할 일이 많아서요.”

그래도 그가 괜한 의심을 하지 않도록 핑계를 만들었다.

처음 황궁에 갔다가 공작가로 돌아올 때, 내가 헤레이스에게 내민 조건이었다. 황궁에는 아직도 내가 처리해 줘야 하는 일들 있고, 그뿐이 아니더라도 황궁에 종종 가는 것.

이미 저녁이었다. 지금 황궁에 가서 돌아오려고 하면 늦은 밤이 될 것이다. 헤레이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돌아올 건가요? 그때 제가 황궁 앞으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오늘 가면 하루 머물 생각입니다. 어쩌면…며칠 머물 수도 있고요.”

“며칠씩이나 말입니까.”

“네. 지금 밀린 업무가 많다고 하니,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낮에 황궁에 갔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황궁에 갔다가 바로 돌아오기 힘들 것이다.

헤레이스는 고민을 하는 듯 인상을 살짝 구겼다. 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차피 그가 안 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헤레이스가 결심한 듯 나를 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그럼. 황궁까지 가는 길은 제가 데려다 드리죠.”

헤레이스는 이것마저도 거절하면 절대 보내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그가 황궁까지 함께 가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머릿속이 복잡해서 황궁으로 가는 동안 좀 정리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헤레이스와 잠시 떨어져서 이번 일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루이스를 만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황궁으로 향하는 동안 마차가 거친 길 위에서 덜컹거렸다.

* * *

나는 황궁에 도착하자마자 루이스를 만났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루이스는 깜짝 놀라는 것 같았지만 어서 오라며 반겨 주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 루이스에게 할 말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폐하, 드릴 말이 있습니다.”

“뭔데 이 시간에 들이닥쳐서 그런 얼굴을 하는 거지?”

내가 굳은 얼굴로 루이스에게 말하자 루이스 역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갑자기 내가 찾아와 이런 분위기를 잡는 것만으로도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짐작하는 것이겠지.

“곧 제국에…….”

갑자기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입 밖으로 꺼내려고 하니, 반역이라는 단어의 무게와 그날의 처참한 광경이 다시 현실이 된 것 같았다.

루이스가 죽고 나는 감옥에 갇히고 모든 것이 비극으로 끝나던 순간. 이번에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천천히 입을 뗐다.

“…반역이 일어날 거예요.”

루이스의 눈이 커졌다. 갑작스러운 내 말에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앞으로 철저하게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반역에 대한 많은 정보를 쥐고 있어야 했다. 나는 반역에 대해 아는 것은 모두 최대한 소상하게 전달했다. 그리고 반역을 도모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것까지.

“제가 오늘 사병을 훈련 시키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제 눈으로 분명하게 봤습니다.”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내 말을 듣기만 할 뿐, 루이스는 어떤 말도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초조해져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쉬지 않고 말했다. 혹시라도 빠트린 것이 있을까 생각을 되짚어 보면서.

“사병들을 모아 훈련 시킨 증거, 크레톤 제국과의 무기 거래를 한 것 역시 그 증거를 모았습니다. 반역을 일으키기 전에 폐하께서 먼저 치셔야 합니다.”

“…….”

“곧 문서로도 정리해서 보고하겠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움직이셔야 합니다.”

나는 모든 것이 조급한데, 오히려 반항하는 자들에게 언제나 일말의 용서도 없이 가차 없던 루이스는 어쩐지 이번만큼은 여유로워 보였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네?”

이게 무슨 소리지? 그럴 필요 없다니. 내가 놀라서 루이스를 보자, 루이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먼저 치면 다 정리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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