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도 바쁜 황녀님-77화 (77/124)

?제77화. 9장. 진실 (6)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에밀이 단호하게 만류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 역시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었다.

“내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해.”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에밀 역시 더 이상 말리지 못했다.

이번에는 직접 확인해야 했다. 만약 헤레이스가 이번에도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이라면, 직접 확인해서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는 미련을 모두 끊어 버릴 것이다.

헤레이스는 내게 잘하는 척하면서 뒤에서 이중장부를 관리했다. 그러면서도 스캔들이 터졌을 때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모두 진심 같았다. 그래서 그가 뒤에서 이중장부를 관리하고 인적이 드문 별장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그러니까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어느 쪽이 진짜 헤레이스인지.

10장.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 (1)

헤레이스가 외출한 것을 확인한 후에, 나는 에밀과 함께 별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비밀리에 움직이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움직였다.

에밀의 안내에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별장에 도착했다. 외진 곳에 있는 별장은 수도에서 살짝 더 나가면 있는 작은 숲속 끝자락에 있었다.

“여기입니다.”

작은 숲속이라고 하지만, 높은 지대에 위치한 곳이었다. 에밀은 별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별장의 저택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별장을 둘러싼 담과 저택 사이에 빈 공간이 굉장히 컸다. 마치 뭔가를 위해 일부러 비워 놓은 공간 같았다.

에밀이 물었다.

“확인하고 싶은 건 하셨나요?”

위험하다고 말리는 그녀에게 나는 꼭 직접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다며 몇 번이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별장 안까지 들어가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는 것을 조건으로 함께 온 것이다.

“…응. 확인해야지.”

헤레이스가 이곳에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인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것이다.

“절대 다른 곳으로 가시면 안 돼요. 약속해 주세요.”

“걱정 마. 여기서 기다릴게.”

“그럼 여기 계세요. 저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알았어.”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억지로 따라온 것이었다. 내가 같이 움직이면 에밀을 방해하기만 할 뿐이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맞았다.

에밀은 그래도 불안한지 내게 몇 번이나 약속을 받아 낸 뒤에 별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조용히 움직였다.

나는 에밀이 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며 별장 안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저택 내부까지는 볼 수 없지만, 유난히 넓은 마당은 잘 보였다.

‘여기가 공작가의 별장인 건가.’

수도 근처에 공작가의 별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되어 거의 방치되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사람의 인적이 거의 없는 데다가 접근하기도 힘들어서 별장을 사려는 사람이 없는 탓에 팔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는 애물단지.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럴 속셈으로 가지고 있었던 곳이었나.

나는 이곳에서 별장의 마당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무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훈련된 병사들인 것 같았다. 둘 혹은 세 명으로 나뉜 병사들이 끊임없이 마당을 지나갔다.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경비가 삼엄한 것 같았다.

‘대체 저기서 뭘 하는 거지?’

그때였다.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기사단을 이룰 정도의 많은 사병이 마당을 지나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훈련을 철저하게 받은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 행렬의 끝에 헤레이스가 있었다. 그는 병사들을 지켜보며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병사들을 훈련 시킨 건가.’

많은 귀족이 가문 소속의 기사단 외에도 사병을 몰래 키우기도 했다. 공식적인 일마다 제국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기사단 보다, 자신의 입맛대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병이 더 매력 있을 테니까. 그러니 사병이 있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은밀하게 훈련되고 있는 사병이라니. 이건 사정이 다른 문제였다.

지금까지 이런 것을 준비하고 있으면서도 헤레이스는 내 앞에서는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쳐 내려고 하는 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며 관심을 받으려 노력했었지.

‘그러면서 뒤에서는 사병을 모은 건가.’

나와 루이스를 치기 위해서.

별장 안 마당에서 사병과 헤레이스의 모습이 사라져갈 때쯤이었다. 반대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풀 사이를 가로지르는 소리. 그것도 꽤나 여러 사람이 지나가는지, 소리가 컸다.

일단 들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최대한 몸을 낮게 움츠리고 풀 사이로 몸을 감췄다. 풀 사이로 가로지르는 듯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읏…!”

망했다. 그만 소리가 흘러나와 버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최대한 숨을 죽였다. 제발 그들이 아무것도 듣지 못했기를 바라면서.

“방금 여기서 무슨 소리 나지 않았어?”

“소리? 글쎄. 나는 못 들었는데.”

“이상하다…분명 무슨 소리가 났는데.”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만해! 여기 올 사람이 누가 있다고. 이러다 훈련에 늦겠다.”

“그래, 얼른 가자.”

천만다행으로 다른 사람이 말리며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데리고 멀어졌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인기척이 전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몸을 숨긴 채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 그 사람들은 뭐지?’

분명 그 사람들은 훈련이 있다며 돌아갔다. 내가 있는 쪽에 다가온 사람은 세 사람 정도인 것 같았지만, 그 뒤에 분명 더 많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별장에 있는 병사들인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그들은 별장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설마. 별장 외에 사병들을 훈련 시키는 곳이 더 있는 건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에밀은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내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멀리서 확인만 하고 오자.’

* * *

에밀은 인기척을 지운 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별장 안으로 들어왔다.

별장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저택 안을 헤매거나 여유 있게 둘러볼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녀는 최대한 빠르고 조용하게 움직였다. 이곳의 존재만 파악했을 뿐, 내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서 움직여야 했다.

‘게다가 아기씨도 걱정되고.’

에밀은 에일린이 걱정되어서라도 빨리 할 일을 마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저택 안으로 들어간 에밀은 별장 안에 분명 헤레이스의 집무실로 사용되는 공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심되는 방을 확인해 보는데, 그의 집무실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이는 방을 발견했다.

에밀은 조심히 방 안을 살폈다. 책상 서랍과 책장, 그리고 바닥에 놓여 있는 책들. 그리고 수많은 보고서. 분명 헤레이스의 집무실이 맞았다.

‘그럼 이 안에 뭔가가 있을 텐데.’

에밀이 방 안을 쭉 훑어보았다. 숨기기에 가장 뻔한 책 사이, 서랍 밑은 기본이고, 혹시 또 다른 공간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하지만 또 다른 공간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중에 있다는 건데. 어째서인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런 데 숨기진 않았겠지.’

에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몇 번을 뒤적인 끝에 손에 뭔가를 집었다.

‘이건가.’

에밀이 찾는 것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지 않았다. 평범한 일반 문서로 보이는 것들 사이에 별거 아닌 것처럼 섞여 있었다. 누군가가 보게 되더라도 중요한 것이라고는 눈치채지 못하게끔.

에밀이 찾은 것은 별장에서 훈련받고 있는 사병들의 명단이었다. 그들의 출신과 가족관계까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빈 봉투가 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뭔가가 들어 있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굉장히 보안을 신경 쓴 듯 봉투 끝부분에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상황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지.”

“생각보다 속도가 빠른 것 같습니다.”

하필, 문밖에서 헤레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밀은 민첩하게 빈 봉투를 원래 있던 곳에 올려놓고 병사들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는 문서를 품 안에 챙겼다. 그리고 헤레이스가 들어오기 전에 창문으로 자리를 피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헤레이스를 맞닥뜨릴 뻔했다.

‘어서 돌아가자.’

에밀은 최대한 빨리 에일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머릿속으로는 방금 전에 두 눈으로 확인한 문서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기씨…?”

에일린이 있던 자리에 왔는데, 에일린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당황한 에일린의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여기는 반역을 도모하는 적진이었다. 잘못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빨리 에일린을 찾아야 했다.

“에밀.”

그때였다.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에일린이 있었다. 에일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에밀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밀은 안도하면서 에일린에게 다가갔다.

“왜 여기 계신 거예요?”

“어쩌다 보니…다시 못 돌아오겠더라고.”

에밀이 오기 전, 병사들이 향했던 위쪽에 다녀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훈련하고 있는 사병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런데 다시 내려오려고 하니 위로 올라오는 사병들이 계속 이어졌다. 잘못 움직이면 그들에게 발각될 것 같아 몸을 숨긴 채 발길이 끊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려온 것이다.

‘하지만 에밀이 걱정할 테니 말하면 안 되겠지.’

에일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죠?”

“응. 이제 돌아가자.”

에일린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어쩐지 뒷모습이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내가 별장에 다녀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에밀은 에일린의 뒤를 따라 공작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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