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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100화 (100/124)

?제100화. 14장.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2)

“휴…….”

황녀궁에 들어오자마자 올리비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해서 추궁하는 루이스에게 겨우 벗어난 참이었다. 내가 묘한 시선으로 그녀를 계속 바라보자, 참다못한 올리비아가 말했다.

“진짜 피한 적 없어.”

“폐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나야.”

“알지.”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나한테 말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조언해 줄 수는 있어.”

솔직히 개인적인 궁금증보다는 계속 피해 다니는 올리비아가 힘들어 보이는 게 더 걱정스러웠다.

“고마워. 하지만 진짜 아무것도 아냐.”

하지만 올리비아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그녀가 부정한다면, 자의든 타의든 말할 생각이 결코 없는 것이었다.

* * *

올리비아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뭐가 마려운 것마냥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올리비아는 걸음을 더 빨리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따라잡혀 목소리의 주인에게 추월당했다.

“내 목소리가 안 들렸나.”

목소리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루이스였다. 루이스가 올리비아의 앞으로 얼굴을 쑥 내밀어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서 말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순간 올리비아가 뒤로 피하려다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힘까지 끌어모아서 겨우 버텼다.

“…폐하를 뵙습니다.”

“그렇군. 한동안 보기 힘들더니, 오늘만 벌써 두 번째군.”

“…….”

“참 우연이야. 그지.”

루이스가 올리비아를 흘깃 보며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이곳에서 마주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루이스가 일부러 오지 않는 이상, 마주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조금 전부터 올리비아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놓고 쫓아오는 루이스를 눈치채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가 눈치채라고 일부러 신호를 보낸 것이긴 했지만.

“폐하,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여기 올 일이 없을 텐데. 차마 하지 못한 말에 담긴 의미였다. 하지만 루이스는 능청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던 길이었지.”

“제가 폐하의 길에 방해가 되었나 봅니다. 그럼 저는 이만.”

올리비아가 도망치려고 할 때였다.

“어딜.”

루이스에게 바로 붙잡혔다. 그는 처음부터 명분 같은 것은 만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너무 대놓고 피하는 거 아냐.”

“….”

“이러면 나도 상처받는데 말이야. 속상하게.”

“그, 그럴 리가…….”

올리비아가 변명하려고 할 때였다. 루이스가 입가를 가린 채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가 상처받는다는 말에 속아 흔들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굉장히 당한 기분이었다.

루이스가 이전과는 다르게 진지한 목소리로 올리비아를 불렀다.

“올리비아.”

“네. 폐하.”

“우리 아직 해야 할 말이 남았지 않나.”

올리비아가 대답을 머뭇거렸다. 하지만 더 이상 대답을 끌 수는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루이스의 시선을 피하던 올리비아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네. 폐하.”

올리비아가 루이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 * *

티파티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황궁에서 준비하는 티파티에 영애들을 초대했다. 어차피 할 거라면 기세를 몰아서 바로 이어 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내가 웃자 올리비아가 눈을 흘겼다.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애들이 모두 도착하고, 티파티는 시작됐다. 황궁에만 들어오는 차와 황궁에서만 맛볼 수 디저트로 티타임을 가졌다.

티파티가 한창 무르익을 때쯤, 에밀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어머.”

한 영애의 감탄사를 기준으로 영애들의 시선이 모두 문을 향했다. 그곳에는 에밀과 하녀들이 티파티 선물을 가지고 들어오고 있었다. 선물의 크기가 가지각색이어서 시선을 끌었다.

“오늘 와 준 영애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에요.”

에밀과 하녀들이 영애들의 자리에 선물들을 각각 가져갔다. 선물에는 주인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마담 세실 의상실의 작품들입니다.”

영애들의 눈이 커졌다. 그리곤 황홀한 얼굴로 변했다. 선물들은 하나 같이 최근 가장 유행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는 사실 올리비아의 아이디어였다.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되었다고 해도, 자신들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떤 귀족들이었다. 이번 반역으로 인해 오히려 가문이 일어난 곳도 있지만, 겨우 목숨을 부지한 가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주들에게는 루이스가 적절하게 처리를 할 테지만, 불안이라는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불안이 유지되면 결국 제국에도 황실에도 좋을 것이 없었다.

올리비아는 이번 티파티 때 영애들의 불안을 씻어 줄 겸, 정신이 쏙 빠지게 선물을 해 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올리비아의 제안대로 마담 세실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최근 유행하는 드레스부터 주얼리까지 특별 제작해서 만들었다.

분명 영애들도 내가 세실 의상실에서 특별 제작 주문을 했다는 소문은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자신들의 것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놀라고 감동받았을 테고.

“영애들의 취향에 맞춰 선물을 골랐는데, 맘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당연히 마음에 들고말고요.”

“황녀 전하께서 주시는 건데 무엇이든 최고의 선물입니다.”

사실 마담 세실 의상실의 물건이라는 데서부터 이미 선물의 품질을 보장받은 후였다. 그러니 진심인 얼굴로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였다.

“저 이 드레스 정말 가지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목걸이가 너무 예쁘네요.”

“설마, 저희 취향을 알고 주신 건가요.”

영애들의 질문에 나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충분한 긍정의 표시. 자신들을 향한 세심한 배려에 마음이 흔들릴 것이다.

사실, 그녀들의 취향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올리비아였다. 그녀는 사교계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만큼 영애들의 취향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지난 티파티 때부터 마담 세실 의상실에서 구입한 물건들이 한가득이었다.

‘적절한 타이밍이었지.’

이 사실을 듣고 기뻐하게 될 마담 세실은 앞으로도 내게 호의적일 것이다. 모든 조건이 충족된 선물이었다.

이번 티파티에서 그저 영애들에게 새로 생긴 변화에 불만이 생기지 않도록 환심을 사는 것이 중요했다. 개개인으로 따졌을 때 별다른 힘이 없어도, 그녀들이 서로 모이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올리비아의 생각이었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을 때였다. 중요한 연회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 루이스가 공식적인 행사도 아닌 티파티에 갑자기 나타났다.

“즐거운 시간들 보내고 있나.”

루이스의 등장에 영애들이 모두 일어나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폐하를 뵙습니다.”

“폐하를 뵙습니다.”

루이스는 시큰둥하긴 하지만 영애들의 인사를 일일이 받아 주었다. 영애들이 어느 가문의 누구인지도 전혀 알지 못할 텐데.

“폐하. 갑자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뭐. 이러는 거라던데.”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한 내 질문에 루이스는 알 수 없는 말을 대답이라고 하면서 한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올리비아.’

그곳에는 또 다른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올리비아가 있었다. 아무래도 루이스가 방문한 배경에는 올리비아의 공작이 있었던 것 같다.

“혹시 불편한 거라도 있나.”

“그럴 리가요. 모든 것이 편안하고 좋습니다.”

루이스의 성의 없는 질문에도 영애들은 입가에 방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런데 루이스의 방문에 깜짝 놀란 영애들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루이스는 영애들의 기피 대상 중 한 명이었다. 폭군에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황제의 옆자리. 아무리 황후라는 자리라도 공포에 평생을 떨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왜. 인기가 많아 보이지?’

그런데 지금 이 반응은 아무리 봐도 루이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그사이에 루이스의 평판이 달라지기라도 한 걸까.

어느새 영애들에게 잡혀 루이스가 티파티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뿌리치고 나가고 싶어 하는 게 역력해 보였지만, 대체 올리비아에게 무슨 얘기를 들은 건지 꾹 참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루이스를 보면 자리를 피하기 바빴던 영애들도 화사한 얼굴로 웃음을 뿌리기 바빴다.

“에밀, 이게 어떻게 된 반응이야.”

내 물음에 에밀이 내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모르셨나요, 최근 폐하의 모습은 폭군이라고 할 수 없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답니다.”

“예전보다는 아니지만, 아직 여전한데?”

“물론 가까이에서 보는 저희에게는 그럴 수 있지만, 소문이란 건 그렇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요즘 백성들 사이에서 폐하에 대한 미담이 돌고 있거든요.”

“미담?”

“네. 미담이요.”

루이스에게 미담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있었나. 그게 뭐지?

순간, 갑자기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미담이라는 게 설마.”

내가 설마 하는 얼굴을 하자 에밀이 기분 좋은 얼굴로 답했다.

“네. 이전에 폐하께서 황궁 밖을 나오셨을 때 구해 주었던 소녀입니다.”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야?”

루이스의 변덕으로 겨우 건진 미담이었다. 물론, 내가 소문을 내라고 지시했던 일이기는 하지만…그 소문을 순진하게 그대로 믿고 루이스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는 건가. 그 정도로 순진할 리가 없는데.

눈에 뻔히 보이는 짓을 하는 것 같아도 그 속에는 뭐가 있을지 모르는 게 귀족이었다. 가문을 위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연기하는 것이 그들이었다. 고작 말 몇 마디 옮긴 것으로 처세를 바꿀 거였다면, 폭군이라는 악명이든 살인귀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문이 돌더라도 몸을 사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루이스를 정말로 무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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