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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113화 (113/124)

?제113화. 14장.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15)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

‘우는 것 같은데.’

올리비아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루이스를 추궁하지 않았다. 어느새 자신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으니까.

“황자가 좋으십니까. 황녀가 좋으십니까.”

루이스가 아직은 전혀 티가 날 리 없는 올리비아의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 배에서 나오는 거라면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이미 이 공간 안에는 루이스와 올리비아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있어도 없는 존재였다. 황궁 주치의는 두 사람의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존재감 없이 조용히 물러났다. 시종장과 시녀장을 비롯한 사용인들 역시 조용히 물러났다.

루이스는 그 이후에도 한참을 올리비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올리비아의 머리카락이 아래로 내려와 얼굴을 가리자,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 올려서 또다시 한참을 바라보았다.

* * *

에밀이 황궁에서 온 서신을 가져왔다.

“황궁으로부터 서신이 왔습니다. 급한 것이니 바로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급한 서신…?”

그게 뭐지, 하면서 나는 서신을 확인했다. 봉투를 보니 올리비아에게서 온 서신이었다. 나는 곧바로 봉투를 뜯어 안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급한 서신이란 전달처럼 안에는 단 한 줄밖에 없었다.

[오늘 꼭 와 줬으면 좋겠어. 꼭이야.]

황궁에 와 달라는 말이었다. 왜 와 달라는 말도, 무슨 일이 있다는 말도 없었다. 하다못해 그냥 가끔 변덕 부리듯이 오는 놀러 오라는 서신도 아니었다.

‘무슨 일이지?’

일단 무슨 일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황궁에 가야 했다. 나는 곧바로 에밀에게 황궁에 갈 준비를 하라고 전달했다.

내가 황궁에 도착하자마자 올리비아와 루이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겼다.

“무슨 일 있어?”

서신을 보낸 이유를 묻는 나에게 올리비아는 대뜸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에일린, 너무 놀라지 마.”

놀라지 말라니. 무슨 일이지? 옆에 있는 루이스를 보니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왠지 점점 불안해졌다.

“무슨 일인데 그래…?”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일부러 와 달라고 서신을 보내고 올리비아와 루이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중요한 일인 것이 분명했다. 그게 나쁜 일은 아니어야 하는데. 나는 불안한 얼굴로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에일린…….”

올리비아는 계속해서 뜸을 들였다. 그녀가 말을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나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냐고 따져 묻고 싶을 정도였다.

“나…….”

말 한마디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별일 아니겠지. 그렇게 빌면서 올리비아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올리비아를 독촉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기다리다가 속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그러자 올리비아의 볼을 붉게 물들었다. 그녀가 쑥스러운 듯 말했다.

“임신…했어.”

뭐야, 임신이었구나.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 줄 알았네. 나는 긴장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안심한 내가 말했다.

“…아…임신했구나. 별일…!! …뭐, 임신?!!”

임신이라니!! 눈이 커지고 온 신경이 곤두섰다. 이건 큰일이었다! 내가 걱정한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엄청난 일이었다!

올리비아와 루이스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루이스의 입꼬리가 헤벌쭉하고 늘어나 있었다.

“두 사람에게 아기라니…너무 축하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벅차오름이었다. 물론 이 순간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백 번을 상상했어도 지금 이 순간이 찾아오면 몇 번이고 감격할 것이다.

루이스가 나를 향해 대뜸 말했다.

“네 조카다.”

루이스의 아이이니 나의 조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 조카라니…….’

왠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기쁨은 기쁜 거고, 루이스에게 해 줄 대답은 다른 것이었다.

“폐하의 아이이기도 합니다.”

“그래. 그러니 네 조카다.”

하지만 루이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했다. 나는 루이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체념하듯 대답했다.

“…네. 알아서 잘하겠습니다.”

“그래야지.”

루이스가 이제야 만족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올리비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루이스는 그 말을 듣고 싶어서 내게 같은 말을 반복한 것이었다.

“올리비아. 다시 한번 축하해.”

“고마워.”

나는 저택으로 돌아갈 때까지 올리비아에게 몇 번이고 다시 축하했다. 몇 번을 해도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기뻤다.

‘이제 정말로 한 가족이 되었구나.’

황제, 황후를 떠나서 루이스와 올리비아, 그리고 아이. 완벽한 한 가정을 이루는 일이었다. 과거에도 회귀한 후에도 내가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안정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정말 잘됐어….’

이제 정말로 모든 것이 완성된 기분이 들었다.

* * *

올리비아가 임신을 했다. 이 사실은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제국 전역에 퍼졌다. 제국 제일의 경사인 만큼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다.

루이스와 올리비아가 혼인하고 수년. 금슬이 좋은 것과는 달리, 이상할 정도로 회임 소식이 없었다. 루이스의 눈치를 보느라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후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었고 그것을 올리비아 역시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들린 것이다. 모두가 기뻐하고 축복했으며, 건강하게 순산하도록 기원했다.

하지만 열 달 동안 새로운 생명을 품에 안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초보 부모는 당연한 증상에도 큰일이 벌어진 것처럼 반응했다.

“우읍…!”

올리비아가 헛구역질 한 번이라도 하면 난리가 났다. 루이스는 올리비아가 하는 말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할 정도로 꼼짝도 못 했다. 올리비아의 입덧이 심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점점 말라가는 것도 루이스의 걱정을 증폭시키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입덧이 끝나자마자 그동안 못 먹은 것들을 보충이라도 할 기세로 먹덧이 시작되었다. 올리비아는 끊임없이 먹을 것이 생각난다 했고, 그럴 때면 루이스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올리비아가 먹을 수 있게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 올리비아의 배가 점점 불러 왔다.

15장. 아직 끝나지 않았다 (1)

어느새 올리비아의 배가 볼록 튀어나왔다.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점점 몸이 무거워지면서 올리비아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점점 피곤해하고 움직일 때마다 힘들어했다.

“휴식을 취하시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황궁 주치의는 휴식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올리비아는 황궁에서 마음껏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몸만 신경 쓰고 푹 쉬라고 해도, 올리비아는 책임감 때문에 쉽게 일을 내려놓지 못했다.

“몸 생각만 하라니까.”

“무리 가지 않게 하고 있어요.”

올리비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의 몸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황궁 주치의가 당부했다.

“억지로라도 쉬게 하셔야 합니다.”

루이스는 그런 올리비아에게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쉴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황궁에 있는 한, 마음 편하게 쉬지 못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 끝에 루이스가 올리비아에게 제안했다.

“잠시 쉬러 별궁에 다녀올까.”

“별궁이요…?”

올리비아는 순간 얼굴이 밝아지는 것 같았지만, 곧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황궁을 비우면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곧 올리비아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괜찮다며 대답할 것 같았다.

그녀가 거절하기 전에 루이스가 다시 한번 말했다.

“수도 근처에 별궁이 하나 있는데, 거리도 가까워서 급한 일이 생기면 나라도 바로 황궁에 돌아올 수 있어.”

“그…래요…?”

올리비아가 솔깃해했다.

“게다가 별궁 주위에는 숲이라서 사람도 없고 쉬기 딱 좋아. 나도 이전에 몇 번 가 봤는데, 온천도 있고 괜찮았어.”

올리비아가 살짝 흔들리는 것 같자, 루이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설득했다.

“올리비아. 일단 몸이 편안해야지. 그대 아이도 쉬게 해 줘야 하지 않겠어.”

“그럼…그럴까요.”

올리비아가 완전히 넘어왔다. 결국, 그녀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며칠 이내에 수도 근처에 있는 별궁으로 향하기로 했다. 휴식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소수의 인원만 데리고 가기로 했다. 마차로 이동해도 반나절이면 가는 거리였다.

황제와 황후의 외출이었다. 그것도 임신을 한 황후의 휴식을 위한. 두 사람의 외출 준비에 문제가 없도록 황궁 사람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 *

오랜만에 황궁에 방문했더니, 올리비아가 나를 보자마자 별궁 얘기를 꺼냈다.

“폐하께서도 걱정하시니까 다녀올까 해.”

“별궁에 가는 것도 분명 좋을 거야.”

내가 보기에도 올리비아의 얼굴에 눈에 띄게 좋지 않았다. 임신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부풀어 오른 배를 제외하고 다른 곳은 오히려 살이 더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거기서 마음 편하게 푹 쉬고 와.”

“에일린, 같이 가자.”

“어딜…?”

“별궁에 같이 가자.”

올리비아는 별궁으로 가기 전까지 내게 계속 제안했다.

“나는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괜히 눈치 없이 같이 갔다가 루이스가 무슨 눈초리로 나를 볼지 눈에 선했다.

“같이 가지…가고 싶은데…….”

“폐하랑 잘 쉬다 와.”

“오랜만에 같이 시간도 보내면 좋을 텐데…….”

그런데 올리비아는 임신해서 그런지 평소와는 다르게 끈질기게 나를 붙잡았다. 아쉬운 티를 가감 없이 내보이면서.

“정말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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