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수상한 사건2021.04.02.
아멜리아는 곧장 응접실로 향했다. 뒤따르는 이사나와 이클리트의 표정도 안 좋았다. 특히, 이클리트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다. 아멜리아는 마른 숨을 삼키고 또 삼켰다. 단순히 산짐승이 말썽을 부리는 줄 알았는데. 그로 인해 사람이 죽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응접실로 들어서자, 마을 촌장과 몇몇 소작인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주님.”
그들은 곧장 아멜리아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예를 다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손사래를 치며 짧게 말했다.
“사안이 급하니, 인사는 생략하고. 일이 어떻게 됐는지 정확하게 보고하라.”
아멜리아의 말에 촌장은 조금은 안도하는 표정으로 그녀 앞에 나섰다. 사실 공작가로 오는 내내, 별일 아니라고 치부될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저는 서쪽 마을 촌장, 아넥입니다. 다른 곳은 모르겠고 얼마 전부터 저희 마을 피해가 가장 심했습니다.”
피오레의 과일은 대부분 서쪽 마을에서 재배되어 시장으로 풀렸다. 아마 피오레 근방 영지에도 이 서쪽 마을의 과일이 유통될 것이다. 그만큼 과일을 키우기 적합한 토질과 환경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사실 과일은 피해가 그렇게 크지 않는데, 과수원에서 키우던 가축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짐승이 과수원을 파헤치다가 가축들을 사냥했구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사람이 죽었다는 건 무슨 말인가?”
“죽은 건 아니고, 정확히 말하면 행방불명입니다.”
“행방불명?”
가만히 듣고 있던 이사나가 나섰다. 그러자 소작인 중 한 사람이 이사나를 향해 말했다.
“슈란이라고 얼마 전 뽑은 일꾼인데, 혈흔과 함께 끌려간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후 사라졌고요.”
소작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이들도 웅성거리며 말을 보탰다.
“분명 그 짐승이 물고 간 겁니다.”
“죽었을 거야.”
“당연하지. 살아 있으면 왜 지금까지 안 나타났겠어.”
“사람 맛을 본 짐승은 반드시 다시 오기 마련입니다.”
“다들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피해가 일어나기 전에, 사냥해야 합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아멜리아는 당혹스러웠다. 짐승이 산에서 자기들끼리 움직이긴 해도, 한 번도 민가에 내려와서 습격한 적은 없었는데. 북부도 아닌 남부에서. 먹이가 풍족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촌장은 아멜리아에게 간곡하게 요청했다.
“대대적으로 사냥을 하려면, 피오레 공작가의 숲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가주님, 부디 허가를 내주십시오.”
잠시 고민하던 아멜리아는 다른 답을 내놓았다.
“공작가가 돕겠다.”
“예? 도우신다는 건…….”
“어쩌면 그 슈란이라는 사람이 살았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그 짐승이 한두 마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 저격대가 함께할 것이다.”
아멜리아의 답변에 사람들은 눈을 크게 떴다. 단순히 허가만을 바랐는데, 직접 나서서 도와줄 줄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그래 주시면 저희는 정말 감사하지만…….”
“당연히 공작가에서 나설 일이다. 이사나 경.”
아멜리아가 이사나를 부르자, 그는 고개를 숙였다.
“가주의 명이 그러하시다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주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들은 슈란의 초상화를 그려준 뒤, 아멜리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서 응접실에서 물러났다. 아멜리아는 이사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직접 나서고 싶어도, 아직 피오레 지형을 잘 몰라서. 그나마 잘 아는 저격대가 나서는 게 맞을 것 같다고 판단했는데.”
“판단하신 게 맞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도 직접 나서신 게 맞으시고요. 더 나서진 마십시오. 그럼 제가 말릴 겁니다.”
“근데 원래 피오레 짐승들은 사나워요?”
“사실 피오레 영지는 산짐승이 별로 없습니다. 험한 산지도 별로 없고. 그래서 서쪽 마을에 과수원이 발달한 것이고요. 그래서 내색하진 않았지만, 많이 이상하긴 합니다.”
“역시 그렇군요.”
“하지만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제대로 수색대를 짜서 움직인 뒤, 보고 드리겠습니다.”
아멜리아는 초상화를 보며 말했다.
“부탁해요. 되도록 이 사람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으니까.”
“당연합니다.”
이사나까지 응접실을 나섰고, 이클리트와 단둘이 남겨진 아멜리아는 여전히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무사히 살아 돌아와야 할 텐데. 너무 큰일은 아니길 바라는데요.”
“…….”
하지만 이클리트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멜리아는 그제야 너무 조용한 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대공 전하?”
이클리트는 잠시 멈칫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잘 될 거니까.”
“아, 그렇겠죠. 큰일 아니길 바라요.”
그답지 않게 무척 어색하게 말을 돌렸고, 이번엔 아멜리아도 단번에 눈치챘다. 그의 표정이 묘하게 어둡다는 걸.
‘뭐지? 무슨 일이지? 이 일 때문인가? 이번 일에 대공 전하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래서. 이사나 경에게 배우실 겁니까?”
“네?”
이클리트는 화제를 완전히 돌리면서, 진심으로 물었다.
“저격술 말입니다.”
“그 얘기도 마무리 못 했네요. 사실 이사나 경의 말도 일리가 있긴 해요.”
아멜리아의 대답 하나에 이클리트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곧장 눈꼬리가 축 처지며, 입매가 뿌루퉁하게 굳어진 것. 대놓고 말리진 못하겠지만,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대공 전하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요.”
“무슨?”
“단장의 시간을 개인적으로 막 빼앗으면 안 되죠. 오늘 일로도 바쁠 테고. 차라리 다른 티어에게 부탁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뚱해 있던 이클리트의 표정이 다시 한결 평온하게 풀렸다. 아주 시시각각 변하는 이클리트의 표정 변화가 아멜리아는 몹시 신기했다.
‘이사나 경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나? 저렇게 대놓고 안도하다니 말이야.’
물론 자신도 아직 이사나 경이 썩 편한 건 아니지만.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시선이 너무 뜨거운 걸 느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신기해서요.”
“무엇이?”
“대공 전하 말이에요.”
뜻밖의 말에 이클리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이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무시무시한 소문을 낸 거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대공 전하의 표정이 너무 잘 보이니까요.”
아멜리아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하자, 이번엔 그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잘, 보인다고요?”
“예. 설마 모르셨어요? 지금도 표정이 너무 휙휙 바뀌어서 신기했는데. 이사나 경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세요? 표정이 엄청 험악했었는데, 내가 안 배우겠다고 하니까 금방 표정이 풀어졌거든요.”
“…….”
“그게 아니라도 가끔 웃기도 하고. 싫은 것도, 어색한 것도 죄다 눈에 보이고.”
“…….”
“그러니까 사실은 의외로 마음도 약하고, 엄청 솔직해서. 그래서 그게 약점이라고 생각해서 숨기고 있는 거 아니에요? 남들은 전혀 알지 못하게?”
조금은 당황해하던 이클리트의 입꼬리가 다시 스르르 풀렸다. 그 모습을 아멜리아는 놓치지 않았다.
“어, 지금도! 내 말 맞죠?”
“그래서 지금 제가 무슨 생각하는 것 같습니까?”
“나한테 다 들켜서 막 부끄럽고, 쑥스러운 거 아니에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대는.”
“네?”
아멜리아가 의아해하며 눈을 깜빡이자, 이클리트는 혼잣말하듯 읊조렸다.
“그래서 조금은 다행이다, 그런 생각.”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내가 마음이 약하고 솔직하다니. 당연히 남들은 모를 겁니다. 심지어 카힐로도. 내가 웃고, 풀어지고, 솔직해지는 건 전부 부인만 아는 거니까. 왜냐면.”
낯익은 온도를 품은 목소리가 귓가에 간지럽게 닿았다.
“그대에게만 약한 거니까.”
아멜리아는 살짝 벌어졌던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술렁이는 심장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았다. 이번엔 아픈 게 아니라, 너무 크게 뛰어서. 일순, 마미의 말이 말도 안 되게 떠오른다.
‘딱 봐도 그건 좋아하는 거예요. 좋아하지 않으면 그럴 수가 없는 거죠.’
아니야. 갑자기 이게 왜 생각나는 거야!
“그래서 부인은 이사나 경이 마음에 드는 겁니까?”
이클리트는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지만, 말끝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저, 저요? 전. 아직은 모르겠어요. 그래도 알아가야겠죠. 앞으로 함께해야 하니까.”
아멜리아의 대답에 이클리트는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좋은 자였으면 하네요.”
“뭐에요. 이사나 경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요?”
“나는 안 좋아하지만. 부인 곁에 이상한 녀석이 있는 건 더 싫으니까. 이상할 거면 차라리 빨리. 그리고 확실히 이상해서.”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네?”
“아닙니다.”
더없이 살벌했던 진심을 숨긴 채, 이클리트는 웃었다. 이사나 블란. 조금 더 예의주시할 필요는 있다. 일단 저격대 단장이고, 그녀를 지킬 사람이니. 물론 그가 나설 필요 없이 자신이 확실하게 그녀의 곁을 지킬 테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위험한 자를 그녀의 곁에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아, 그리고 이사나 경이 절 가르쳐준다고 해서 하는 말인데.”
아멜리아가 머뭇거리자, 이클리트는 부드럽게 물었다.
“뭘 말입니까?”
“예전에 제가 대공 전하께 훈련, 조금 더 도와달라고 한 거 말이에요.”
“계속 도와드리겠습니다.”
“진짜요? 제가 귀찮게 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사실 체력은 좀 더 기르고 싶었거든요.”
“괜찮습니다. 뭐든 같이 하는 거면.”
이클리트가 더 기분 좋게 웃자, 아멜리아 역시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그는 감정에 솔직하다. 하지만 정말 자신에게만 그런 거라면.
‘괜히, 기분 좋아.’
또다시 심장이 간지럽게 쿵쿵거리고 있었다. *** 응접실을 나온 이사나는 곧장 칼렌과 움직였다.
“최대한 빨리 수색대를 모집해. 오늘 당장 움직여야 하니까. 내일 아침에 가주님께 보고드릴 수 있도록 하고.”
“그럼 밖으로 나가 있는 티어들도 몇몇 부를까요?”
칼렌의 말에 이사나는 살짝 망설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저택에 있는 티어들로 모집해. 너무 많은 인원까진 필요 없다. 내가 직접 움직일 테니까.”
“단장님이요?”
“가주님의 첫 명령인데, 제대로 임무를 마쳐야지. 게다가 이상하긴 하니까.”
칼렌은 이사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산짐승이 그런 짓을 하다니…… 북부도 아니고 말이에요.”
기본적으로 남부보단 북부의 짐승이 사나웠다. 워낙 척박한 곳이니, 인간만큼이나 짐승도 치열하게 생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볍게 여기지 마. 실종자가 살아 있을 가능성을 절대 배제해선 안 돼. 살아 있다면 더더욱 오늘 안에 찾아야 하니…….”
그때, 이사나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순식간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품으로 웬 여자가 뚝 떨어졌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여자. 하지만 이사나는 당황하지 않고 여자를 내려주려는데, 오히려 여자가 이사나를 세게 밀치며 거리를 넓혔다. 너무 황당한 일에 굳어졌던 칼렌은 그제야 경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넌 누구냐!”
여자는 말없이 이사나와 칼렌을 노려보았다. 이사나는 몹시 흥미로운 눈빛으로 여자를 응시했다. 지나치게 단정한 칼단발만큼이나 온기 한 점 없는 무표정한 얼굴. 차갑게 치켜뜬 눈매. 구릿빛 피부에서 느껴지는 탄탄한 몸. 무서울 정도로 날렵한 움직임과 바짝 오른 경계심. 특히,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마치 사나운 흑표범 한 마리를 보는 것 같았다.
그때, 이 여자를 쫓아온 경비병의 목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찾았다! 저 도둑년이 간이 배 밖으로…… 다, 단장님!”
경비병들은 이사나의 모습에 흠칫하며 굳어졌다.
“오호. 감히 공작가에 도둑이 들었는데, 경비병이 놓쳐서 찾고 있었다? 그것도 고작 저 여자 하나 잡으려고 열 명이나 우르르?”
이사나가 살 떨리는 목소리로 웃자, 경비병들은 곧장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닙니다! 지금 바로 잡으려고 한 겁니다! 당장 데리고 나가서…….”
경비병이 그녀를 에워싸려고 했지만, 그 여자는 순식간에 그들의 포위망을 뚫고서 이사나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단장님!”
칼렌이 이사나를 지키려 했으나, 이사나가 저지하며 오히려 제 앞에 선 이 간 큰 여자를 마주했다.
“도둑이 아예 잡아가라고 내 앞으로 친히 온 건가? 더는 도망칠 구석이 없어서?”
“네가 저것들 대장입니까?”
마침내 여자가 공손한 건지, 아닌지 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럼 더럽게 못 알아 처먹는 저것들에게 제대로 말해주십시오. 난 도둑이 아니고 당당히 손님으로 온 거라고.”
몹시 신랄하고 거친 어조 끝에 나온 말에 이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손님?”
“대공 전하의 손님이라고. 북부에서 왔다는데, 신분을 확인해줄 게 없습니다!”
경비병의 말에 이사나는 더더욱 의아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공 전하의 손님?”
여자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신분증은?”
“그걸 깜빡했습니다. 워낙 상황이 급하고. 그런 거 잘 안 들고 다니기도 하고. 하지만 대공 전하를 만나게 해주면 모든 게 해결될 겁니다.”
뭐 하나 증명할 것도 없으면서, 엄청 뻔뻔하고 당당했다. 근데 이사나는 묘하게 이 당당함에 믿음이 갔다.
“음. 그래도 절차라는 게 있어서, 신분증이 없으면 저희도 곤란해서 말입니다.”
이사나가 태도를 바꿔서는 싱긋 웃으며 말하자, 여자는 대놓고 차가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귀찮게 빡빡하네, 남부 놈들.”
“…….”
“좋습니다. 내 말이 거짓말일 경우.”
여자가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러자 주변이 다들 긴장했다. 오직 그녀와 이사나를 제외하고. 그녀는 이사나에게 칼자루를 쥐여주었다.
“이걸로 죽이십시오, 나를.”
“내가?”
“그쪽이 대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죽어도 대장 손에 죽어야지. 저런 나약한 조무래기 손에 안 죽습니다. 고작 좀 뛰었다고 저렇게 숨이 가빠져서야. 이런 칼 하나에 겁먹는 것도 우습고.”
여자의 말에 한 경비병이 발끈했다.
“고작? 고작이라니. 벌써 한 시간 넘게!”
“야!”
다른 경비경이 얼른 입을 막았으나, 이미 다 들어버린 이사나는 기가 막혔다. 이 여자를 한 시간 동안이나 쫓았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 여자는 이렇게 멀쩡하고?
‘정말 정체가 뭐지? 대공 전하의 손님이 맞는 건가? 하지만 보고 들은 게 없는데…….’
하긴. 클리오 대공이 이런 보고를 할 사람은 아니지만.
“당신이 정말 도둑이면 내가 어떻게 당신을 죽입니까? 다시 제 발로 와줄 겁니까?”
이사나의 말에 여자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도둑이면 그쪽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날 잡아서 죽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공작가를 지키는 대장이라며. 왜? 그 정도도 못 합니까? 당신, 엄청 약한 겁니까?”
이젠 도발까지 한다. 이사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었다. 아니, 요즘 공작가가 아주 재미있다.
“그건 그러네. 하지만 이 검을 쓸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돌려드리죠.”
이사나는 여자에게 단검을 다시 돌려주며 경비병들에게 말했다.
“이분의 신원은 내가 보장한다. 그러니 다들 돌아가라.”
“하지만 단장님!”
“아무리 그래도 확인이 필요한데!”
“단장인 내가 보장한다는 소리, 못 들었나? 대공 전하의 손님이면 우리 가문의 손님이다. 경비가 흐트러진 것도 기함할 노릇인데, 무례하기까지 한 건 더욱 용서 못 한다.”
이사나가 웃으며 말했지만, 목소리가 살벌했다. 결국 저들이 놓친 거니까.
“차후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내 이름을 걸고 책임질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
박력 넘치는 이사나의 모습에 그녀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경비병은 입을 꾹 다물고서 걸음을 돌렸다. 칼렌은 그 모습에 고개를 흔들었다.
‘저것들 나중에 훈련으로 다 죽어 나가겠구나.’
상황을 정리하고, 이사나는 그녀를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
“이제 걱정 말고 가시죠. 길을 잃으신 것 같은데, 모셔다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방향만 알면 찾아갈 수 있습니다. 대공 전하께선 제가 오시는 걸 아시니까요.”
“방향은 저쪽입니다.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그녀는 가려고 하는 이사나를 붙잡았다.
“근데 정말 이 단검, 필요 없습니까? 대체 뭘 보고 자기 이름까지 걸고 날 책임진다는 겁니까?”
“그냥 제 느낌?”
“느낌?”
“첫눈에 본 느낌.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고. 나쁜 사람도 아닌 것 같아서요.”
이사나가 미소를 띠며 말하자, 그녀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속삭였다.
“그건 즉, 첫눈에 나한테 반했다는 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처음으로 이사나가 살짝 흔들렸다.
“……예?”
*** 이클리트는 뒤늦게 자신에게 도착한 편지를 읽었다.
“카마리가 벌써 도착했다는 건가?”
그런데 왜 아직까지 조용한 거지? 그는 불길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제발. 누구든 카마리에게 너무 친절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특히 남자가. 또 말도 안 되는 착각하면 곤란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