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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불안의 씨앗 (80/199)

80화. 불안의 씨앗2021.10.08.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와 종종 붙어서 승마를 배웠고,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 그녀의 승마술이 늘어난 것과 동시에.

16553723198701.jpg“이제 진짜 대공 전하와 가주님의 냉전이 끝났나 봐.”

16553723198701.jpg“당연하지. 매일 같이 말을 타시잖아. 그러다가 손도 잡으시고, 안기도 하시고.”

16553723198701.jpg“어머머머머!”

하녀들과 시종들도 더는 아멜리아와 이클리트의 사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물론 마미는 여전히 두 분 사이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16553723198715.jpg‘남들은 다 속여도 난 못 속이지.’

두 분은 지금 진짜 계약 관계를 선택하신 거다. 여전히 각방을 쓰고 계셨고, 의도적으로 같이 걸을 때도 살짝 거리를 뒀다. 서로에게 지나치게 정중하고 예의를 갖췄는데, 남들이 보기엔 더없이 다정하고 이상적인 부부라고 볼 테지만.

16553723198715.jpg‘내가 볼 땐 하나부터 열까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계산하는 것처럼 보여.’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런 계산은 하지 않는다. 저렇게 승마 시간을 정해서 얼굴 보는 일도 없을 테고. 예전처럼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싶어 할 테니까. 하지만 마미는 두 사람의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

16553723198715.jpg‘애초에 목적이 있는 결혼이었어. 가주님은 복수를, 대공 전하는 황위를. 두 분의 결정이 그러하다면, 그저 조용히 지켜보는 게 내 일이야.’

생각은 그렇게 정리했지만, 그래도 마미는 한숨을 쉬었다. 지난번, 아멜리아가 서럽게 울었던 모습이 자꾸만 뇌리에 남아서.

16553723198715.jpg‘행복해지시길 바라는데…….’

그때, 다른 하녀들의 수다가 거슬리게 박혔다.

16553723198701.jpg“세상에. 아발란 남작가 영애라면, 티아 영애 말이야?”

16553723198701.jpg“맞아. 호위 기사랑 야반도주했데.”

16553723198701.jpg“어머. 티아 영애는 이미 약혼자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 누군가가 양다리를…….”

16553723198701.jpg“남작가 난리 나겠네.”

16553723198715.jpg“거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마미가 엄한 목소리로 끼어들자, 하녀들이 흠칫하며 고개를 숙였다.

16553723198701.jpg“저, 저기 그게…….”

16553723198715.jpg“피오레 공작가에서 그런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입과 입으로 옮기지 마라. 공작가의 위엄이 떨어질 수 있어. 명심해.”

16553723198701.jpg“예, 죄송합니다.”

하녀들은 우르르 사라졌고, 마미는 그녀들의 모습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하녀들이었다. 원래 공작가의 하녀는 엄격하게 심사하여 들어오지만, 마미가 모르는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16553723198715.jpg‘게다가 저런 소문은 막으려고 해도 잘 막아지지 않지.’

귀족가 추문은 언제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였으니까.

16553723198715.jpg“그래도 하녀들 교육을 더 단단히 하라고 일러둬야겠어.”

적어도 피오레에서는 저런 소문이 돌면 곤란하니까 말이다. *** 아멜리아는 루베르가 영지로 들어오는 날짜를 정확하게 파악한 뒤, 그 시기에 맞혀서 필요한 물품 목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틈틈이 피오레 영지도 살피면서, 승마도 배워야 하기에 하루하루가 바쁘기만 했다.

16553723227082.jpg‘하지만 차라리 정신없이 바쁜 게 나은 것 같아.’

계속 일만 하다 보면, 그분에 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덜 할 수 있었으니까. 그때, 노크와 함께 처음 보는 하녀가 들어왔다.

16553723198701.jpg“안녕하세요, 가주님. 이번에 우편물 담당으로 들어온 팔러 메이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16553723227082.jpg“나도 잘 부탁해.”

그러고 보니 이번 케이트의 보고서에서 새 메이드들을 고용했다는 내용을 본 적 있었다.

16553723198701.jpg“이건 가주님께 도착한 선물입니다.”

16553723227082.jpg“선물? 탄일 선물이 아직도 들어오는 거야?”

이미 지난번, 어마어마한 물량의 탄일 선물을 받았다. 케이트가 예고했던 것처럼, 온갖 귀족가에서 보내왔던 것. 그 선물들은 피오레의 위엄이자, 현 가주의 권력이 되기에 아멜리아는 일단은 창고에 다 받아 놓은 상태였다.

16553723227082.jpg“그런데 왜 이것만 굳이 나한테 가져온 거지?”

하녀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16553723198701.jpg“이건 황궁에서 전달됐습니다. 다른 선물과는 다르죠, 가주님.”

아멜리아는 황궁이라는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황궁에서 보낼 사람은 오직 한 사람.

16553723198701.jpg“바스티얀 대공 전하께서 보내셨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하녀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흥분 섞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16553723198701.jpg“저도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황궁에서 바스티얀 대공 전하께 제비꽃도 엄청나게 받으셨다면서요? 홀 가득 제비꽃으로 채워 주셨다던데. 세상에. 역시 바스티얀 대공 전하세요. 너무 로맨틱하시잖아요. 모든 여인의 로망 아닌가요? 정말 실물도 그렇게 멋지신가요? 네?”

16553723227082.jpg“너, 이름이 뭐지?”

순간,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지면서 하녀는 그제야 움찔하며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16553723198701.jpg“레, 레베카라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 이름을 말씀드리지 않…….”

16553723227082.jpg“이름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계속 네 이름을 외울 필요가 없어 보이거든.”

16553723198701.jpg“…….”

16553723227082.jpg“신입이라고 했지?”

16553723198701.jpg“네.”

16553723227082.jpg“교육 시간에, 똑바로 듣도록 해. 실수하지 않도록.”

16553723198701.jpg“가, 가주님…….”

16553723227082.jpg“메이드로서 가장 중요한 건 입이 무거워야 해. 한마디, 한마디에 네 목숨이 달려 있어. 그걸 명심하지 못하면 귀족가 메이드로 살아남기 힘들 거야.”

가르치듯 말했으나, 결국 입조심 하라는 소리였다.

16553723198701.jpg“죄송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16553723227082.jpg“이만 나가 봐.”

16553723198701.jpg“네.”

레베카는 서둘러 집무실을 나와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툴툴거렸다.

16553723198701.jpg“뭐야. 소문이 거짓말은 아니었네. 의붓동생인 체자렛 영애와도 사이가 안 좋다고 하고. 은근 악녀라더니, 과장이 아니었어. 흥!”

그녀가 미처 다 닫지 못한 문을 닫으려고 손을 뻗은 순간, 뜻밖의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췄다. 홀로 남겨진 아멜리아는 그제야 제 손에 닿아 있는 상자를 거슬리게 쳐다보았다.

16553723227082.jpg“또 이런 미친 짓을.”

아멜리아는 곧장 에드조프가 준 선물을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상자에 힘을 준 순간, 뚜껑이 저절로 달칵하며 열렸다.

16553723227082.jpg“뭐야, 이건?”

이내 흘러나오는 에드조프의 목소리.  

16553723319997.jpg<이보다 더한 걸 줄 수 있는 남자가 아니면 마음을 허락하지 마. 난 너에게 모든 걸 줄 수 있어, 아멜리아. 생일 축하해.>

16553723227082.jpg“하…….”

상자에 담긴 것은 커다란 녹색 보석이 박힌 반지였다. 마치 그녀의 녹안처럼 몹시 반짝거리고 있었다.

16553723227082.jpg“아주 가지가지 하는군.”

반지도 비싸 보이는데, 이 반지를 담은 상자가 더 어마어마했다. 마법 도구였으니까. 그것도 그녀에게만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치품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조차 끔찍한 흔적이었다. 상대를 잘 알아야 만들 수 있는 물건이다. 에드조프는 계속해서 그녀가 제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16553723227082.jpg‘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이런 식으로 과시하면서.’

아멜리아는 곧장 반지를 치워냈다. 그러곤 이클리트가 그녀에게 주었던 얼음 목걸이를 소중히 품었다.

16553723227082.jpg‘내겐 이게 가장 소중해. 이것뿐이야.’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 마치 그가 자신에게 주는 마음 같았다. 이보다 더한 걸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16553723227082.jpg‘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마음보다 더 귀하고 특별한 건 없어.’

하지만 그렇기에,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목에 걸 수 없었다. 아멜리아는 그가 준 얼음 목걸이를 서랍에 소중히 넣었다. 더는 이 넘칠 것 같은 사랑을, 꺼내 보일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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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지아는 아젠의 차를 챙겨주면서 은근슬쩍 입을 열었다.

16553723320107.jpg“여보, 봄을 맞이해서 저택을 좀 정리할까, 하는데. 이참에 새 드레스 룸도 갖고 싶고요.”

아젠은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16553723198701.jpg“빈방 아무거나 써.”

16553723320107.jpg“그럼 좋지만, 그래도 드레스 룸이라서 제가 머무는 저택 근처면 좋겠어요.”

아젠은 방해가 되는 목소리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16553723198701.jpg“마음대로 해. 그런 것까지 나한테 일일이 말하는 건가?”

16553723320107.jpg“아니 근데, 아멜리아의 방이랑 맞물려 있어서…….”

후지아는 이제야 본심을 꺼냈다. 그녀는 이 체자렛 백작가에서 아멜리아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고 싶었던 거다. 아젠은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16553723198701.jpg“없애. 어차피 이제 필요 없는 방이야.”

일순 그녀의 표정이 환해졌지만, 그래도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붙잡으며 말했다.

16553723320107.jpg“하지만 그래도 되나요? 아멜리아는 여전히 우리 딸인데. 혹시라도 돌아올 수도 있고…….”

16553723198701.jpg“그럴 일 없어. 그럴 수도 없고.”

16553723320107.jpg“하,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할게요. 그래도 영 마음이 편하지는 않네요.”

후지아는 끝까지 가증스러운 표정을 띠고서, 걸음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이제야 입꼬리를 길게 올리며 차갑게 외쳤다.

16553723320107.jpg“훗, 이제야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겠네. 지금부터 아멜리아 방에 있는 것들 남김없이 없애버려. 죄다 구질구질한 것들이야.”

16553723198701.jpg“예, 마님.”

하녀들은 후지아의 명령대로 아멜리아의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때, 메사리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16553723198701.jpg“아가씨, 시키실 일이 있으세요?”

16553723377536.jpg“아니. 그래도 언니 방을 치우는 건데, 조금 아쉬워서.”

16553723198701.jpg“하긴. 아가씨와 피오레 가주님은 각별하긴 하셨죠. 근데 정말 다 버려도 될까요?”

하녀가 머뭇거리며 말하자, 메사리나도 살짝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16553723377536.jpg“어머니 뜻이 완고하시니까. 혹시 필요한 거나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너희들이 가져가.”

16553723198701.jpg“정말요?”

비록 백작님께 버림받았던 영애였지만, 그래도 귀족 영애였기에 제법 쓸 만한 게 있었다. 하녀들은 여기저기 청소를 하면서 괜찮은 물건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메사리나는 그 모습을 힐끔 보다가 재빨리 아멜리아의 서랍 안에 뭔가를 넣었다. 그리고 하녀 한 명을 불러 세웠다.

16553723377536.jpg“이 서랍장 안도 전부 정리해줘.”

16553723198701.jpg“네, 아가씨.”

하녀는 아무 의심 없이 서랍을 열었다. 그런데 서랍 안에 낯익은 문양이 박힌 손수건이 있었다. 바로 바스티얀 대공가의 문양이었다.

16553723198701.jpg“어머, 이건…….”

너무 귀한 손수건이기에 하녀가 어찌할 바 모르고 있자, 메사리나가 일부러 눈에 띄게 놀란 척하면서 손수건을 소매 안에 숨겼다.

16553723377536.jpg“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16553723198701.jpg“아, 네.”

하녀는 파리해진 메사리나의 안색을 살피며, 다시 서랍에만 시선을 두었다. 미혼 영애의 침실에 남자의 손수건이 있다는 건 몹시 은밀한 표시였다. 절대 평범한 사이가 아님을 의미하는 것. 메사리나는 주변 공기가 어색해짐을 느끼며, 슬며시 걸음을 돌렸다.

16553723377536.jpg“갑자기 볼일이 생각났네. 마저 청소하도록 해.”

16553723198701.jpg“예, 아가씨.”

그렇게 타이밍 좋게 메사리나가 자리를 뜨자, 하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16553723198701.jpg“뭐야. 그 손수건은? 정말 바스티얀 대공 전하의 손수건이 맞는 거야?”

16553723198701.jpg“맞아. 내가 아까 똑똑히 봤어. 게다가 메사리나 아가씨가 몹시 당황해했다고.”

16553723198701.jpg“세상에. 그럼 피오레 가주님이랑 바스티얀 대공 전하 사이에 뭔가가 있었던 건가?”

16553723198701.jpg“바스티얀 대공 전하께서 백작가에 가끔 오시긴 했어도 대부분 백작님이랑 계셨는데.”

16553723198701.jpg“몰래 그렇고 그런 사이였나 봐. 그러니까 이번 황실 무도회에 바스티얀 대공 전하께서 피오레 가주님에게 제비꽃도 엄청 보냈다고 했잖아.”

입방아 찧기 좋은 소재가 나오자, 하녀들은 눈을 반짝였다. 무려 대공과 귀족 영애의 은밀한 러브 스토리니 말이다. 물론 맺어지진 못했지만.

16553723198701.jpg“그럼 바스티얀 대공 전하와 연인 사이였는데, 클리오 대공 전하를 택한 거야? 진짜 너무 이상하다.”

16553723198701.jpg“잠깐. 그럼 뭔가 이상한데? 피오레 가주님과 클리오 대공 전하,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면서. 나 사실 봤었어.”

16553723198701.jpg“뭘?”

16553723198701.jpg“피오레 가주님이 공작가로 가시기 전에, 바스티얀 대공 전하께서 은밀히 가주님께 편지를 보냈었다고. 그땐 별로 의심하지 않았는데.”

16553723198701.jpg“그럼 뭐야.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난 거야?”

16553723198701.jpg“설마, 지금도? 그래서 그 제비꽃을…….”

지나간 러브 스토리가 어쩌면 치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녀들의 위험한 수군거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밖에 서 있던 메사리나는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기 시작하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손수건을 움켜쥐었다.

16553723377536.jpg“어디, 같이 진창이 돼도 그년을 사랑할 수 있을지, 한 번 볼까?”

  *** 아무리 바빠도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와 약속한 승마 시간은 저도 모르게 기다리면서 꼭 비워두었다. 지금도 하던 일을 급하게 멈추고, 승마장으로 가니 이미 이클리트가 백마와 흑마를 다독이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서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젠 이렇게 정해진 시간에만 그를 볼 수 있었다.

16553723227082.jpg‘예전엔 눈 돌리는 곳마다 대공 전하께서 계셨지만.’

마음을 접고, 철저히 남편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이클리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 배려한단 핑계로. 이클리트는 예전처럼 아멜리아의 사적인 시간을 빼앗지 않았다. 아멜리아는 괜한 상념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16553723227082.jpg“대공 전하.”

16553723433553.jpg“부인.”

이클리트는 절로 엷은 미소를 그렸다. 어느 순간, 하루 중 이 순간만을 기다리게 된다. 마치 예전에 편지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것처럼.

16553723433553.jpg‘마음껏, 그녀를 보고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아멜리아는 조금 능숙하게 백마를 다독였다.

16553723227082.jpg“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16553723433553.jpg“부인과 많이 친해졌나 봅니다. 부인의 승마술도 많이 늘었고요.”

16553723227082.jpg“정말요?”

16553723433553.jpg“물론입니다.”

이클리트가 그녀에게 고삐를 내어주자, 아멜리아가 자연스럽게 안장에 올라탔다. 말을 타면 시야가 넓어진다. 처음, 그와 함께 말을 탔을 때도. 그 탁 트인 시야와 정제되지 않고 파고드는 바람이 좋았다. 이클리트 역시 흑마를 타고서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16553723433553.jpg“오늘은 조금 멀리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16553723227082.jpg“음. 그럼 시장으로 가볼까요?”

16553723433553.jpg“마을로 간단 말입니까?”

16553723227082.jpg“아. 그건 너무 먼가? 저한테는 무리겠죠?”

16553723433553.jpg“걱정 말아요. 부인께서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제가 있을 겁니다.”

아멜리아는 자각 없이 파고드는 그의 말에 고삐를 쥔 손이 살짝 떨렸다. 그가 그녀를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것처럼. 아멜리아 역시 무심코 그에게 반응하는 심장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항상 긴장하며 표정 관리를 할 수밖에.

16553723227082.jpg“……그럼 제가 먼저 갈게요.”

아멜리아는 곧장 말의 옆구리를 차서 그대로 내달렸다. 이클리트는 그런 아멜리아의 뒤를 곧장 따라갔다. 자세가 조금 흔들리면, 곧장 이클리트의 손이 그녀의 등 뒤를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몸이 순수하지 못하게 경직되었다.

16553723227082.jpg‘안 돼. 정신 똑바로 차려!’

새삼,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주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부끼는 바람에 그의 향기가 실려 그녀에게 와 닿았다. 계속 앞을 향해 달리던 아멜리아는 조금 속도를 줄여 그와 나란히 달렸다. 어느새 이클리트도 속도를 맞혀 잠시 서로를 응시하다가, 다시금 함께 달렸다.

16553723227082.jpg‘그냥, 같이 달리는 거야. 그러다가 그냥 눈이 마주치는 거고.’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라, 같이 달리다 보니 보게 되는 거야. 그때, 아멜리아가 머뭇거리면서 말을 멈췄다.

16553723433553.jpg“무슨 일 있습니까?”

16553723227082.jpg“말 타고 가는 건 처음이라 그런지, 길이 헷갈리네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16553723433553.jpg“그렇다고 제가 앞장서서 가기엔, 부인의 승마술이 불안합니다.”

16553723227082.jpg“그럼 그냥 다시 돌아갈까요?”

순간, 이클리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16553723433553.jpg“……길을 알려줄게요.”

이클리트의 말에 아멜리아는 심장이 또다시 크게 뛰어올랐다. 손을 마주 잡으면, 혹여 이 소리를 들킬 것 같았지만.

16553723227082.jpg“……고마워요.”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손을 살포시 붙잡았다.

16553723227082.jpg‘이건 그저 길을 알려주시는 거야. 그래, 그것뿐이야.’

승마를 핑계 삼아 두 사람은 그렇게 조금은 천천히. 하지만 나란히 함께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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