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그냥, 완벽하게 지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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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그냥, 완벽하게 지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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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그냥, 완벽하게 지키면 됩니다
2022.04.08.
“태양의 제단은 건드릴 수 없습니다.”
알렉드라의 완고한 말에 대신관도 살짝 기대가 식으면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당연하지요. 태양의 제단은 솔라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니.”
에드조프는 생각 외의 반응에 살짝 짜증이 치밀었으나, 참으며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태양의 제단으로 가는 협곡을 건드리는 것은요? 프리메 황자를 지키지 못하면, 피오레 공과 클리오 대공에게도 분명 영향이 갈 텐데요.”
하지만 알렉드라는 서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리메 황자를 건드리는 건 안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제국 간의 분쟁으로 치닫게 될 사항입니다.”
“포르티셰 공이 이토록 걱정이 과한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말에 뼈가 담긴 에드조프의 어조에 알렉드라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무리 피오레 공과 클리오 대공 전하가 마음에 안 들어도, 분쟁까지 만들면서 솔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무리수를 둘 수는 없습니다! 그건 오히려 바스티얀 대공께서 포르티셰 공작가를 모함하는 것입니다.”
알렉드라는 사나운 기세로 에드조프를 향해 명백하게 말했다.
“포르티셰 공작가는 솔라를 지키는 군부입니다. 제국을 지키는데 긍지와 명예가 있단 말입니다.”
처음, 아멜리아가 이번 평화 회담에 제국민과 루베르까지 참석시킨다고 했을 때는 당장이라도 엎어버릴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국을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이성이 나가진 않았다.
한쪽이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해서, 같이 어리석은 짓에 휘말릴 수는 없다.
품위를 지키며, 원칙대로 그 어리석음을 일깨워줘야 했다.
물론, 그 원칙이 다소 격할 수는 있어도 말이다.
대신관은 그런 알렉드라의 기세에 눌려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에드조프는 그런 알렉드라의 고지식한 모습에 이를 악물며 일단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런 문제로 포르티셰 공작가와 당장 척지는 건 괜한 짓이다.
‘마음에 안 들어도, 일단 내가 황제가 될 때까지는 곁에 둬야 해.’
“공의 말이 맞습니다. 제가 너무 답답하여 마음이 조급해진 모양입니다. 공이 이해해주세요. 역시 저는 아직 공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알렉드라는 고개를 꺾은 에드조프의 모습에 만족하며 말을 이었다.
“물론 이대로 피오레 공을 지켜볼 생각은 없습니다. 피오레 공은 제국의 근본을 어지럽히고 있으니. 황실과 귀족의 권위를 계속 실추시킬 수는 없지요. 그런 아무것도 모르는 계집 때문에 체제가 무너질 수는 없지.”
알렉드라는 아멜리아를 떠올리며 한껏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일단, 평화 회담의 성공은 솔라와도 관련 있으니. 그 이후 원칙대로 진행할 겁니다. 루베르가 무슨 수를 쓰고 있는지는 몰라도 분명 이번 밀주 사건과 연관 있습니다. 루베르 장로라는 자도 몹시 수상하고 말입니다.”
알렉드라는 루베르 장로, 아이냑이 전사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어쩌면 반군 세력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계속 조사 중입니다. 밀주와 루베르가 연관 있다는 걸 찾고, 근본 없이 움직인 대가를 반드시 피오레 공이 치르게 할 것입니다. 주제를 깨닫게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물론이지요, 포르티셰 공. 어디 공이 허투루 말씀을 하시는 분입니까.”
에드조프는 기묘한 미소를 띠며, 주춤하고 있는 대신관을 주목했다.
알렉드라는 대신관을 쳐다보며 말했다.
“대신관님께 한 가지 요청하겠습니다.”
“예? 아,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신성회에서도 인원을 보태주시지요. 공작가 기사들로만 밀주 사건을 조사하기엔 시간이 빠듯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그 계집이 평화 회담을 대체 어떻게 여는지. 그 아수라장을 직접 보고, 후야제에서 뵙지요.”
“예, 포르티셰 공작 각하.”
알렉드라는 걸음을 돌리면서, 에드조프의 어깨를 꽉 붙들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스티얀 대공 전하. 대공 전하의 권위가 흔들릴 일은 없을 겁니다. 클리오 대공이 차기 황위 계승자라니, 말이 안 되지요. 이 포르티셰 공작가가 함께하는데 대체 뭘 걱정하시는 겁니까?”
‘게다가 이번 일은 분명, 폐하께서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기세 좋은 알렉드라의 말에 에드조프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입니다. 포르티셰 공만 믿고 있습니다.”
알렉드라가 먼저 자리를 떠나고, 에드조프는 그에게 붙잡혔던 어깨를 털어냈다.
‘감히 황자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고, 여전히 시건방지긴. 게다가.’
원칙? 명예를 지킨다고?
이제 와 제국을 위하는 척, 위선을 떨어보겠다는 건가?
‘안 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담을 망쳐야 해. 프리메 황자를 죽여서라도. 그 죄를 이클리트에게 지게 만들어야 해!’
이 같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치워낼 수 있다.
아니 치워낼 것이다.
그 괴물 자식이 두 번 다시 이 솔라리스 황궁에 서 있지 못하도록.
‘전부 빼앗아야 해!’
에드조프는 대신관을 바라보며 은근한 미소를 띠었다.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신관님.”
“아닙니다, 바스티얀 대공 전하. 그럼 평화 회담에서 뵙겠습니다.”
“예, 그래야지요. 하지만 영 걸리는군요.”
에드조프의 은밀한 속삭임에 대신관이 멈칫했다.
“아무리 그래도 성스러운 태양의 제단에 루베르가 오다니. 제단을 관리하는 건 신성회 아닙니까? 그런데 신관을 죽인 자와 친밀한 원수…… 이러다가 태양신께서 노하시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안 그래도 겨우 참고 있었던 대신관은 에드조프의 말에 분함이 복받쳤다.
“그렇지요. 물론 포르티셰 공작 각하의 말에 일리가 있지만…….”
“일리가 있지만, 그래도 성스러운 제단을 지키는 것이 신성회의 의무 아니겠습니까?”
에드조프는 이미 빈틈을 보이는 대신관을 가볍게 흔들었다.
“제단으로 가는 협곡은 험합니다.”
“협곡…….”
“사고가 벌어지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오히려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게 기이한 일이지요.”
에드조프의 시선이 흔들리는 대신관의 눈동자를 부드럽게 훑어내리며, 계속해서 그럴싸한 말을 속삭였다.
이미 에드조프의 혀끝에, 대신관의 머릿속은 들썩이고 있었다.
아무리 신을 모시는 신관이라고 해도.
그 역시 인간이기에.
인간은 모두 자신이 원하는 욕망 앞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협곡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전부, 태양의 눈이 루베르를 통과시켜주지 못해서 생긴 일일 겁니다. 당연히 제단으로 가는 길을 루베르에게 열어줄 리 있겠습니까?”
“다, 당연하지요. 하지만 루베르는 그렇다고 쳐도 프리메 황자 전하는…….”
“황자 전하는 무사하실 겁니다. 루베르만 태양의 눈을 통과하지 못하겠지요.”
대신관은 점점 섬뜩하게 파고드는 에드조프의 말에 하얗게 질린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그렇지요. 루베르. 루베르 장로만…….”
대신관은 살며시 두 손을 모았다.
이 모든 것은 태양신의 뜻이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이를 신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것이다.’
에드조프는 결연함이 서린 대신관의 눈빛에 만족을 띠며 입꼬리를 짙게 추켜올렸다.
‘신성회는 루베르를 공격할 테지만, 그 속에 프리메 황자가 끼어있어도 어쩔 수 없지. 사고인데.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지!’
***
“포르티셰 공은 무모한 짓을 하진 않을 거예요.”
호언장담하는 루시아의 말에 아멜리아는 고개를 들고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포르티셰 공 역시 이번 회담이 성공하길 바라지 않는데…… 저는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루시아는 그런 아멜리아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평화 회담이 이런 식으로 성공하길 바라진 않죠. 제국민과 루베르라니. 하지만 이미 폐하께서 결정하신 일이고. 몹시 보수적이고 못된 사람이지만, 비겁한 사람은 아니에요.”
루시아는 특유의 거만함과 오만함으로 똘똘 뭉친 알렉드라를 떠올렸다.
“귀족주의 성향이 강하기에, 원리원칙에 따른 명예와 위엄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비겁하게 협곡을 공격한다거나, 그로 인해 프리메 황자 전하가 다쳐서 솔라 제국을 위험하게 만드는 짓은 안 해요. 아마도 평화 회담 이후를 노리겠지. 어떻게든 밀주와 루베르를 엮어서 말이죠.”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질린다는 어조로 말했다.
“한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 무조건 옳은 거거든. 내가 아무리 루베르가 아니라는 증거를 내보여도, 분명 지금 믿지 않고 있을 거라고요.”
아멜리아는 루시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알렉드라는 밀주 사건 때문에 자존심이 살짝 깨진 상태이니.
끝까지 자신의 뜻을 관철하며, 밀주로 루베르를 걸고넘어질 작정인 거다.
그렇다면 문제는.
‘에드조프야.’
포르티셰 공작이 에드조프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는 다른 이를 움직일 거다.
‘자신의 손을 직접 더럽히지 않아. 밀주 사건도 배후 뒤에 숨어서 움직였으니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얼마나 중요시하는 사람인가.
포르티셰 공작이 안 된다면, 장로회?
‘아니. 장로회는 이미 한 번 실패했기에 잠시 몸을 움츠리고 있을 거야.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순간, 아멜리아와 이클리트의 시선이 부딪히면서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다.
‘신성회.’
태양의 제단을 관리하고, 루베르에게 잘못된 원한도 가지고 있는 신성회가 가장 유력하다.
그때, 이클리트가 간단하게 한마디를 했다.
“포르티셰 공이 움직이든, 아니든. 다른 누군가가 방해하든, 중요한 건 딱 하나지. 무조건 지켜서, 무사히 제단에 도착하는 것. 우리도 비겁하게 하지 않고 원칙대로 간다. 호위 인원을 총동원하여, 아주 완벽하게.”
“네? 하, 하지만…….”
아멜리아가 당황했으나, 세스가는 맘에 든다는 듯 엄지를 올렸다.
“크, 몹시 단순하긴 한데, 그래도 뭐. 북부의 흑사자인 클리오 대공이 지켜준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다. 아니. 오히려 든든하지요.”
아이냑도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 했다.
“저도 돕도록 하겠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말하니, 아멜리아는 뭐라고 끼어들 수가 없었다.
‘정말. 이렇게 단순한 방법으로 되는 거야?’
루시아는 그런 아멜리아의 속내를 꿰뚫고서 코를 찡긋했다.
원래가 남자들은 단순하니까.
이클리트는 세스가를 보며 물었다.
“프리메에서 이번 평화 회담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무엇입니까?”
“아! 조각상입니다. 예술작품이지요. 바람의 여신과 그녀들의 종인 성녀들을 형상화했습니다. 평화를 기원하면서 말이지요. 태양의 제단에서 공개될 테지만, 아주 아름다울 겁니다.”
저택으로 당도했던 마차의 규모가 입이 떡하니 벌어졌던 건, 바로 이 조각상을 싣고 왔기 때문이었다.
“몹시 중요한 조각상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지만.”
“네?”
“그래도, 기대되는군요.”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대공 전하께서, 저런 조각상에 관심을 가지신다고?’
“그럼 그 조각상도 철저히 지켜서 제단으로 가져가겠습니다.”
“오오! 이것도 클리오 대공 전하께서 직접 나서주신다면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럼 조각상과 황자 전하, 이렇게 둘을 호위할 수 있도록 인원을 나누겠습니다.”
아멜리아는 그 말에 더는 가만히 있지 못한 채, 이클리트를 붙잡았다.
“호위를 나눈다고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위험할 텐데…….”
하지만 이클리트는 태연한 표정으로 아멜리아를 다독였다.
“괜찮습니다, 부인. 절 믿어주세요.”
“아니.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믿는다. 그는 강하니까. 하지만 자칫, 수인의 힘을 쓰겠다고 한다면…….
‘그건 안 돼. 막아야 해.’
이클리트와 단둘이 남게 된 아멜리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클리트를 보며 당부했다.
“대공 전하. 알고 계시겠지만, 절대로 그 힘이 드러나면 안 돼요. 절대.”
“드러나진 않을 겁니다. 물론 약간의 도움은 받겠지만.”
“네?”
약간의 도움이라니. 너무 불길하잖아!
“에드조프와 밀주의 배후가 자신들의 힘을 너무 믿고 있으니. 그 믿음을 한번 이용해보려고 합니다.”
“이용이라니…….”
“지금부터 할 일이 있어요.”
“할 일이요?”
“프리메 제국에서 보낸 조각상. 제단으로 가기 전에 먼저 한번 보고 싶습니다. 크기가 적당한지. 옮기기에 안전한지.”
“조각상을요?”
아멜리아는 진지하게 조각상에 관심 가지는 이클리트의 모습에 더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클리트는 그저 말없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