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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마지막 준비 (133/199)


133화. 마지막 준비
202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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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을 보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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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을요?”

아멜리아가 의아해하자, 이클리트는 엷은 미소를 띠며,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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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마트료시카라는 이름의 목각 인형을 아십니까?”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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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처음 들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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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대륙 어느 일족의 전통 인형입니다.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인형을 넣어서 하나의 인형으로 만드는 거죠.”

꽤 자세히 알고 있는 이클리트의 설명에 아멜리아는 짧은 탄성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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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신기하네요. 아니, 대공 전하께서 그런 인형을 알고 계신 줄 몰랐어요.”

사실 그 점이 더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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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인형인데, 재미있어서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하나의 인형으로 보이거든요, 하지만 그 속을 까면 깔수록 다양한 인형들이 계속 나오죠. 그렇게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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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주 꼭꼭 잘 숨겨져 있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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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그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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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클리트는 아멜리아를 빤히 보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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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가 황자도 그렇게 잘, 숨기면 되는 겁니다.”

아멜리아는 그의 말을 되뇌다가 순간 멈칫하면서 눈을 크게 떴다.

이클리트는 그런 그녀의 사소한 반응을 눈치채고는 입꼬리를 더욱 길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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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니까. 조각상을 제게 먼저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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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상을 보기 위해선 세스가의 허락이 필요했기에.

아멜리아가 세스가에게 부탁하자, 그는 기꺼이 함께 가자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조각상을 보관 중인 홀에 다녀왔다.

조각상을 확인한 이클리트는 내일을 준비해야겠다며 먼저 걸음을 뒤로 돌렸다.

모든 계획을 듣긴 했으나, 아멜리아는 이클리트를 떠올리며 여전히 걱정 어린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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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실까. 그보단 시간이 많이 없을 텐데…….’

그래도 그분을 믿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만약 제대로 성공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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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빠듯하긴 하지만 그래도 성공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몹시 기대되기도 하고 말이야.”

세스가가 아멜리아의 속내를 간파한 것처럼 말하자, 아멜리아는 바람 빠지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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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황자 전하께선 위험하실 수도 있는데, 너무 여유로우신 거 아니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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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지만 잘 지켜줄 거라고 피오레 공과 클리오 대공을 믿는 거지. 게다가 지금은 호기심이 더 앞서기도 하고.”

눈을 반짝거리는 세스가의 모습에 아멜리아는 이제 그의 성향을 전부 파악하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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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궁금하면 못 참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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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가 항상 그것 때문에 뭐라고 했었지. 호기심에 목숨 팔지 말라고. 목숨보다 호기심이 중요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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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 전하의 직속 시녀라면, 걱정이 참 많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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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가끔은 호기심이 더 중요할 때도 있지. 그만큼 짜릿하고 재미있으니까. 인생이 재미없으면 무슨 낙이 있어? 인간이 욕망을 가지게 되는 이유도 결국 재미있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더없이 가볍게 말하는 세스가를 보면서 아멜리아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굉장히 자유로운 그의 분위기가 부러웠다.

뭐든 하고 싶고, 알고 싶고, 바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럴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거니까.

세스가는 기지개를 쭉 켜다가 천장을 보고는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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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여긴 정말 멋지네.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다니. 정말로 하늘 바로 아래 있는 것 같아.”

아멜리아도 새삼 천장을 바라보았다.

태양의 제단이 솔라에서 가장 태양과 가깝게 맞닿은 곳이라고 하지만, 이곳도 천공에 닿아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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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바람으로 지었겠지? 황후 폐하의 별장이었다면. 역시 황후 폐하의 바람이 들어있는 걸까?’

자유를 향한 갈망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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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그때, 루시아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스가는 곧장 풀어졌던 표정을 바로 했고, 루시아도 세스가에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싱긋 웃으며 윙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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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적으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네요, 세스가 황자 전하. 아까는 서로가 너무 딱딱했죠?”

루시아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낮게 깔리자, 세스가는 차분하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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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틴 공을 이 밤에 이렇게 만나니, 심장이 묘해져서 머릿속이 어지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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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카힐로 경 다음으로 제 마음을 흔드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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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첫 번째가 아니라니 아쉽군. 내일은 중요한 날인데, 더는 다른 곳에 매혹될 수 없으니. 이만 물러가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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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이 끝나는 밤, 꼭 깊은 축하를 나눴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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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러길 바라오, 헤스틴 공.”

세스가는 루시아와 은밀한 눈인사를 주고받은 후, 그렇게 멀어졌다.

아멜리아는 세스가만큼이나 루시아 역시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 싶어서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루시아는 다시금 아멜리아를 보면서 경쾌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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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께 대충 들었어요. 대공 전하께서 따로 내게 부탁한 것도 있으니, 회담엔 같이 가도록 해요. 나도 전력을 보태줄 테니까.”

아멜리아는 루시아의 말에 환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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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고마워요, 헤스틴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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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레 공과 클리오 대공 전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날 위해서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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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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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평화 회담 꼭 성공해요. 그리고 모두에게 보여줘요. 진정으로 모두에게 공평하고, 평등한 태양의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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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틴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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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좀, 많이 보고 싶어할 것 같거든요.”

루시아의 입꼬리가 씁쓸하게 그려졌다.

아멜리아는 어쩐지 평소와 다른 루시아의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왠지 이유까진 물을 수 없었다.

자신이 건드리면 안 되는 기억의 영역인 것 같았다.

아멜리아와 헤어진 루시아는 저택을 나와서는 하늘을 응시했다.

깊은 밤하늘엔, 오늘따라 안개가 자욱하여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아무것도 없는 밤이면 괜스레 죽은 남편이 떠올랐다.

루시아의 남편이자 헤스틴 전 가주는, 사냥 나갔다가 뱀에 물려 죽었다고, 그 죽음조차 보잘것없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뱀에 물려 죽었다고 하기엔, 당시 전 가주는 이미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전 가주는 헤스틴 공작가에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았다.

사교계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헤스틴 전 가주가 직계 혈통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순수는 아니더라도 루베르의 피가 섞여 있었기 때문에, 헤스틴 공작가 입장에선 잡종이었다.

어른들은 전 가주를 얼른 치워버리고 싶어서 루시아의 아이를 원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공작가의 혈통을 낳지 못했기에, 어른들은 계속 전 가주를 궁지에 몰았다.

저주받은 피가 헤스틴의 대를 끊어놓으려고 한다고 말이다.

그 때문에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하며 미쳐가던 전 가주는 맹독이 퍼지는 상황에서 그제야 말간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이 가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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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부인께서 이 헤스틴을 가져요. 당신이 꼭 가져서. 가져서…… 당신 마음대로 해버려.’

 
유언처럼 내뱉은 말 하나에 루시아는 헤스틴 공작가를 가지게 되었다.

온갖 반발이 있었으나, 전 가주의 유언이었고, 루시아는 실력으로 전부를 입 다물게 했다.

어차피 따로 후계자도 없었고.

이 공작가를 가지는 게, 루시아로서는 복수이기도 했고 불쌍하게 죽은 남편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루시아는 아멜리아가 루베르를 점점 솔라의 태양 아래로 데려오는 것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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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봐요. 당신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멸시와 차별을, 저들이 이루려고 하니까.”

 

***

아멜리아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이클리트를 기다렸다.

어느새 창가엔 새벽녘의 습윤한 안개가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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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그녀의 목소리에 걱정이 그득하게 깔린 순간, 심장부터 반응하는 문소리와 함께 이클리트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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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언제 걱정을 했냐는 듯, 아멜리아는 환해진 목소리로 이클리트에게 달려가서는 그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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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세요? 많이 힘드셨을 텐데…….”

이클리트는 그녀가 깨어있을 줄 몰랐기에, 살짝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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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깨어 계십니까?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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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신 건 대공 전하신데, 되려 날 걱정하면 어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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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괜찮아요. 그리고 일단,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클리트의 한마디에 아멜리아의 눈빛이 나직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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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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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을 무사히 끝내야, 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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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될 거예요.”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서는 그와 오롯이 눈을 마주하며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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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잘될 거예요.”

이클리트는 가까워진 그녀의 체향을 견디지 못한 채, 쓰러지듯 그녀를 꽉 끌어안고서,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마치 강아지처럼 안겨든 이클리트의 모습에 아멜리아는 살포시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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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피곤하시죠?”

어느새 열기가 뒤섞인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로 깊숙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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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안 피곤해. 이렇게 부인을 꼭 안고 있으면, 다 괜찮아져요.”

목덜미에 간지럽게 스치는 그의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숨을 삼키다가, 단단한 어깨를 당기며 살짝 까칠한 그의 입술을 머금었다.

순식간에 파고든 그녀의 숨결에 이클리트의 동공이 크게 부풀었다.

아멜리아는 어느새 그의 목덜미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서 느리게 입술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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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더 괜찮아질 것 같아서…….”

그녀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이클리트의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악다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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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오히려 더 힘들어.”

이클리트가 그녀의 입술을 더 깊이 삼키며,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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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새어 나온 신음조차 핥으면서, 그는 그녀의 숨을 남김없이 빨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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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참고 있는 게 새어나가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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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슬쩍 드러나는 소유욕과 함께, 몇 번을 들이켜도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사라질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에게 그녀는 항상 부족하고, 항상 애달프며, 언제나 방금보다 지금 더 사랑했으니까.

아멜리아를 안은 손에서 겨우 힘을 뗀 이클리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엔 아쉬움과 갈망이 위태롭게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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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하고 싶지만, 참을게요. 이번 평화 회담이 무사히 끝날 때까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의 등 뒤를 어루만지는 손가락이 더없이 은밀하고 뜨거웠기에.

아멜리아는 자꾸만 등줄기가 잘게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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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양보할게요. 나의 평화는 조금 뒤에. 각오해요. 절대로 짧은 평화는 아닐 겁니다.”

이클리트의 잔뜩 억눌린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웃음을 띠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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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평화를 바라고 있어요.”

살짝 조르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이클리트는 다시금 크게 숨을 삼키며, 돌아섰다.

어쩐지 그의 턱 끝에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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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준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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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클리트는 마지막까지 아멜리아를 바라보면서 침실을 나섰다.

눈앞에 그녀가 보이지 않자, 이클리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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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힘들군.”

얼른 그녀를 안고 싶다.

마음껏 사랑한다고, 온몸에 속삭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번 일을 실수 없이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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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지켜내겠다.’

 

***

저택 바깥에선 태양의 제단으로 향할 마지막 준비가 한창이었다.

절로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크고 호화스러운 마차가 끝도 없이 보였다.

전부 태양의 제단으로 향할 마차들이었다.

한 마차엔 프리메 제국에서 보내는 선물인 조각상이 있었고, 또 다른 마차는 세스가 황자와 루시아가 함께 타고 갈 마차였다. 게다가 피오레에서 보내는 진상품 마차 등도 있어서 그 규모가 남달랐다.

회담 행차를 준비하던 이들도 이 정도 마차가 준비될 줄 몰랐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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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평화 회담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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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엄청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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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이번 평화 회담이 규모가 크긴 하지. 제국민과 더불어 루베르도 함께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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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가주님이 대단하긴 대단하시네. 그나저나 마차가 너무 큰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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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을 싣고 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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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굳이 다 똑같을 필요 없는 거 아닌가?”

한 일꾼이 의아한 듯 묻자, 다른 일꾼도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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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세스가 황자 전하께서 타시는 마차는 좀 더 호화스러운 줄 알았는데. 물론 지금도 호화스럽긴 하지만, 진상품을 싣고 가는 마차와 똑같네.”

보통 진상품과 국빈을 모시는 마차는 차이가 나기 마련인데, 이번에 준비된 마차들은 전부 너무 다 똑같았다.

심지어 조각상 때문에 크기가 큰 것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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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클리오 대공 전하께서 준비하셨다고 하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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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일꾼들은 의아하긴 했으나,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하면서 마지막 준비를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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