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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폭풍의 시작 (140/199)


140화. 폭풍의 시작
2022.05.06.


제국민들이 전부 아멜리아와 이클리트를 연호하면서 반겨주자, 에드조프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며, 가까스로 분노를 삼켰다.

알렉드라 역시 표정이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다른 귀족들도 그저 슬금슬금 눈치만 살폈다.

이 자리에서 오직 루시아만이 제국민들과 함께 손뼉을 치면서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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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회담이 이렇게 시끌시끌한 적은 처음인데, 너무 보기 좋네.”

루시아의 곁에는 헤이츨도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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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보기 좋은 겁니까? 아니면 저 두 분이 보기 좋은 겁니까?”

루시아는 날카롭게 파고드는 헤이츨의 질문에 입꼬리를 더욱 길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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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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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틴 공은 대체 뭘 믿고 클리오 대공 전하를 택한 겁니까? 단순히 같은 북부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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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모습을 보고도 모르나요?”

몇 달 전만 해도 제국민들과 귀족들은 이클리트를 두려워하고, 대공 취급도 하지 않았었다.

이클리트 역시 사람들에게 두꺼운 벽을 세우고, 결코 다가가지 않았었고.

하지만 지금은 아멜리아의 곁에서 이클리트 역시 사람을 대하는 게 달라졌다.

점점 벽을 허물고서, 어느새 저렇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게 된 거다.

예전부터 지켜봐 온 루시아가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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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베르가 있는 자리에서 지금 이만큼 화합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잖아요? 나는 조금씩 변화하는 힘을 믿어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제자리에서 썩어가는 것을 택할 수는 없잖아요.”

루시아가 곁눈질로 알렉드라와 에드조프를 보면서 헤이츨을 향해 냉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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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카르티아 공은 선택하셨을까나? 이번 평화 회담 전야제엔 대체 왜 걸음 하지 않은 건지. 난 그것도 궁금하네?”

루시아의 그윽한 속삭임에 헤이츨은 살짝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며 고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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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틴 공이 궁금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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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렇겠죠.”

그녀의 질문을 회피한 헤이츨은 묘한 시선으로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걸음이 늦은 이유에 아멜리아가 관련 없지는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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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멜리아와 이클리트는 아이냑에게로 걸어갔다.

어쩐지 아이냑의 표정이 잔뜩 경직된 채,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그 모습에 놀라서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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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무슨 일이야? 어디 아픈 거야?”

아이냑은 아멜리아의 말에 애써 정신 차리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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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다만…….”

머뭇거리는 목소리 끝으로 자꾸만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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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믿어지지 않아서…… 이런 자리에 정말로 서 있는 건가. 다른 루베르도 함께했다면 좋았을 텐데. 제국민들과 함께 섞여서 이렇게…….”

끝내 누르지 못한 감정에 아이냑은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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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자꾸 이런 모습 보여서.”

그 모습에 아멜리아 역시 덩달아 심장이 뜨겁게 두근거렸다.

이클리트는 그런 아이냑의 축 처진 어깨를 힘 있게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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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런 표정 지으면서 고개 숙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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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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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넌 루베르의 대표로 여기 서 있는 것이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서 있어. 못 있을 곳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죄인으로 온 것 또한 더더욱 아니니. 그대도 응당 이곳에 있어야 할 평범한 솔라 제국민이다.”

평범하다는 말이, 그 어떤 말보다 더 묵직하게 아이냑에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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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루베르도 언젠가, 저들과 함께할 것이고.”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거세게 잡아주는 이클리트의 눈빛 아래 아이냑은 제대로 자세를 고쳐 잡고서 표정을 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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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죄송합니다, 대공 전하.”

아멜리아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엷은 미소를 띠며, 화제를 가볍게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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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국민들 있는 자리 주변으로 빛나고 있는 거, 저게 폭죽인가요?”

카렌듈라 조화 속에서 은빛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 자꾸 아멜리아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아이냑이 몹시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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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마나를 실처럼 자아낸 폭죽입니다. 엄청난 장인의 기술이죠. 저기에 불을 붙이면, 하늘로 치솟으면서 마법 같은 순간을 보여줄 겁니다.”

아멜리아는 생각보다 더 신기한 기술에 순수하게 감탄하며,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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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보고 싶네요.”

그녀는 이클리트의 품에 살짝 몸을 기대고서, 하늘을 응시했다.

어느새 그토록 눈부시던 하늘빛이 마치 물감을 떨어뜨린 듯, 붉은색으로 번지고 있었다.

이클리트 역시 아멜리아의 한쪽 어깨를 소중히 감싸면서, 태양신의 성스러운 동상을 바라보았다.

태양의 제단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태양신.

저 태양신의 머리 뒤로 해가 넘어가면, 세스가 황자와 아스란 황제가 함께 나타나고 평화의 횃불이 이 제단을 감싸며, 회담은 시작된다.

아멜리아는 아직까진 평화로운 제단을 바라보며 순간순간 치미는 긴장감을 꾹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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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지금까진 다 잘되고 있어. 아니 잘될 거야. 이미 에드조프의 작전은 실패했고. 대신관도 생각이 있으면 이젠 얌전히 있겠지.’

신성회 신관들도 불편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자리에 대신관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고개 숙이는 척이라도 하겠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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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평화 회담을 끝내면, 제대로 죗값을 치러야 해.’

아멜리아는 시종일관 굳어진 표정으로 겨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에드조프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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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조프도 더는 평화 회담을 망칠 수 없을 거야.’

일단 회담 자체는 길지 않았다.

두 제국이 함께한다는 상징적인 자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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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무사히.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면 돼.’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카힐로가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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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힐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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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습니까, 피오레 공작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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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보기 통 어렵던데, 제단에 먼저 와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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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의 명을 받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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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요?”

아멜리아가 이클리트를 바라보자, 이클리트는 그저 의문스러운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서 살며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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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폐하께서 오시기 전까진 오겠습니다.”

아멜리아는 카힐로와 이클리트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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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아이냑과 함께 있을게요.”

이클리트는 미안한 표정을 띠며, 아멜리아의 손을 한 번 더 세게 잡아주고는 걸음을 돌렸다.

아멜리아는 그런 이클리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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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생기면, 대공 전하께서 반드시 말씀해주실 테니까.’

 

***

카마리와 칼렌이 태양의 제단 바깥에서 호위 인원을 나누며,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카마리는 천장이 뚫려있는 제단을 보면서, 한숨 섞인 어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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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와 가주님의 밀착 호위는 내가 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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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 주변으로 티어들이 전부 배치되어 있습니다. 천장이 뚫려 있어서 호위가 힘들긴 하지만, 너무 걱정 마십시오. 게다가 황실 근위대도 함께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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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을 믿습니다.”

카마리 입에서 나온 단장이라는 호칭에 칼렌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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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그렇게 단장님이라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임시고, 진짜 단장님은 따로 계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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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금은 칼렌 경이 이곳의 단장입니다. 함부로 칭할 수는 없습니다.”

원리원칙대로 아주 칼 같이 말하는 카마리의 태도에 칼렌은 살짝 겁먹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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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죠. 그런데…… 아?”

카마리에게서 살짝 시선을 피했던 칼렌의 눈빛이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환해진 목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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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

칼렌의 한마디에, 카마리의 피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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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이라면. 설마.’

카마리가 천천히 고개 돌리자, 정말로 이사나가 서 있었다.

칼렌은 곧장 이사나를 향해 달려가서는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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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 지금 돌아오신 겁니까? 임무는 잘 마치셨고요? 가주님이 엄청 힘든 임무라서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고 하셨는데. 역시 단장님, 빠르게 임무 완수하셨군요! 여긴 걱정되셔서 오신 거예요? 물론 제가 살짝 긴장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진 다 잘되고 있는…….”

이사나는 신나서 떠들고 있는 칼렌을 붙잡고서 다급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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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님은? 가주님은 어디 계시지? 아니. 그보다 여기 혹시 카렌듈라 조화는 어디 어디에…….”

하지만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카마리가 이사나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고서 당겼다.

이사나는 카마리의 싸늘한 눈빛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채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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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리 경, 지금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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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카마리 경!”

칼렌은 갑자기 이사나를 걷어차 버린 카마리를 보고 경악했다.

하지만 카마리는 신음을 삼키며, 상체를 굽힌 이사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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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단장님한테 뭐 하는 겁니까, 카마리 경!”

도를 넘어선 카마리의 행동에 칼렌이 화를 내며 나섰지만, 이사나가 그런 칼렌을 붙잡았다.

카마리는 더더욱 사나워진 시선으로 여전히 칼자루에 힘을 준 채, 나직이 입술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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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면 적이라면서. 적이 제 발로 여길 들어온 거냐?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보지? 내가 정말로 당신을 못 벨 줄 아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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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리 경, 일단 그건 나중에. 지금 저 평화 회담, 뭔가가 이상하니까…….”

그 순간, 갑자기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땅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동시에 고개를 돌린 세 사람은 그대로 굳어져서는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

제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걸음을 옮긴 이클리트와 카힐로는 주위를 살폈다.

그만큼 그들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다.

카힐로는 이클리트와 따로 움직이며 황궁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바로 에드조프의 유모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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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느냐?”

이클리트의 딱딱한 목소리 끝에 카힐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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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 시녀와 시종, 솔라리스 뒷골목까지 모두 수소문한 끝에, 바스티얀 대공의 유모를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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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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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태양의 제단에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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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클리트는 불길한 마음으로 상황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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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정말 여기로 직접 왔다는 건가? 아니면. 내가 눈치챈 걸 알고, 차라리 여기서 나를…….’

순간, 이클리트는 온몸으로 소름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쿵-!

곧이어 공기가 흔들릴 만큼, 엄청난 진동이 섬뜩하게 피부로 와 닿았다.

카힐로 역시 딛고 있던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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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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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바람에 화약 냄새가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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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이클리트는 재빨리 제단을 향해서 달렸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한 채, 걸음이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카힐로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말을 제대로 내뱉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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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대공 전하…… 저기. 저기…….”

분명, 멀리서도 잘 보이던 태양신의 동상이 시뻘건 연기에 삼켜져 보이지 않았고, 주변으로 굉음처럼 비명이 난무하며 이클리트의 심장으로 거세게 박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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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단으로 향하기 전, 의복을 정비하던 아스란이 시녀를 밖으로 보냈다.

잠시 후, 에리얼이 들어와서는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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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에 다 모였더냐?”

아스란의 말에 에리얼이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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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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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레 공의 드레스는 잘 어울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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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어울렸습니다.”

에리얼의 말에 아스란은 입꼬리를 추켜올리며, 편안하게 의자에 앉았다.

어차피 평화 회담은 열리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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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레 공 때문에 회담이 엉망이 되겠군. 그러게, 건강관리에 신경 썼어야지.”

아스란은 소매에서 조그만 병을 꺼내며 빙그르르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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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제때 마셔야, 다시 건강해질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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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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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드레스는 몹시 귀하고 아름답지만, 그만큼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아직 어린 가주는 몰랐으니 말이지.”

지금은 녹색 염료를 만드는 것이 쉬웠으나, 그 옛날엔 녹색을 만들기 위해 독을 썼다.

아니, 독인 줄 모르고 그 찬란한 녹색 보석 빛에 중독되어 온몸이 마비되면서 숨이 끊어졌다.

아스란은 탁자에 놓인 술 한 잔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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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클리트. 넌 이제 나와 협상해야 할 것이다. 이 밀주를 내 눈앞에서 마시든가. 아니면 그토록 사랑하는 부인을 잃든가.”

그 옛날 놓쳤었던 목줄을 다시 한번 쥘 기회가 눈앞에 온 것이다.

그때, 술잔이 마구 흔들리면서 사방으로 진동이 번졌다.

에리얼은 곧장 아스란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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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십니까,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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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아스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시종장이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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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냐? 지진이라도 난 것이냐?”

하지만 시종장은 마구 입술을 떨면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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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닙니다. 그게 포, 폭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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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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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제단이 폭발했습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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