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태양을 삼킨 어둠 (142/199)


142화. 태양을 삼킨 어둠
2022.05.13.


제단 주변으로 급하게 횃불이 타올랐다.

귀족들은 어떻게든 제단을 빠져나가기 급급했다.

위층에서 제국민들이 얼마나 다쳤는지.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저들의 목숨보다 자신들의 목숨이 더 귀하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입구까지 막혀있어서 어쩌지 못하자, 곧장 기사들에게 험악한 어조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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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뭐야. 당장 어떻게 해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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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우리가 다치면, 네놈들이 책임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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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본분은 우리를 지키는 건데. 이러면 곤란하지. 우리가 누군지 모르냐고!”

기사들은 일순 화가 치밀었으나, 꾹 참고서 어떻게든 입구를 열어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귀족들을 가르며 알렉드라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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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지?”

그토록 시건방지게 목소리를 높이던 귀족들도 알렉드라의 등장에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기사들은 알렉드라에게 예를 갖추고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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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가 막혀있어서, 제단 밖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알렉드라는 제대로 막힌 입구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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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정하고 일을 벌인 셈이군. 대체 목적이 뭐야? 정말로 황실을 공격할 작정이었다면, 아래층을 노려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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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세스가 황자 전하와 바스티얀 대공 전하를 안전하게 모셔야 한다.”

알렉드라는 제 곁에 있던 호위 기사에게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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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단에 있는 포르티셰 공작가의 소드마스터를 죄다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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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공작 각하.”

알렉드라의 명령 아래, 소드마스터들이 입구 앞에 모였다.

그들은 일제히 검에 마나를 불어 넣어, 세이버를 들어 올렸다.

귀족들은 푸른빛으로 빛나는 세이버를 보면서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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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포르티셰 공작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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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티셰 공작 각하의 기사단이라면 믿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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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분께 평화 회담을 맡겼어야지. 괜히 그 어린 피오레 공작에게 맡겨서는…….”

귀족들은 이 상황에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 아멜리아를 헐뜯었다.

알렉드라는 차분하게 입구를 응시하며 손짓했다.

그러자 기사들이 세이버를 휘두르려는 순간.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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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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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갑자기 폭발음과 함께 입구가 그대로 뚫려버렸다.

알렉드라는 쏟아지는 연기에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반쯤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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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누가 이런 짓을!’

그때, 뿌연 연기 너머로 누군가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알렉드라는 누군지 확인하고자, 더더욱 눈을 치켜떴다.

그런데 엄청난 바람과 함께 누군가가 순식간에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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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대공?”

알렉드라는 황망한 어조로 이클리트를 입에 올렸다.

분위기가 다르긴 했지만 분명 이클리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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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설마 그가 입구를 연 건가? 하지만 그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러고 보니 지난번 피의 결투 때, 데릭은 세이버로 맞섰는데 그는 목검으로 싸웠는데도 쉽게 이겼다.

클리오 대공에게 마법 능력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땐 졌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지만…….

알렉드라는 기묘한 눈빛으로 이미 사라진 이클리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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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클리트 라이엇 클리오. 대체 정체가 뭐지?”

 

몰려드는 귀족들 너머에 숨어 있던 키르케가 뱀처럼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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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오셨군. 이제 가장 중요한 구경꾼만 오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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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층에서 제국민들을 구하고 있는 건 오직 아멜리아와 세스가, 루시아와 아이냑. 그리고 몇몇 기사들이 전부였다.

제국민들 상태도 이상했기에, 구조에 속도가 나질 않고 있는 상황에서 손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아멜리아는 목숨이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 제국민들의 상태에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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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독에 당했다는 건 확실하게 알겠어. 하지만 배후와 원인을 따지기 전에, 이들 목숨부터 구해야 해.’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아멜리아는 루시아를 향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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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틴 공! 혹시 입구는 열려 있나요? 있다면 구조 요청을 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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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카르티아 공을 보냈어요. 일단 기다려봐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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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어요. 이대로라면 여기 있는 제국민 전원이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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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그녀를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심장이 덜컹이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 끝에, 이클리트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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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그 이름을 내뱉자마자, 아멜리아의 눈동자도 잘게 떨렸다.

이클리트는 제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아멜리아의 모습에도 안도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그녀의 앞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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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무사하셨……!”

이클리트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새도 없이, 그대로 그녀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여기까지 달려온 내내 그를 괴롭혔던 불안이 진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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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아멜리아…….”

이클리트는 맥이 풀리듯, 그녀의 이름을 연거푸 읊조렸다.

아멜리아도 그런 이클리트를 마주 안고서, 애써 감추고 있던 두려움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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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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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내가. 내가 자리를 비우는 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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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짜 괜찮은데…….”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품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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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너무 많이 다쳤어요.”

이클리트는 그제야 아멜리아의 주변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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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구해야 해요.”

가까이에 있던 루시아가 손뼉을 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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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 그러니까 감격의 재회는 여기까지. 지금은 일단 움직이죠. 위층 지반이 언제까지 버텨줄지도 모르겠는데. 이러다간 다 위험해져요.”

이클리트는 이제야 침착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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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입구가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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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그때, 카힐로가 숨을 헐떡이면서 그들에게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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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예. 아마 티어들도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겁니다.”

카힐로는 이클리트와 아멜리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특히, 아멜리아가 무사한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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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님, 무사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정말로 말입니다.”

뼈가 있는 카힐로의 말에 이클리트는 헛기침하면서 슬쩍 시선을 돌렸다.

아멜리아는 카힐로의 속뜻을 알아채고선, 이클리트를 보며 입술을 뻥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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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참았어요!’

이클리트는 그 모습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카힐로는 거의 전쟁 수준으로 참담한 상황에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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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시 가서 칼렌 경과 카마리 경을 서둘러 데려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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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쪽은 피오레 공과 대공 전하께 맡길게요.”

루시아도 다른 쪽에 있는 제국민들을 구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멜리아는 조금 안도했다.

티어들과 기사들이 늘어나면, 지금보다는 신속하게 이들을 구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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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은 세스가 황자 전하와 아이냑이 움직이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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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왔습니다.”

갑자기 뜬금없는 그의 말에 아멜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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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왔다니. 누구요?”

이클리트는 제단으로 달려오면서, 그를 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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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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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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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가주님!”

그때, 자신을 부르는 칼렌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아멜리아의 눈빛이 단숨에 한곳을 향해 멈췄다.

정말로 이사나, 그가 여기 있었다.

칼렌이 곧장 아멜리아와 이클리트에게 달려와 고개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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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하십니까? 죄송합니다. 곧장 달려왔어야 했는데…….”

아멜리아는 이사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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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아요. 다른 티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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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신호가 닿았는데, 제단을 지키던 티어들은 폭발 때문에 살짝 부상이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 없다고 합니다. 일단 여기로 전부 집합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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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일순, 침묵과 함께 아멜리아가 계속 이사나를 응시했다.

이사나는 그런 아멜리아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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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나 경.”

결국, 아멜리아가 먼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사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칼렌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당혹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카마리 경도 그렇고, 가주님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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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단장님한테 왜 이러시는 거지?’

그때, 지원군이 온 줄 알고 아멜리아에게 달려온 아이냑과 세스가는 이사나라는 말에 특히 아이냑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누군지 안다.

그녀가 말했던 피오레 공작가에 숨어 있었던 루베르 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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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아이냑은 복잡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무거운 침묵 끝에, 이사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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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어들이 걱정돼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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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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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 마을 소녀들도 제국민들과 같은 증상으로 쓰러졌습니다. 이 독의 원인은 카렌듈라 조화에 숨겨둔 독입니다. 날이 더워서 아무도 독으로 의심하지 못한 겁니다.”

아멜리아는 이사나의 말에 헛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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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녀들이 그래서 현기증을 느낀 거구나. 더위 때문이 아니라 독 때문에.’

그렇다면 정말로 계획적으로 이번 일을 꾸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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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회담을 망치려고 이런 짓까지 했다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프리메와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세스가의 목소리가 사나워졌다.

아멜리아 역시 세스가의 말에 의구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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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솔라 내부의 짓이라고? 에드조프가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는 건 너무 무리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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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 원인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원인이라는 말에 아이냑의 눈빛이 순간 멈칫했으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멜리아는 일단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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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제국민을 구해내는 게 순서에요. 전부 구해내고 나서, 배후와 이유를 파악하죠.”

그녀는 여전히 이사나를 보는 시선에 힘을 풀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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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할 걸 하자고요. 그것 때문에 여기 모여 있는 걸 테니까.”

그렇게 아멜리아와 이클리트가 먼저 등을 보였고, 다른 이들도 제국민을 구하고자 흩어졌다.

카마리는 이사나 옆에 딱 붙어서는 싸늘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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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이는 곳에 있어. 이제 당신 못 믿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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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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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지만. 무슨 짓을 했다간, 이젠 정말 가만 안 있을 거야.”

카마리의 말에 이사나는 순간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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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내가 대체 여기 왜 있는 거야? 평화 회담이 잘못되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티어들도 이젠 나와 아무 상관 없는데. 대체 왜…….’

이사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모른 척하다가, 결국 여기까지 오게 만든 이유를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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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칠까 봐. 위험해질까 봐. 동료들이. 가주님이.”

카마리는 나직이 떨리는 눈동자로 이사나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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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네요,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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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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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안 다쳐서.”

카마리는 날 선 숨을 삼키며, 표정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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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헛소리도 이제, 하지 마.”

이사나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든 순간, 아이냑과 시선이 마주쳤다.

일순, 두 사람의 시선이 미묘하게 엉켰으나 서로 외면하고 말았다.

아이냑은 이사나를 가주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사나 역시 가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으니까.

***

마침내 제단으로 아스란이 당도했다.

아스란은 엉망이 된 제단을 보며, 귀족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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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귀족들은 아스란의 불호령에 흠칫하며 고개를 숙였다.

알렉드라는 에드조프와 서둘러 아스란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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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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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티셰 공은 여기서 뭘 하는 게요? 제국민을 구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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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단 바스티얀 대공 전하를 먼저 보호하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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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은 이 나라의 황자가 아닌가? 제국의 황자가 제국민을 버리고 무슨 보호를 받아!”

에드조프는 차갑게 박히는 아스란의 경멸에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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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없는 귀족들은 전부 빠져. 쓸모없으니까. 근위대는 전부 제국민을 구하고, 사태를 수습하라.”

아스란은 에드조프를 지나치면서 짧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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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정말로 이클리트에게 다 빼앗기겠구나. 멍청한 놈.”

머리끝까지 치미는 치욕스러움에 에드조프는 가까스로 다리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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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그년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런 무리수로 회담을 중단한다고 한들, 누구한테 타격이 더 큰데!’

 

기척을 감춘 채, 계속 숨어 있던 키르케가 마침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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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모일 사람이 다 모였군.’

그녀가 천천히 손을 뻗자, 그녀의 손가락에 감겨 있던 뱀이 스르르 움직이며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졌다.

***

황명 아래, 드디어 구조 작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클리트는 어느새 지휘관이 되어, 더 빠르게 제국민들을 찾아냈다.

아멜리아는 아스란의 불호령에 계속 맘에 걸려 있던 의심 하나를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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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폐하께서 개입하진 않은 모양이군.’

하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에드조프가 망신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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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에드조프가 저지른 짓일까? 하지만 아니라면 대체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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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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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지.’

아멜리아는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제국민들을 수색했다.

그런데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숨이 점점 가빠지면서 몸이 더 둔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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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지? 나도 독에 중독됐나?’

하지만 열꽃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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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답답해…….’

코르셋 때문에 답답한 줄 알았는데, 마치 몸 안에서 숨을 틀어 막는 것처럼 죄어왔다.

그러다가 한쪽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휘청이고 말았다.

순간, 정말로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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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지? 갑자기 마비가…….’

그때, 그녀의 발밑으로 뭔가가 스르르 나타났다.

아멜리아는 마구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 섬뜩한 황금빛 눈동자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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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왜 뱀이. 설마 황궁에 사는 뱀?’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퀭할 정도로 새까만 피부와 지저분하게 날리는 잿빛 머리카락 너머, 뱀처럼 쭉 찢어진 황금빛 눈동자.

마치 칼날처럼 훑어 내리는 시선이 사나웠다.

아멜리아는 본능적으로 저 기이한 여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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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주의 배후…….”

키르케는 아멜리아의 속삭임에 섬뜩하리만큼 입술을 쭉 추어올리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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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요, 피오레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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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아멜리아는 이제야 왜 이런 폭발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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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쳐야 해. 제발. 움직여. 제발!’

멀리서 이클리트와 눈이 마주친 아멜리아는 절박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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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대공 전하. 이번에도 참아야 해요! 제발!’

하지만 어느새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에게 다가온 뱀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 사방을 흔들었다.

쾅-!

뜨거운 열기가 공기마저 전부 불태웠다.

분명, 저 엄청난 화염에 휘말렸어야 했는데.

폭발 순간, 아멜리아는 누군가에게 안긴 채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고통 대신 감싸는 익숙한 온기에 아멜리아는 더 절망했다.

흐릿해지는 시야로 검은 깃털과 붉은 눈동자가 보이면서, 그녀는 끝내 눈가에 고인 눈물을 떨궜다.

이클리트가 아멜리아를 안고서 제단 위로 거세게 날아올랐다.

제단의 하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며, 태양을 삼킨 시커먼 어둠 앞에 섬뜩한 적요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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